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29
1530화 심산
액난문이 요동치면서 주변에 무수한 핏빛 뇌전이 번뜩였다.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엽현의 계속된 푸대접에 드디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엽현은 액난문의 분노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액난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전음을 보냈다.
[셋 센다. 셋 셀 동안 하지 않으면 형님에게 다 일러바칠 거다. 자, 하나…….]액난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둘!]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액난문.
이에 엽현이 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로 한 줄기 검광이 떠올랐다. 막 검광이 그의 손을 벗어나려는 이때, 액난문이 여인 앞에 있는 붉은 원으로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쾅-!
찰나의 순간, 붉은 원이 그대로 깨져 나갔다. 하지만 이때, 파괴된 붉은 원 안에서 무수히 많은 부문들이 떠오르더니, 여인의 머리 위에 있던 검을 향해 몰려들었다. 부문들이 검 안으로 흡수된 순간, 혈검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 순간, 엄청난 기운이 마치 핏빛 해일처럼 장산 상공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피처럼 붉게 물든 하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이 모습을 본 순간, 엽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 안에 깃든 힘이 그를 긴장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혹시 저 검과 액난문과 한 판 붙게 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 멈칫한 검이 갑자기 액난문을 향해 맹렬히 떨어졌다.
이를 본 엽현은 매우 흥분된 표정으로 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는 액난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저 빌어먹을 액난문에게 본때를 보여줘!’
이때, 액난문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별 듣도 보도 못한 검에게까지 업신여김을 받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액난문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혈검을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전 했다.
콰쾅-!
이 한 방에 혈검에 균열이 일더니 이내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하늘을 뒤덮고 있던 붉은 기운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 모습을 본 여인은 놀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때, 그녀의 마음 한 켠엔 엽현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엽현 또한 여전히 방방 뛰고 있는 액난문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세 검주들을 제외하면 누가 저놈을 말릴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막념과 도가 힘을 합친다 해도 액난문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강한 액난문이 하필이면 그 남자와 마주친 것은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액난문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이다.
이때,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액난문이 조용히 엽현 곁으로 돌아왔다.
도망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액난문의 몸 안에 그 남자의 검기가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엽현에게서 도망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러면 그 남자가 곧바로 쫓아 올 게 뻔했다.
이 상황에서 액난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남자가 떠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더럽고 치사해도 참는 수밖에!
이때, 여인이 말했다.
“풀어줘서 고맙다.”
엽현이 여인을 향해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만군(挽君).”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군 소저, 그럼 바로 시작하시겠소?”
“잠깐 기다리거라. 우선 회복을 해야 하니까.”
만군은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아 회복에 들어갔다.
이때, 엽현이 만군 앞으로 몇 가닥의 자기를 날려 보냈다.
자기를 본 순간, 만군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렇게 정순한 자기를… 기왕 준다니 사양은 하지 않으마. 고맙다!”
여인은 두말없이 자기를 빨아들였다.
순간, 엽현은 강적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기운을 찾은 만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순간, 그녀의 몸을 옥죄고 있던 쇠사슬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만군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여인이 눈을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은 모두 회복되었어도 그녀의 두 눈 안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만군 낭자, 그대의 두 눈… 어째서 새로 생성되지 않는 것이오?”
이 말에 만군의 표정이 흉흉하게 변했다.
“내 눈은 천가의 손안에 있다. 언젠가 직접 돌려받으러 갈 생각이다!”
엽현은 만군과 그녀의 집안 사이에 피맺힌 원한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계를 뛰어넘는 것뿐이었으니까.
“후… 그럼, 준비됐느냐?”
“준비는 아까 전부터…….”
대답을 채 듣기도 전, 만군이 불쑥 손을 뻗었다.
찰나의 순간, 만군의 손가락이 엽현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기습을 당할 줄은 몰랐던 엽현은 당황해하며 곧바로 반응했다. 피하기는 늦은 상황이니 맞받아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출수하려는 이 순간, 만군의 손가락은 이미 목표지점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쾅-!
찰나의 순간, 엽현의 육신이 가루로 변하면서, 그의 영혼이 수만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 과정에서 엽현의 영혼에 강한 불길이 치솟았지만, 어느새 나타난 진혼검이 엽현의 영혼과 융합을 시도했다.
쾅-!
큰 충격과 함께 불길이 사라지고, 엽현의 영혼 역시 빠르게 안정됐다.
이 순간, 엽현은 머릿속에 텅 빈 것만 같았다.
만약 진혼검이 아니었더라면 단숨에 영혼까지 소멸되어 죽었을 게 분명했다!
이때, 만군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너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소!”
생사지간(生死之間)!
엽현은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방금 전의 장면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죽음과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엽현은 죽음의 공포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
이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존재할까?
엽현은 지금까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여겨왔었지만, 사망이 임박했을 때의 그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죽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였다.
문득, 그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흘렀다.
죽음을 각오하겠다던 자신의 말이 허황된 것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죽여 달라고 애원했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란 말인가!
만군은 엽현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얻은 깨달음은 그 무엇보다 귀중하다는 걸 그녀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곧바로 육신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빠른 회복을 위해 몇 가닥의 자기까지 동원했다.
대략 한 시진 가량이 지나자, 엽현은 다시 육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엽현은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새로 만들어진 육신은 갓난아기의 몸과 같이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계속할까?”
만군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만군이 곧바로 손가락을 뻗었다. 심지어 이번 공격은 조금 전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던 엽현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대응했다. 그러나 만군의 손가락은 순식간에 공간을 뚫고 날아와 엽현의 미간 깊숙이 박혔다.
쾅-!
엽현의 육신이 다시 터져 나가면서, 영혼이 미친 듯이 뒤로 날아갔다.
만 장이 넘게 날아가서야 멈춘 엽현은 이미 영혼이 반쯤 투명해진 상태였다.
이번에도 진혼검이 아니었더라면 진즉 소멸했으리라!
만군이 천천히 엽현을 향해 걸어왔다.
“세 번째에는 그 검도 널 보호할 수 없을 거다. 계속하겠느냐?”
여인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계속하겠느냐!?
이 말은 엽현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엽현이 크게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엽현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육신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다시 반 시진이 흐르고 원래 모습을 찾은 엽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때, 이번에는 엽현이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순살일검!
대화는 필요 없다.
검수는 검으로 대화할 뿐!
검은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만군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만군은 검을 손가락 두 개 사이에 끼우며 간단히 공격을 막아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엽현이 있던 자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때 엽현은 이미 백 장 밖으로 신형을 옮긴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을 찌르는 동시에 물러난 것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만군의 공격은 엽현을 적중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만군은 손안의 검을 흔들며 엽현에게 말했다.
“앞서 두 번의 경험이 도움이 됐나 보군.”
“…조언 한 마디 해 줄 수 없겠소?”
이 말에 만군이 엽현을 향해 다가서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 무엇이 가장 빠른 것 같으냐?”
“마음!”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전을 벌일 때,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어떤 이의 공격 속도는 너의 반응 속도보다 몇 배 이상 빠를 수 있기 때문이지. 바로 너와 나처럼. 내 속도는 네 반응보다 훨씬 더 빠르다. 이것은 네가 내 공격을 피할 수 없는 간단한 이유가 되지. 하나, 방금 전의 너는 미리 예상을 하고 움직였기에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은 예측이란 말이오?”
만군이 고개를 저었다.
“더욱 정확히는 심산(心算)이라 해야겠지.”
“심산? 마음을 읽는다?”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 수를 둘 때, 아무렇게나 돌을 놓아선 안 된다. 고수는 돌 하나를 놓을 때도 다음 몇 수, 심지어 수십 수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심산이다. 마찬가지로, 검수인 너는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의 움직임과 수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전, 너는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물러날 생각을 마침으로써,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이는 네가 이미 심검(心劍)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설명을 들은 엽현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이때, 엽현은 문득 남자가 이야기했던 ‘마음이 가는 곳에 검이 간다’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어떻게 보자면, 속도의 관건은 바로 예측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따른다. 그건 바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반격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엽현은 조금 전에 만군의 공격을 예측하긴 했지만, 이를 반격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속도가 턱도 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예측도 결국 속도가 뒤따라 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때 만군이 말했다.
“우리 무인들 사이에서는 이를 심산이라하고, 너희 검수들은 심검이라 부른다. 마음으로 검을 움직이고, 마음으로 검을 예측하는 것이지. 조금 전 상황에서 네가 펼친 검기에 심검이 결합 되었더라면 매우 위력적인 공격이 되었을 것이다.”
“심검에도 경지가 있소?”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떤 이는 한 수 앞을, 어떤 이는 열 수, 심지어 백 수 앞을 볼 수도 있다. 굳이 단계를 나누자면, 초경(初境), 대성(大成) 그리고 극치(極致)로 구분할 수 있지.”
“그럼 내 심검은 초경이겠구려.”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좀 특이한 경우긴 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왜냐하면, 너는 겨우 성도경이기 때문이지.”
사실 만군은 엽현을 상대해 보고서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그녀의 경지는 이미 영항경 절정,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다음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엄밀히 말해 엽현에 비해 무려 세 단계나 앞서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손을 섞어보니 엽현이 약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만군은 생각을 접어 두고서 엽현을 바라보았다.
“계속할까?”
엽현은 말없이 곧장 백 장 뒤로 물러났다.
이 순간, 그가 서 있던 공간이 길게 갈라졌다.
엽현은 눈앞의 여인이 꽤나 음험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 순간에 대답을 했더라면 자신의 육신은 영락없이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진짜 싸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때, 막 출수하려던 만군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순간, 먼 하늘에서 갑작스레 거대한 회오리가 형성됐다.
이를 본 만군이 차갑게 변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 먼저 가거라!”
“무슨 일이오? 천가의 사람이 찾아온 것이오?”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겠구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거라!”
이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돌아서서 떠나갔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잠시 뭔가 고민하던 엽현은 만군 이내 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봤는데 도망쳐야 할 이유를 모르겠소. 액난계 소주(少主)의 권한으로 그대의 일의 참견을 좀 해야겠소. 만약 천가가 액난계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으면, 그땐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오!”
계옥탑 안.
엽현의 말을 들은 액난문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