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형제는 서로의 사정을 이해해줘야 한다
“활을 쏴라.”
강구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에 감정이 섞여 들어갈 수 있을까?
만약 성이 돌파당한다면 자신들은 물론 성 안의 수많은 백성들까지 학살당하게 된다.
성 밖의 백성들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몇몇 백성들을 살리고자 수많은 인명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
강구는 성 바로 밑까지 다가온 초국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성 위에서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던 병사들의 눈에 비참함이 느껴졌다. 이들은 모두 강국의 백성인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정말로 없었다.
병사들의 손에서 활시위가 떠나려 하는 바로 그때, 강구의 곁에 있던 한 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원수, 보십시오!”
부장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열두 마리의 검은 늑대들이 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엽현이었다.
엽현이 등장하자 성벽 위는 금세 환호로 물들었다.
“엽 국사! 엽 국사가 도우러 왔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외치자 순식간에 병사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엽 국사!
이때 성 안으로부터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한편, 엽현의 얼굴을 확인한 강구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굳게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자 그녀의 양 손바닥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엽현 등 열두 명은 흑랑을 이끌고 그대로 초국의 공성대를 향해 돌진했다.
열 명의 신합경 강자, 그리고 신합경보다 더 강한 엽현과 육반장, 이들 일행의 돌격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비록 단 열둘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작은 군대의 그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흑랑들이 질풍과 같은 속도로 달리자 순식간에 엽현 일행은 공성대 앞까지 도착했다. 이때, 초국의 기병들은 아직 반응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죽여!”
엽현의 노성과 함께 그의 몸에서 한 자루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영수검이 번뜩이자 순식간에 십여 개의 머리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다 죽이자!”
엽현의 뒤에 있던 능한 등 역시 병사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신합경의 강자들, 일반 병사들로는 도저히 그들의 살육을 제지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의 조직이 정비되기 전에 기습한 탓에 병사들이 우왕좌왕한 탓도 있었다.
이때 성벽 위에서 강구가 소리쳤다.
“성문 개방!”
그러자 성문 아래 도착해 있던 강국 백성들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에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밀물처럼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황하지 마라!”
초국의 장수로 보이는 자가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다섯씩 짝을 짓고…….”
바로 이때, 한 줄기 검광이 장내에 번쩍하더니 그 장수의 미간 사이에 한 자루 검이 날아와 박혔다.
이를 시작으로 장교로 보이는 자들이 속속 죽어 나갔다.
[도적떼를 잡으려면 먼저 그 우두머리를 쳐라.]엽현 일행은 그 철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통솔자를 잃은 초국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도망치자!”
수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엽현 등은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열두 마리의 흑랑들이 지나가는 길은 온통 시체로 산을 이루고 피로 강을 만들었다.
그렇게 엽현 등은 도망치려는 초국 병사들을 끝까지 따라가서 검을 박아 넣었다.
이때 초국 진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중년인이 들고 있던 중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돌격!”
그러자 거의 십만에 달하는 기병들이 숱한 먼지를 일으키며 성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자 성 일대가 온통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십만의 기병이 일시에 돌격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이에 엽현이 싸움을 멈추고 미친 듯이 다가오는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퇴각하자.”
어느 틈에 다가온 강구가 말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
그의 외침과 함께 엽현 등과 강국 병사들은 분주하게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걸어 잠갔다.
이에 그들을 추격하던 기병들이 전진을 멈췄다. 기병들로는 성문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 안과 성 밖의 두 군대가 서로 대치를 시작했다.
이때 기병들 사이로 한 중년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가 강국의 엽 국사인가?”
이에 곁에 있던 강구가 엽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알려줬다.
“초국 기병대장 소운산(蕭雲山)이야. 신합경 절정 강자지.”
설명을 들은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성 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그대가 안란수 이후로 탄생한 강국 제일의 천재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오늘 그대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어떤가?”
그 말에 강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속임수야. 평상시도 아니고, 일 군의 통수가 저렇게 안일하게 비무를 신청할 리가 없지!”
바로 이때, 성벽 위에서 무수히 많은 강국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들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싸우자!”
“싸우자!”
수만의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치자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했다.
병사들은 이미 엽현을 바라보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강국에서의 그의 명성은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높다 할 수 있었다. 강국 백성들과 병사들에게 있어 엽현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무인이었다.
강국이 자랑하는 검수, 바로 엽현이었다.
강국의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엽현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 모습에 강구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열기 속에서 엽현이 결투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병사들의 사기와 직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강구가 고민하고 있을 찰나,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받아들이겠소!”
그 말과 동시에 엽현이 검을 들고 소운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엽현이 성 아래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본 소운산이 입가에 미묘한 웃으며 마찬가지로 칼을 쥐고 엽현을 향해 솟구쳤다.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쳐 갔다.
바로 이때, 영수검이 교묘하게 궤적을 바꾸며 소운산의 목을 노렸다.
이때 소운산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뜩였다.
그는 결코 검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엽현의 심장을 향해 검을 뻗었다.
이명환명(以命换命)!
영수검이 막 소운산의 목구멍을 뚫으려는 찰나, 소운산이 맨손으로 영수검을 붙잡았다. 검이 막 엽현의 심장을 찔렀을 때, 소운산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렇게 쉽게 심장을 내준다고?’
‘아니야, 뭔가 잘못됐다!’
바로 이때, 소운산의 검이 불현듯 엽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찰나 간에 일어난 일에 소운산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엽현이 영수검을 비틀었다.
서걱-!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소운산의 오른팔 전체가 날아갔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영수검이 이번에는 소운산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바로 이때, 그들 사이에 웬 검은 장포를 입은 무인 셋이 막아섰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을 만큼의 고수들이었다.
순식간에 그들 중 한 명은 영수검을 막았고 나머지 두 명의 신속하게 엽현의 목을 노렸다.
‘빠르다!’
그러나 엽현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영수검을 빼내어 수 장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능한 등이 성 아래로 뛰어내려 엽현의 곁에 섰다.
열 명의 신합경 강자, 그리고 육반장!
공격에 실패한 흑의인들은 곧바로 왔을 때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엽현이 막 그들을 쫓으려 할 때, 백의를 입은 노인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중토신주 창목학원의 호원존자였다.
백의 노인이 아무 말 없이 엽현을 바라보더니 이내 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선 끝에서 중년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이때 중년인의 얼굴을 확인한 능한과 능약이 깜짝 놀라 뛰어오를 뻔했다.
그 중년인은 바로 능 가(凌家)의 가주 능천(凌天)이었던 것이다!
능천이 능한 형제를 보더니 가타부타하지 않고 한 마디를 날렸다.
“당장 중토신주로 돌아가자!”
능한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 여긴 어쩐 일로…….”
“우리 가문은 이번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 너희 둘은 지금 당장 나를 따라서 중토신주로 돌아간다.”
“싫습니다!”
능한이 차갑게 외쳤다.
이에 능천이 분노한 표정으로 지었다.
“능 가 이천칠백 명의 사람들이 너와 함께 묻히기를 바라는 것이냐!”
능한이 대꾸하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때, 야리 등의 몸에서 전음석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육반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야?”
엽현이 묻자 야리가 심각하게 대답했다.
“당장 돌아오라는 가주의 호출이야.”
감무위가 엽현을 바라봤다.
“나도…….”
다른 이들 역시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백의 노인이 능한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창목학원과 암계는 그대들 가문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대로 이 일에서 발을 뺀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할 것이다. 만약 그래도 우리와 맞서 싸우겠다면, 창목학원과 암계는 그대들 가문을 향해 칼을 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야리 등의 표정이 그대로 경직되었다.
사실 그들의 가문이 서로 연합한다면 결코 약하지 않은 전력을 갖추게 된다. 특히 육반장의 육 가는 중토신주에서도 알아주는 가문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가주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굳이 이 전쟁을 치러야 할 의미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그들의 전음석은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백의 노인 곁에 있던 능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친구가 중요한 건 알겠다만 가족은 어찌할 테냐? 너를 낳고 기른 네 부모들은 중요하지 않느냐? 너의 선택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이 달린 줄 알고 있느냐?”
능한이 말없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야리를 위시한 일행들 역시 모두 안색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창목학원과 암계는 이미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 의미는 앞으로는 만법경 강자들까지 전투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그와 관련된 가문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능한 등의 가족은 그들의 적이 되길 원치 않았다.
까딱하다간 가문 전체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이때 한 편에서 조용히 있던 엽현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형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능한 등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형제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형제가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엽현이 능한 등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봤다.
“비적 용병단의 대장으로서 명령한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중토신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한다! 날 믿어라!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엽현에게 그들은 진정한 형제였다.
엽현에게 있어 형제란 생사를 함께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의 사정을 잘 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이기적인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형제를 찾아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형제일까?
남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만 호소하는 것은 이기심일 뿐이다.
엽현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에게 만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