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33
1534화 왜 그리 자신감이 넘치는 거요?
백갑(白甲) 여인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우주의 법칙을 역행하다니?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이던가?
우주법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수호자인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주법칙을 역행한 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여인은 문득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때, 엽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오.”
엽현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당연했다.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있어도 불운이 몰려오고, 적들이 영원히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 적의 수준은 하나같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 불운의 끝은 도대체 언제쯤 가야 끝이 나는 것일까?
“널 노리는 적이 누군지 아느냐?”
정신을 차린 엽현이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적? 액난지인 아니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널 노리는 진짜 적은 바로 우주신정(宇宙神庭)이다.”
“우주… 신정?”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말했듯, 우주법칙은 총 아홉 개다. 그중 여섯 개를 우주신정이 보유하고 있지. 액난법칙 또한 그것들 중 하나다.”
“우주신정이 얼마나 대단한 자들이오?”
“흠… 네가 보기에 액난문은 어떤 것 같으냐? 강한가?”
여인이 되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액난문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무시무시하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세 검주를 제외하면 그가 만난 적들 중 가장 강한 존재일 것이다.
여인이 말을 이어갔다.
“액난문은 액난법칙의 수호자일 뿐이다. 진짜 액난법칙의 위력은 액난문에 비할 바가 아니지.”
“…….”
순간, 엽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게냐?”
“당연히… 무서우니까…….”
“…….”
이번에는 엽현이 질문을 던졌다.
“그대 또한 우주법칙의 수호자 아니오? 그럼 우주신정과 한 패인 것이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 어쨌든… 원래라면 너는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다. 즉, 네가 죽기 전까지 이 대결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주신정은 어디에 있소?”
“그건 왜 묻는 거냐?”
“내게 형님이 한 분 계시오. 상대가 없어 십만 년을 고독하게 지내셨는데, 친구를 좀 소개시켜 주려 하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들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사실이오?”
“물론이다. 나뿐 아니라, 액난문도 모르긴 마찬가지일 거다. 우주법칙 정도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지.”
“…….”
엽현은 아쉬움을 느꼈다.
만약 그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 남자를 대동해서 한바탕 뒤집어엎을 수도 있을 텐데…….
이때, 그는 문득 청아를 떠올렸다.
청아는 우주신정을 찾아서 떠났던 것이었을까?
“너무 오래 머물렀다. 이제 그만 떠나거라.”
여인의 말에 엽현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여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너와 대화를 한 것만으로 내게 어떤 불운이 닥칠지 모른다. 더 이상 머무는 게 부담스러우니 어서 떠나거라.”
“소, 소저!”
엽현이 황급히 외치자, 여인이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아직 볼 일이 남았느냐?”
“그러니까… 이곳에 우주법칙이 존재하는 거이오?”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우주법칙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수호하던 법칙의 힘이 남아 있지. 외부인이 침입했을 때, 무공 수위를 잃는 건 바로 이 힘 때문이다.”
이때, 가만히 있던 만군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시체들을 볼 수 있었소. 다 그대가 한 짓이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런 게 맞다.”
순간, 여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흥! 감히 주제를 모르고 지고지상한 우주법칙을 탐하러 온 것 자체가 죽어 마땅한 일이다.”
이 말에 만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 역시 하마터면 저 시체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만군의 입장에서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여인이 다시 한번 엽현의 복부를 응시했다. 순간적으로 눈에서 살기가 일었지만, 결국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돌아섰다.
“소저!”
여인이 다시 멈춰서 돌아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약소하지만 한 가지 선물을 드리겠소.”
엽현이 손을 펼치자, 한 뭉치의 자기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려 백 개도 넘는 수의 자기였다.
자기를 본 순간, 여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이렇게나 정순한 자기라니!”
“하하, 괜찮으면 받아 주시오. 물론 나와 엮이는 걸 꺼려 해서 거절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소.”
잠시 자기를 응시하던 여인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액난지인 따위는 두렵지 않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여인이 손을 뻗어 자기를 거둬들였다.
“저기, 조금 더 줄 수 있느냐?”
엽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엽현이 손을 펼치자, 이번에는 삼백 가닥 정도의 자기가 나타났다.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받아들였다.
“나 또한 받기만 할 순 없지.”
여인이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엽현 앞으로 황금색 부적 한 장이 날아왔다.
“이건…?”
“우주법칙의 힘이 들어 있는 부적이다. 사용 시, 한 사람의 무공을 봉인할 수 있다. 단, 일회 한정이니 신중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이오?”
“너무 강한 자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흠… 예를 들어 너를 대신해 액난법칙을 막아내고 있는 존재에게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청아나 청삼남 정도 되는 자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다만, 액난문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엽현은 사양하지 않고 부적을 받아들었다.
“그럼… 네 안에 있는 액난문을 조심하거라. 놈은 네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니까. 그럼, 이만!”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이 자리에서 떠났다.
그녀가 사라진 이때, 엽현은 천지간에 뭔가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뒤이어, 그의 육신을 통제하고 있던 봉인이 서서히 사라졌다.
“저 여인은 이곳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던 걸까?”
“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엽현의 대답에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강자와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이었다.
“만군 소저, 이제 어찌할 생각이오? 보아하니 그대의 계획은 틀어져 버린 것 같은데?”
“…….”
“별 계획이 없다면, 이쯤에서 해어지는 게 좋을 것 같소.”
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해 준 은혜는 잊지 않으마.”
“하하,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소. 참, 그나저나 그대와 천가는 왜 이렇게까지 앙숙이 되어 버린 것이오?”
“…….”
“이런, 괜한 질문을 한 모양이군. 미안하오.”
이때, 만군이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한쪽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내 부친은 천가의 전대 가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을 이을 소가주였지. 어느 날, 부친과 이숙(二叔)… 그러니까 현 가주 천림(天臨)이 함께 명하성역에 위치한 검연(劍淵)이란 곳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십 일 후, 이숙 혼자만 천가로 복귀 했지. 그가 말하길, 아버지는 검연에서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맞아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던 내가 무인들을 동원해 조사에 나서려는 찰나, 몇몇 장로들의 추대를 받은 이숙이 가주로 등극했다. 이후, 이숙은 나를 지지하던 장로들을 모조리 숙청하고서, 나마저 역모죄를 씌워 제거하려 했지. 만약, 그때 천사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내 목숨은 이미…….”
만군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이숙은 결국 천 년이란 시간 동안 날 장산에 가둬 놓았다. 이 시간 동안 부친 쪽의 혈맥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남은 것은 달랑 나 하나뿐이다.”
“흠… 정황상 이숙이란 자가 그대의 부친을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가능성이 아니라 그가 죽인 게 확실하다! 나 말고도 천가의 무인들은 모두 그리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가는 왜 그를 처벌하지 않은 것이오? 심지어 가주로 추대하기까지 하다니?”
이에 만군이 답답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이숙은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데다, 천가의 최고수였으니까. 만약, 그를 제재하기로 결정했다면, 천가는 사분오열로 갈라졌을 거다. 결국, 천가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대승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던 것이지.”
말을 하는 도중, 만군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그 쓰레기 때문에 죽어야 했던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불쌍하구나.”
엽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거대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알력 싸움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복잡한 것이었다.
만군은 하늘을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내 손톱이 파고 들어간 자리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 원한을 갚지 않는 한,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이때, 만군이 문득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게 됐다. 괜히 나를 구해 달라 해서 애꿎은 너까지 천가의 일에 연루되도록 만들었으니.”
“만군 소저, 그 일은…….”
바로 이때, 엽현과 만군이 동시에 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두 사람 정면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성군과 천모였다!
성군이 엽현을 보자마자 대뜸 소리쳤다.
“네 놈이 기어이 우주법칙을 얻은 것이로구나!”
“…….”
엽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어라 대답해도 오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백갑의 여인이 떠나고 금제가 해제되자, 이들은 엽현이 우주법칙을 얻은 줄로 착각한 것 같았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짐작이 확실하군! 꼬마야, 우린 널 해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우주법칙만 얌전히 내놓는다면 천가는 절대 널 건들지 않을 거다!”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믿어 주겠소?”
“내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어수룩해 보이느냐?”
“하하하! 질문을 바꾸겠소. 우주법칙을 넘겨준다면 정말로 날 살려 줄 수 있소?”
성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걸 어쩌나. 나도 못 믿겠는데?”
엽현의 천연덕스런 대답에 성군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네 뒤에 어떤 배후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상대해야 할 게 누군지 아느냐? 그건 바로 우리 천가다!”
“도대체 천가가 어느 정도로 강하기에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거요?”
이에 엽현 곁에 있던 만군이 설명했다.
“천가는 명하성역 제일의 초일류 세력이다. 천가가 나서면 그 누구도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없지.”
엽현이 또다시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이번에는 천모가 화난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성군, 도대체 저 어린 것과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저놈도 죽이고 그 배후도 멸하면 될 일 아닙니까? 바로 이렇게!”
말을 마치기 무섭게, 천모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쉭-!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그대로 갈라졌다.
그녀의 무공은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백갑의 여인이 떠나고, 우주법칙의 봉인이 풀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