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36
1537화 정말 성질나네
선조 소환!
엽현은 천림이 곧바로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자 다소 의외라는 감정을 느꼈다. 동시에 궁금했다.
과연 천가의 선조는 저 액난문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엽현은 액난문을 흘끔 쳐다보았다.
이때의 액난문은 한 점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제아무리 천가의 선조라도 이 여인을 이기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번에는 천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림은 얼굴부터가 이미 귀신처럼 변해 있었다.
분노!
이 지역의 패자인 천가의 가주로서, 천림은 이미 충분히 자존심을 굽힌 상태였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정도라는 걸 모르고 계속 몰아붙이니, 천림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천가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왜 모르는가!
이때, 하늘 높이 솟구친 영패가 희미해지더니, 이내 그 자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강력한 무형의 기운이 불어와 주변 공간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다. 노인의 존재를 공간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자 엽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혹시 생각보다 강력한 존재인 것일까?
이때, 엽현 곁에 있던 만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천건(天乾), 천가 역사상 가장 강했던 선조로 우리 가문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존재지. 그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엽현은 액난문을 바라보았다. 액난문은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만군의 손을 잡아당겼다.
“갑시다. 가려면 지금뿐이오.”
엽현은 그대로 만군과 함께 슬금슬금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가 아는 한, 세 검수를 제외하면 액난문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설령 막념과 도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그녀를 천가의 선조가 상대할 수 있을까?
엽현은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만약 남자가 금제를 걸어두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은 감히 그녀와 마주 보고 서 있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역시나 도망치는 게 최선의 선택!
바로 이때, 허공에 떠 있던 천건이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젊으니, 잠시 멈추시게.”
이에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무슨 볼일이라도…?”
천건이 액난문을 흘끔 쳐다보고는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엄밀히 따져 보자면 이 일은 자네 때문에 일어난 걸세. 이대로 가 버리는 건 너무 매정한 것 아닌가?”
“…그게 왜 내 탓이오?”
엽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천건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전후사정을 들었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은 내 후예들이 잘못한 것이니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지. 힐난하려는 건 아니었으니 너무 염두에 두지 말게나.”
천건이 이번에는 액난문을 향해 서더니, 공손히 예를 갖춰 말했다.
“소저, 우리 천가는 액난계에 조금의 불경한 생각도 품고 있지 않소. 그러니 부디 손을 거두어 주시길 바라오.”
천건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자 천림 등의 표정이 크게 어두워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챌 수 있었다. 이번에 자신들이 크게 실수했다는 것을!
과연, 눈앞의 여인은 자신들이 건드려선 안 될 존재였던 것이다!
이때, 천모가 천림 곁으로 다가가더니 귓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이때, 천림이 눈을 크게 뜨더니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공자! 사실이오? 저 여자가 그대의 ‘형님’이 아니란 말이?”
이에 엽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내가 언제 그런 말 한 적 있소? 그리고… 척 봐도 여잔데 무슨 형님이오?”
순간, 천림의 눈에서 살기가 튀어나왔다.
“놈… 감히 본좌를 속여?”
“아니, 먼저 생사를 함께 나누고 어쩌고 한 건 그대가 아니오? 게다가 내 적은 그대의 적이라고도 하지 않았소? 그 말에 무척이나 감동했었는데, 그건 다 거짓이었단 말이오?”
천림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무슨 저런 뻔뻔한 자가 다 있단 말인가!
천림 곁에 있는 천모의 표정 역시 흉흉해졌다.
더 일찍 귀띔을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 역시 액난문의 말에 놀아난 상태였던 터라 말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액난문은 처음에는 엽현을 죽일 것처럼 굴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액난문이 자신들과 한 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엽현을 돕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사실 당황스러운 것은 비단 천모뿐 아니라, 엽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림과 잘 풀어나가고 있던 순간에 갑자기 액난문이 나타나 훼방을 놓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액난문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때, 천림이 화가 난 얼굴로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저 여자가 네가 말한 형님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너…….”
바로 이때, 액난문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쾅-!
한 줄기 혈뢰에 직격을 당한 천림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순식간에 다시 재생됐다.
다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영혼이었다.
천림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말없이 액난문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때, 액난문이 천림을 향해 사나운 눈초리를 보냈다.
“형님, 형님! 제발 그 형님 소리 좀 안 할 수 없느냐! 아주 듣기 싫어 죽겠다!”
이에 천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여자야! 우리가 엽현 저놈을 노릴 때도 와서 행패를 부리고, 화해를 해도 행패를 부리고, 도대체 정신병자가 아니면 이게 도대체…….”
바로 이 순간, 허공에 있던 천건이 한숨을 쉬더니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쾅-!
순간, 말을 하던 천림이 주르륵 밀려났다.
자리에 멈춘 천림은 천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왜 말리시는 겁니까! 우리 천가가 이런 대우를 받고도 참아야 한단 말입니까!”
“후… 멍청한 녀석.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됐단 말이냐?”
“…….”
천건은 재차 한숨을 쉬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황으로 보자면, 저 검수와 여기 이 소저는 서로 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아이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살아 있지. 이걸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느냐?”
이 순간, 천림은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했다.
천건의 말뜻을 이해한 그는 곧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저런 무지막지한 여인을 적으로 두고도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건 무얼 의미하겠는가? 바로 엽현이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천가가 저 여인에게 함부로 할 수 없듯, 엽현 또한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고래 등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 뻔했던 상황!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천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휘말려선 안 될 일이었다.
다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림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은 만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우주법칙 때문이었다.
인류금구에 우주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그리고 이곳의 금제가 풀렸다는 것은 곧 우주법칙이 누군가에 의해 거둬 졌다는 의미였다.
천림으로서는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탐욕!
천림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휘고는 고개를 들어 액난문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는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동안 천가가 너무나 평화로웠구나…….’
명하성역 전체에서 천가에 반기를 들 만한 세력은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명하성역을 군림해 온 천가의 무인들은 자연히 거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천림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가의 지위를 위협할 존재는 영원히 없을 거란 착각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착각 그리고 자만심!
여기에 생각이 이른 천림은 액난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에는 무례했습니다. 부디, 손속의 사정을 주어 미천한 한목숨을 구제해 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남에게 고개 숙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는 더더욱!
“사과한다고 용서해 주는 세상이었다면 무도를 익힐 필요도 없었겠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액난문이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쾅-!
혈뢰가 번쩍인 순간, 천림의 영혼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 순간에 지워져 버린 것이다.
이미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소진한 천림의 영혼은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엽현은 입을 꾹 다문 채 액난문을 쳐다보았다.
과연,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닌 여인이었다.
이때, 천건이 액난문을 향해 말했다.
“이제 만족하셨소?”
액난문이 고개를 돌려 천건을 노려보았다.
“어찌, 말투가 아직 불만이 있는 듯하군?”
“하하… 그대 앞에서 어찌 불만이 있을 수 있겠소?”
이때, 액난문이 천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왜 말을 그따위로 해?”
천건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천림을 죽인 것만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았단 건가?
바로 이때, 액난문 주변으로 갑자기 십여 개의 붉은 신뢰가 떠올랐다.
이 혈뢰가 등장한 순간, 모든 이들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엽현 또한, 두려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당시, 그의 신경 급 육신은 저 혈뢰 한 방에 종이처럼 찢겨 나갔었다.
심지어, 막념조차 튕겨 내는 게 고작일 정도이지 않았던가!
이때, 천건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가는 패배를 인정하겠소.”
이 말에 액난문이 걸음을 멈추더니, 돌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받은 엽현은 순간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하… 나도 항복. 때리지 마.”
“…….”
이때, 액난문이 갑자기 엽현에게로 접근했다.
이를 본 엽현이 깜짝 놀라며 뒤로 한발 물러났다.
혹시 자기도 죽이려 하는 걸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액난문은 분명 엽현에게 쌓인 것이 많은 상태였다.
액난문은 순식간에 엽현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
이때, 두 개의 붉은 뇌전이 그녀의 팔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한편, 엽현 뒤에 있던 만군이 엽현 곁으로 와서 섰다. 그녀는 액난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엽현이 죽으면 어차피 자신도 죽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때, 엽현 앞에 멈춰 선 액난문이 갑자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안할 게 있는 데… 한 번 들어 볼 테냐?”
“제안? 무슨 제안?”
“…범검이 되고 싶다고 했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어째서?”
“왜냐하면, 네 뒤에 그 남자가 있기 때문이지. 생각 해 보거라. 네가 아무리 홀로 수련을 한다 해도, 뒤에 네 형님이 버티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안심하지 않을까? 결국, 이런 방식으로는 너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일 수 없을 거다.”
엽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는 있네!”
“후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네가 진심으로 범검이 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의지해선 안 된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역시 그를 떠나보내고 홀로 서는 것이다.”
“음… 그런데 말이야. 만약 형님이 가시면 네가 날 때려죽이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건 왜일까?”
“오히려 잘된 일 아니냐? 어차피 너는 극한의 상황에서 수련을 해야 하니까.”
액난문이 태연하게 말을 하자 엽현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수련? 수련은 개뿔! 너랑 나랑 경지가 몇 개나 차이 나는 데 그딴 소리를 해? 형님을 보내면 죽을 걸 뻔히 아는데! 너는 내가 등신 머저리로 보이냐!”
“…….”
“쳐다보면 어쩔 건데? 꼽냐? 꼬아? 그럼 와서 치던가! 자, 쳐봐. 여기 앞에 치라고 딱 대 주잖아!”
엽현은 자신의 뺨을 툭툭 건드리더니 아예 얼굴을 액난문 쪽으로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를 본 액난문이 두 주먹을 움켜쥐자, 사방에서 뇌전이 미친 듯이 번쩍이면서, 엄청난 기운이 순식간에 장내를 휘감았다.
하지만 엽현은 한술 더 떠 뒤돌아서서 엉덩이를 실룩 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