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40
1541화 이제 결정했다
검연은 거대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이 개미로 여겨질 만큼 광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검연과의 거리가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엽현은 강대한 검도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검도의지는 광포하고 괴팍한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 느낌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때, 액난문이 엽현 곁에 서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연못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뭐 하러 나온 거야? 또 나 때리려고?”
엽현의 한 마디에 액난문이 엽현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왜,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여기서 한 판 붙던가?”
“…….”
이때, 만군이 액난문을 향해 물었다.
“저 검도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액난문이 다시 검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만, 연신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만군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엽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가까이 가 보자.”
“좋소.”
두 사람은 검연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만군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검도의지로부터의 압력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것이다.
만군은 마치 거대한 산에 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이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져갔다.
만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항경 절정인 자신이 누군가가 남긴 검도의지에 이런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검도의지는 방금 만들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상대는 과연 얼마나 강한 검수였던 걸까?
만군은 문득 고개를 돌려 액난문을 쳐다보았다.
액난문 역시 영향이 적지 않은 듯,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계속 전진했다. 그렇게 대략 천장 정도를 이동하자, 마침내 검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때, 만군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리에 추를 매달아 놓은 듯이 한 걸음 떼는 것도 매우 힘겨웠다.
이러는 와중에 검도의지에 담긴 패도 넘치는 기운은 더욱더 강렬해져 있었다. 정신력이 약한 일반 무인이었더라면 진즉에 미쳐버렸으리라!
액난문의 표정 역시 매우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의 눈 속 깊은 곳에는 한 줄기 기이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검연 안의 검기는 굉장히 강했다.
저 검기를 잘만 이용한다면 엽현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두 사람 다 힘들어 보이는군.”
이 말에 두 여인이 엽현을 돌아보았다.
엽현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순간, 만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러게…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요?”
“어찌 된 거냐? 이 강력한 검도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냐?”
“물론 느낄 수 있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나도 잘 모르겠소. 나는 반대로 그대들이 왜 힘들어 하는지 의아하오.”
만군이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작은탑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을 수밖에. 아무리 흉악한 검도의지라 할지라도 자기 주인의 아들에게까지 함부로 할 순 없겠지! 그나저나 방금 전에 저 녀석이랑 대화를 해 봤는데, 널 따라가고 싶다고 하는군? 어떻게 할래?”
엽현이 크게 눈을 깜빡였다.
“날… 따라오고 싶어 한다고?”
“그렇게 말했어. 자기를 거둬 주면 너를 대신해서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애원하는군!”
“…….”
바로 이때,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액난문이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쾅-!
한순간, 주변의 성역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젠장할! 뭐 이런 사기꾼들이 다 있어! 안 해! 안 한다고! 퉤!”
마지막으로 침까지 뱉은 액난문은 화를 내며 계옥탑으로 돌아갔다.
엽현은 액난문을 무시하고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검연은 이미 지척 거리에 있었다.
엽현은 강력한 검도의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만군과는 달리 어떠한 압박감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친근한 기분마저 들었다.
엽현의 눈빛이 점점 흐릿해졌다.
이 검도의지는 최소 수 만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액난문같은 존재에게 압박감을 줄 정도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저 한 사람의 의지일 뿐이 아닌가!
게다가 이는 청삼남이 일부러 남겼다기보다는 무심코 남겼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청삼남은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한 걸까?
의도치 않게 남긴 한 가닥의 검도의지가 수만 년이 지난 후에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간직할 정도의 검수.
이게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검수의 모습이 아닐까?
엽현은 손안의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범검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정신을 차린 엽현은 정면의 검연을 바라보았다.
“만군, 갑시다.”
두 사람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몇 걸음을 떼지도 않았는데 만군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 엽현은 가볍게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 순간, 만군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도의지의 압력으로부터 일순 해방된 것이었다!
만군이 놀란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에 엽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시오. 별다른 뜻은 없으니.”
이때, 작은 탑이 말을 걸어왔다.
“이봐, 그냥 이 여자 주변에 검의나 검역을 둘러치면 되는 거 아냐? 굳이 손을 잡을 것까지는…….”
순간, 엽현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넌 좀 닥치고 있어!”
“아하! 원래 그냥 손이나 주물럭거릴 속셈이었구나? 그럼 처음부터 말을 하지! 헤헤….”
“…….”
엽현의 안색이 숯처럼 타들어 갔다.
만군 역시 작은탑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붉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하, 원래 까불기 좋아하는 녀석이오. 전혀 개의치 마시오.”
엽현의 말에 만군이 엽현을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
“까불기 좋아하는 건 너인 거 같은데?”
일이 틀어짐을 느낀 엽현은 곧바로 손을 풀었다.
하지만 이때, 만군이 오히려 그의 손을 붙잡았다.
“한 번 하자는 것도 아니고 손만 잡는 건데 어려울 건 없지.”
“…….”
두 사람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검연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원래 하나의 세상이었지만, 청삼남의 일검에 소멸된 이후로 여전히 이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우주법칙조차 이 소멸된 공간을 회복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검연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겁을 집어먹고 바로 도망쳤을 정도의 깊이였다.
하지만 엽현은 두렵지 않았다. 검도의지가 자신의 편이 되겠다고 한 이상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검연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군의 표정은 어둡게 변해갔다.
왜냐하면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검도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검도의지는 더 이상 그녀에게 압박감을 주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으리라.
잠시 후, 엽현과 만군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엔 한 노인의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이 시체를 보자 만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는 사람이오?”
“저 사람은… 우리 천가의 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아버지, 이숙과 함께 이곳으로 왔었지.”
만군은 더 가까이 다가가 시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타살이군.”
이번에는 엽현이 노인을 살펴보았다. 만군의 말대로 노인의 몸에는 누군가에게 가격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만군은 말없이 정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에 엽현이 빠르게 그녀를 따라나섰다.
만군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엽현은 이런 만군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두 사람이 다시 자리에 멈췄다.
두 사람의 정면 백 장쯤 떨어진 곳에 중년 남자의 시신 한 구가 표류하고 있었다.
중년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만군과 닮아 있었다.
다만, 중년인은 이미 영혼조차 소멸해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만군은 시신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엽현은 만군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었다. 부친과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고,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이 유배되어 있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팔자란 말인가!
만약 자신이 만군의 입장이었더라면 이미 천가를 모두 쓸어버렸을 것이다.
이때, 만군이 중년인의 시체를 수습하고서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그만 가자.”
“…알겠소.”
다시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
만군은 말이 없었고, 엽현 또한 그녀가 조용히 있을 수 있도록 입을 다물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검도의지는 더욱 강해졌지만, 두 사람은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바로 이때, 침묵하던 만군이 말을 꺼냈다.
“결심했다! 돌아가면 천가의 가주가 되기로!”
“잘 생각했소. 그대의 결정을 지지하오.”
만군이 엽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인지 궁금하지 않느냐?”
“하하,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오?”
“…천가는 아버지의 피와 땀이 깃든 곳이다. 이런 식으로 변해버린 천가를 아버지가 보신다면 매우 슬퍼하실 거다. 그러니 가주가 되어 천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고칠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지만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소. 현재 그대의 실력은 천가의 무인들을 복종시키기엔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오. 그러니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도 생각만큼 쉽진 않을 것이오.”
“물론…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럼 됐소.”
“그나저나 넌 여기서 나가게 되면 뭘 할 셈이냐?”
“음… 일단 오유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소.”
아무래도 오유계는 자신이 액난문에게 끌려간 줄로 알 테니.
빠른 시일 내에 얼굴을 비추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오유계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음…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히 먼 것은 사실이오.”
액난문은 이곳에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성역을 통과했다.
만약 액난문이 아니었더라면 세상에 명하성역이란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액난문은 매우 위험한 존재다.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거라.”
“명심하겠소.”
액난문!
그 남자가 영원히 자신의 뒤를 봐주길 기대할 순 없다.
즉, 액난문은 언젠가 자신이 대면해야 할 적인 셈이다.
범검!
엽현의 노림수는 하루빨리 범검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액난문에게 어느 정도 대항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액난문이 조용히 탑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남자 때문이었다.
일단 그와 헤어지기만 하면 액난문은 본색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연못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검도의지가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엽현은 이미 소백이 남겼다는 상자에 무엇이 있을지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소백 정도가 남겨 둔 물건이라면 필시 엄청난 보물일 게 분명했다.
대략 한 시진 정도 전진하자, 두 사람은 마침내 검연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연의 끝자락에서 노인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살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