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46
1547화 멍청한 놈들뿐이군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걸음을 빨리했다.
그 남자에게 가서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황산맥에서 그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흉수를 제외하면 전무하다고 보아야 했다.
흉수와 싸우는 것은 두렵진 않았으나, 폐관 중인 상대에게 굳이 싸움을 걸고 싶진 않았다.
엽현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 * *
천요왕 사라지는 엽현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의 내력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천요왕의 물음에 고월요왕이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건 모른다. 이름이 엽현이란 것과 오유계에서 왔다는 걸 빼고는.”
오유계!
“우리 명하성역의 사람이 아니란 말이군.”
“그런 셈이지.”
천요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어떤 강자가 훈련을 위해 녀석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 같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월요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엽현 뒤에 어떤 검수가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혁련요왕은 그 남자에게 제거된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됐건 이것으로 인연을 맺은 셈이다.”
천요왕의 말에 고월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그는 엽현과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은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살수를 펼쳤더라면, 자신은 이미 엽현에게든 그 검수에게든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망산요왕은 더더욱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애당초 고월요왕이 그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와 엽현은 이미 원수 사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망산요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망산아, 망산아… 이 나이 먹고 왜 이리도 성질이 급하단 말이냐…….”
앞으로는 성질 좀 죽이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망산요왕이었다.
* * *
엽현은 어검에 의지한 채 대황산맥 끝자락으로 향했다.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번 대황산맥 방문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특히, 생사일검을 깨달은 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엽현은 이미 어떤 외물에도 의존하지 않고 영항경 강자를 제압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명하성역에 막 도착했던 때와 비교하면 검도에 대한 조예가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검을 꺼내 들었다.
쾅-!
순간, 검광이 흩어지면서 엽현이 수천 장 뒤로 밀려났다.
자리에 멈춘 엽현이 고개를 들자, 그의 정면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재빨리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려는 이때, 엽현은 놀랍게도 무상검이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
엽현은 깜짝 놀라면서도 재빨리 천주검을 꺼내 들고 세차게 정면을 찔렀다.
찰나의 순간, 생사일검과 검역이 동시에 펼쳐졌다.
이 순간, 어느새 날아든 상대의 주먹이 검 끝을 가격했다.
쾅-!
엽현이 다시 힘없이 날아가, 수만 장 뒤 지면에 처박혔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상대의 주먹이 어김없이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주먹이 날아오는 동안 엽현이 서 있던 자리가 완전히 허물어지면서, 엽현의 육신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을 느낀 찰나의 순간, 엽현이 괴성을 지르며 검을 내밀었다.
“참(斬)!”
생사일검(生死一劍)!
검역과 생사일검이 합쳐진, 엽현이 펼쳐 낼 수 있는 최강의 한 수였다!
검광이 떨어진 순간,
콰쾅-!
검광이 산란하며 엽현이 다시 한번 멀리 튕겨 날아갔다. 이 순간, 엽현은 상대의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남자는 일반 성인의 두 배 이상의 체구를 지닌 거한이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살벌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엽현이 입가의 피를 스윽 닦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네가 바로 흉수로군.”
중년인은 대답 대신 엽현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았다.
“고작 성도경 주제에 내 공격을 세 번이나 막아내다니… 또래 중에서는 필시 적수가 없겠군. 아쉽게도 아직 완전히 범검을 이룬 것은 아니니 나를 이기진 못하겠구나.”
“자기 때문에 공격한 건가?”
중년인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내놓을 텐가, 아니면 죽어서 빼앗길 텐가?”
이 말에 엽현이 미소를 머금었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시지?”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강단이 있는 놈이었군. 나도 너 같은 강골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괴롭히는 맛이 있거든. 지금부터 뼈마디를 하나하나 끊고 영혼 또한 아주 천천히 소멸시켜 줄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호기롭게 대답할지 궁금하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년인이 일권을 내질렀다.
주먹을 뻗은 순간, 강대한 권세가 엽현 주변을 뒤덮었다.
순간, 엽현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엽현은 세상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권세(拳勢)!
이는 천요왕과 비교해 최소 수십 배 이상 강한 기운이었다!
더구나 천요왕은 천지와 자연에서 세를 빌려 쓴 것이었지만, 흉수의 세는 자기 자신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세’!
엽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미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할수록, 머릿속은 점점 새하얗게 변해갔다.
한편, 액난문은 계옥탑 안에서 이 장면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엽현의 실력으로 이 일격을 막아내는 것은 한 마디로 불가능이었다.
애당초 엽현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이는 이미 싸움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 쪽을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십만 년 이상을 수련해 온 흉수는 어떤 분야에서든 엽현을 압도하고 있었다.
만약, 엽현이 진정한 범검의 경지였더라면 일말의 기대를 해 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액난문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가만, 저 녀석도 헛짓거리를 해서 괜히 저 비열한 엽현 놈을 범검으로 만들어 놓는 건 아니겠지?”
바로 이때, 엽현이 쥐고 있던 검이 갑자기 미친 듯 진동을 일으켰다.
이 장면을 보자 액난문의 표정이 크게 달라졌다.
설마 생각으로만 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는 걸까!?
다급해진 액난문은 곧바로 계옥탑을 박차고 나와 통렬한 일권을 내질렀다.
쾅-!
엽현을 압박하던 권세가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흉수를 공격한 액난문은 엽현을 향해 돌아서더니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기묘한 상태에 놓여 있던 엽현이 순간 정신을 번쩍 차렸다.
엽현은 잠시 멍한 눈으로 액난문을 바라보았다.
“너…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액난문이 눈을 깜빡이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제부터는 이 누님이 지켜 줄 테니까.”
액난문은 그대로 엽현을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엽현 뒤에 있는 남자가 두려웠던 것이다.
한편, 액난문의 말을 들은 엽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계옥탑에서 소령의 단약을 잘못 주워 먹기라도 한 걸까?
액난문은 엽현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흉수를 향해 돌아섰다.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려 하다니,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도 악랄하구나. 셋을 세겠다. 그 후에도 내 눈앞에 있다면 네 목은 없는 줄로 알아라!”
“…….”
“…….”
약자를 괴롭힌다?
엽현의 표정이 순간 썩어 들어갔다.
약자를 괴롭히는 건 액난문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던가?
멀쩡하던 여자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걸까?
죽이려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자신을 보호하려 하다니.
갑자기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리기라도 한 걸까?
사실 엽현은 조금 전 자신이 진정한 범검의 경지에 들어서려 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에서 오직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죽더라도 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일념!
그의 육신과 정신의 모든 것이 검에 집중된 그 순간에 생각지도 못하게 액난문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이때, 흉수가 액난문을 향해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액난문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흉수를 향해 대답했다.
“너 따위 하찮은 요수가 감히 본녀의 이름을 묻는 건가?”
이에 흉수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많이도 있구나.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스스로를 왕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미소를 거둔 흉수가 액난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만이란 결국 무지의 소산이지. 안타까운 것은 많은 자들이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곁에서 듣고 있던 엽현이 흉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생각보다 똑똑한 녀석이었군!”
액난문이 엽현을 차갑게 쏘아 보고는 흉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비열한 엽현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제 알겠다. 그건 적들이 하나같이 너처럼 멍청하기 때문이었겠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액난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흉수가 흠칫 놀라면서도, 재빨리 전진하며 일권을 내질렀다.
쾅-!
찰나의 순간, 흉수의 주먹 위로 붉은 뇌전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콰쾅-!
순간, 흉수의 오른손이 박살 나면서, 그의 육중한 몸이 순식간에 수만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뒤이어, 이번에는 그의 머리 위로 혈뢰 하나가 뚝 떨어졌다.
이를 본 순간, 흉수가 황급히 지면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쾅-!
흉수가 있던 자리에 혈뢰가 떨어지면서 주변에 있던 크고 작은 산들이 한순간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수백 장 밖으로 피신한 흉수는 속으로 경악을 감출 길이 없었다.
“너, 너는 도대체 누구냐!”
흉수는 자신의 강대한 육신도 저 혈뢰 앞에선 종이 쪼가리보다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 액난문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또다시 시뻘건 뇌전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안색이 하얗게 변한 흉수는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지면을 향해 왼손 주먹을 맹렬히 내질렀다.
“감천(憾天)!”
일권을 내지른 순간, 한 줄기 권세가 하늘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흉수의 주먹과 혈뢰가 충돌한 순간,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쾅-!
혈뢰가 격렬히 요동치긴 했으나, 이내 흉수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수만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이 순간, 흉수와 액난문 사이의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흉수의 남은 왼팔마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두 팔을 잃은 흉수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액난문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넌 누구냐!”
명하성역의 강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성종의 이추청을 제외하면 근방에서는 자신의 상대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저 여인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란 말인가!
액난문은 차가운 표정으로 흉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보지?”
액난문이 다시 출수하려는 이때, 흉수가 돌연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