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47
1548화 재밌는 녀석이군
막 추격을 하려던 액난문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리에 멈췄다.
자신이 왜 추격을 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 좋으라고!
액난문은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이때, 엽현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왜 날 도운 거지?”
엽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액난문이 자신을 도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액난문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말했잖아. 약자를 괴롭히는 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짓이라고.”
이 말에 엽현이 결국 발끈했다.
“개소리하지 마! 툭 하면 튀어나와서 날 죽이니 살리니 한 주제에 뭐? 약자를 보호하느라 그랬다고? 지나가는 개도 안 믿겠다!”
“아,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하는 건 안 돼.”
자기만 괴롭힐 수 있다고? 변태인가?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폭발할 뻔했다.
나는 해도 되고 남은 하면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이란 말인가!
액난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툭툭 털고는 계옥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잠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엽현이 뜬금없이 물었다.
“…어이, 액난문. 예전에 하얀 갑옷을 입은 여자 본 적 있지? 너처럼 법칙 수호자라던… 그 여자랑 싸우면 누가 이겨?”
“질문이 될만한 걸 물어라. 나는 무적이다.”
“…….”
이때, 계옥탑 안에서 듣고 있던 작은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액난문, 저 녀석과 함께 다니더니 너도 좀 뻔뻔해졌구나?”
“…….”
엽현은 둘의 대화를 무시하고서 다시 어검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흉수와의 일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의 단점은 실로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검기 하나가 범검에 든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반드시 자신이 범검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했다.
잠시 후.
대황산맥을 빠져나온 엽현은 드디어 그 끝자락에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가 엽현을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 끝났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형님…….”
이 말을 내뱉은 순간, 엽현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도 모르고 한 말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남자를 형님이라고 부른 건 다른 요수들을 기만하기 위함이었지, 실제로 둘 사이가 형님 아우 사이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실수를 해 버리다니!
“형님?”
남자가 오묘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자, 엽현이 실실 웃으며 설명했다.
“어르신이라 부르면 좀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하하! 다른 사람이 그리 불렀더라면 다소 불편했겠지만, 너라면 크게 상관은 없다. 어쨌든 나도 네가 마음에 들던 참이니까! 하지만 엄밀히 배분을 따져 보자면… 아니다, 됐다! 세속적인 것에서 멀어져야 하는 검수에게 호칭 따위가 뭐가 중하겠느냐?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하거라.”
“혀, 형님! 감사합니다!”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검이 범검에 이른 것 같구나.”
엽현이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깨달은 검입니다. 다만 저 자신은 아직 범검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것만 해도 이미 훌륭하다! 게다가 현재 너는 범검에 한 발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다!”
“어, 어찌하면 완전히 범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깨닫고, 더 많이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미친 듯이 싸우면 자연히 될 일이다.”
엽현이 감동 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하하… 녀석…. 원래는 조금 더 곁에서 가르쳐 줄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봐야 할 듯싶구나.”
이 순간, 남자의 말을 들은 액난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가 떠난다는 말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엽현은 아직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말은 곧, 남자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가기 전에 자신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액난문은 두려움에 손발을 덜덜 떨며 밖의 상황을 주시했다.
한편, 엽현은 남자의 말에 상당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헤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 우주의 실력이 너무나 약해서 다소 지루하구나. 이제 다른 우주로 떠나 볼 생각이다. 무슨 우주법칙이니 하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재밌으련만.”
계옥탑 안에서 이 말을 들은 계옥탑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형님, 그럼 이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겁니까?”
“하하, 내 생각에는 가능할 것 같구나.”
남자의 말에 엽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문득 엽현의 복부를 응시했다.
“그 여자는 네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강하구나. 원한다면 가기 전에 죽여 줄 수도 있다. 어찌 생각하느냐?”
계옥탑 안, 액난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때, 엽현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액난문 정도는 스스로 감당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말에 남자가 엽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 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남자가 엽현의 복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일 년간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면 금제를 풀어 주겠다. 그 이후엔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관여하지 않겠다. 문제 있나?”
계옥탑 안, 액난문이 서둘러 대답했다.
“무, 문제없소!”
액난문은 남자가 자신을 엽현의 수련 상대로 살려 둔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그게 무엇이든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때, 남자가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엽현은 자신의 몸 안에서 무언가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아해하는 엽현의 표정을 보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 두 혈맥에 걸려 있던 금제는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육신과 검체를 재건할 수도 있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네 검도는 이미 일정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킨 상태다. 혈맥과 육신의 힘을 사용한다 해서 예전처럼 의존적인 상태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혈맥지력이나 육신의 힘이나 모두 너 자신의 힘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만은 항상 경계를 해야 한다. 이는 검 또한 마찬가지다.”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검조차 의지해선 안 된단 말입니까?”
“그렇다.”
“어째서입니까?”
“후후, 그건 네가 범검이 된 후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이만 해어져야 할 시간이로구나.”
성공을 흘끗 쳐다본 남자는 순식간에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고개를 들었을 땐, 남자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이미 수만 개의 성역을 지나는 중이니까.”
“…액난문, 형님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엽현에게 있어 세 검수의 실력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액난문은 대답하지 못했다.
저 남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대답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측정할 방법이 없으니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액난문 자신은 남자의 일검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엽현은 결국 하늘에서 시선을 뗐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얼른 육신이나 재건해야겠다.”
엽현은 곧바로 작은탑을 소환했다.
“친구, 그 머리에 뿔이 난 아이의 선혈, 아직 남아 있어?”
작은탑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계옥탑 안에서 액난문의 긴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멍청아! 빨리 도망쳐!”
“도망쳐? 무슨 일인데?”
엽현이 당황해하며 묻자 액난문이 화를 내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빨리 여길 떠야 한다고! 법칙수호자 하나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버, 법칙 수호자? 가만… 그러면 너는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같은 편이 오고 있는 거잖아?”
“멍청하긴!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벗어나라! 아니면 여기서 그냥 죽던가! 상대는 나처럼 봉인된 상태가 아니란 것만 알아 둬라.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내가 못 이기는 상대란 소리야?”
“자꾸 답답한 소릴 하는 게냐! 상대는 방금 전 흉수 정도는 눈 한 번만 깜빡해도 죽일 수 있는 존재란 말이다! 왜 멍청한 소리만 하고 있는 거냐!”
“…….”
“빨리 안 튀고 뭐 해? 네 형님은 이미 멀리 떠나버렸고, 이제 널 지켜 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뒈지고 싶은 거냐!”
이때, 작은탑이 끼어들었다.
“어허, 뒈지다니. 아무리 급해도 교양은 지켜야지. 아가씨가 그렇게 험하게 말해서야 쓰겠어?”
작은탑의 타이르듯 하는 말투에 액난문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야이, 이 빌어먹을 돌덩이 자식아! 한마디만 더 하면 생으로 씹어 먹어 버릴 테다! 아주 그냥, 두 머저리가 쌍으로 환장하게 만드네!”
“…….”
도망쳐!
엽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곧장 어검 위에 올라타 자리를 빠져나갔다.
절정 상태의 법칙 수호자!
엽현은 이미 액난문을 통해 법칙 수호자의 위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새로운 법칙 수호자가 자신을 노리는데 왜 액난문이 더 조급해하느냐는 것이었다.
혹시 우주법칙들 간에도 적군 아군이 있는 걸까?
생각할 겨를 없이 엽현은 곧장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여기서 왼쪽으로! 흑동을 지난 다음에 곧바로 직진해!”
“액난문! 왜 이리 어렵게 가는 거야? 그냥 바로 직진해서 도망치면 안 되는 건가?”
“그 여자가 바로 이곳으로 오지 못하는 이유는 네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네가 있는 공간을 봉쇄할 거다!”
“그나저나 상대는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거지?”
“…아마 내가 출수했을 때 기운을 감지했던 거겠지.”
“상대도 너와 같은 우주신정의 존재인가?”
“그렇다!”
“그럼 너와 같은 편 아냐?”
“…….”
액난문이 대답하지 못하자 엽현은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다.
“성격이 그래서 여기저기 적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거였구나?”
“닥치고 앞이나 잘 봐!”
엽현은 속으로 후련했다. 액난문이 이렇게나 당황해하는 모습이라니…….
상대와 큰 원한 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면! 정면에 보이는 흑동으로 들어가서 반대쪽 우주로 나간다!”
엽현은 문득 액난문이 자신을 위험한 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때, 작은탑이 소리쳤다.
“비상! 비상! 위험한 존재가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
위험한 존재!
엽현은 잠시 생각은 접어 둔 채 황급히 흑동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흑동 안에 들어선 엽현은 순간 표정이 딱딱해졌다. 온몸이 어떤 강대한 기운에 찢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엽현은 방어를 위해 서둘러 검역을 펼쳐냈다.
한편, 이 시각.
신원미상의 여인이 엽현이 방금까지 있었던 대황산맥에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처럼 검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은 대략 십팔 세가량의 용모에 긴 머리를 검은색 비단 끈으로 질끈 묶어 올린 상태였다. 또한, 제비 날개처럼 날렵한 그녀의 눈썹은 하늘을 향해 한껏 솟구쳐 올라간 것이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의 오른손 주변으로 한 자루 비검이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여인이 씩 웃으며 혼잣말로 말했다.
“이미 알고서 도망쳤나? 재밌는 녀석이군.”
바로 이때, 여인이 어느 한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