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50
1551화 보호해야 한다
구유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먼저 이 가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사제족!
불사제족은 구유계 내에서 가히 유아독존이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구유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구유계 천도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었다.
심지어 천도라 할지라도 백만 년 이상 최강자의 위치에서 군림해 온 불사제족에게는 한 수 접어주어야 할 정도였다.
* * *
불사계(不死界).
한 방울의 선혈이 불사계 안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이 불타는 선혈이 등장한 순간, 불사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혈환(血喚)!
이는 불사족이 보유한 최강의 비술 중 하나로, 일반 무인은 익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불사제족에 소집 명령을 내린 걸까?
바로 이때, 장내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타는 선혈을 본 순간,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이건… 삼소저(三小姐)의 선혈이다!”
노인은 조심스레 선혈을 수거한 뒤, 황급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삼소저!
이 소리를 듣자 불사계의 수많은 무인들은 다소 어리둥절해했다.
도대체 삼소저가 누구기에 노인이 저리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이때,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하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삼소저… 정말 그녀란 말인가…….”
그가 젊었을 적, 불사제족에 두 명의 천재가 동시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삼소저는 바로 그중에 한 명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삼소저는 불사족 내에서 인망이 두터웠다. 신분이 낮은 자에게도 친근하게 대하고 전혀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까불까불한 성격 탓에 여러 가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녀는 과거의 사람이 되었고, 지금의 젊은 무인들은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 * *
노인은 불타는 선혈을 불사대전(不死大殿) 안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사라졌다.
넓은 대전 안에 보이는 사람은 한 여인이 전부였다.
검은 장포를 입고서 긴 머리를 단정하게 말아 올린 여인에게선 기품과 위엄이 느껴졌다.
이 여인이 바로 불세족의 현 족장, 동리청(東里婧)이었다.
동이청은 눈앞에 놓인 선혈을 잠시 응시하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삼매(三妹)… 그 남자의 아이는…….”
그녀의 음성에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불사족이 천하제일이라 여기지만, 이런 불사족에도 한 번의 엄청난 위기가 있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것도 멸문 직전까지 이르렀던 위기였다.
당시, 그 남자는 육유계부터 구유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불사족 족장이 죽임을 당했고, 천미경(天未境) 강자 삼십여 명과, 수백 명의 신위경(神位境) 강자들이 그의 검 아래 무릎을 꿇었다.
불사계가 멸망할 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구유계 전체가 사라질 뻔했던 희대의 사건이었다.
심지어 불사족 선조가 나섰지만, 그 남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전투에서 불사제족 핵심 인사들은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만약, 삼매의 간청이 아니었다면 동리청 자신 역시 그때 죽임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동안 회상에 잠겨 있던 동리청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십계장로(十界長老)는 지금 당장 부름에 응하라!”
이 순간, 불사계 깊숙한 곳으로부터 열 개의 검은 영패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불사령(不死令)!
이는 불사족 족장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신물이었다.
그렇게 일각도 채 지나기 전에, 열 명의 절대 고수가 서둘러 불사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
열 명 중 남자가 여섯, 여자는 넷이었다.
십 인의 고수 외에, 두 명의 노인이 동리청 바로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불사족의 태상장로, 동리좌(東里左)와 동리형(東里邢)이었다.
이미 천 년도 전에 폐관에 들어간 두 사람이 족장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었다.
이때, 동리청이 손을 펼치자, 붉은 선혈 한 방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리청이 조용한 대전 안을 한 바퀴 살펴본 뒤 말을 꺼냈다.
“자세한 사정은 전해오지 않았다.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도록.”
대전 안은 침묵만이 맴돌았다.
의견?
당시 불사족을 멸망시킬 뻔했던 남자의 아들이다. 호의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때, 태상장로 동리좌가 발언했다.
“그 아이는 두 개의 혈맥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까?”
동리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말에 동리좌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런 일이…….”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오.”
“실로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 동리형이 입을 열었다.
“한데, 삼소저는 도대체 무슨 일로 우리를 찾는 것입니까?”
“아마, 그 아이에게 위기가 닥친 것 같소.”
“그 남자가 살아 있는데 누가 감히 그런 짓을…….”
이에 동리청이 고개를 저었다.
“그자는 지금 이곳에 없소. 그렇기 때문에 삼매가 우리에게 그 아이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오.”
“하지만 그 남자의 아들이라는 점이 다소…….”
“그 역시 우리 불사제족의 혈맥이오. 게다가 삼매의 아들이지 않소?”
동리청의 말에 동리형이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동리청은 고개를 돌려 정면의 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남자에 대한 그대들의 원한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우리가 복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오히려 우리 불사제족에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회!?
순간,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리청의 입으로 향했다.
“선조가 가문을 세운 이래로, 불사혈맥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는 전무했다. 하지만 그 아이라면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선조의 불사혈맥을 돌파할 수만 있다면, 우리 불사제족 전체의 혈맥이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즉, 여기 있는 모두가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그에게 소족장의 자리를 주어도 괜찮지 않은가?”
이 말을 듣자 장내 무인들이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불사제족이 강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바로 타고난 혈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들의 혈맥은 교착상태에 이른지 오래였다.
왜냐하면 무수한 세월 동안 아무도 기존의 혈맥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가 이 한계를 돌파한다면, 불사제족 전체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누가 먼저 한계를 돌파하게 되면 그만큼 불사혈맥이 성장할 수 있는 상한이 높아지고, 덩달아 나머지 불사혈맥을 지닌 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확보되는 것이다!
이때, 무인 중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족장, 그자는 어떤 경지에 있습니까?”
“성도경.”
동리청이 가볍게 툭 던진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성도경!
이건 낮아도 너무 낮지 않은가!
불사족에서 허드렛일을 맡아 보는 자조차 성도경보단 높은 경지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를 불사혈족의 소족장 자리에 앉힌다?
다른 부족들에게 비웃음거리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하지만 동리청은 무인들의 이런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삼매에게 들은 바로는 그가 명하성역이란 곳에서 어떤 흉수에게 쫓길 당시, 이미 범검에 들어선 상태였다더군.”
범검!
이 말에 장내가 또다시 술렁였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이때, 가만히 있던 동리좌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일개 흉수 따위가 불사제족 소족장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니! 거기 아무도 없느냐!”
음성이 떨어진 순간, 동리좌 앞에 무인 하나가 나타났다. 동리좌는 자신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무인을 향해 근엄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너는 당장 무인 몇을 이끌고 명하성역이란 곳에 내려가거라! 거기서 눈에 보이는 흉수란 흉수는 닥치는 대로 도륙해라! 아니, 아예 성역 전체를 몰살시켜라!”
“존명!”
무인이 막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동리청이 손을 들었다.
“그만 두시오.”
동리청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동리좌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역 하나를 멸망시키는 일은 지나치게 큰 인과를 불러올 것이오. 게다가 그의 적은 그 성역의 존재들이 아니라, 바로 우주신정이오.”
우주신정!
순간, 대전 안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이 넓은 우주에서 불사제족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우주신정은 그런 불사제족조차 맞닥뜨리기를 꺼려 하는 세력이었다.
“자, 이제 의견을 말 해 보거라. 품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이때, 표정이 심각해진 동리좌가 동리청을 향해 물었다.
“우주신정이 왜 그를 노리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그 아이는 액체기 때문이오.”
액체!
대전 안의 무인들이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이때, 동리형이 돌연 소리쳤다.
“저는 찬성하겠습니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동리형에게로 향했다.
“불사제족은 이미 십 수만 년간이나 기존의 혈맥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는 하나의 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그가 불사혈맥과 풍마혈맥을 하나로 합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불사혈맥은 새로운 경지로 접어들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어린 나이에 이미 범검에 들어섰을 정도라면 향후 그의 부친 못지않은 무적의 검수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반드시 보호해야만 합니다!”
“설령 우주신정과 적이 된다 하더라도?”
“하하하! 우리 불사제족이 언제 적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있었습니까?”
“다른 의견은 없나?”
동리청의 질문에 무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만장일치의 동의!
“그럼 이렇게 결정 난 것으로 하지. 밖에 누구 없느냐?”
음성이 떨어진 순간, 노인 하나가 동리청 앞에 나타났다.
“지금 당장 팔유계와 칠유계에 전령을 보내거라. 지금부터 불사제족 휘하의 전 우주는 새로운 소족장을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그를 찾게 되면 목숨을 걸고 보호해야 할 것이며, 만에 하나 그가 죽는다면, 우리 불사제족이 직접 그 우주 전체를 멸망시킬 것이라 전해라!”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존명!”
말을 마친 노인은 그대로 안개처럼 변해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리청의 시선은 곧장 대전 안의 장로들에게로 향했다.
“십계장로, 그대들은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무인들과 함께 하계를 샅샅이 뒤지도록 하시오. 절대 그를 죽게 해서도 안 되고, 우주신정에 선수를 빼앗겨서도 안 될 것이오. 알아듣겠소?”
십 인의 장로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족장.”
대답을 마친 장로들은 썰물처럼 대전을 빠져나갔다.
장로들이 떠나기 무섭게 동리청이 다시 소리쳤다.
“북두(北斗)!”
순간, 갑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동리청 앞에 나타났다.
“부족 내에 남아 있는 불사제군(不死帝軍)이 몇이나 되지?”
“예순아홉입니다!”
“좋다. 먼저 외부에 파견 나가 있는 자를 모두 불러들인 다음, 네가 직접 그들을 이끌고 소족장을 찾으러 가거라. 만약 찾게 되면 그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존명!”
북두라 불린 여인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성(南星)!”
뒤이어 남자 하나가 장내에 나타났다.
“우리 불사제족의 모든 정보자원은 네가 총괄하고 있다. 지금부터 모든 정보력을 소족장을 찾는 데 집중한다. 그는 현재 우주신정에게 추격을 당하는 중이니만큼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가능한 빨리 찾아내야만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족장, 이미 모든 정보원을 하계로 투입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천기신종(天機神宗)으로 가서 협조를 요청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우주신정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대로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리청이 남성이라 불린 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가서 똑똑히 전하거라. 만에 하나, 소족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엔 천기종에 개미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남성이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모든 명령을 마친 후, 동리청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가 액체인 만큼 액난법칙이 계속해서 그를 조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소. 두 장로는 곧바로 가서 불사혈진(不死血陣)을 펼치시오. 액난법칙이 더 이상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방해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