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61
1562화 눈을 떠 보거라
엽현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는 약관이 겨우 넘은 외모였는데, 가슴 부분에 커다란 창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때, 남자가 졸도하듯 풀썩 쓰러졌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그를 품에 받쳐 안았다.
엽현을 발견한 남자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소, 소족장…….”
“말하지 마시오!”
엽현은 황급히 자기를 꺼내, 남자의 몸에 주입했다.
남자는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는 시신을 보자 그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형제들이 모두…….”
“…….”
남자가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출정하기 전에 북 사령관이 신신당부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소족장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명령이고 가문을 위한 일이기에…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그만, 그만 말 하시오!”
이때, 남자가 목걸이 하나를 꺼내더니 엽현 손에 쥐여 주었다.
“임성 소가… 소비(蕭菲)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 결혼은 무효로 하겠다고… 다만, 내가 죽었다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부, 부탁…….”
남자는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엽현이 서둘러 남자를 살폈지만, 그의 눈에서는 더 이상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더불어, 억지로 주입했던 자기 또한 밖으로 방출됐다.
천천히 눈을 감은 엽현은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나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 남자의 생기가 이미 흩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때문에 자기를 투입했음에도 결국 회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엽현은 조심스레 남자를 한쪽에 뉘었다.
그리고는 주변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이들 모두 생면부지의 자신을 위해 싸우다가 이곳에서 차갑게 식어 버렸던 것이다.
엽현의 두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동시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바로 이때, 한봉이 소리쳤다.
“죄인은 얌전히 목을 내밀어라!”
이 말을 들은 순간, 정상으로 돌아왔던 엽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이와 함께 그의 표정이 마치 야수의 그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기왕 죄인이 된 이상, 조금 더 죄를 지어도 상관은 없겠지!”
말을 뱉음과 동시에 엽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붉은 검기가 장내에 휘몰아쳤다.
풍마상태!
겨우 억눌러 놓았던 풍마혈맥이 엽현이 이성을 잃음에 따라 완전히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이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살육이었다.
검을 뽑은 순간, 그의 살의가 곧바로 절정으로 치솟았다.
엽현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보자, 한봉이 다급히 소리쳤다.
“죽여라!”
외침과 동시에 한봉이 가장 먼저 신형을 날렸다.
순간, 그의 창끝이 차갑게 빛나며 공간을 꿰뚫었다.
콰콰콰쾅…….
순간, 검은 회오리가 그대로 찢기면서, 모든 무인이 다시 성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풍마상태에 접어든 엽현은 기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검령의 힘까지 더해지니, 그의 전투력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공포스러운 수준에 도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범검이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숫자에서는 밀리긴 했지만, 기세만 놓고 보았을 때 엽현이 훨씬 더 우위에 있었다.
곧, 검광이 난무하고 우주집법자들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이때마다 죽은 무인들의 선혈이 곧바로 엽현에게로 흡수됐다.
선혈을 보충한 풍마혈맥은 더욱 폭발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한봉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엽현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회복능력은 정말이지 ‘공포’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살념(殺念)!
엽현의 머릿속엔 오직 살인에 대한 개념만이 존재했다.
그의 강렬한 살의 또한 한편의 폭풍처럼 주변을 집어삼켰다.
살의의 범위 내에 있는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지가 조금씩 잠식돼 갔다.
이렇게 반 시진 가량 전투가 이어졌을 때, 장내에는 시신이 즐비했다.
이때의 엽현은 이미 서른이 넘는 집법자들을 해치운 상태였다.
하지만 엽현의 상황 역시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불사혈맥의 보조가 있었지만, 전신은 이미 난도질당한 상태였고, 어깻죽지에도 한 자루 창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엽현은 고통을 느끼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반응을 할 뿐이었다.
한편, 풍마상태의 엽현은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강해졌다.
그야말로, 매 순간이 한계를 돌파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장내에는 집법자들의 시신이 쌓여만 갔다.
바로 이때, 한봉이 소리쳤다.
“전원 퇴각!”
이때, 생존한 집법자는 겨우 열아홉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전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두 개의 혈맥을 등에 업은 엽현은 두려운 존재였다.
한봉의 말을 들은 무인들은 재빨리 손을 멈추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이때, 한봉이 엽현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자는 내가 막겠다! 그동안 너희는 안전하게 탈출한다!”
지금의 엽현을 상대로 모두가 등을 보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남아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십여 명의 집법자들 중 누구 하나도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이에 한봉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이건 명령이다!”
“…….”
“저놈은 이미 정상인이 아니다! 이대로 싸우다간 머지않아 전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멍청히 그러고 있지 말고 빨리 도망치거라!”
하지만 무인들은 여전히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체념한 한봉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들은 결코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형제보다도 더 깊은 전우애를 나눈 그들에게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기를 바라는 것은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을 마친 한봉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단숨에 놈을 처리한다! 오늘 우리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이다!”
한봉이 먼저 신형을 날리자, 나머지 집법자들이 포효하며 그 뒤를 따랐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한봉을 포함한 모두가 일제히 도를 뽑아 들고서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팟-!
이때, 한 줄기 혈광이 번뜩이면서 누군가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렇게 반 시진이 흐르고, 장내에는 오직 한봉과 엽현만이 남았다.
엽현은 왼팔이 난도질을 당한 상태였다. 위태위태하게 어깨에 매달려 있는 것이 살짝만 건드려도 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신에 상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제아무리 불사혈맥의 회복력이라도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봉의 상태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다. 몸에는 수십 개의 검상이 존재했고, 검에 몸통이 관통당해 장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게다가, 몸 안에 남은 검기는 그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갈아먹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당장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한봉은 엽현을 응시한 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의 눈에선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죄인은 얌전히 목을 내밀어라…….”
한봉은 한 손에 창을 쥔 채로 엽현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하지만 채 몇 발 떼기도 전에 피로 물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 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바로 이때, 그가 하늘로 고개를 젖혔다. 순간, 성공 깊은 곳으로부터 사람의 형체가 하나둘 나타나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를 본 순간, 그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다름 아닌 우주집법자들이었던 것이다.
원군!
한봉은 쓰러져 있는 집법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눈앞이 흐릿해진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가슴에 붙어 있는 집법자의 휘장을 움켜쥐었다.
“다들 고맙다… 다음 생에서는 진짜 형제가 되어 만나길…….”
이 말을 끝으로, 한봉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봉이 숨을 거둔 이때, 엽현도 천천히 쓰러졌다.
이미 한계에 달했던 것이다.
우주집법자들은 절대 허수아비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풍마상태였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우주집법자들을 상대하고도 멀쩡할 리 만무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집법자들은 엽현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어떤 식으로든 엽현의 몸에 상처를 남기려고 발버둥 쳤다.
만약, 불사혈맥과 풍마혈맥이 아니었더라면 엽현은 처음부터 이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장이 잘 돼 있었던 상대였다.
이들 중에 목소도 정도 되는 강자가 없다는 것은 엽현에게는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 여인이 이 중에 섞여 있었다면, 육십은커녕 열 명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그녀를 포함한 십여 명의 집법관들에게 고전을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수호자와 집법자의 실력 차이는 상당했다.
이때, 장내에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중년인의 가슴 부분에는 집법자의 표식이 달려 있었다.
육인의 집법 사령관 중 하나인 임산(林山)이었다.
임산은 스물여덟 명의 집법자들을 대동한 상태였다.
백 구가 넘는 시체 중에서 한봉의 시신을 찾아낸 임산은 표정이 크게 어두워졌다.
순간, 그의 시선이 엽현에게 날아가 박혔다.
“죽여라!”
명령이 떨어진 순간, 한 명의 집법자가 엽현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이때, 집법자가 화들짝 놀라며 도를 치켜세웠다. 갑작스레 눈앞으로 검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쾅-!
도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집법자가 수천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이때, 엽현 뒤에 세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막념 등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불사혈맥의 기운을 추적한 끝에 엽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엽현을 보았을 때, 세 여인은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때, 무변성지의 여인이 황급히 엽현에게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처참한 모습의 엽현을 본 순간, 여인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아들아, 눈 좀 떠 보거라. 못난 애미가 왔다…….”
무변성지의 여인은 대답 없는 엽현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누군가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심정이었다.
자책과 미안함, 그리고 후회의 감정들이 뒤섞이자, 여인은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구나…….”
여인은 엽현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자기 탓인 것처럼 여겨졌다.
한편,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도가 임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죽인다!”
음성이 떨어짐과 함께, 그녀가 한 줄기 검광이 되어 튀어 나갔다.
평소에 검을 쓰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모두 죽이겠다는 일념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도의 검이 번뜩이는 순간, 임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반응할 정도로 강력한 일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