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82
1583화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닌데
과연 그럴까?
중후한 음성이 울려 퍼지자, 치열했던 전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줄곧 엽현을 지켜왔던 무변성지의 여인은 이 음성을 듣자 흠칫 몸을 떨었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 속에 무너진 공간을 통해 천천히 걸어 나오는 청삼남의 모습이 들어왔다.
엽현과 매우 닮은 청삼남은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그날이 떠오르는 찬란한 미소를 보자, 여인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한편, 불사제족의 무인들 또한 청삼남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청삼남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불사제족 무인들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특히, 동리전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가 당시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리전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 가문의 원수!
그런 남자가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한편, 청삼남을 발견한 소백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는 머리를 비벼대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청삼남 역시 익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소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때, 청삼남을 노려보고 있던 임창이 돌연 소리쳤다.
“그대는… 본체가 아니로군!”
임창은 눈앞의 남자가 본체가 아닌 분신에 불과하다는 걸 파악했다.
하지만 어쩐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저 분신에게서 그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저건 누구란 말인가!’
우주신정은 엽현의 배후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그 초점은 언제나 소복을 입은 여인에 맞춰졌었다.
왜냐하면, 엽현의 위기 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이 그녀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일찍이 청삼남에 대한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 정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청삼남은 임창의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과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건넸다.
“또 만났구나!”
잠시 침묵하던 엽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칭호를 어찌해야 합니까? 아버지? 아니면… 어르신?”
엽현도 바보가 아닌지라, 청삼남의 정체는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챈 상태였다.
같은 혈맥인 것은 둘째 치고 쏙 빼다 박은 듯한 얼굴을 마주한다면 그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에 청삼남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르신은 듣기 거북하니 그냥 아버지라 부르거라.”
엽현이 무언가 질문을 하려는 이때, 청삼남이 선수를 쳤다.
“궁금한 게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 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청삼남의 시선에 허공에서 도와 결투를 벌이던 검칠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검지로 검칠을 가리켰다.
쉭-!
한 줄기 검기가 그의 손끝을 빠져나갔다.
정신없이 교전 중이던 검칠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보자 황급히 양손으로 검을 잡고 맹렬히 휘둘렀다.
전력을 다한 일검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검기에 닿자마자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그녀 역시 실이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뒤로 날아갔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육신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이윽고 영혼마저 소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검칠이 완전히 사라지려고 하는 이 순간, 갑자기 어떤 신비한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더니, 검칠과 함께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청삼남은 성공 깊은 곳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출수하진 않았다.
어차피 하수인에 불과한 존재이니 굳이 쫓아가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한편, 청삼남이 출수한 모습을 보자 우주신정 강자들의 표정이 말 그대로 시체처럼 딱딱해졌다.
특히, 임창은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손짓 한 번에 수호자를 죽일 뻔하다니…….
도대체 어느 정도 강해야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우주신정 내에서 우주법칙의 수호자들의 실력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다.
일대일이라면 자신을 포함해 누구와도 쉽게 지지 않는 게 수호자들이었다.
그런 수호자를 가볍게 물리치는 자가 존재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때, 청삼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소도가 갑자기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눈에 자신의 상대가 아니란 걸 파악했던 것이다.
목소도는 같은 편을 버리는 데 있어서 전혀 망설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아군을 위해 희생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싸우고, 이기지 못할 상대는 피한다!
목숨은 단 하나뿐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한편, 또 다른 수호자인 마의는 도망치지 않았다.
하지만, 청삼남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청삼남은 이번에는 이아가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아를 상대하는 건 성전기사단이었는데, 이들은 이아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방어력은 우주 최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삼검 중에 유일하게 육신을 수련한 청삼남조차 육신의 강도에 있어서는 그녀에게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였으니까.
타고나길 악수(惡獸)의 조상으로 태어난 데다, 소백에게서 매일같이 자기를 공급받은 이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청삼남이 허공에 가볍게 일지를 그었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관통해 날아갔다.
쉭-!
찰나의 순간, 천 명이 넘는 성전기사단 전원의 머리가 허공에 붕 떴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순간,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일검에 천이백 명의 천미경 절정 고수들을 제거했다?
이런 일은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나머지 우주신정 무인들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 청삼남 곁에 있던 소백이 손가락으로 임창을 가리키더니, 팔을 활짝 벌리고 무언가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청삼남의 시선이 임창을 향했을 때, 임창의 눈빛이 돌연 번뜩였다.
“이번엔 우리 차례다!”
임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편에 존재하던 흑동에서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 기운은 강력하기도 했지만,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고로(古老)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과연 누가 등장하는 걸까?
모든 무인들의 시선이 일순 흑동에 집중됐다.
특히, 불사제족 강자들은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바로 이때, 청삼남이 돌연 검을 뽑아 들었다.
쉭-!
한 줄기 검광이 순식간에 흑동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머리가 피범벅이 되어 흑동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와 함께, 흑동 안에서 흘러나오던 강대한 기운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자 무인들의 표정이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임창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가 소환했던 절세의 강자가 아무것도 못 하고 이렇게 죽고 말았다.
도대체 저 청삼남의 경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때, 청삼남이 임창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 이런 잔챙이들 말고 우주신정 뒤에 있는 우주법칙들더러 직접 오라고 해라. 사실 나도 그 녀석들을 무척이나 만나보고 싶었다. 아, 그냥 대화나 몇 마디 주고받으려는 것뿐이니 겁먹을 건 없다.”
우주법칙!
성공에서 청삼남을 응시하던 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깊어졌다.
청삼남과 ‘그 여자’는 그동안 우주법칙의 위치를 추적해왔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실력으로도 그들을 찾아낼 수 없었단 말인가?
“…대단한 자신감이구려.”
임창이 청삼남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주법칙은 우주신정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존재들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사람의 몸으로 우주법칙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이때, 청삼남이 가볍게 웃으며 말해다.
“사실 너희 우주신정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한데, 지난번에 방문했을 땐 아쉽게도 우주도칙이 보이지 않더군. 너희를 살려둔 것은…….”
청삼남이 엽현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내 아들 녀석이 직접 해결하게 할 셈이었다. 한데, 나를 닮아서 그런지 뭐든 빨리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더군. 육유계에서 구유계로 바로 건너올지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
청삼남은 다시 임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직 더 불러낼 자가 있나? 있으면 더 기다려 주고.”
“…그대는 도대체 누구시오!”
“나?”
청삼남이 슬쩍 웃으면서 엽현을 가리켰다.
“이 녀석 애비되는 사람이다.”
임창이 청삼남을 향해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그대는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아시오? 그대는 우주법칙과 우주의 질서를 혼탁하게 하고 있소! 천도를 역행하고 있단 말이오!”
이에 청삼남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천기 한번 어지럽힌 게 뭐 대수라고 흥분을 하고 그래? 그보다 더한 짓도 했었는데.”
“가, 감히! 한낱 인간 주제에 그런 불경한…….”
쉭-!
아무도 보지 못한 사이, 한 줄기 검광이 순간적으로 임창의 미간을 뚫고 들어갔다.
쾅-!
이어진 폭음과 함께 임창의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소멸했다.
초살(秒殺)!
검을 거둔 청삼남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원칙이 있는 사람이다. 날 건들지 않으면 나도 상대를 건들지 않지만, 누군가 내게 죄를 짓는 날에는 그게 하늘이라도 가만두지 않는다!”
하늘도 가만두지 않는다!
청삼남의 패기 넘치는 한 마디는 차가운 검이 되어 장내 무인들의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나 불사제족 무인들의 표정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당시 눈앞의 남자에게 멸족당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순간, 불사제족 무인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우주신정이 무슨 짓을 해도 눈앞의 남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본체가 아닌 분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불사제족은 무슨 생각으로 저 남자를 건드린 건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이때, 허공에 떠 있던 마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도 아무 이유 없이 이러는 것이 아니오. 그대의 아들은 액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요. 이 세상은 질서가 필요하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청삼남이 웃으며 대꾸했다.
“나와 이치를 따져보자는 건가?”
“그대가 원한다면! 액체를 살려 둬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어디 말 해 보시오!”
이에 청삼남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내 아들이 정말로 천인공노할 짓을 벌인 대마두라 한다면 너희가 나서기 전에 이미 내 손으로 처리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너희는 이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일 작정을 하고 있었지. 이게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하나?”
“물론이오! 액체로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죽여야 하는 것이오!”
“흥! 액체라서 죽어야 한다?”
청삼남의 손이 갑자기 검집으로 향했다.
마의는 이를 보고도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다.
바로 이때, 벌써 오래전에 도망쳤던 목소도가 어째서인지 다시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급히 마의를 막아선 목소도가 청삼남을 향해 말을 꺼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소?”
“물론이다.”
청삼남이 허락하자 목소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액체라고 다 죽어야 하는 건 아니오. 검을 비유로 들자면, 검이 살인에 사용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검에게 죄를 물을 순 없는 일이오. 그저 좋은 사람이 사용한다면 좋은 일에 쓰일 것이고, 악당이 사용한다면 악한 데 쓰일 뿐이오. 그러니 액체로 태어난 것 자체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소.”
목소도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생각에 그대의 아들은 매우 훌륭한 인물인 것 같소. 비록 액체로 태어나긴 했지만, 의리를 알고 선량하며 건실하기까지 하오. 이런 사람을 두고 굳이 액체라서 죽어야 한다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사실 액체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이 세상에 악인이 얼마나 많소? 내가 보기에 사람이 착하고 나쁘고는 출신성분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더란 말이오. 이런 걸 보면 법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참 부적절하다는 생각이오. 법에 허점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하는 것 아니겠소?”
“…….”
“…….”
엽현과 불사제족을 포함한 모든 무인들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이때, 청삼남이 목소도를 향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말을 꽤나 그럴싸하게 하는구나! 이거, 이거… 이렇게 나오면 죽이기가 좀 미안해지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