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85
1586화 나는 엽신이다
현실!
목소도의 이 한 마디는 마의의 폐부를 찔렀다.
계란이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바위와 부딪치면 박살 나기 마련이다.
현실과 객기는 반드시 구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일단 돌아가!”
목소도가 먼저 돌아섰다.
“어디로? 우주신정으로?”
마의의 질문에 목소도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일단 우주신정으로 돌아가서 천왕전(天王殿)의 그 녀석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 그리고 네 우주법칙이 어떤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일에 관여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너 같이 뇌가 순수한 아이가 놀 수 있는 판이 아니니까!”
이 말을 끝으로 목소도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마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리를 벗어났다.
* * *
어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성역.
이곳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대전이 존재했다.
천왕전(天王殿)!
우주신정 최강의 조직이었다.
높이 수백 장에 이르는 천왕전은 마치 거대한 요수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청석(青石)으로 이뤄진 계단 수만 개를 지나야 했다.
이때, 한 여인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흰 치마를 입은 여인은 삼단 같은 머리를 둔부까지 길게 늘어뜨린 상태였다.
여인은 아름다웠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발밑의 청석이 빛을 잃게 할 정도였다.
이 여인이 바로 우주신정 내에서 명성이 자자한 전천왕(戰天王) 무가(武柯)였다.
이윽고 계단 끝에 이른 그녀는 문을 열고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대전 안은 그녀를 제외하면 텅텅 비어있었다.
무가는 대전 안에 비치된 조각상 앞으로 다가섰다.
만약, 엽현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놀람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각상의 모습이 그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조각상을 바라보던 무가는 품을 뒤적여 작은 나무 인형을 꺼내 들었다.
소녀를 조각해 놓은 것이었는데, 얼핏 보아도 무가와 매우 닮아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조각 한 것이리라.
오랜 시간 침묵하던 무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 맞는 거야?”
바로 이때, 대전 밖에 허리가 굽은 노인이 나타나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무왕(武王), 알아냈습니다!”
“…말 해 보거라.”
무가가 나무 인형을 바라보는 동안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엽현에 관한 내용이었다.
노인의 보고는 무려 반 시진에 걸쳐 이뤄졌는데,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매우 자세하게 묘사했다.
꼽추 노인이 말을 멈추자 무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 역시… 조각을 하더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시… 소저께서 찾으시는 사람인 겁니까?”
무가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하지만… 그는 액체입니다.”
이 말에 눈을 뜬 무가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우주신정에 들어 온 이유는 그들의 정보력을 이용해 그를 찾으려는 목적이었다. 그게 아니면 우주신정 따위가 어찌 나를 영입할 수 있었겠느냐!”
이 말에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어디 있지?”
“마역(魔域)에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역? 직접 가서 이 두 눈으로 확인 해야겠구나.”
무가는 대전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때, 대전 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참, 신정은 어떻게 하고 있지?”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현재로서는 잠잠합니다. 하지만 역외허무계(域外虛無界)에 나가 있던 강자들이 얼마 전에 복귀했습니다. 아마 어떤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우주법칙의 동태는?”
“그 어떤 보고도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다.”
“흠…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무가는 그대로 대전 밖을 나섰다.
그녀가 사라지자, 꼽추 노인의 이유 모를 한숨이 대전에 울려 퍼졌다.
* * *
한편, 정신이 든 엽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순간,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 들어왔다.
벌떡 일어나 쪼그려 앉은 그는 머리를 감싸 쥔 채, 한동안 머리를 흔들어댔다. 두통이 가시자, 엽현은 눈을 뜨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렸을 때, 그는 다시 혼절할 것만 같았다.
이때의 그는 양팔, 양다리가 쇠사슬에 묶여 어느 오두막에 감금된 상태였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때 엽현의 시야에 한 무리의 시체가 너부러져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모두 사람의 시신이었다.
엽현은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향해 안광을 밝혔다.
그러자 커다란 돌집 하나와 그 앞에 둘러앉아 있는 한 무리의 생명체들이 보였다.
이들은 사람처럼 보이긴 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이 자줏빛으로 빛난다는 것이었다.
마역(魔域)!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마역이었다.
불사제족에 잠시 머물 때 여러 권의 고서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역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은 그 책에서 묘사한 마인(魔人)의 모습과 완전히 맞아 떨어졌다.
청삼남은 왜 그를 마역으로 보낸 것일까?
혹시 마역을 통일시켜 보라는 의도였을까?
이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일단 생각을 접어 둔 엽현은 자신의 손과 발을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부터 살폈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무공 수위가 봉인되었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서둘러 현기를 일으켜 보려 했으나, 한 줌의 현기도 모이지 않았다.
그는 이외에도 두 개의 혈맥 또한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말해 몸뚱이 말고는 남은 것이 없는 상황!
그래도 엽현은 청삼남이 일말의 양심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겨우 만들어 놓은 도체까지 파괴해 버렸다면 그야말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바로 이때, 마인 하나가 쇠망치를 들고서 엽현 쪽으로 다가왔다.
엽현과 눈이 마주친 마인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급한 인간 주제에 감히 나를 똑바로 쳐다봐?”
마인은 엽현의 머리를 향해 들고 있던 망치를 그대로 휘둘렀다.
이에 엽현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머리로 마인의 턱을 들이받았다.
퍽-!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마인의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졌다.
“퉤! 불사제족 소족장 엽현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냐?”
침을 탁 뱉은 엽현은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쇠사슬을 강제로 끊어버렸다.
바로 이때, 한 무리의 마인들이 소란을 눈치채고 엽현 쪽으로 달려왔다.
마인들이 순식간에 엽현 주변을 빙 둘러싼 가운데, 비교적 젊은 마인 하나가 엽현 앞으로 걸어 나왔다.
“미천한 인간 주제에 감히 마인을 죽이다니! 네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이 가해질 것…….”
“그러시든가!”
순간, 엽현이 훌쩍 날아오르며 마인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짝-!
경쾌한 타구성과 함께 마인이 백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지면에 쓰러진 마인은 잠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마인들은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다.
이때, 엽현의 강렬한 눈빛에 정신을 차린 마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이들을 추격한 엽현은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십여 명의 마인을 모두 살해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엽현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마을의 형태로 보아하니 작은 부락인 듯했다.
엽현은 멀리 보이는 돌로 된 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중에 엽현은 마역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마인들의 태도로 보아 이곳에서 인간의 지위는 매우 낮은 게 분명했다.
다만, 어느 정도로 낮은지는 아직은 불분명했다.
이때, 엽현은 문득 검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현기를 사용할 수 없는 탓에 어떤 검기도 펼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단단한 육신 외에는 믿을 것이 없었다.
결국,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철썩 때렸다.
“이런 멍청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아의 피를 흡수해 놓는 거였는데…….”
불사제족에서 도체를 재건할 당시 그는 먼저 요수의 선혈을 흡수해 육신의 경지를 귀일경까지 올려놓았다.
여기서 이아의 피까지 흡수했더라면 곧장 영항경이 될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그때 우주신정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대부분의 전투력이 봉인된 상태에서 귀일경의 육신은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엽현은 정말이지 후회가 막급했다.
지금은 작은탑 또한 봉인 된 터라 이아의 피도 구할 수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 육신의 경지를 올리자니 그것도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야 해!’
이때, 엽현의 뇌리 속에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구유계에 있을 당시, 불사제족 동리청에게 마역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마성까지의 거리가 족히 백만 년은 된다고 했었다.
백만 년!
죽기 전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무공이 봉인된 상태라 가고 싶어도 날 수가 없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 나왔다.
그렇다면 평생을 이곳에서 썩어야만 한단 말인가!
이때,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미 원래 목표로 했던 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들자, 현판에 커다랗게 적힌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몽거성(蒙巨城).
성안으로 들어가려던 엽현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몇몇 마인들이 늑대처럼 생긴 요수를 타고 성문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인들은 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보아 성의 병사들인 듯했다.
뒤이어, 이들의 뒤편으로 몇 대의 이동식 감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옥 안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는데, 남녀를 합쳐 총 서른 명이 넘었다.
이 모습을 보자 엽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서의 인간의 지위가 이 정도로 낮단 말인가!
이때, 마인들 역시 엽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곳에 어째서 인간이 있는 걸까?
그것도 이런 백주 대낮에!
철창 안의 사람들 역시 엽현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호기심을 보였고, 누군가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이었다.
바로 이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마인이 요수를 몰고서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마인이 갑자기 소리쳤다.
“꿇어라!”
꿇어?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뜨거워졌다.
엽현은 두말하지 않고 마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마인의 머리가 몸통으로부터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순간, 장내가 무덤가처럼 고요해졌다.
모두가 잠시 넋을 잃은 이때, 정신을 차린 마인 하나가 엽현을 향해 호통을 쳤다.
“가, 감히 하등한 인간 주제에! 내 너를 요수의 먹이로 던져…….”
마인이 말을 하는 이때, 엽현이 주먹만 한 돌을 주워 들고는 마인을 향해 냅다 던졌다.
퍽-!
돌에 명중된 마인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 났다.
엽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마인들 무리를 향해 돌격했다.
굶주린 늑대처럼 날렵하게 접근한 엽현은 정면에 있는 마인의 목에 정권을 꽂아 넣었다.
푸확-!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엽현의 주먹이 마인의 목을 뚫고 나왔다.
엽현은 기세를 몰아 나머지 마인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인의 시체가 십여 구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였다.
시신은 대부분 매우 처참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먹은 검과 달리 매우 투박하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다시 주먹을 휘둘러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모두 부숴 버렸다.
“모두 나오시오! 그대들은 자유요!”
이 한 마디와 함께 멋지게 퇴장하려던 엽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원한다면 나를 따라와도 좋소!”
한 번 구해주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엽현의 생각이었다. 자신과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마인들과 마주친다면 그때는 죽임을 당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마인들이 자신에게 죽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몸이 비대한 남자가 엽현에게로 달려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누가 너더러 구해 달랬더냐!”
“뭐, 뭐?”
엽현은 황당했다.
남자는 엽현에게 독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젠장맞을 놈! 저들에게 잡혀가면 기껏해야 노예가 돼서 얻어맞는 정도가 전부이거늘, 네가 마인들을 죽인 바람에 우리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됐다! 누가 너더러 이런 짓을 하라고 했…….”
이때, 엽현이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짝-!
남자의 육중한 몸이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죽지는 않았고, 그저 혼절했을 뿐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엽현은 남자를 질질 끌고 가더니 그대로 감옥 안에 던져놓고서 다시 쇠사슬로 문을 잠가버렸다.
“그래, 내 실수야. 노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네. 여기 넣어 놓을 테니까 앞으로 행복한 노예 생활 되라고!”
말을 마친 엽현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이때, 작은 소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내가 누구냐고?
엽현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혹시… 우주신정이라고 들어봤니?”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에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우주신정의 창시자… 엽신(叶神)이라고 해! 음, 그럼 우주법칙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니?”
소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이 세상에는 아홉 개의 우주법칙이 있어. 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지. 그런데 그 녀석들이 힘이 강해지니까 글쎄 날 제거하려고 작당을 하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환생을 시도하는 중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