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86
1587화 선택의 기로
엽현은 삼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몽거성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마역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말 그대로 노예일 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그런 마인들을 죽여 버렸던 것이다!
마인들이 죽은 이상, 탈출한 자신들 역시 다른 마인들의 표적이 될 게 분명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엽현을 따라 나서는 것뿐이었다.
그래야만이 살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더 생길 테니까.
성안으로 들어선 엽현 일행은 순식간에 마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간이 자유롭게 걸어 다닌다고?
마인들의 시선은 이내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엽현을 향해 쏟아졌다.
이때, 엽현이 주변의 마인들을 향해 불같이 소리쳤다.
“뭘 쳐다봐! 구경났어? 자신 있으면 한판 붙던가!”
마인들은 어이가 없었다.
노예가 주인에게 소리를 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때, 근처에 있던 마인 하나가 엽현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가 막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엽현이 달려들면서 상대의 미간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마인의 머리가 박살 나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순간, 마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엽현 뒤에 있던 사람들 역시 순간적으로 넋을 잃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강한 인간이 있다니!
엽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전진했다.
이런 곳에서 말을 섞는 건 의미가 없었다.
노예 취급을 받는 인간이 마인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결국,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주먹뿐이었다.
이때, 주변에서 점점 더 많은 마인들이 몰려들더니 엽현 일행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마인들이 양쪽으로 물러나더니, 그 사이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의 수는 무려 수백에 달했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허리춤에 큰 칼을 찬 중년인이었다. 엽현과 뒤쪽의 사람들의 모습을 본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재빨리 달려들어 중년인의 뺨을 후려쳤다.
짝-!
불의의 기습을 당한 중년인이 그대로 지면에 나뒹굴었다.
단번에 머리가 터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엽현이 손속에 사정을 둔 게 분명했다.
엽현은 빠르게 중년인 곁으로 다가가 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가슴을 발로 짓눌렀다.
“자, 말해보아라! 여기는 어디지?”
중년인은 힘겨워하면서도 엽현을 향해 독기를 뿜어냈다.
“인간 따위가 감히 이러고도…….”
엽현이 발에 힘을 주어 중년인을 밟았다.
쾅-!
중년인의 몸이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모습을 보자, 마인들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성안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이런 식으로 죽여 버리다니.
도대체 어디서 저런 인간이 나타났단 말인가!
엽현은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그 어떤 마인도 일행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얼마 후.
엽현과 그의 일행은 성주부에 당도했다. 이때, 성주부 앞에는 이미 수백 명의 마인 병사가 배치된 상태였다.
이들의 앞에는 뚱뚱한 마인 하나가 서 있었는데, 옷차림으로 보아 성의 성주인 듯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성주의 물음에 엽현은 대답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하얀 손 하나가 성주의 목을 움켜쥐었다.
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성주가 단숨에 제압당하자, 마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엽현이 성주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성안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풀어주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상세히 설명하도록 한다! 실시!”
엽현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본 성주는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빠, 빨리 노예들을 풀어 줘라!”
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본 엽현은 성주를 인질 삼아 성주부 안으로 들어왔다.
장원 안.
돌의자에 자리 잡은 엽현은 성주로부터 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역은 총 네 개의 계로 나뉘는데, 각각 상계(上界), 마계(魔界), 원계(元界) 그리고 임계(臨界)라 불렸다.
이 네 개의 지역은 서로 독립된 형태로 존재했지만, 모두 대마주(大魔主)를 섬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역이 처음부터 네 개로 나뉜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에는 마주(魔主)라는 존재 있어 마역 전체를 통치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실종되고 난 후부터 지금의 형태로 사분요열 된 것이었다.
하지만, 네 개 지역의 마인들은 여전히 언젠가 마주가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한편, 엽현은 자신이 있는 곳이 마계란 사실도 알아냈다.
물론, 중심부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이란 것도.
성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엽현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당연히 마도(魔都)로 향해야 했다.
마계의 중심인 그곳이라면 성역 간에 이동할 수 있는 전송진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추측에 불과할 뿐,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점점 의혹 속에 빠져들어 갔다.
청삼남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자신을 이곳에 보낸 걸까?
이곳에서 수련을 시킬 목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노예로 있는 사람을 구출하는 임무를 부여한 것일까?
확실히, 마역에서의 인간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아니, 정확히는 지위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날 때부터 노예로 태어난 자들이 무슨 지위가 있겠는가?
참으로 비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역과 구유계의 거리가 매우 멀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붙어 있었더라면 둘 사이에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게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은 성주부를 빠져나왔다.
이때, 성주부 입구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이 성에서 노예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순간, 수만 쌍의 눈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이 중에는 호기심의 눈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흐리멍덩한 눈빛들이었다.
엽현은 눈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는 그 어떤 투지나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노예의 낙인이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을 구한다고?
어떻게?
엽현은 머리가 아파 왔다.
이 사람들을 데리고 마역에 선전포고라도 해야 할까?
무공 수위가 봉인된 지금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마역은 구유계 불사제족과 비교해도 전혀 약해 보이지 않았다.
마역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렇지만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포기하는 것 말고 방법은 없는 걸까?
이미 마인 여럿이 자신의 손에 죽었다. 만약 자신이 이곳을 떠난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게 분명했다.
“휴… 혹시 하고 싶은 말 없소?”
엽현이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오?”
이때, 남자 하나가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엽현을 보며 대답했다.
“원합니다… 자유!”
“훗, 벙어리만 있는 건 아니었군. 이름이 무엇이오?”
“임담(林炎)이라 합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그대가 이 사람들의 대장이오.”
임담이 갑자기 엽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우리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십시오!”
순간, 많은 사람들이 임담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사실 이들도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자유를 얻으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노예인 그들에게는 무도를 학습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엽현이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겠소.”
이때, 또 다른 남자가 소리쳤다.
“우리는 인계(人界)로 가야 합니다!”
“인계?”
엽현이 방금 말한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 곳이 있소?”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인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만이 사는 곳이라 합니다. 그곳의 인간은 노예로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엽현이 성주를 쳐다보자, 성주가 겁먹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인계는… 확실히 존재하오. 그곳엔 매우 강력한 무인이 있어 인간을 보호하고 무공까지 전수한다고 하오…….”
“강력한 무인? 설마 도문의 조사는 아니겠지?”
그는 도문의 조사가 마역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동리청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다.
“인계는 여기서 얼마나 멀지?”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빨라야 족히 한 달은 걸리겠지만, 천도성에 있는 전송진을 이용한다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소.”
천도성!
이때, 임담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천도성이라니! 우리를 죽게 할 생각이로구나!”
성주는 임담을 흘끔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이 물었다.
“그쪽에 강력한 마인들이 있는 것이오?”
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천도성의 마인들은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곳에 인계로 향하는 전송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성주를 바라보았다.
“성안에 있는 탈 수 있는 요수들을 모두 끌고 오도록!”
성주는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부하를 시켜 요수들을 끌고 오게 했다.
잠시 후, 성주부 앞은 온갖 탈 것으로 가득 찼다.
“자, 모두 타시오! 천도성으로 갑시다!”
“하, 하지만 그곳엔…….”
임담이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마시오.”
자신감에 찬 엽현의 모습을 본 임담은 뒤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모두 요수 위에 올라타시오! 우리는 천도성으로 갈 것이오!”
“…….”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 이때, 임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기 싫거든 여기 남으시오! 평생 노예로 살든가 아니면 죽든가!”
이 말에 마침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여현을 위시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성을 나서 천도성을 향했다.
그리고 성주는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전음석을 꺼내 들었다.
* * *
성 밖을 나온 엽현 일행.
엽현 곁에서 걷던 임담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성주를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마인들에게 소문이 퍼질 겁니다.”
“후후, 상관없소.”
임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곁에 있는 이 남자를 믿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
바로 이때, 지면이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멀리서 한 무리의 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인기병(魔人騎兵)!
기병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들 중 몇몇은 당황하여 요수의 등 위에서 굴러떨어지기까지 했다.
“모두 침착하시오!”
하지만 한 번 놀란 사람들은 진정할 수 없었다. 일부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그대로 대열을 이탈하려 했다.
바로 이때, 무리 중의 한 남자가 엽현을 향해 불같이 소리쳤다.
“다, 다 너 때문이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하며 살아갔을 것을! 네가 우리를 구한 탓에 이곳에서 다 죽게 되지 않았느냐!”
남자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쏠렸다.
뒤이어 몇몇 사람들이 원망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맞아! 저 남자만 아니었더라면 그럭저럭 살 순 있었어! 고되긴 했겠지만 적어도 죽진 않았을 거라고!”
“이대로 죽기 싫어… 제발 날 돌려 보내줘!”
“닥쳐! 이미 늦었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
많은 사람들이 붉게 물든 눈빛으로 엽현을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엽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문득 자기가 괜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로 이때, 임담이 갑자기 도를 꺼내 들더니, 최초로 불만을 제기한 남자의 목을 내리쳤다.
“정신들 차리시오! 이 사람은 우리를 구해 준 거란 말이오!”
임담의 말에 한 남자가 분노하며 되받아쳤다.
“눈이 있으면 한 번 봐라! 저기 저 수많은 기병이 우릴 죽이러 오는 게 보이지도 않느냐! 저 남자 혼자서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즉, 우린 다 죽은 목숨이라고!”
“맞아! 저 남자는 우릴 구해준 게 아니라 사지로 몰아넣은 거나 마찬가지다!”
임담이 무어라 반박하려는 이때, 엽현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만류했다.
“대, 대인…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임담이 비장한 표정으로 엽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나를 믿으시오.”
엽현은 임담을 데리고 길 한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내 뒤로 서시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주춤거리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이때, 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저 말을 믿지 마시오! 제까짓 게 아무리 잘났어도 저 많은 마인들을 다 죽일 순 없는 노릇이오! 차라리 마인들이 도착하면 투항하는 편이 그나마 살 수 있는 방법이오! 저들도 노예가 필요할 테니 여기 있는 전부를 죽이지 못하지 않겠소?”
남자의 말을 듣자 사람들은 동요했다.
이때, 소녀 하나가 천천히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바로 엽현이 성 밖에서 구해 준 그 소녀였다.
“저는… 오빠를 믿어요. 우, 우주신정에 데려가 주세요! 저도 엽신 오빠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
이때, 마인기병대가 도착했다.
그러자 조금 전 항복을 주장한 남자가 황급히 기병대 앞에 무릎을 꿇더니, 흥분한 표정으로 엽현을 가리키며 무언가 소리쳤다.
이때, 눈치를 보던 나머지 사람들 역시 기병대를 향해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