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87
1588화 치명적인 남자
남자의 성토는 더욱더 격렬해졌다. 그는 마인을 향해 울분을 토하면서도 엽현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이는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대하는 눈빛처럼 보일 정도였다.
엽현은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도 깨달았다.
저들에게 있어 자신은 구세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구해 준 것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엽현은 문득 청아를 떠올렸다.
오래전, 오유계에 오유겁이 닥쳤을 때 청아는 사람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실력이 없어서?
그렇지 않다.
그저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찌감치 인간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유계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구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때, 마인기병 하나가 도를 높게 들더니 그대로 내리쳤다.
쉭-!
방금 전까지 엽현을 욕하던 남자의 몸뚱이가 그대로 반 토막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붉은 선혈이 지면을 강처럼 적셨다.
나머지 사람들이 경악에 빠진 이때,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모두 죽여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인들이 도를 빼 들었다.
이내 장내는 참혹한 비명으로 가득 찼다.
엽현은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일부는 팔다리가 잘려서 엽현 쪽으로 기어왔지만, 그래도 엽현은 팔짱만 끼고 있을 뿐이었다.
“사, 살려… 끄악-!”
잠시 후, 한바탕 살육이 끝났을 때, 장내는 피와 시체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때, 마인들은 엽현 등 세 명을 향해 다가왔다.
임담은 도를 들고 다가오는 마인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비록 놀란 상태긴 했지만 두려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반면, 소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표정으로 엽현의 소맷자락을 꼭 붙들었다.
그렇게 마인 기병대가 세 사람 앞에 멈춰 섰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엽현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대장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물론, 기병대장은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퍽-!
기병대장의 머리가 박살 나면서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병대장을 처치한 엽현은 그대로 다른 마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곧,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한데 울려 퍼졌다.
엽현이 한 번 주먹을 휘두를 때면 어김없이 마인 하나가 쓰러졌다.
그렇게 일각이 지났을 때, 무려 일만에 달했던 기병들 중 자리에 서 있는 자는 볼 수 없었다.
비록 무공이 봉인된 상태라지만, 일반 무인이 귀일경의 육신을 가진 엽현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편, 엽현이 너무나도 쉽게 마인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본 임담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내를 한 바퀴 훑어본 엽현은 임담과 소녀 쪽으로 돌아섰다.
“자, 그럼 갑시다!”
세 사람은 요수의 등에 올라탄 채로 나란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 중에 아무도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임담은 아직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으며, 소녀는 여러 차례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급히 입을 막곤 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엽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엽현은 한 가지 의문에 빠진 상태였다.
방금 전 교전이 있었을 때, 검의를 느꼈던 것이다.
선악검의!
물론 이 검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엇이 선이었나?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나선 것이 선이었다.
무엇이 악이었나?
사람이 죽는 걸 보면서도 구하지 않았던 것이 악이리라.
단지 구하는 일도 방관하는 일도 모두 스스로의 양심을 따른 것이었다.
선악일념간(善惡一念間)!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엽현은 눈을 떴다. 이때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피곤한 일이다.
왜냐하면, 선으로 대하면 꼭 악으로 갚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본디 악인 앞에서는 착해지고, 선인 앞에서는 오히려 악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저열한 인간성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악한 자를 구해야 할까?
엽현은 그리 물렁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얼마든지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엽현이었다.
이때, 곁에 있던 소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엽신 오빠…….”
생각을 거둔 엽현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응? 무슨 일이야?”
“오빠는… 왜 그렇게 강해요?”
엽현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수련을 했기 때문이지. 너도 수련하고 싶어?”
소녀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엽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순간, 도경 일권부터 구권까지의 내용이 소녀의 머릿속으로 전송됐다.
엽현은 소녀에게 도경을 전해주면서 약간의 금제를 걸었다.
예를 들어 일권을 완전히 깨우치기 전에는 이권의 내용을 볼 수 없게 하는 식이었다.
엽현은 문득 임담을 돌아보았다.
순간, 임담이 말 위에서 내려 엽현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날 위해 뭘 해 줄 필요는 없소.”
엽현은 임담에게도 마찬가지로 도경을 넘겨주었다.
도경이 머릿속에 들어온 순간, 임담은 엽현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무공!
이곳 마역엔 사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매우 희귀했다.
왜냐하면 마인들에 의해 이미 맥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다른 우주에서는 기초적인 공법들도 이곳에서는 매우 귀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엽현이 준 무공은 모든 무공의 뿌리인 도경이 아닌가!
엽현은 빠르게 임담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시오.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 무릎을 꿇어선 안 되오!”
“하지만 이건… 제 운명을 바꿔놓을 만한 대사건입니다.”
“그저 나를 믿어 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 생각해 주면 고맙겠소.”
엽현이 웃으며 말하자, 임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서 요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세 사람의 뒤쪽에서 한 무리의 마인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마인들은 커다란 체형에 갑옷까지 걸친 상태로 그 기운이 매우 포악했다.
이들의 등장에 엽현 일행이 타고 있던 요수들이 땅에 엎드린 채 벌벌 떨 정도였다.
엽현 역시 다소 놀란 상태였다. 마인들의 경지가 다소 높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요수는 성도경이었으며, 가장 앞에서 뛰어오는 자는 무려 귀일경이었다.
‘쉽지 않겠어!’
심지어 마인들이 입고 있는 갑옷 또한 일반 갑옷이 아닌, 성도경 급의 신물이었다.
갑옷을 본 순간, 엽현은 문득 소백의 고대 방패를 떠올렸다.
그 방패가 있었더라면 저 정도 병력을 보고 긴장할 필요가 없었을 것을…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엽현은 아쉬움을 접어둔 채, 앞쪽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마인기병들 중간쯤에 화려하고 커다란 마차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이 마차를 모는 마인은 귀일경 절정으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를 본 엽현은 마차에 탄 자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마인기병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하지만 그들은 엽현 일행을 지나쳐 천도성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 와중에 선두에 있던 기병 대장은 엽현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엽현 역시 지지 않고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다행히 기병대장은 출수할 생각이 없는 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때, 마차 안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멈춰라!”
명령이 떨어진 순간, 기병들이 일제히 자리에 멈춰 섰다.
엽현의 시선이 마차를 향한 이때, 마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여인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여인은 눈이 보라색이라는 것 외에는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용모였다.
여인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아름다웠는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인상이 너무나 차갑다는 것이었다.
여인은 엽현을 바라보았고, 엽현 또한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엽현이 감히 여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자, 기병 하나가 창을 들어 엽현의 눈을 찌르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창을 내질렀을 땐 이미 엽현의 주먹이 그의 목에 박힌 상태였다.
빠각-!
뼈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기병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초살(秒殺)!
엽현이 손을 쓰자, 주변에 있던 마인들이 순간적으로 엽현 일행을 에워쌌다.
이때, 여인의 하얀 손이 창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막 세 사람을 공격하려던 마인들이 창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여인이 엽현을 보며 말을 꺼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이로구나.”
엽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임담과 소녀를 향해 돌아섰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갑시다.”
엽현이 막 자리를 떠나려는 이때, 기병대장이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언제 가도 좋다고 했던가?”
이 순간, 기병대장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창을 들어 올렸다.
이때, 엽현의 주먹이 창신을 때렸다.
우지끈-!
창이 부러지면서, 엽현의 주먹이 그대로 대장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마인이 타고 있던 요수가 비명을 지르며 지면에 쓰러졌다. 마찬가지로 기병대장 역시 바닥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쓰고 있던 투구가 대부분의 힘을 상쇄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마인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인 여자 또한 얼굴에서 경악의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엽현은 쓰러져 있는 기병대장에게로 다가가 발로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기병대장이 매섭게 노려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엽현이 발에 힘을 주어 밟아버렸다.
쾅-!
기병대장의 몸통이 터지면서, 오장육부가 선혈과 함께 바닥에 쏟아졌다.
엽현은 손을 탁탁 털며 주변의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마차 안의 여인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이만 가야 할 거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겠소?”
위협!
엽현이 말을 한 순간, 여인을 호위하던 귀일경 절정의 마인이 갑자기 포효하며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때, 엽현이 한발 앞서 주먹을 날렸고, 이 주먹은 그대로 마인의 머리를 직격했다.
쾅-!
마인이 뒤로 날아가면서 그대로 마차를 덮쳤다. 순간, 마인에게 깔린 마차가 그대로 가루로 변했다.
하지만 마차 안에 있던 여인은 어느새 엽현 뒤편 몇 장 뒤로 이동한 상태였다.
엽현은 바닥에 쓰러진 마인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쾅-!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엽현의 주먹이 마인의 인중을 강타했다. 엽현은 쓰러진 마인에게 마치 고기 다지듯이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강하게 저항하던 마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줄어들더니 결국에는 축 늘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주먹에 맞아 죽어버린 것이었다.
순간, 엽현을 향한 마인들의 시선에 두려운 기색이 스며들었다.
귀일경 절정의 강자를 이런 식으로 구타해서 죽여 버리다니!
한편, 마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엽현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주먹질을 멈춘 엽현이 임담과 소녀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갑시다!”
요수 위에 올라탄 세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장내를 빠져나갔다.
이때, 뒤쪽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나?”
엽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대 같은 여인은 죽어도 가질 수 없는 치명적인 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