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96
1597화 내 말이 맞나요?
도망쳐야 해!
엽현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액난겁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선택은 하나, 도망치는 것뿐!
하지만 하늘을 떠다니는 액난겁과 천겁을 상대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콰직-!
순간, 한 줄기 뇌전이 엽현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떨어졌다.
이에 엽현이 화들짝 놀라며 정면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엽현이 있던 자리 근방 백여 장 이내의 지면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엽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뛰어도 액난겁을 따돌릴 순 없었다.
액난겁과 천겁은 지옥 끝까지 따라갈 기세로 엽현을 쫓았다.
잠시 후, 엽현이 숨어 있던 산 전체가 뇌전으로 완전히 쑥대밭으로 변했다.
엽현은 잿더미가 돼 버린 곳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설령 무공이 봉인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액난겁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거늘 지금 상태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저 뇌전에 정통으로 직격당하는 순간, 육신과 영혼이 소멸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몸을 굴려 뇌전 하나를 피한 엽현이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잠깐만! 잠깐만 봉인을 풀어주면 안 될까? 제발 부탁한다!”
하지만 검기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엽현은 반쯤 정신을 놓아버릴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진짜로 죽는다고! 나 진짜 죽어!”
검기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엽현의 속은 계속해서 타들어 가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검기와 대화를 시도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너무나 화가 났다.
스스로 얻어낸 범검지상의 경지를 도대체 왜 막는단 말인가! 왜!
엽현은 너무나 약이 올라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바로 이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방에 십여 명의 마인이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 중 셋은 천미경이었다.
드디어 엽현을 찾아낸 마인들은 보상을 받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엽현을 향해 떨어지는 뇌전을 본 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건 또 뭐야?
마인들의 눈에 두려움의 기색이 드러났다.
바로 이때, 마인들을 발견한 엽현이 그들을 향해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엽현이 자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본 마인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자리를 이탈하고자 했다.
이 순간, 뇌전이 떨어졌다.
쾅-!
미처 움직이지 못한 열 명의 마인이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살아남은 것은 엽현과 세 명의 천미경 강자가 전부!
목숨을 건진 세 마인들은 임무를 망각한 채, 곧바로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엽현 역시 이들의 뒤에 바짝 붙어 함께 도망쳤다.
“꺼져! 저리 가라고!”
천미경 강자 하나가 일갈을 날렸지만, 엽현은 오히려 신이 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헤헤! 어디 가? 같이 죽자!”
천미경 강자가 자리에 멈추더니 엽현을 향해 창을 들이밀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바로 이때, 하늘에서 혈뢰가 떨어졌다.
이를 본 엽현은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 몸을 감싸 안았다.
도망치기는 늦었으니 그저 버틸 수밖에!
쾅-!
혈뇌가 지면을 강타한 순간, 천미경 강자가 뿜어낸 기운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이와 동시에 엽현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가 형편없이 지면에 처박혔다.
한편, 창을 내지른 마인 역시 충격을 받고서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이때, 땅에 파묻혔던 엽현이 지상으로 기어 올라왔다.
이때 그의 몸은 군데군데 큰 상처가 나 있었는데, 특히나 양팔은 살갗이 다 찢겨나가 뼈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뇌전 한 방에 하마터면 즉사할 뻔했던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상공에 또다시 한 줄기 혈뢰가 맺혔다.
이에 엽현이 경악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마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설령 죽더라도 혼자 죽을 순 없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엽현이 또 접근하자 세 마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녕 동귀어진이라도 할 셈이란 말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 사람은 곧장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마인과 엽현이 도망치는 내내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붉은 뇌전이 떨어졌다.
엽현에게는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혈맥지력도 없고, 검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액난겁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죽는 순간 마인 몇을 길동무로 삼는 것뿐이었다.
세 마인들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 중 하나가 희생해서 엽현을 막아선다면 나머지 둘은 충분히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왜?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것이기에!
한편, 상대적으로 경지가 높은 세 마인은 서서히 엽현과의 거리를 벌렸다.
세 사람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자 엽현은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바로 이때, 그의 머리를 노리고 또다시 혈뢰가 떨어졌다.
엽현이 황급히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성됐다.
겨우 목숨을 건진 엽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도망치기만 해서는 답이 없었다. 체력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혈뢰에 맞았던 곳의 부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앞으로 반 시진 이내에 혈뢰에 얻어맞고 죽는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엽현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무공을 봉인하고, 액난법칙까지 막아주지 않은 청삼남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엽현은 심호흡을 크게 들이키며 손을 펼쳤다.
순간, 그의 손바닥 위에 무형의 의지가 나타났다.
검도의지(劍道意志)!
이는 청삼남의 검도의지였다.
당시 검연에서 우연히 획득한 이 의지는 한 번 사용한 이후로 줄곧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자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던 것이었다.
청삼남의 검도의지!
이는 엽현에게 남겨진 최후의 구명수단이었다.
이때, 엽현의 시야에 빠르게 하강하는 혈뢰가 들어왔다.
엽현이 가볍게 팔을 들어 올리자, 검도의지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쾅-!
단숨에 혈뢰를 박살 낸 검도의지는 그대로 짙게 깔린 먹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이 순간,
쾅-!
성역 깊은 곳으로부터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성공에 거대한 흑동이 형성됐다.
성공을 응시하고 있던 엽현은 순간 검도의지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와 동시에, 천지를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 역시 서서히 소멸했다.
엽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액난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중상을 입고 후퇴한 것이었다.
엽현으로서는 액난겁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반드시 무공 수위를 회복해야만 했다.
범검을 초월한 지금 경지에 원래의 무공까지 돌아온다면 액난겁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쳐 볼 수도 있으리라!
잠시 후, 엽현의 모습은 깊은 산맥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 * *
마인계, 마도.
마도는 마계에서 가장 번화하고 강자의 수도 많은 곳이었다.
산맥을 빠져나온 엽현은 곧바로 마도 안에 몸을 숨겼다.
때로는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법!
마인들 대부분이 엽현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진 지금, 마도는 그야말로 엽현이 몸을 숨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엽현은 어디선가 검은 장포 하나를 구해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마도의 거리는 매우 화려했다. 오유계와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문명 수준으로 보면 마인들 역시 오랫동안 전승을 유지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엽현은 주변을 경계하며 빠르게 골목길을 누볐다.
얼마 후, 엽현은 마도 내부의 도서전(圖書殿)을 찾았다. 이곳에 보관 중인 서적들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지키는 자들의 실력 역시 그리 강하지 않았다.
대전 안으로 잠입한 엽현은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생존해야 할 것이니, 마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동시에, 청삼남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지도 살폈다.
그렇게 대략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대전 안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현이 시선을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마인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의 용모는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것이 대략 열예닐곱 살로 추정됐는데, 눈이 동그란 것이 매우 귀여운 인상이었다.
엽현을 발견한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책을… 좋아하세요?”
엽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인이 흥분한 기색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세요?”
“…아마도 역사?”
이때, 여인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대는 마인이 아니군요?”
여인의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인의 시선은 엽현이 들고 있는 책으로 향했다.
“그대가 들고 있는 책은 마역의 기본적인 역사를 소개 한 책이에요. 마인이라면 어린아이나 보는 그런 책을 읽지는 않겠죠. 게다가 검은 장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건 정체를 들키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혹시 그대는… 엽현이란 사람인가요?”
“제기랄!”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단 한 번만 보고서 어떻게 정체를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인가!
“후후, 그 반응을 보니 추측이 맞았나 보네요. 내가 그대 이름을 말했을 때,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간 걸 봤어요.”
여인은 엽현 앞으로 다가오더니, 천천히 엽현이 뒤집어쓰고 있던 장포를 벗겼다.
엽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여인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정말 맞군요! 수배령에 있는 얼굴과 똑같아!”
“…내가 살인멸구할 것이 두렵지도 않나?”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란 생각은 들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냐하면 그대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싸웠으니까요. 자기만 아는 나쁜 놈들은 절대 남을 위해 나서지도, 위험을 무릅쓰지 않죠. 그러니까 그대는 날 죽이지 않을 거예요.”
여인의 논리정연한 말솜씨에 엽현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하지만 너는 마인이고 나는 인간이다.”
“마인이라고 다 나쁜 사람만 있는 줄 아나요?”
“…….”
“이곳의 역사에 대해 알고자 하는 걸 보니 그대는 이곳에서 태어난 인간은 아니군요. 어디서 왔죠? 전설로 전해지는 구유계? 아니면 천역?”
엽현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곧 정답을 찾아냈다.
“그대는 천역이 아니라 구유계의 무인이겠군요. 왜냐하면 천역은 우주집법자들이 관장하는 구역이고, 그대는 그들과 한패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지?”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가 법칙 수호자와 함께 있었다는 걸 들었어요. 그녀는 떠났지만, 그대는 함께 가지 않았죠. 어째서일까요? 그건 아주 간단해요. 같은 편이 아니란 소리죠. 게다가 내가 알기로 그 여인은 떠나기 직전 고의로 그대를 곤란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우주신정은 얼마 전 구유계와 전쟁을 치른 바 있죠. 이런 정황을 따져 봤을 때, 그대는 천역보다는 구유계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거지요. 게다가 그대의 신분 역시 보통이 아닐 거예요.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존재는 법칙 수호자를 제외하면 정말로 드물어요. 설령 불사제족의 족장이라 할지라도 수백만 년이 걸릴 거리죠. 다만, 그대의 실력으로 보건대 직접 왔다기보다 누군가 데려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일 거예요. 그렇다면 그대를 데려온 사람의 실력은 최소…….”
여인이 문득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제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군요.”
“…….”
여인은 처음 보는 엽현을 향해 끝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대는 매우 강력한 육신을 보유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대의 몸에서는 강자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분명 정상적인 일이라 볼 수 없죠. 따라서 이 경우는… 그대를 데려온 절대 고수가 수련을 위해서 무공을 봉인해 놨을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겠군요.”
말을 마친 여인은 엽현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지금까지 말한 건 모두 추측에 불과해요. 이제 말해 봐요. 내 말 중에 맞는 부분이 얼마나 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