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99
1600화 선전포고!
처음 백의노인의 말을 들었을 때, 엽현은 우주신정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정말로 자신이 목표였다면 신관이 굳이 직접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 많은 무인들을 이끌고 올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심지어 자신은 신정이 공표한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서른여섯째 줄에 겨우 이름을 올렸을 뿐이었다. 우주신정 수뇌급의 무인이 직접 나설 이유는 눈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러던 차에, 백의노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본 엽현은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우주신정의 목표는 자신이 아닌 바로 눈앞의 마소쌍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깨달음과 함께 엽현의 안색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어쨌든 자신 역시 우주신정에게 적으로 간주 되는 상황.
자칫 잘못하면 마소쌍과 함께 쌍으로 소탕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순간 그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과연 마소쌍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자이기에 우주신정의 신관이 직접 출동한단 말인가!
이때, 마소쌍이 엽현을 돌아보았다.
“엽 공자,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마소쌍이 마룡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마룡이 기다렸다는 듯 작은 섬 위로 착륙했다.
섬 위로 내려선 마소쌍은 엽현을 데리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엽 공자, 시간이 없으니 걸으면서 설명할게요. 그대의 추측대로 여기 있는 나는 본체가 아니에요. 본체는 이 섬 깊숙한 곳에 봉인돼 있죠. 그대 부친에게 봉인된 까닭은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어요.”
엽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마소쌍을 쳐다보았다.
“부탁을 했다고?”
마소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이곳에서 수련 중이던 나는 늘어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폭주 직전에 놓여 있었어요. 이 때문에 그대의 부친에게 내 육신과 힘을 봉인해 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삼만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천천히 체내의 기운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하지만?”
마소쌍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 부친이 봉인을 위해 남긴 검기를 제거하는 것에는 결국 실패했어요. 어리석었어요. 너무나 자신에 차 있었죠. 먼저 체내의 기운을 장악하고 나면 검기 정도는 쉽게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절망에 빠진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대의 부친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어요. 그리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을 때, 그대가 마계에 나타난 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이곳에 보내면서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소.”
엽현의 말에 마소쌍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던 거죠. 내가 직접 그대를 찾아와 부탁을 하는 편이 더 좋은 그림이 될 테니까.”
설명을 들은 엽현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파렴치한 부친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을 것이다.
마소쌍이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그런 마소쌍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의 검기는 엽 공자를 배척하지 않을 거예요. 그대가 나를 봉인하고 있는 검기만 거둬준다면 나는 다시 자유를 찾을 수 있어요.”
“듣고 보니 생각보다 간단한 일인 것 같군요.”
이에 마소쌍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렇긴 해요. 하지만 세상일에는 항상 의외의 일이 있기 마련이죠.”
마소쌍이 말을 마친 순간, 멀쩡하던 하늘이 쩍 갈라지면서 중년인 하나가 장내로 튀어나왔다. 중년인이 걸치고 있는 검은 장포 위에는 한 마리 요수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흉악했다.
신관!
우주신정의 이인자!
신관의 뒤를 이어 서른여섯 명의 무인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는 이들은 실체가 매우 흐릿해 마치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이들이 바로 우주신정이 자랑하는 삼십 육인의 고신(古神)이었다.
고신들이 나타난 순간, 엽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비록 신관의 실력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이 서른여섯 무인의 기운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경지는 목소도보다 한 단계 아래이긴 했지만, 모두 범경에 속하는 고수들이었다.
마소쌍이 먼저 신관을 향해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신관, 그동안 별고 없으셨나요?”
신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그동안 너무 기척이 없다 했더니, 이런 곳에 봉인돼 있었을 줄은 몰랐군.”
“하하,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화가 난 건가요?”
신관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지금도 늦진 않았다.”
“훗, 그런가?”
이때, 신관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너는… 액체?”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액체이긴 한데 나쁜 사람은 아니오.”
“선인이라면 처음부터 액체가 될 수 없지. 액체라는 건 곧 하늘을 거역한 중죄인이라는 거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손을 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구려.”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겠지. 무슨 대화가 더 필요하겠느냐?”
말을 마친 순간, 신관이 잔상을 남기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를 보자, 엽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관이 목표로 하는 것은 마소쌍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나를!?’
신관이 출수한 순간, 섬 주변에 무수히 많은 신비인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은 신관과 함께 온 삼십육 인의 고신들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조용하던 섬은 일순 칠십여 명의 범경 강자가 한데 뒤섞인 전장으로 변했다.
물론, 엽현에게 중요한 건 신관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그의 실력으로 이 정도 급의 강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공이라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빌어먹을 부친이 남긴 검기는 여전히 그의 혈맥과 무공 수위를 봉인한 상태였다.
‘죽는다!’
이것이 엽현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친부 때문에 죽는 것이라 생각하니 두 배로 억울했다.
승리할 가능성은?
아무리 봐도 일 할을 넘지 않았다.
비록 패배가 확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 또한 엽현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더라도 최후까지 싸우다 전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엽현과 어울리는 죽음이리라!
엽현은 잔뜩 움켜쥔 주먹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전(戰)!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설령 삼검보다 더 강할지라도 나는 주먹을 뻗을 테다!
이기지 못하는 것과 싸우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일!
엽현이 전심을 기울여 날린 이 주먹은 생사일검과 마찬가지로 이후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최후의 일격이었다!
쾅-!
주먹이 무언가 부딪친 순간, 엽현의 오른팔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졌다.
이와 함께, 섬 밖으로 튕겨 나간 엽현은 마침내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닷속에 빠지고 말았다.
바닷속 깊은 곳으로 추락하며, 엽현은 점점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한편, 신관은 엽현을 추격하는 대신 마소쌍을 향해 돌아섰다.
“놈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
사실, 조금 전 충돌로 엽현은 즉사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둘의 주먹이 맞닿은 그 찰나의 순간, 마소쌍의 개입이 있었기에 엽현은 간신히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마소쌍의 육신은 눈에 띄게 희미해진 상태였다.
조금 전 억지로 출수한 대가였다.
분신의 몸인 마소쌍은 기껏해야 신관의 공격을 한 번 막아 내는 게 전부였다.
신관은 고개를 돌려 바닷속 깊이 잠기고 있는 엽현을 응시했다.
“녀석의 도움을 얻어 봉인을 해제하려 했겠지만, 이제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군.”
신관이 막 출수하려는 순간, 마소쌍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훗… 신관아, 이 일이 정말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느냐?”
신관이 손을 멈추고 진중한 표정으로 마소쌍을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눈빛에 순간적인 동요가 일었다.
“설마… 일부러 기를 노출해 고의로 나를 유인했던 건가?”
“후후, 아니면? 내가 그리 허술한 사람으로 보였나?”
이때, 마소쌍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주인의 아들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테냐!”
잠시 침묵이 흐른 그때.
윙-!
청명한 검명이 장내에 울려 퍼지더니, 갑자기 검기 하나가 하늘에서 나타나 신관을 향해 뚝 떨어졌다.
검기를 발견한 순간, 신관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천지우(天地佑)!”
쾅-!
찰나의 순간, 신관 앞에 반투명한 방패 하나가 나타났다.
무궁무진한 천지의 기운을 응집한 난공불락의 방패였다.
바로 이 순간, 검기가 방패 위를 덮쳤다.
쾅-!
섬 위의 공간 전체가 잠시 흐릿해지는 듯하더니, 층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 방패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검기가 그대로 신관의 목으로 향했다.
이를 본 신관이 눈을 부릅뜨는 동시에, 손을 뻗어 검날을 잡으려 했다.
쾅-!
기어이 맨손으로 검날을 붙잡은 신관의 신형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한편, 손안의 검기 또한 마찬가지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신관은 자신의 몸이 빠르게 사라지자, 눈을 감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나머지 한 손을 뻗어냈다.
“나와라!”
외침이 울려 퍼진 순간, 신관의 미간 사이에서 ‘法(법)’이라는 문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쾅-!
문자와 충돌한 검기는 그대로 수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 ‘法’자는 끝까지 검기에 붙어 검기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도록 견제했다.
이 순간, 강대한 기운이 섬 전역에 휘몰아쳤다. 뒤이어 하늘 높은 곳에 체구가 작은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소쌍!
마소쌍은 가슴이 한껏 부풀도록 숨을 들이켜더니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하아… 이 얼마만의 자유인가.”
뒤이어 천천히 눈을 뜬 마소쌍이 웃으며 신관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신관이군. 단 한 번이긴 하지만 그의 검기를 막아내다니.”
마소쌍을 바라보는 신관의 표정에 암담한 기색이 서렸다.
그가 전성기에 있었을 당시, 마소쌍은 절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신관의 실력이 오래전에 정점을 찍은 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청삼남의 검기에 중상을 입은 상태이기도 했다.
즉, 지금의 신관은 결코 마소쌍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결단은 상황 파악만큼이나 빨랐다.
“퇴각!”
명령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투 중이던 우주신정의 무인들 역시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에 마소쌍 측의 무인들이 추격하려는 순간, 마소쌍이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추격에 나선 무인들이 돌아와 그녀를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때, 무인들의 표정은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한편, 신관이 떠나자, 검기를 막고 있던 ‘法’자 또한 순식간에 소멸했다.
그리고 목표를 잃은 검기는 그 자리에 멈춘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자 마소쌍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들어 낸 ‘법’자 결을 이런 식으로 잃다니, 신관 놈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군.”
이윽고 마소쌍은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하늘이 색을 잃기 시작하면서, 바닷물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소쌍이 가볍게 검지를 까딱이자, 바다 깊은 곳에 있던 엽현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때의 엽현은 숨이 멎은 것은 아니었지만, 기운이 극도로 약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뼈가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엽현의 상태를 살핀 마소쌍은 오른손을 엽현의 미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화면이 순간순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능력 중 하나인 예지력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마소쌍은 한참이 지나서야 엽현에게서 떨어졌다.
이때,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심지어 살기까지 깃들어 있었다.
좋지 않은 미래를 보았던 것일까?
얼마 후, 한동안 침묵하던 마소쌍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운명을 믿긴 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순 없지!”
엽현을 안전한 곳에 눕힌 마소쌍은 백옥병 두 병을 엽현의 가슴 위에 올려놓고서 돌아섰다.
“명령을 하달한다! 외부에 나가 있는 모든 무인들은 즉시 천부(天府)로 복귀한다! 더불어, 지금 이 시각부로 우주신정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선전포고!
이 말을 끝으로 마소쌍과 무인들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때, 홀로 남은 엽현 근처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