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대검수 일리가 없어! 대검수 일리가 없다고!
황폐한 저택 안에서 엽현과 엽령이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오빠, 저 사람 진짜 황자야?”
엽령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
엽령이 작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일부러 이곳에서 오빠를 기다린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작은 세가 안에서도 파벌을 지어 서로의 세를 불리려고 애쓰는데 황가는 오죽할까?”
엽현이 엽령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우리 령이의 상한병만 고치면 돼. 권력투쟁 따위에는 관심 없어.”
“오빠, 나도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
“당연하지. 하지만 안 배워도 상관없어. 오빠가 더 강해져서 령이를 지켜줄 테니까!”
엽령이 귀엽게 웃으며 엽현을 세게 끌어안았다.
“웅… 그것도 좋지만, 나도 오빠를 지켜주고 싶어!”
이때,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를 방해했다.
“남매간의 우애가 참으로 눈물겹구나!”
어떤 노인 한 명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진가의 장로, 진약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엽현이 주먹을 움켜쥐며 엽령에게 말했다.
“옆으로 물러나 있어!”
“오빠, 조… 조심해!”
진약이 엽현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영석을 순순히 내놓는다면 너희 두 남매 시체는 온전하게 남겨 주마.”
엽현의 안색이 시퍼래졌다.
그는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진약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발악이라도 해 보려는 것이냐? 기변경에도 미치지 못하는 놈이 능공경인 노부에게 덤비려 하다니…, 네 놈을 죽이는 데는 초식 한 번이면 충분하다!”
비록 호기롭게 외치긴 했지만 진약은 엽현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으로서 상대를 얕잡아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엽현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건을 줄 테니 우리 남매를 보내주시오.”
진약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흥정을 하겠다?”
진약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려는 사자의 기운을 뿜었다.
엽현이 그에게 검은 주머니를 던졌다. 진약이 속으로 기뻐하며 주머니를 향해 손을 벌렸다.
바로 이때, 엽현이 그의 앞에 불쑥 다가왔다! 진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대응했다.
“너무 뻔하지 않느냐!”
츠읏-!
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억-!
엽현이 제대로 주먹을 뻗기도 전에 그의 몸은 뒤로 날라가 벽에 처박혔다. 이에 멈추지 않고 진약이 곧바로 엽현을 향해 달려들며 일장을 날렸다.
“오빠!!”
갑자기 그들 사이에 끼어든 엽령이 엽현을 껴안았다. 진약의 일 장은 멈추지 않고 두 남매를 향해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엽령의 머리를 향했다.
이에 엽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엽현이 황급히 엽령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장내에 묵직한 검명(劍鳴)이 울려 퍼지며 엽현의 손바닥 위에 영소검이 떠올랐다. 엽현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이때, 천녀의 음성이 계옥탑 안에 울려 퍼졌다.
[저 자식은… 동생만 관련되면 살인 욕구가 치솟는단 말이지…….]엽현이 영소검을 내민 순간 진약의 손은 엽령의 머리로부터 주먹 하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뒤이어, 진약은 자신의 팔이 몸에서 분리되는 장면을 바라보아야 했다.
선혈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졌다. 진약이 이를 악물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한 줄기의 검망(劍芒)이 그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는 두 번째 검이 아니었다. 엽현이 처음 검을 뽑았을 때 생성된 검망이었다.
깜짝 놀란 진약이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남은 왼손으로 일권을 날렸다. 남은 기를 모두 사용했다. 생사의 기로 앞에서 힘을 남겨둘 수 없었다. 일순간 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걱-!
이번엔 진약의 왼팔 마저 멀리 날아갔다.
이어 팔의 절단면에서 선혈이 샘솟듯 솟구쳤다. 진약의 몸은 수 장(丈) 밖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엽현의 오른팔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더니 그 사이로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금 일 검을 출수한 이후로 엽현은 속이 뒤집힐 듯이 불편하고 몸이 텅 빈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 엽현을 진약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검망…… 어떻게 이럴 수가… 검수… 아니 대 검수… 그것도 아니야… 기변의 경지로 검망을 뿌릴 순 없어… 대검수일리 없어!”
검도의 기초를 익숙하게 발휘할 수 있는 자는 검수라 불린다. 검수는 일반 검수와 대 검수(大劍修)로 나뉜다. 만약 검수가 검을 매개로 하여 검기와 검망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다면 검도의 조예에 있어 대검수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대검수의 경지는 흔하지 않아서 강국 전체를 뒤져도 백 명도 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검을 수련한지 오래인 나이가 지긋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엽현은 겨우 열여덟이었다! 진약이 경악했다. 엽현이 진약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꺼져라.”
진약이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이내 몸을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서야 엽현이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당황한 엽령이 엽현을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괘… 괜찮아?”
가까스로 자리에 앉은 엽현이 잔뜩 긴장한 엽령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괘, 괜찮아. 걱정 하지마, 령아. 나 잠깐만 쉬고 있을게”
말을 마친 엽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천녀님?”
엽현이 마음속으로 부르자 천녀가 대답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아직 너의 실력으로는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의 위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네가 적에게 입히는 피해가 열이라면 네가 입는 피해는 여덟일 것이다. 현시점에서 네게 검기(劍技)를 전수해 준 까닭은 검리(劍理)와 검도를 대하는 태도를 깨닫고 네 검도를 스스로 찾게 하기 위함이었다.]천녀의 말에 엽현이 잠시 침묵했다. 방금 그가 자신도 모르게 일검정생사를 펼칠 수 있었던 건 고된 수련으로 인한 결실이 아니었다. 찰나였지만, 동생 엽령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일검정생사를 이끌어냈던 것이었다.
천녀가 말한 바와 같이,일검정생사는 검기(劍技)가 아니라 일종의 검도이념(劍道 理念)이었다. 천녀가 말을 이었다.
[현재 너의 일검정생사는 상품(上品) 검기(劍技)라 할 수 있다. 방금 네가 펼친 검망은 수련을 통해 나온 게 아니라 네 검기 자체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기를 다스릴 수 있는 어기경에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너가 피해를 입었다. 너는 네 여동생을 황성에 데려간 즉시, 어떻게든 영검을 찾아 흡수하고 어기경에 도달해야 한다!]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검을 휘두르고 난 후, 온몸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군요! 그래도 방금 그 자의 두 팔을 잘라버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엽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금 그 자는 무려 능공경이었던 것이다!
[멍청이!]천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겉만 번지르르한 자이긴 했지만, 네게는 분명 벅찬 상대였다. 다만 그가 네게 일격을 먹인 후, 순간적으로 방심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만약 처음부터 네가 검수인 줄 알았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비를 했을 테고 너는 이와 같은 결과를 거둘 수 없었겠지!]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녀의 말대로 그자가 처음부터 검에 대해 방비를 했었다면 단 일 검에 두 팔을 자를 수 있었을까?
엽현 역시 그와 첫 번째로 수를 교환했을 때 자신이 열세임을 직감했다. 만약 숨겨진 금신의 경지를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진약의 첫 일장에 즉사했을지 모를 일이다. 천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너와 그자 사이의 경계에는 두 단계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그 정도의 격차를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네가 도칙(道則)을 다스려 계옥에 집어넣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천녀님, 지난번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 도칙이 무엇입니까?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 검도종사(劍道宗師)의 단계에 오르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그보다 지금은 네 동생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미 계옥 2층의 봉인이 헐거워질 조짐이 보인다. 만약 네가 빨리 실력을 쌓지 못하면 봉인이 풀어질 테고, 그땐 누구도 너를 구해줄 수 없다.]엽현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엽현 역시 잊고 있지 않았다.
계옥 첫 층에는 검주(劍主)가 갇혀 있었다. 다행히 이미 죽어서 엽현이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층에 있는 자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더 컸다.
봉인이 풀리면 그자가 자신을 죽여서 하늘에 제사라도 지낼지 모른다! 아직 시간은 있다!
엽현은 눈을 떴다. 몸에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처음보다는 나았다. 앞으로는 일검정생사를 사용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할 테다.
만약 일검정생사를 사용해서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엽현 자신이 죽게 될 테니.
“오빠, 괜찮아?”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다소 창백해진 엽령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조금 쉬면 나아질 거야.”
그 말에 엽령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오빠, 나는 진짜 쓸모가 없나 봐… 나…….”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병이 다 나으면 내가 무공을 알려줄게. 그 다음에 나를 지켜줘도 늦지 않아, 알겠지?”
엽령이 큰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정말 배울 수 있을까?”
“당연하지!”
엽령의 표정이 순간 결연해졌다.
“오빠, 두고 봐. 나 진짜 진짜 강해질 거야! 최강의 고수가 되어서 오빠를 꼭 지켜 줄 거야!”
엽현이 미소를 지으며 엽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그날을 기다릴게!”
이때, 엽현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아무렇게나 한 말이 엽령의 뇌리 속에 평생 동안 박혀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한 시진을 더 쉬고 나서 다시 길을 나섰다.
* * *
천산성(千山城)을 향해 엽현은 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왜냐하면 엽령이 낮에도 옷을 두텁게 입고 하루에 양신단 두 알을 먹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남은 양신단으로 2주일도 버티지 못한다. 혹여나 양신단을 복용해도 엽령의 한기를 제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황성에 도착해야 했다.
얼마 후, 두 팔을 잃은 진약이 진가 가주 진패와 함께 엽현 남매가 떠나고 없는 저택에 나타났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두 팔을 보자 진약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옆에 있던 진패 역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침묵하던 진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검수가 확실한가?”
진약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자가 어떻게 제 팔을 자를 수 있었겠습니까?”
진패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두워진 그의 표정에선 아무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진패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복수, 우리는 할 수가 없겠구나!”
진약이 말없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아주 이른 나이에 대 검수가 된 무인이었다. 진가로서는 그런 고수와 맞설 역량이 없었다. 이때, 진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결코 이렇게 넘어갈 수 없다. 가서 세상에 엽현이 상품 영석 십 수개를 지니고 있다고 소문을 퍼트려라. 그 소식을 들은 자들은 어떻게든 엽현을 잡으려 할 것이다!”
진약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자들의 손을 빌려서 복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진약이 진패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자의 이름이 엽현이었습니까?”
진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자는 엽가의 세자였다. 그러나 천선지인 엽랑이 나타난 이후로, 배척을 당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엽가에서 쫓겨나듯 떠났다고 한다.”
진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엽가의 고위층들은 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그 일로 주변 성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지. 엽현은 안란수 국사가 직접 비무를 신청할 정도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알고 보니 엽랑이 아니라 엽현이 천지이상을 일으켰다고 한다. 엽가는 엽랑이 천지이상의 주인공인 줄 알고 극진히 대접했는데 말이다. 엽가의 족장과 장로들은 돼지보다도 멍청한 작자들이 틀림없다!”
“정말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지금 엽가는 어떻습니까?”
“청성의 다른 세력들이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지. 옳거니! 엽현에게 복수하지 못하는 대신 이를 빌미로 엽가에게서 뭔가를 얻어내야 겠구나! 어서 가자! 무인들을 데리고 엽가에 쳐들어가서 손해를 만회해야겠다!”
진패가 몸을 돌려 장내를 빠져나갔다. 집 안에 홀로 남은 진약이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두 팔을 착잡하게 바라봤다. 그의 마음속엔 엽현을 향한 분노가 끓고있었지만,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진약이 저택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엽현을 상대로는 복수할 수 없다. 그러나 엽가라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