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05
1606화 보여 줄 게 있다
목소도는 매우 답답한 심정이었다.
엽현의 자질은 그녀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특히나, 성장하는 속도는 그 어느 무인과 비교해도 두려울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엽현의 뒤에는 세 개의 거대한 산이 존재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여전히 엽현에 대한 이해가 적었지만, 목소도는 아니었다.
엽현의 세 배후 중 둘의 실력을 직접 견식 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우주법칙이 두 사람을 견제하고 있긴 하지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때, 조용히 있던 언소소가 말했다.
“목 소저의 의견도 한 번 들어 보는 게 어떻겠소?”
순간, 무인들의 시선이 언소소에게로 쏠렸다.
언소소가 무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불사제족과의 전투에서 패한 쪽은 우리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되오.”
이에 불사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건 중요할 때 그의 부친이 나타났기 때문이었소.”
목소도가 웃으며 말했다.
“아, 청삼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군!”
“…….”
“엽현의 부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있나?”
목소도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사실 이들은 엽현의 배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청삼남과 접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불사노인이 모두를 대표해 물었다.
“그 검수가 그렇게나 강한 존재요?”
이에 대한 대답은 마의가 했다.
“본체도 아닌 분신이 검칠을 죽일 뻔했소. 이 정도면 충분히 입증된 게 아닌가?”
이 말을 듣자, 불사노인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무인들의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분신에 불과한 존재가 검칠을 죽일 뻔했다?
이는 분명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모두 엽현과 청삼남을 얕보아서는 안 될 것이오.”
이때, 문밖에서 음성이 울려 퍼지더니, 한 여인이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여인은 푸른색 치마 차림에 한 손에는 두루마리를 쥐고 있었다.
지청(知青)!
우주신정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여인으로, 우주신정의 눈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었다.
지청은 자신을 바라보는 무인들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목 소저의 말 중에서 틀린 부분이 있어 바로 잡겠소. 엽현의 부친은 그냥 강한 게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강하오. 알기 쉽게 말해, 이 대전 안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할 수 있소.”
지청은 신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관, 지난번 그대에게 상처를 입혔던 검기는 그 남자가 남겼던 것이었소. 그것도 수만 년 이전에!”
수만 년 이전에 남긴 검기!
신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검기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단 말인가!
“그렇게나 강하단 말이오?”
불사노인이 재차 확인하려 들자 지청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지금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불사노인이 주저하는 이때, 신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만약 그 검기가 정말로 그 남자의 것이라면,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
지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청삼남 외에도 소복을 입은 여인도 있다는 것이오. 정보를 종합 해 봤을 때, 이 둘의 실력은 그야말로 두려울 정도요. 다행인 점은 우주법칙이 이들을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이오.”
우주법칙!
순간, 무인들의 표정이 매우 무거워졌다.
우주법칙이 직접 견제를 해야 할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인가!
지청이 말을 이어갔다.
“유명전과 천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엽현은 액체요. 액체는 언제나 우주신정이 일 순위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소?”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하나 천부는 이미 모든 강자들을 본거지로 불러들이고서 우리에게 선전포고까지 한 상황이오. 우리가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소.”
천부!
신관의 말에 지청의 표정 역시 진중해졌다.
“확실히, 천부 또한 얕볼 수 없는 상대이긴 하오. 정보에 의하면 대마왕은 이미 육대마주(六大魔主)와 십이마장(十二魔将)까지 죄다 불러들였다고 하오. 대마왕의 의도는 뻔하오. 우주법칙이 부재한 틈을 이용해 우리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오. 게다가 유명전 또한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틈이 생기면 곧바로 파고들려 할 것이오.”
신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는 잘 알겠소. 하나, 신경을 쓰려고 해도 천부와 유명전과의 대결 때문에 전력을 다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오. 그러니 우리 중 일부가 엽현을 맡는 게 좋을 것 같소. 누구 자원할 사람 없소?”
바로 이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대전 안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를 본 순간, 대전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신주!
갑자기 나타난 신주는 본체가 아닌 분신의 형태였다.
신주가 손바닥을 펼치자, 영패 하나가 허공에 떠서 날아갔다.
이 영패는 무명의 살수 소녀의 앞에서 멈췄다.
소녀는 고개를 들고서 영패를 잠시 응시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손을 뻗어 천천히 주먹을 쥐자, 영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뒤이어 소녀가 지청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지청이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소녀를 향해 날려 보냈다.
“엽현에 대한 모든 자료가 들어 있소.”
소녀는 두루마리를 붙들고는 펼쳐 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한편, 떠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무가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대전 안의 무인 중 누가 마역으로 간다 해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 소녀는 달랐다.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역시 저 소녀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신주 또한 저 전무후무한 살수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어야만 했다.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간단히 말해, 그녀가 마음먹고 암살을 시도한다면 마가는 살아남을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정정당당한 대결이라면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저 소녀가 암습에 능한 살수라는 데 있었다.
엽현은 과연 저 소녀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가의 눈에서 우려의 기색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이때, 신주가 말했다.
“엽현 문제는 그녀에게 맡기고, 우리는 천부와 유명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 봅시다.”
한편, 목소도는 소녀가 대전을 떠나자 곧바로 밖으로 따라 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대전 밖에 나왔을 땐, 이미 소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도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설마하니, 신주가 저 소녀를 움직이게 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알다시피, 우주법칙들 조차도 그녀를 다루는 데 애를 먹지 않던가!
이때, 마의가 목소도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와서 걱정되는 건가?”
“할 말 있으면 바로 해. 그렇게 음흉하게 쳐다보지 말고.”
“실은 녀석이 죽길 바라는 게 아니지?”
마의의 물음에 목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마의가 목소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소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생각… 위험하단 거 알고 있지?”
목소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전에도 했던 이야기인데… 액체라고 해서 모두 죽어야 하는 걸까?”
“그건…….”
“그 아이는 그저 살고 싶은 것뿐이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라도 삶을 이어 갈 자격은 있는 거잖아?”
마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법칙의 수호자다. 개인의 사정이 아닌 법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게 옳다.”
“만약에, 만약에 우주법칙이 틀린 거라면?”
이 말을 들은 순간, 마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목소도를 돌아보았다.
“너…….”
“하하, 너무 긴장하지마. 그냥 한번 해 본 말이니까.”
목소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네 말이 맞아. 우주수호자의 입장에서는 녀석을 죽이는 게 정의겠지. 하지만 개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녀석이 잘못한 건 없어. 우주법칙이 벌해야 할 건 규칙을 어긴 그 신비인이지 엽현이 아니야. 게다가 의심스러운 부분도 한둘이 아냐. 예를 들어 엽현 몸 안에 있는 그 자는 무슨 이유로 역천을 해야만 했는지, 우주법칙은 엽현에게 강력한 배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는지 등등…….”
순간, 목소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가장 의혹이 가는 점은 역시 그 신비인의 신분이야. 너도 알고 있지? 우주신정 전체에서 우주법칙을 제외하고 그자의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 심지어 지청까지도!”
“소도, 진정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네 신분을 망각하지는 마.”
“후후, 지금 내가 죽을까 봐 걱정해 주는 거야? 그런 거야?”
마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신정에서 그나마 친구라 한다면 너뿐인데,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원치 않아.”
“하하,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소액과는 달라. 멍청하게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마의는 말없이 목소도를 바라보았다.
이에 목소도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물었다.
“혹시 내가 그 파렴치한 놈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마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모습에 목소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농담! 시간 있으면 연애 소설도 좀 읽고 해. 너는 다 좋은데 감성이 좀 메마른 것 같단 말이지. 하하하!”
“…….”
목소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도, 엉뚱한 짓 할 생각은 하지 마.”
목소도가 머리 위로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아, 걱정을 하지 말라니까! 내가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마역에 가거나 그럴 것 같아?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걱정할 거 없어. 나는 목소도니까! 하하하…….”
마의는 휘적휘적 떠나가는 목소도를 바라보며 근심에 휩싸였다.
그녀가 아는 목소도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가도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불처럼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목소도가 혹시라도 엽현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닌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목소도는 엽현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려 할 테니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겠어. 이대로는 소도가 위험해. 엽현 그놈…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여야겠어.”
* * *
한편, 대전을 빠져나온 언소소는 곧장 자신의 거처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다름 아닌 목소도였다.
목소도가 명랑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언사님아, 혹시 아주 멀리까지 전음을 날릴 수 있는 부적 같은 게 있을까?”
언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소.”
“아 그래? 그럼 두 장 정도만 줄 수 있어?”
언소소는 곧바로 투명한 부적 두 장을 꺼내 목소도에게 건넸다.
“음?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건가?”
“어차피 엽현을 위해 쓸 것 아니었소?”
말을 마친 언소소는 두꺼운 책을 품 안에 안고서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목소도가 멍하니 있는 이때, 언소소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타고난 체질로 선악을 가리는 건 나 역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건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란 걸 기억 해 두시오. 그럼 이만.”
이 말을 끝으로 언소소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목소도가 전음부 한 장을 찢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비열한 검수 놈아… 지금 당장 네 큰형이나 아버지를 불러. 안 그러면 넌 죽는다.”
목소도가 말을 마치자, 전음부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마역.
이 시각, 엽현은 여전히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상태였다.
“자, 멈추지 말고 덤비거라!”
지면을 기다시피 몸을 일으켜 세운 엽현은 처량한 눈으로 청삼남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좀 쉬었다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 말에 청삼남이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러자꾸나! 가자! 그러지 않아도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었다.”
엽현 곁으로 이동한 청삼남은 엽현의 옆구리를 잡고서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