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15
1616화 무적이라 고독하구나
잠시 후,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에서 한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여인에게로 쏠렸다.
두꺼운 전갑을 착용한 여인은 한 손에는 거대한 도를 쥐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것이다.
누구지?
이때, 어느새 엽현 곁으로 다가온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혼자서 온 것이냐?”
엽현은 여인을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여인이 갑자기 크게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과연, 우리 양씨 집안의 사내답게 겁이 없구나! 마음에 들었다!”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양씨? 양족(楊族)의 사람입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팔뚝을 따라 정순한 혈맥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풍마혈맥(瘋魔之力)!
순간, 엽현은 당황하고 말았다. 풍마혈맥이라니!
그렇다면 이 여인은 자신과 같은 핏줄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여인의 풍마혈맥은 그의 것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구석이 있었다.
엽현은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음… 엄밀히 따지자면 너의 조상뻘이라 할 수 있지.”
조상!?
“…….”
여인은 불신 가득한 엽현의 표정을 보더니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못 믿는 게냐?”
엽현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음, 그러니까… 절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도의 날 부분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두들기던 여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말만 잘한다면 그래 줄 수도 있지.”
순간, 엽현이 재빨리 고개를 숙여 여인을 향해 정수리를 드러냈다.
“조상님을 뵙습니다!”
“…….”
엽현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여인은 다소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과연 정 소저가 말한 대로 자기 부친에 비해 훨씬 말이 통하는 아이였다.
모름지기 집안 어른을 봤으면 그 남자처럼 고개를 뻣뻣이 할 게 아니라, 먼저 예를 갖춰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던가!
“후후, 기특한 녀석….”
엽현의 태도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여인은 그 표정 그대로 신관 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은 내가 맡아 주마.”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여인이 정면으로 크게 도약하면서 신관을 향해 도를 내리쳤다.
그녀가 출수한 이때, 주변의 성광이 일순 빛을 잃었다.
위험을 감지한 신관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황급히 수백 장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때, 여인의 도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공간을 가르고서 신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피하는 것은 이미 늦은 상황!
신관은 어쩔 수 없이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해 번쩍 들었다.
“천지우(天地佑)!”
순간, 반쯤 투명한 방패가 신관의 머리 위를 덮었다.
쾅-!
순간, 방패가 그대로 찢어지고, 신관 또한 수백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이때, 여인이 서 있는 공간 바로 앞쪽은 완전한 허무(虛無)로 변해 있었다.
단, 일도에 만물의 존재를 부정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을 보자, 나머지 무인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주신정의 이인자인 신관을 이렇게 밀어붙이다니.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엽현 역시 생각보다 강한 여인의 실력이 놀란 상태였다.
짐작하기에 여인의 경지는 최소 파범경 절정에 달하는 듯했다.
이때, 여인을 차갑게 노려보던 신관이 갑자기 손바닥을 내밀더니 곧바로 움켜쥐었다. 순간, 무형의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때, 여인이 갑자기 도를 앞세우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던 신비한 기운이 차례로 터져 나갔다.
어느새 신관 바로 앞까지 도착한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도를 힘껏 내리쳤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도를 본 순간, 신관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이때, 신관의 주먹이 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도광이 터지면서 동시에 주변 공간이 크게 휘청거렸다. 이번에도 신관은 속절없이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이 순간, 숨 돌릴 틈도 없이 여인의 도가 날아들었다.
거대한 도에서 흘러나온 강력한 기세가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자, 뒤이어 날아든 도가 이 공간 전체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하지만 신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여인의 도가 당도한 이때, 신관의 몸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여인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잔상이 나타났다.
콰콰쾅…….
여인은 폭음과 함께, 여인의 도가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반면, 신관의 잔상 또한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쾅-!
또 한 번의 폭발이 발생하면서 이번에는 여인이 백여 장 뒤로 밀려났다.
이와 함께 신관이 다시 무인들의 시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신관을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지금까진 몸풀기였다!”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혈맥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눈빛이 점점 선홍빛을 띠기 시작했다.
혈맥지력!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긴 것이다!
혈맥지력이 활성화된 순간, 그녀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를 보자, 신관의 눈빛이 마침내 진중해졌다.
혈맥지력이 완전히 활성화되면 매우 위험할 거란 걸 직감했던 것이다.
이때, 여인이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핏빛 도광이 공간을 가르며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엽현을 죽여라!”
말을 마친 순간, 신관이 또한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두 절정 고수들의 대결은 우주 전체의 공간을 헤집어 놓을 정도였다.
엽현을 죽여라!
무인들의 시선은 바로 엽현에게 모였다.
이때, 불사노인이 나섰다.
“꼬마, 넌 내가 상대해주마!”
불사노인이 막 출수하려는 순간, 신관의 음성이 재차 울려 퍼졌다.
“놈이 혼자서 신정에 온 데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사정 봐 주지 말고 처음부터 함께 몰아붙이시오!”
함께 덤벼라!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때, 불사노인이 자리에서 사라졌고, 이에 엽현이 정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굉음과 동시에 누군가가 뒤로 튕겨 나갔다.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이 한 번의 격돌로 엽현은 이미 천 장 가까이 밀려난 상태였다.
“흥! 아무리 파범경이라 해도 여전히 개미 새끼에 불과하다!”
불사노인이 재차 출수하려는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다.
“정말이야?”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엽현이 안색이 밝아져 고개를 돌렸다.
과연 그의 뒤편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도!
도는 불사노인을 향해 강하게 살기를 내뿜고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그녀의 얼음장 같던 눈빛이 사르르 녹았다.
“파범경이 된 거야?”
엽현이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대답을 들은 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얘기해.”
말을 마친 도는 불사노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녀의 눈빛은 다시금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우리 오빠가 벌레 새끼라고? 그럼 넌 뭘까?”
순간, 도의 신형이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사라졌다.
이를 보자 불사노인이 서둘러 일권을 내질렀다.
쾅-!
검광이 사방으로 튀면서 불사노인이 천 장 뒤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자 우주신정 측 무인들의 표정이 어지럽게 변했다.
이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음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반보멸범(半步滅凡)!”
파범 이후의 경지는 다름 아닌 멸범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여인은 멸범에 근접한 반보멸범이었던 것이다!
엽현 역시 속으로 놀람을 금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범인줄로만 알았던 도의 경지가 어느새 이렇게나 높아졌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도 역시 그동안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엽현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멀리, 불사노인은 가만히 서서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그의 주먹 위에는 날카로운 검상이 생겨난 상태였다.
이윽고 고개를 든 노인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도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하필 이럴 때 반보멸범의 검수라니…….
바로 이 순간, 도가 불사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참(斬)!”
음성과 동시에 불사노인 근처에서 무수히 많은 검기가 튀어나오더니, 일제히 불사노인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순간, 불사노인이 흉흉한 눈빛을 밝히며 일보 전진과 동시에 일권을 내질렀다.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의 주먹으로 보였지만, 사실 이미 수십 차례의 주먹질이 행해진 상태였다.
이 순간, 불사노인의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권인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권인들은 검기를 막지 못하고 차례로 파괴되어갔다.
불사노인 또한 검기가 날아올 때마다 정신없이 뒤로 밀려나기 바빴다.
절망적인 것은 검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사노인이 열세에 처한 것을 보자 우주신정 강자들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상대는 강해도 보통 강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때, 도가 검광을 흩뿌리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를 눈치챈 불사노인이 눈을 부릅뜬 채로 황급히 양팔을 교차해 앞을 막았다.
쾅-!
눈앞에서 검광이 폭발하면서 불사노인이 재차 자리에서 튕겨 나갔다.
무려 만 장 가까이 떨어진 곳에 멈춰선 불사노인은 온몸이 그야말로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몸 전체를 통틀어 검이 지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수많은 검기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도의 반대편.
불사노인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으로부터 검은 기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사노인의 몸을 에워싼 검은 기체는 종국에 가서는 그의 모습을 완전히 가렸다.
이 검은 기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였다.
바로 이때, 불사노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엄청난 양의 검은 기체가 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도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쉭-!
검광이 검은 기체를 가르고 지나갔지만, 기체는 흩어지지 않고 순식간에 다시 모여들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도의 모습이 기체에 가려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보자, 깜짝 놀란 엽현이 검을 들고서 구원에 나서려 했다.
하지만 이때, 한 줄기 신식이 날아와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에 겨루었던 음사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다급함을 느낀 엽현이 지령족의 신물인 시공사화를 사용했던 것이다.
엽현이 사라진 이때, 음사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그녀가 반격을 마음먹은 순간, 엽현의 검은 이미 그녀의 미간을 파고든 상태였다.
푸확-!
검이 머리 반대쪽을 뚫고 나오면서 선혈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순간, 우주신정 무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일검초살(一劍秒殺)!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우주신정 내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음사였다.
파범경의 강자가 단 일검이 살해당해버린 것이다!
이때, 언소소의 시선이 엽현이 신고 있는 시공사화로 향했다.
“완전한 전설 급의 신물!?”
전설 급 신물!
언소소의 말에 무인들이 시선이 일제히 엽현의 신발을 향했다.
잠시 후, 무인들의 표정이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파범경이라면 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강자가 전설 급 신물을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게다가 흠이 없는 전설 급 신물이라면 시전자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파범경인 엽현이 시공사화를 신었을 때의 경지는 최소 파범 절정이나 그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말은 즉, 일반 파범경은 결코 엽현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칼에 음사를 해치운 엽현은 곧장 양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양사는 죽일 듯 엽현을 노려보긴 했지만, 표정에서는 두려움의 기색이 드러났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절대 엽현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특히나 검수인 그는 시공사화가 없었을 때에도 엽현의 상대가 되지 않았던 터!
양사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양사가 눈을 피하자 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우주신정에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이냐!”
“…….”
이래도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엽현은 검을 바닥에 늘어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으로 괴롭구나! 무적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독할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