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39
1640화 일개의 검이라고?
엽현은 이미 생과 사를 잊은 지 오래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불사제족이 단체로 자폭하는 모습을 본 순간,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불사제족이 멸망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인과!
자신의 인과가 죄 없는 불사제족을 망쳐버린 것이다!
엽현의 머리는 절반이 새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이때, 그에게 남은 수명은 채 백 년이 되지 않았다.
한편, 엽현이 달려드는 모습을 본 궁기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멍청이! 정말로 죽을 셈이냐!”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 그는 엽현이 허무족 강자 몇을 제거한 뒤 도망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엽현은 이곳에서 뼈를 묻을 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만약 엽현이 여기서 죽으면 이 우주는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의 부친은 둘째 치고, 만약 천명이 엽현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뒷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궁기가 아는 그 여인이라면 이 우주 전체를 엽현의 무덤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게다가 그가 알기로 화가 난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때, 궁기의 머릿속에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
“검령! 그를 데리고 탈출해!”
검령!
엽현이 쥐고 있던 검이 궁기에게 응답하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엽현을 데려가기는커녕, 오히려 엽현과의 융합을 강화했다.
이를 보자, 궁기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대체 뭐 하는 짓…….”
이때, 엽현이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쉭-!
엽현을 상대하던 허무심이 재차 수천 장 뒤로 날아갔다.
허무심을 튕겨낸 엽현은 주변에 있던 허무족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푸확-!
섬광이 번뜩이고 또 한 명의 멸범경 강자가 목이 잘린 채 쓰러졌다.
엽현의 검은 그야말로 벼락과 같이 떨어졌다.
검날이 번뜩일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때의 엽현은 멸범경 강자 정도로는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십여 명의 허무족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대부분은 멸범경 강자였다.
하지만, 엽현의 몸에도 상처가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에 허무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버텨라! 조금만 버티면 끝난다!”
그녀는 엽현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끈다면 엽현은 자멸할 게 분명했다.
허무심의 명령에 허무족 강자들은 한발 물러나 엽현을 포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때, 엽현이 제자리에서 높이 솟구치면서 허무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를 본 허무심이 오른손을 꽉 쥐었다.
“어수(禦守)!”
쾅-!
허무심의 머리 위로 무형의 보호막이 생성됐다.
하지만, 이 보호막은 엽현의 일검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다.
콰쾅-!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는 허무심.
이때, 엽현이 날아오르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쉭-!
붉은 검광이 전갈의 꼬리처럼 휘어져 날아들었다.
허무심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검은 방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순간, 검광이 방패 위를 폭격했다.
쾅-!
이 순간, 검은 방패에서 기이한 힘이 흘러나와 검을 에워쌌다.
뒤이어, 반경 십여만 장 이내의 공간에 거대한 균열이 형성됐다.
방패에서 나온 기이한 힘이 검에 실린 힘을 사방으로 분산시켰던 것이다.
엽현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쾅-!
그의 검이 방패 위를 때리고, 균열이 일었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허무심은 방패를 들고 있는 상태로 만 장 가까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자리에 멈춰선 허무심은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방패를 쥐고 있던 오른팔은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동시에 오장육부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엽현의 실력은 조금 전과 비교해도 사뭇 다른 차원에 있었다.
가장 처음 초식을 교환할 때만 해도 허무심이 엽현을 압도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이때, 허무족 강자들이 동시에 달려들고자 했다.
이를 본 허무심이 돌연 손을 번쩍 들었다.
“물러나라!”
순간, 허무족 강자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허무심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싸우는 것은 허무족 강자들의 희생만 야기할 뿐이라는 것을.
주변을 물린 허무심은 천천히 엽현을 향해 다가섰다.
그녀가 손을 뻗자, 조금 전의 검은 방패가 다시 나타났다.
이때, 엽현이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쉭-!
검광은 순식간에 만 장 거리를 가로질러 파도처럼 허무심을 덮쳤다.
허무심은 두 다리를 땅에 박고서 자세를 낮춘 상태로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쾅-!
검은 방패는 이번에는 검광을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이 순간, 웅크리고 있던 허무심이 쏜살같이 달려나가며 발로 엽현의 얼굴 부분을 가격했다.
엽현은 방어를 포기한 채,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푹-!
퍽-!
엽현의 신형이 수천 장 뒤로 날아가고, 허무심 역시 입으로 피를 토하며 천 장 가까이 밀려났다.
그녀의 가슴 부분에는 검에 찔린 상처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한편, 비틀거리며 일어선 엽현은 왼팔을 못 쓰게 된 상태였다.
허무심의 발차기를 피하지 않은 탓에 왼팔 뼈가 으스러져 버린 것이었다.
허무심은 심각한 표정으로 가슴 부위를 바라보았다.
검에 찔린 부위를 통해 진입한 검기가 그녀의 내부를 헤집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검기는 오래 가지 않아 그녀에 의해 진압되었다.
허무심은 다시 고개를 들어 엽현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시공사화!
순간, 허무심의 시야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붉은 검광이 포착됐다.
허무심은 눈을 부릅뜨며 들고 있던 방패를 단단히 쥐고서 앞을 막았다.
쾅-!
강렬한 폭발과 함께, 방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이와 동시에 허무심 역시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아무리 허무심이라도 지금 상태의 엽현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엽현이 또다시 허무심을 향해 달려들었다.
먼저 허무심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순간, 허무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네가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겠다!”
순간, 그녀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쉭-!
그녀가 서 있던 자리 정면의 공간이 길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허무심은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방어만 하다가 위험한 상황을 맞느니, 차라리 맞불을 놓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때, 허무심이 통렬한 일권을 내질렀다.
주먹에서 흘러나온 강대한 기운에 정면의 공간이 움푹 패여 들어갔다.
이때, 왜곡된 공간을 뚫고 한 줄기 검광이 튀어 나왔다.
콰쾅-!
폭음과 함께, 두 사람 주변의 공간이 그대로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이 순간, 불사계 전체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불사제족의 단체 자폭으로 약해져 있던 공간이 엽현과 허무심의 격돌로 인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내 불사계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이때, 엽현이 움직였다.
이를 본 허무심이 눈살을 찌푸리며 정면으로 일권을 내질렀다.
콰쾅-!
그녀의 주먹에서 거대한 기운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강렬한 힘은 뒤이어 날아온 검광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와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검 끝이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허무심은 양손을 모아 검 끝을 붙잡고자 시도했다.
콰쾅-!
검은 그녀의 손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허무심의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잠시 몸을 부르르 떨며 버티던 허무심이 검을 비켜냄과 동시에 엽현의 복부를 겨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이에 엽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내리쳤다.
퍽-!
쉭-!
충돌의 결과, 엽현은 몸이 크게 꺾여 뒤로 날아갔고, 허무심은 한쪽 팔을 잃었다.
멀리, 천장 밖으로 날아간 엽현의 입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자기와 불사혈맥의 치유 능력이 없었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충격이었다.
다만, 아무리 불사혈맥의 보호를 받는다 하더라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육신은 더 이상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편, 허무심도 매우 지친 상태였다. 계속된 전투로 기력의 소모가 컸을 뿐 아니라, 검에 의한 상처도 점점 늘어만 갔다.
가장 그녀를 괴롭힌 것은 엽현의 회복 능력이었다.
허무심은 남은 팔로 입가의 피를 슥 닦으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허무족 강자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본 그녀는 순식간에 그의 앞을 막아섰다.
한편, 엽현은 겉보기에는 많이 쇠약해진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멀쩡한 상태였다.
완전한 풍마상태에 접어든 것도 모자라 생명을 태우며 힘을 얻는 엽현의 기운은 이미 입신경을 넘어선 것이었다.
허무심은 엽현을 경계하며 천천히 그를 향해 접근했다.
검을 늘어뜨린 채 서 있는 엽현의 기운은 여전히 비정상이라 할 만큼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때, 허무심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쾅-!
거대한 권인이 어둠을 가르며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엽현 역시 검을 치켜들었다.
쾅-!
권인이 폭발한 순간, 엽현 앞에 나타난 허무심이 엽현의 얼굴을 향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엽현은 방어는 포기한 채, 허무심의 가슴을 향해 검 끝을 들이밀었다.
순간, 허무심의 눈가에 독기가 서렸다.
그녀 역시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푹-!
퍽-!
엽현의 신형이 재차 멀리 날아갔다.
이때, 엽현의 육신에 균열이 일더니, 자리에 멈춰 섰을 땐 육신은 완전히 파괴되고 영혼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심지어 이 영혼마저 곧 소멸할 듯 매우 연약한 모습이었다.
한편, 천장 뒤로 밀려난 허무심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서 피를 토해냈다.
그녀의 부상 정도 역시 엽현에 비해 결코 덜하진 않았다.
만약, 체내의 혈맥지력이 엽현의 검기를 밀어내지 못했더라면, 검에 복부를 찔렸을 때 즉사했을 게 분명했다.
정상급 혈맥을 지닌 두 사람의 대결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이때, 허무심의 시선 속에 영혼체로 변한 엽현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보자, 허무심이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아직도 검을 들 힘이 남아 있단 말인가!
이때, 허무심이 손을 번쩍 들었다.
“출수!”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엽현의 검에 정통으로 세 번이나 찔린 탓에 더 이상 몸을 가누기 어려웠던 것이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한 번만 더 검상을 입으면 그야말로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게 자명했다.
허무심의 명령이 떨어지자,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허무족 강자들이 일제히 엽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엽현은 한 손에 검을 쥔 채로 허무족 강자를 향해 전진했다.
육신이 파괴될 만큼 큰 타격을 입은 그는 풍마혈맥의 힘조차 서서히 잃고 있었다.
풍마상태가 풀리면서 엽현도 조금씩 이성을 되찾아갔다.
엽현은 달려드는 허무족 무리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끝이다.”
순간, 엽현의 영혼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이때, 그가 쥐고 있던 검령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엽현 앞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엽현을 응시하며 말을 건넸다.
“주인은 항상 너를 신경 쓰고 있었다. 너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천명에 비해서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어 서투른 것일 뿐, 그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말을 마친 여인은 몸을 돌려 허무족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때, 허무심이 여인을 향해 소리쳤다.
“고작, 일개 검 주제에!”
이에, 여인이 허무심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게 양엽의 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때, 여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어디선가 한 자루 검이 나타났다.
서걱-!
찰나의 순간, 수백 개의 머리가 차례대로 허공에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