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설마…….
이목림은 광포한 웃음소리와 함께 장내를 떠나갔다.
‘이목림! 대단한 무인이군!’
엽현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가 보기에 세상엔 정말 대단한 무인들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이목림처럼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물러날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자는 드물었다.
그런 심성도 무인의 성장을 위해선 중요한 덕목이었다. 물론 엽현이 이런 덕목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음에 이목림과 마주치게 되면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바로 이때, 지면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동에 장내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후, 한 무리의 기병들이 개양성을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탄 말이 지면을 스치듯 지나칠 때마다 검은 화음이 일었다.
흑염군이었다.
흑염군의 등장으로 인해 강국 병사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흑염군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말로만 듣던 흑염군이 바로 눈앞에 왔으니 병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청주 지역에서 무수한 전설을 써 내려온 신비의 부대가 바로 흑염군이었다.
그 흑염군이 오늘 현실이 된 것이다.
장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흑염군에게로 쏠렸다.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흑염군을 바라보았다. 과연 듣던 대로 강해 보였다. 심지어 창목학원의 도병들보다 더욱더 강해 보였다.
흑염군이 다가올수록 살육의 기운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강국의 모든 병사들의 표정은 이미 하얗게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그중 대다수의 눈 속에 공포심이 드러났다.
병사들의 사기가 꺾인 것을 보다 강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군대를 지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병사들의 사기였다.
이처럼 싸우기도 전에 풀이 꺾여 버린다면 전투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바로 이때, 성 밖에 있던 엽현이 돌연 흑염군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엽현의 이 행위는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아무리 엽현이지만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저 기세등등한 흑염군을 상대로 혼자서 뭘 하려는 거지?’
그를 향한 병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강구는 두 주먹을 쥔 채로 엽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는 지금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때, 엽현이 속도를 더욱 끌어 올리는 동시에 오른손에 영수검을 들었다.
전의(戰意)!
엽현의 몸에서 한 줄기 전의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전(戰)!
이 한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전부였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엽현은 지금 상황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뚫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덤비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엽현다운 단순함이었다.
엽현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고, 전의 또한 점점 더 짙어져 갔다. 하지만 흑염군 역시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오히려 고삐를 조여 속도를 올렸다.
일대 백의 싸움이다. 그것도 흑염군 백기를 상대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이의 눈이 검은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소년에게 쏠렸다.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다.
십장, 오장…. 그리고!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검명 소리가 천지를 울리는 동시에 그의 검이 한 명의 흑염기병에게로 날아갔다.
상대 역시 자신의 창을 들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엽현을 찔렀다.
창과 검이 충돌했다.
쾅-!
지축이 뒤흔들리는 충돌과 함께 흑염병사의 창이 산산이 조각났다. 이때 엽현의 검이 그대로 상대의 면구를 강타했다.
퍽!
병사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수십 장 밖의 지면에 충돌했다.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킨 순간 그대로 바닥에 다시 고꾸라졌다.
잠시 후, 그의 면구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갑옷 아래의 육신이 이미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이때 병사의 투구는 파괴되진 않았지만 깊은 검흔(劍痕)이 새겨져 있었다.
엽현은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고 순식간에 다시 성벽으로 돌아왔다.
순간, 고요해진 장내에 폭발적인 함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엽 국사!”
“엽 국사!”
“엽 국사!”
모든 강국의 병사들이 각자 자신의 병기를 치켜들며 엽현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강국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다시 충만해졌다.
강구 역시 반짝이는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강국군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듯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엽현이 나서 준 것이었다.
엽현은 강국군이 모두 보는 앞에서 몸소 흑염군도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에 성벽 위의 강국 병사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때 엽현의 안색은 오히려 어두워졌다. 방금 전의 교전으로 상대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방금 전, 일검정생사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결코 상대를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흑염군이 갖추고 있는 장비들이었다. 분명 상대의 투구에 자신의 검이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투구엔 약간의 손상만 있었을 뿐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진검(眞劍) 급 무기인 영수검으로도 상대의 투구를 벨 수 없다니!
하물며 일반 병사들이 저들과 맞붙는다면 과연 그들의 몸에 생채기라도 낼 수 있을까?
‘결코 상대가 안 된다.’
영수검을 쥔 엽현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반 병사들이 흑염군과 마주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엽현은 생각했다.
이때 성 아래에 다가온 이목이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엽현,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될 것이다!”
이목이 이번엔 그의 뒤편에 있는 초국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성이 함락되면 성 안의 여자들은 마음대로 해도 좋다!”
“우와와와~!!”
그 말을 들은 초국 병사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들끓었다.
“진격!”
이목의 명령과 함께 무수히 많은 초국 공성 병사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는 서른 명의 귀면 흑의인들이 섞여 있었다.
암계 도병들이었다.
성 위에서는 강구가 칼을 빼 들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사전(死戰)!”
“사전(死戰)!”
병사들의 함성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빗발치는 가운데 성벽을 기어오르던 초국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그러나 그들 중 몇몇 능공경 병사들과 암계의 도병들은 쉽사리 성벽 위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암계의 도병들은 강국의 일반 병사들은커녕 강국 최고의 정예들인 사시(死侍)들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운 존재들이었다.
이때 백택과 기안지가 몸을 날렸다.
엽현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 대기 중인 흑염기병들을 지켜보았다.
한편 아래쪽에서는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성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그러나 이때 날카로운 검광이 날아들어 그들의 신형을 뒤로 물리게 했다.
성문 앞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엽현이 세 명의 흑포인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삼인은 엽현과 싸움을 피해 신속히 물러났다.
자신들이 결코 엽현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엽현의 정면에 있던 이목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네가 나설 차례다!”
그 말과 함께 병사들 사이에서 웬 여인 하나가 보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땅에 끌리는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 위에는 세 송이의 붉은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그녀는 품 안에 비취색 비파를 안고 있었다.
상대의 용모는 경국지색이라 칭할 것까진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천천히 엽현을 향해 걸어 나온 여인이 엽현을 훑어보고는 기이한 기색을 드러냈다.
“안란수 말고도 청주에 그대와 같은 천재가 있었다니, 놀랍군.”
엽현이 여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간다면 내 훗날 그대에게 인정을 베풀어 주리다. 어떻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단지 그대를 붙들고만 있는 조건으로 최상품 영석 천만 개, 당신을 죽인다면 오천만 개를 받기로 했소. 그대의 인정이란 것이 영석 오천만 개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오?”
엽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군!”
말과 동시에 엽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여인은 비파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띠리링-!
비파소리가 마치 천둥과 같이 울리자 그녀의 근처에 있던 백여 명의 병사가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엽현 또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때 그의 입가에선 선혈이 흐르고 있었고, 영수검 또한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엽현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이 마치 춘풍 같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 소개를 좀 하자면, 천음문(天音門)의 강지과(姜止戈)라고 하오. 천군만마라 할지라도 내 비파소리를 들으면 병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소. 지금은 요얼방 11위지만, 조만간 10위 안에 들어갈 것이오.”
강지과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이 다시 한번 비파에 손가락을 두고 가볍게 퉁겼다.
그러자 여인 바로 앞으로부터 지면이 엽현을 향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엽현이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더니 그대로 정면으로 일 검을 찔러 넣었다.
쾅-!
이때 엽현이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의 땅이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지과는 우아하게 한 걸음 엽현 쪽으로 다가가며 다시 한번 음을 타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맑고 감미로운 비파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엽현에게 있어 그 소리는 마치 장송곡과 같았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임자 만났군!’
엽현은 눈앞의 여인을 상대로 더 이상 자신의 실력을 숨길 수 없다고 느꼈다. 그가 맹렬히 한 발을 내디디며 일 검을 내질렀다.
쾅-!
폭음과 함께 장내에 울리던 비파 소리가 사라졌다.
엽현이 다시 한번 걸음을 옮기며 검을 찔렀다. 검이 깃든 기운이 마치 강력한 해일처럼 쏟아져 나갔다.
쾅-!
다시 한번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여인의 탄음(弦音)이 사라졌다. 그 충격에 엽현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강지과와 이목은 놀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설마…… 검주(劍主)?’
이목은 그 일격에 당황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자신의 눈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방금 전의 일 검의 위력은 분명히 검주에 가까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검의 역시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설마!? …정말 검주?’
이목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불신이 가득 찬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설마 정말로 검주가 된 것인가…….”
엽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를 깜짝 놀래켜 주려고 숨기고 있었지. 어때, 놀랬지? 놀랬지? 하하하하!”
“쿨럭!”
이목이 입으로 한 움큼의 선혈을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