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56
1657화 이게 어려워?
이유인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남자의 검에 공간과 함께 시차원까지 제거된 탓이었다.
한편, 이유인을 가볍게 살해한 남자는 어떤지 흥이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껏 기대하고 왔건만 생각보다 너무 약했던 것이다.
잠시 먼 곳을 응시한 남자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호적수를 만나 가슴이 두근거려 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당시 천명을 만났을 때 그는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십만 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적수가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두 사람은 오직 엽현에게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세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싸워야 할 운명이기에.
다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무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럽단 말이지….”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말한 사람은 물론 엽현이었다.
패배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는 남자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었다.
물론, 이 말을 엽현이 들었더라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겠지만.
이윽고 잡념을 떨쳐버린 남자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바라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검을 한두 번 정도 받아 낼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다.
더도 말고 단 두 번만!
“이게 그렇게 어렵나?”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사라졌다.
* * *
호숫가, 도일의 대나무집.
방 안에는 엽현과 도일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외에도 방 안에는 안란수 등도 자리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모두 도일이 하는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
도일이 엽현 외에 그의 친구들에게도 강의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의 재능이라면 앞으로 엽현을 도와 싸우기에 충분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엽현과 함께 자리한 인물들은 도일의 강의를 듣고 온몸에 전율이 인 상태였다.
시간!
이 개념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불어,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위력적인가 하는 것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엽현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도일은 어떻게 시간에 대해 이리도 잘 아는 것일까?
시간법칙도 아니면서.
하지만 엽현은 끝내 이 질문을 하진 않았다.
한 달 후.
도일은 엽현 일행을 데리고 시차원으로 진입했다.
엽현 일행은 마치 자신이 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시차원에 있으면서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외부인에게 엽현 일행은 투명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곧 실전에 돌입했다.
먼저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 그다음으로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삭제하는 것은 그들의 실력으로는 아직 요원한 것이었기에 아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엽현은 매우 들뜬 상태였다.
지금까지 그는 장님이 길을 더듬듯 스스로의 길을 모색해 왔었다. 이는 분명 장점도 있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일이 곁에서 모든 걸 지도해 주는 지금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겪었을 시행착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도일을 통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그는 왜 자신이 우주법칙의 상대가 될 수 없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우주법칙에 비하면 그의 무도는 어린애 걸음마 수준이었던 것이다.
호숫가.
도일과 액난법칙이 마주 보고 바둑을 두고 있다.
집 밖에서는 언제부턴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는 지역이었으니까.
액난의 흑돌이 백 진영을 완성하는 중요한 길목을 차단했다.
“배우는 게 아주 빠른 거 같군.”
액난의 말에 도일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범상치는 않지.”
“우리가 주인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도 저들처럼 잘 지내지 않았을까?”
이 말에 도일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갑자기 감상적이 됐지?”
액난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냥, 그 시절이 조금 그리울 뿐이야.”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도일이 돌을 놓으며 말했다.
“인재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해. 스승이 없는 자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지. 그만큼 환경이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야.”
액난이 고개를 들어 도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서 잘난 척하면서 말하는 걸 좋아하는군.”
“주인을 닮아서 그렇지. 하하하!”
“주인이 없었으면 우리도 지금 경지에 절대 이르지 못했을 거란 말인가?”
“훗, 네가 보기에 우리가 저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나? 같은 나이로 비교했을 때.”
액난이 고개를 저었다.
이에 도일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중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
“저 녀석을 만나게 된 후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하나를 깨달았어.”
“어떤?”
도일이 바둑돌을 탁 놓으며 대답했다.
“뭐니 뭐니 해도 배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
“아버지와 동생이 무적이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 여자가 이쪽 세계의 편에 서서 이유계와 싸울 일은 없겠지?”
“그렇지.”
“주인이 부탁한다 하더라도?”
액난의 말에 도일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바보 같긴. 너희는 그 여자를 너무 모르고 있어. 주인을 포함해서.”
액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의 눈에 우리는 그저 벌레에 불과해. 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단 한 사람, 오직 주인뿐이지. 주인이 무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후, 그녀는 주인이 자신 정도로 강해지길 원해왔다. 왜인지 알아?”
액난이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지?”
“왜냐하면 주인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지.”
“뭐? 지금은 그러지 못한단 말이야?”
도일이 먼 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면 주인은 언젠가 죽게 된다. 세사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자도 수명에 끝이 있기 마련이지. 반면, 그녀는 세상과 우주의 법칙을 초월한 자, 스스로가 원하기만 하면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인이 그녀처럼 되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법칙을 초월하고, 모든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하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그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
이때, 도일의 안색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이 한번 말한 적이 있어. 그 여자가 어떤 불길한 징후를 포착한 것 같다고. 그러나 구체적인 건 자신에게도 말해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
“불길한 징후? 혹시 이유계를 말하는 건가?”
도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이유계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을 리는 없겠지. 아마 더 큰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
“어쩌면 주인의 동생이나 부친이나 우리보다 더 절박하게 주인이 강해지길 원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다만, 우리가 원하는 건 강해진 주인이 이유계를 막아내는 것이라면 그들의 목적은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르지.”
도일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정말이지 주인을 모질게 대하진 못하는 것 같더군.”
“네가 주인을 몰아붙이는 걸 눈감아 준 것도 다 그런 맥락이었을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도일이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주인에 대한 그들의 기대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크다. 때문에 그들은 주인을 곁에서 돌봐줄 수 없는 거지.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하는 이상 주인은 그 어떤 위기감도 느낄 수 없을 테고, 그들이 원하는 정도로 성장도 하지 못할 테니까.”
이때, 도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폈다.
“재미없군! 네 바둑 실력은 도대체 언제쯤 느는 거냐?”
도일은 액난을 남겨둔 채,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옮겼다.
액난은 바둑판을 응시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이길 수가 없네…….”
* * *
이 시각, 엽현은 길게 늘어선 시간의 차원 앞에 서 있었다.
이는 엽현 자신의 시차원이었다.
한 줄기의 시차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시차원을 통제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간을 역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은 그의 강인한 육신으로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때, 그의 앞에 도일이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왜 그러고 서 있지?”
“과거로 가 보고 싶은데 참 쉽지 않군.”
도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란 한 줄기 강과 같아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쉽지만 거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과거로 가기 위해 굳이 시간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삭제해 버리면 되거든.”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도일을 쳐다보았다.
“시간을 삭제한다고?”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손을 뻗자, 엽현의 검이 그녀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네게 가장 중요한 건 이 검이다. 다른 잡기술은 필요 없어. 네가 해야만 하는 것은 검도의 경지를 이 세계의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지.”
“검으로 이 세계의 극한을 돌파하라고?”
도일이 웃으며 설명했다.
“이 세계의 극한은 곧 시간이다. 너는 이미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니 지금부터는 시간을 제거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솔직히 말해 시간을 통제할 줄 안다는 건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아무리 노력해 봐야 이유인보다 시간을 잘 다룰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네가 세울 수 있는 전략은 아예 시간을 제거해서 그들과 같은 선상에서 싸우는 것뿐이다.”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간을 제거하면 이유인들도 같이 제거되는 거 아닌가? 네가 저번에 그렇게 말했잖아?”
도일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야 네 동생의 경우를 빗대서 설명한 거였지. 그녀는 시차원을 제거하는 동시에 그 안에 존재들까지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너는? 네 검술이 그녀만큼 대단한가?”
“음… 그래도 생각해 보면 실력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건 아니긴 한데…….”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다.”
“…….”
“정말이지 낯짝이 이렇게나 두껍다니… 주인도 그랬던가?”
말하는 동시에 도일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쉭-!
찰나의 순간, 엽현 앞에 펼쳐져 있던 시차원이 그대로 소멸했다.
도일이 엽현을 향해 웃으며 돌아섰다.
“지금부터는 검을 수련하도록 하지. 먼저 입신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한다.”
입신!
엽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입신?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건데?”
도일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웃으며 말했다.
“왜? 그냥 일검에 이유인을 몰살시키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지?”
“…….”
“그렇게 하나하나 다 알려달라고 하면 나중엔 어쩌려고 그래?”
엽현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럼 됐어. 나도 그냥 한 번 물어본 거니까.”
이때, 도일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멸범 이후에 왜 입신인지 고민해보도록 해. 그래야 입신이 뭔지 감이 올 테니까.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
이 말을 남기고서 도일은 떠났다.
“멸범… 입신….”
엽현은 그 자리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멸범 다음에 왜 입신경인 걸까?
또, 입신은 무슨 의미일까?
엽현은 점점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입신!
엽현의 검도 경지는 멸범, 지금부터는 입신을 향해 도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때의 그는 입신이 도대체 무슨 경지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엽현은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