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어때? 잘 보고 있어?
‘어떡하지!?’
영수검을 쥔 엽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이목이 출수한다면 그로서는 막을 자신이 없었다.
비록 이목이 엽현에게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이미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천녀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천녀였다. 이런 상황에서 천녀가 손만 한 번 휘두른다면 상황은 깨끗하게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그녀에게 기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엽현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바로 이때였다. 기안지, 강구, 백택, 묵운기 그리고 창란학원 학생들과 무수히 많은 강국 병사들이 엽현을 곁으로 다가왔다.
십만 대군이 달려드는 이 순간에 그들의 눈에선 두려움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구가 엽현의 입가에 흐르고 있는 피를 살며시 닦아주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이미 최선을 다했어.”
그 말에 엽현이 한순간 멍해져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최선을 다했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결과는 하늘에 맡겨 두면 되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엽현이 갑자기 뒤로 돌아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모두들 오늘 죽는다고 해도 후회는 없나?”
이때 강구가 물었다.
“너도 진작 도망칠 수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어. 후회는 없는 거야?”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
강구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없어!”
“저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엽 강도, 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장내의 무인들 모두 일제히 소리쳤다.
후회하지 않는다.
“하하하하!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모두 오늘 죽는다! 그러나 죽기 전에 길동무들을 좀 챙겨야겠지?”
말과 동시에 엽현이 정면을 향해 손을 들었다.
쉬쉭-!
두 자루의 검이 빛과 같이 뻗어 나갔다.
이에 수장 밖에서 달려오던 십여 명의 기병들이 단번에 머리를 잃었다.
“사전(死戰)!”
엽현의 등 뒤에 있던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바로 이때, 갑자기 장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목이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거대한 덩어리의 기병들이 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수만에 달했다.
그리고 그 무리의 선두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바로 저국의 국주, 척발언이었다.
이목이 멍한 표정으로 기병들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온 원군이지?’
이때 한 초국 기병이 이목에게로 달려왔다.
“보고 드립니다! 우측에서 많은 수의 저국 기병들이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그 기세가 결코 심상치 않습니다!”
‘저국 기병이라고?’
이목이 다시 기병들을 바라보고는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은 개양성이 아닌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저국 놈들이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죽여라!”
척발언의 노호성과 함께 저국의 기병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초국 기병들과 충돌했다. 저국 기병들이 갑작스럽게 허리를 공격하자 초국 군대는 손쓸 틈도 없이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한편, 강구 등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국이 왜 원군을?’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약간 얼이 빠져 있는 그들의 귀에 엽현의 목소리가 꽂혔다.
“돌격!”
말과 동시에 엽현이 몸을 날렸다.
수많은 강국 병사들과 창란학원 학생들이 이내 그의 뒤를 따라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황은 순식간에 초국 군대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한편,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이목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자 낯빛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대운제국의 최종목표는 저국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초국 기병들이 점점 무너지는 모습을 본 이목이 한편에 도열해 있던 흑염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출격!”
그와 동시에 흑염군이 빠른 속도로 전장으로 침투해 저국 기병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열세에 몰려 있던 초국 기병들 역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말로만 들었던 흑염군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직접 보자, 이목 역시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실력의 무인들이라면 지금 당장 중토신주로 간다 해도 충분히 통할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창목학원의 도병으로도 흑염군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이때 형세가 불리해진 것을 깨달은 척발언이 무리 속에서 싸우고 있는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따라와! 먼저 흑염군을 쳐야 해!”
그녀의 말에 엽현이 빠르게 다가와 척발언의 말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척발언이 발끈해서 성을 내려는 차에 엽현이 말했다.
“이봐! 우리끼리 다툴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엽현이 왼손으로 척발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자, 두 사람의 신체가 더욱 밀착됐다.
척발언이 차가운 눈으로 엽현을 한 번 째려보더니, 말머리를 돌려 흑염군을 향해 돌진했다.
두 사람과 흑염군 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암계 살수를 조심해!”
엽현이 짧게 한 마디를 뱉은 후, 말 위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한 흑염 기병의 눈앞이었다.
퍽-!
엽현의 검에 맞은 흑염 기병이 그대로 십여 장을 날아가 다른 흑염 기병과 부딪쳤다. 말에서 떨어진 둘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일반 병사들에게 흑염군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말은 엽현 앞에선 통용되지 않았다.
지금 엽현은 검주였다.
검주급 무인은 청주는 물론이고 중토신주에서도 충분히 통할만 한 존재들이다.
게다가 검수는 수많은 종류의 무인들 중 자타공인 가장 살상력이 뛰어난 존재가 아닌가!
엽현이 또 다른 흑염군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을 때, 갑자기 그를 향해 창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비록 아주 간결한 찌르기였지만, 창에 실린 속도와 힘은 엽현을 놀라게 만들었다.
엽현이 급히 칼을 휘둘러 창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한 자루의 질영이 상대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이때 한 자루의 창이 나타나 질영의 앞을 막아섰다.
챙!
질영이 날아가는 동시에 엽현의 후두부를 향해 또 다른 창이 날아들었다.
바로 이때 한 줄기의 전류가 창을 향해 쏘아졌다.
펑-!
장창이 날아가고 엽현의 뒤편에서 척발언이 나타났다.
바로 이때, 나머지 흑염군들이 재빨리 엽현과 척발언을 겹겹이 에워쌌다.
흑염군은 공격 대신 말을 달려 두 사람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도가 계속해서 빨라졌다.
엽현과 척발언은 그들의 그림자밖에 볼 수 없었다.
서로의 등을 지고 있는 두 사람의 안색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무리 엽현이 검주라 할지라도, 기껏해야 한 번에 다섯의 흑염군을 상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 주위에는 무려 백 명의 흑염군이 있었다.
흑염군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엽현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때, 두 사람을 향해 거의 백발에 가까운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피할 수도 없이 빽빽하게 날아드는 화살들에 척발언의 눈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게다가 이 화살들은 한발 한발이 모두 명계 급의 영기(靈器)로 한 대만 맞아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오른손으로 아래를 향해 지그시 누르자, 그의 전신에서 한 줄기 검의가 몰아쳐 두 사람 주위로 장막을 형성해 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나온 세 자루의 검이 두 사람의 주위에서 끊임없이 검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백여 발의 명계 급 화살들이 엽현과 척발언 주위를 동시에 강타했다!
그러자 검의로 만든 방어막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순간 눈에서 사라졌다.
“내가 길을 틀 테니, 너 먼저 빠져나가!”
엽현이 손을 펼치자 그의 손 안으로 영수검이 날아왔다. 엽현이 손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자 영수검이 다시 그리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영수검은 그대로 앞에 있던 흑염군의 미간을 관통했다. 게다가, 뒤편에 있던 다른 병사들까지 꼬치 꿰듯 꿰어버렸다.
이 틈을 타 엽현이 척발언을 안아 들고 그대로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때, 백여 발의 화살이 두 사람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척발언이 속으로 깜짝 놀랐다. 흑염군의 궁술이 너무나도 매서웠다.
그녀는 지금까지 흑염군을 얕잡아 봤던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쏘아내는 화살은 만법경이 아닌 이상 결코 쉽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엽현이 척발언을 자신의 등 뒤로 보낸 다음, 앞으로 일 보 전진했다. 그가 손가락을 들자 또다시 세 자루의 검이 쏘아져 날아갔다.
세 자루의 검들이 검광을 쏟아내며 적지 않은 수의 화살들을 쳐내긴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화살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이때 엽현의 선념검의(善念劍意)가 발동해 자신의 앞에 하나의 장막을 둘렀다. 수많은 화살들이 장막에 두드리자 장막 또한 결국 깨지고 말았다.
이때 엽현의 입에서 한 움큼의 선혈이 흘러나왔다.
“안 가고 뭐해!”
엽현이 척발언을 향해 소리쳤다.
척발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엽현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누님! 제발 말 좀 들어! 누님이 도망쳐야 나도 마음 편히 도망칠 거 아냐!?”
“…….”
“도망?”
이때 흑염군의 머리 위 상공에서 이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목이 엽현을 내려다보며 비꼬듯이 말했다.
“엽현, 네가 과연 도망칠 수 있을까? 오늘이 바로 너뿐 아니라 강국 그리고 저국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말과 동시에 이목이 크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흑염군들이 맹렬히 엽현과 척발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엽현이 척발언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기 전에, 내 볼에 뽀뽀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
척발언의 입가가 가볍게 떨렸다. 이런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농을 거는 엽현의 엉덩이를 힘껏 차주고 싶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고개를 숙여 척발언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순간 척발언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입을 뗀 엽현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지난번에 나한테 썼던 그 약… 어디서 샀어?”
“…….”
척발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전투 중만 아니었더라면 명치를 세게 때려버렸을 것이다.
‘이 자식이 미쳤나? 때가 어느 땐데!’
그들이 투닥거리는 순간 흑염군들은 이미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때 엽현이 흑염군들을 향해 몸을 빙글 돌리더니,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앞에 웬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순간, 장내에 열두 개의 빛이 번쩍이더니, 엽현과 척발언의 앞에 열두 금인이 나타났다.
금인들이 천천히 눈을 뜨자 그들의 눈 속에서 열두 개의 빛이 방출됐다.
콰콰콰쾅-!
그들의 앞에 있던 일부 흑염군이 이 금광에 맞고 멀리 날아갔다. 이때, 다시 한번 금광이 번뜩였다.
퍼퍼퍼펑-!
순식간에 또다시 한 무리의 흑염군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이에 이목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한편, 이를 지켜보는 엽현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저 열두 금인을 불러내기 위해 방금 전 백이십만 개의 최상급 영석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아끼고 아끼며 간신히 모아 온 자식(?) 같은 존재였다.
‘다시 처음부터 모아야 해!’
엽현이 깊은 한숨을 내 쉰 뒤, 영수검을 들어 가까이에 있는 이목을 가리켰다.
“잘 봐라!”
순간 영수검이 엽현의 손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날아간 영수검은 수 장 밖에 있던 초국 기병들 십여 명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영수검이 이번에는 횡으로 번쩍이자 또다시 십여 명의 기병들의 머리가 절단됐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엽현이 두 손을 펼치자 두 자루의 질영이 좌우로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또다시 수십 명의 초국 기병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엽현의 주위에 있던 초국 기병들이 겁에 먹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엽현이 공중에 떠 있는 이목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 잘 보고 있어? 재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