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76
1677화 검맹의 존재
유적!
엽현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문득, 그곳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천족이 이렇게 중시하는 곳이라면 반드시 무언가 특별한 게 있으리라!
“아들아, 이 세상은 생각보다 매우 넓단다. 이유족 뿐만 아니라…….”
말을 하던 청삼남이 갑자기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지금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구나.”
“왜 그러십니까?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하하, 그게 아니라 네 실력이 너무 약해서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엽현이 딱딱한 표정으로 청삼남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젊은 시절이 있었죠?”
“음? 당연하지!”
“아버지는 약했던 시절이 없었나요?”
이 물음에 청삼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에 엽현이 씩 웃으며 더 캐묻지 않았다.
이때, 청삼남이 웃으며 말했다.
“별 이유는 없다. 그저 지금 네 실력으로는 굳이 이것들을 알아서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엽현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질문은 없느냐?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답해 주마.”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저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 말에 청삼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바로 이때, 두 사람 앞에 웬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하얀 장포를 입은 여인은 양손을 소매 속에 감춘 상태였다.
‘아름답다!’
이것이 여인에 대한 엽현의 첫인상이었다.
여인의 피부는 눈같이 하얬고, 커다란 두 눈은 마치 사람을 홀릴 듯이 아름다웠다.
한 마디로, 한 번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미인이었다.
여인은 청삼남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이때, 목로가 일행 곁으로 다가와서는 청삼남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양 형, 여기 이 아목렴이 그대들이 성지를 사용할 거란 이야기를 듣고 바로 출관했지 뭐요.”
이 말에 청삼남이 아목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그러자 아목렴이 다시 한번 예를 차리며 대답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어르신께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청삼남이 아목렴을 가볍게 훑어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네게 가르쳐 줄 건 없을 것 같구나.”
“…….”
순간, 아목렴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나, 네게 무엇이 진정한 강함인지 맛보기로 보여 줄 순 있다.”
아목렴이 고개를 조아렸다.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여기 내 아들만큼이나 매우 총명한 아이로구나!”
이때, 엽현이 어색해하며 말했다.
“아버지, 제가 훌륭한 건 맞지만,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좀 겸손을 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훌륭한 것을 훌륭하다 하지, 뭐라고 하느냐? 세상의 모든 남자 중 가장 뛰어난 건 나고, 너는 바로 그다음이다. 우리 두 부자가 우주 제일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
이아는 소백의 손을 잡고서 청삼남에게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일행이 아닌 척을 했다.
목로 또한 난감한 표정이었다.
청삼남은 다 좋은데 가끔 이렇게 뻔뻔한 게 문제였다.
아목렴은 말없이 엽현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때, 청삼남이 아목렴 앞으로 다가가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보시게나!”
말과 동시에 그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검은 그대로 아목렴의 미간을 향했다.
특별할 것 없는 간단한 일검이었다.
검기도, 검의도 없었다.
심지어, 옅은 검기조차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검을 앞에 둔 아목렴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내 상대가 아니다!’
막을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천천히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미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검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남겨두고 허공에 멈췄다.
청삼남은 말없이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아목렴이 가볍게 예를 차렸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청삼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 내 아들이 이곳은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네가 성지를 좀 구경시켜 줄 수 있겠느냐?”
아목렴이 엽현을 흘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공자께서는 나를 따라오시오.”
말을 마친 아목렴이 먼저 돌아섰다.
이때, 엽현이 청삼남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버지, 이건 또 무슨 꿍꿍이입니까?”
이에 청삼남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정도면 훌륭한 신붓감 아니냐? 애비가 멍석은 깔아 놨으니 기회를 노려보도록 하거라!”
“아버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음? 뭐가 곤란하단 말이냐?”
엽현이 한숨을 토해내며 대답했다.
“지금 있는 여자들도 감당하기 힘든데 여기에 또 추가를 하시면…….”
엽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청삼남이 그의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
괜히 한 대 얻어맞은 엽현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열심히 아목렴을 쫓았다.
“양 형,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한 잔 꺾읍시다.”
목로의 말에 청삼남이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오랜만에 흐드러지게 마셔 봅시다!”
“오빠! 우리는 가서 놀아도 돼?”
이아가 묻자 청삼남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절대 안 돼!”
청삼남이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성지로 향하는 내내, 아목렴은 말이 없었다.
이때 엽현은 사람들이 아목렴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볼 수 있었다. 어른, 아니는 물론 백발이 성성한 노인조차 그녀를 보면 고개를 숙였다.
그중에는 고수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목렴 소저, 괜찮으면 성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연무장이라 보면 되오.”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아목렴을 바라보았다.
“그게 전부요?”
아목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러나 평범한 연무장과는 매우 다를 거요. 그곳에서 일정 시간을 보낸다면 그대의 실력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오.”
“아버지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소. 이거 참, 기대가 되는구려! 하하!”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느 동굴 입구에 이르렀다.
이때, 노인 하나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았다. 노인은 엽현을 스윽 한번 쳐다보더니, 아목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층으로 가겠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사방의 공간이 기이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차원의 공간!
하지만 이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었다.
엽현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곳의 차원은 다른 우주와는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그럼 들어가 봅시다.”
아목렴의 말에 엽현이 먼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아목렴이 그 뒤를 따랐다.
동굴 안으로 돌아온 엽현은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아목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공간에서 수련할 수 있는 것은 네 가지요. 반응과 속도, 힘과 정확성, 영혼과 정신력, 육신과 의식이 바로 그것이오. 그대가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에 상응하는 수련이 시작될 것이오. 만약, 반응과 속도의 수련을 택하면 그와 관련된 무인이 등장해 대련부터 지도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방식이오. 그리고… 난이도 역시 조절이 가능하오. 초급, 중급 그리고 고급 방식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소.”
엽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대련 상대는 충분히 강한 것이오?”
“궁금하면 직접 한번 시도해 보시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과 속도 훈련을 하고 싶소. 난이도는 최상으로!”
“…시작은 가볍게 하는 걸 추천하오.”
“어째서?”
“왜냐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하하! 괜찮소! 일단 한번 해 보겠소!”
“음… 그럼 준비하시오.”
이 말과 함께, 아목렴이 뒤로 물러났다.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이때, 한 줄기 음성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시작!”
음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권인 하나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엽현의 복부를 가격했다.
쾅-!
엽현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날아갔다.
자세를 제대로 취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주먹이 이번에는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퍽-!
다시 수천 장 뒤로 날아간 엽현.
이후로도 엽현은 눈코 뜰 새 없이 신나게 두들겨 맞기만 했다.
퍽!
쾅!
쿵!
켁!
엽현의 다리는 지면에 붙어있질 못했다. 자세를 잡을라치면 연속해서 주먹이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초급! 난이도 초급으로 설정하겠소!”
엽현이 소리친 순간, 그는 무언가 뒤에서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몸을 젖히자, 그가 서 있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찰나의 순간에 엽현은 공격한 상대를 볼 수 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하나의 허영이었다.
엽현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전, 허영의 속도는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때, 허영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칼을 빼 들었다.
쾅-!
그의 검이 지나간 공간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얼굴을 향해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엽현이 다시 몸이 붕 뜬 채 날아갔다.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허영이 다시 달려들었다.
엽현이 빠르게 검을 들어 대처하려 했지만, 이보다 앞서 허영의 주먹이 엽현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엽현은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상대의 속도가 여전히 너무나도 빨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자신의 반응과 속도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이때, 그의 머릿속에 처음 듣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엽현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말한 이는 다름 아닌 허영이었던 것이다.
허영은 엽현에게 약점을 알려주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제안하고 있었다.
‘대단해!’
엽현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만약 이런 수련 방식을 구유계에 재현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강자를 배출해낼 수 있으리라!
그만큼 그가 느끼기에 매우 훌륭한 수련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때, 허영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엽현 또한 황급히 생각을 정리하고서 검을 치켜들었다.
* * *
이 시각, 어느 강변의 대나무집 앞.
청삼남은 강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여유 있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고, 이아와 소백은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때, 청삼남이 문득 자세를 고쳐 앉더니, 성공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검은 회오리 하나가 나타났다.
청삼남이 가볍게 지면을 박찬 순간, 그의 신형은 이미 회오리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회오리 안쪽에서 허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늦었군.”
“검주(劍主), 용서하십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청삼남이 심드렁하게 묻자, 허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유족의 ‘그자’가 폐관에서 나왔습니다. 한데, 곧바로 제 위치를 발견하고는, 저의 시간계로 침입을 시도했습니다. 만약, 검주께서 남겨 놓으신 검기가 아니었다면, 속하는 이미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경지를 돌파했더냐?”
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소검주의 세계를 향해 곧 진공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찌… 출수하시겠습니까?”
청삼남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허영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검주께서 나서지 않으시면 소검주의 실력으로 저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혹시, 검시(劍侍)들이 돌아온다면 모를까. 검주, 아니면 검맹(劍盟)에게 이유족을 척살하라고 명령하심은 어떻겠습니까?”
청삼남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유족은 그 아이에겐 좋은 자양분이 될 거다. 직접 처리하게 내버려 두어야지.”
“그리 알도록 하겠습니다. 참, 검맹의 형제들이 소검주를 보고 싶어 하는데…….”
“음… 훗날 기회가 있을 거라 이르거라.”
“하지만…….”
청삼남이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이 아직 너무나 약해 그들의 눈에 차지 않을까 그러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허영의 말에 청삼남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서 도와 막념이라는 여인들과 접촉 해 보거라. 그 둘의 실력이라면 검맹에 들어 올 자격이 충분할 테니까.”
“예, 검주!”
허영은 가볍게 예를 차린 후, 회오리 안으로 사라졌다.
청삼남은 고개를 돌려 엽현이 위치한 곳을 내려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노력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애비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세력을 계승하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