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미안해, 고마워
엽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척발언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겉보기에 매우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엽현이 2층 존재에게 도칙까지 전해 주면서 계옥탑에서 꺼내 준 것은 바로 척발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척발언을 구한 그는 그대로 엽현에게서 받은 도칙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었다.
엽현으로서는 이는 도박과 같았다. 만약 그가 다시 도칙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엽현은 천녀한테 두들겨 맞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엽현은 일단 이러한 생각은 접어 두고서 척발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만약 방금 전 그녀가 번개 방패로 이목의 일격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누워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목! 창목학원!’
엽현이 천천히 자신의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는 이번에 창목학원의 결심을 얕본 대가로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그리고 기왕 저들이 규칙을 어긴 이상, 다음번에는 만법경 강자 이상의 패를 들고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목이 출수한 바로 그때부터, 엽현과 창목학원은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이때, 척발언의 손이 꿈틀거렸다. 엽현이 다급히 그녀를 안아 들자, 척발언이 눈꺼풀을 부르르 떨며, 힘겹게 눈을 떴다. 엽현의 얼굴을 본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너도… 죽었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죽으면 쓸쓸하잖아!”
척발언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너…….”
이때 그녀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상황이 파악된 척발언이 짐짓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짜 죽.고.싶.냐?”
“하하하! 넌 좀 놀리는 맛이 있는 거 같다!”
척발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난 왜 안 죽은 거지?”
“음… 그게 말이야, 때마침 훌륭한 한 분이 나타나셨거든.”
이때, 엽현이 살짝 굳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근데 너 그때 왜 내 앞을 막은 거야? 까딱했으면 죽을 뻔했잖아!”
“죽을 줄 알았으면 나도 그렇게까진 안 했어!”
그 말에 엽현이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하. 그랬구나…….”
이때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척발언이 자신을 안고 있던 엽현의 팔을 치워내고는 낑낑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쩐지 냉랭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이 데려온 저국 기병들과 함께 빠르게 장내를 떠났다.
영문도 모른 채 척발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엽현의 곁으로 묵운기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니, 그대로 엽현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엽 강도, 너 진짜 바보냐?”
엽현이 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묵운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엽 강도, 저국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먼 줄 알아? 그녀가 여기까지 대군을 끌고 온 게 다 누구 때문인 거 같아? 그리고 너희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걸 보면……, 그녀는 바로 널 위해 온 거라 이 말씀이야!”
묵운기가 갑자기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리고 머리가 있으면 좀 생각 좀 해봐, 이 친구야. 저 지혜로운 여인이 어법경 강자를 상대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정말로 몰랐을까? 그녀는 이미 최후의 상황까지 모두 고려하고서도 널 위해 몸을 날린 거란 말이다!”
엽현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별안간 묵운기의 궁둥짝을 냅다 걷어찼다.
“그걸 알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이 화상아!”
그 말과 동시에 엽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장내에 홀로 남은 묵운기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의 가련한 엉덩이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망할…, 네가 언제 물어는 봤냐…….”
묵운기의 한마디를 들은 엽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엽현은 흑랑을 타고서 평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삶에 있어서, 한순간의 오해는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는 흑랑을 타고서, 엽현은 이내 저국 기병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때 전방을 주시하며 말을 달리던 척발언의 곁에 한 장수가 따라붙었다.
“국주, 누군가 우리를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강국의 엽현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척발언은 오히려 말을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쌀쌀맞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 장수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엽현은 저국 기병들에 상당히 접근한 상태였다.
저국 기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엽현의 앞을 막지 않았다.
현재 엽현의 명성은 비단 강국뿐 아니라 이미 청주 전역에 날리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전 이목을 반으로 찢어 버린 그 장면을 그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국 기병들은 엽현이 무서워 감히 제지할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척발언을 추월한 엽현이 그녀의 말 앞을 막아섰다. 이에 저국 기병들이 황급히 말을 멈춰 세웠지만, 척발언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올렸다.
순간 엽현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저 여자가 뭘 하려는 거지!?’
점점 가까워지는 말을 보자 흑랑이 흉흉한 눈빛을 보내며 크게 포효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는 이제 삼 장이 채 남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척발언의 말을 향해 훌쩍 뛰어오르더니 척발언의 뒤편에 안착했다. 척발언이 엽현을 밀어내려는 순간, 엽현이 그녀의 허리를 와락 낚아채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 말에 척발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시 적막이 흐른 후, 척발언의 말이 갑자기 쏘아지듯 수십여 장을 달려나갔다. 이에 남겨진 저국 병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한편, 한참을 질주하던 말이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추고 산책하듯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말을 몰고 있는 척발언의 얼굴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허리에 감긴 엽현의 팔을 뿌리치진 않았다.
그렇게 말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긴 사이, 석양이 두 사람을 따뜻하게 감쌌다.
한참이 지난 후, 엽현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척발언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자 엽현이 몸을 날려, 척발언의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본 상태가 되었다.
척발언은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엽현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화가 난 여인을 달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는 한 나라의 국주가 아닌가!
이때, 척발언이 말 위에서 휘청거리며 떨어지려 했다. 그러자 엽현이 다급히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고마워.”
척발언이 짧게 한 마디만 던지고 다시 입을 닫았다.
엽현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의 몸 안의 계옥탑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엽현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말 아래 굴러떨어지더니 지면에 대자로 누워 경련을 일으켰다.
척발언이 재빨리 말에서 내려 엽현에게로 달려왔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엽현의 오공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척발언은 엽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황급히 금창단을 그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그러나 별 차도는 없어 보였다.
이에 그녀가 또 다른 금창단을 하나 꺼내 드는 순간, 정신을 차린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소, 소용없어…. 이건… 대…가…야…. 좀 쉬면 나을 거야…….”
척발언이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엽현을 바라보았다.
사실 엽현은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 계옥탑의 힘을 쓴 것은 둘째 치고, 도칙이 사라졌으니 계옥탑이 다시 불안정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계옥탑이 불안정해지면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만약 2층 존재를 꺼내 주지 않았더라면 자신과 척발언은 그때 죽었으리라!
‘참아야 해!’
하지만 이는 의지만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고통이었다!
현재 그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 머리가 파괴될 것만 같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참아야 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명월(明月)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두 사람에게 은은한 이불을 선사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엽현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잠시 후, 엽현은 점차 의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의 그는 어쩐지 굉장히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품 같아…….’
순간, 그는 자신이 척발언의 품 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엽현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 척발언이 고개를 내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 널 보게 되니 정말 좋다.”
엽현이 돌연 척발언의 품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의 몸에선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 왔지만, 그 안에서 그녀의 은은한 체향을 맡을 수 있었다.
순간 척발언이 움찔하더니, 엽현을 밀쳐버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걸어갔다.
이때 엽현이 벌떡 일어나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작은 나무인형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나무인형은 척발언의 모습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내가 만든 거야!”
척발언이 아무 말 없이 나무인형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그녀의 손에 나무인형을 쥐여 준 뒤, 그대로 백 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저국 기병들을 향해 달려갔다.
척발언은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나무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편 저국 기병들 앞에 도착한 엽현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기병들을 보며 머리 숙여 예를 차렸다. 이에 기병들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천리를 달려 이곳까지 와서 도움 주신 여러분께, 강국과 강국의 백성을 대표하여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 엽현, 여러분에게 입은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엽현이 품 안에서 납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안에 황금 이억 냥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술 한잔 대접하는 셈 치고 받아 주십시오!”
엽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납계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던 척발언에게로 날아갔다.
얼떨결에 납계를 받아 든 척발언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황금 이억 냥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때 저국 기병들이 손을 높이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엽 국사는 의리가 있다!”
“상 남자, 엽 국사!”
“형님, 결혼해 줘요!”
“…….”
엽현에 대한 저국 병사들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엽현은 저국에 대한 성의를 말로만 하지 않았다. 직접 성의를 보여 보답을 해줬다. 저국 병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 이억 냥을 사람 수대로 나눈다면, 각자의 몫으로 적어도 일 년 치 녹봉은 돌아가고도 남을 액수였다.
이러니 저들이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엽현이 저국 병사들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여러분, 그럼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엽현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흑랑 위에 올라타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척발언은 엽현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며 그가 건네준 납계와 나무인형을 양손에 꼭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