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90
1691화 어색한 연기
긴장감이 흐르던 이때, 산림이 조심스레 엽현에게 대도원정을 내밀었다.
“엽 공자, 잠시 흥분해서 눈이 멀었던 것 같소. 용서해 주시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이 대도원정만 있으면 의경이 되는 건 시간문제요. 정말로 포기하겠소?”
산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이 맞소. 하지만 내 것이 아닌 물건을 탐할 순 없는 법이오.”
이 말은 거짓이었다.
산림은 분명 대도원정을 들고 도망칠 생각을 했었다.
다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성이 본능을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눈앞의 엽현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도원정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전설 속의 보물이다. 한 줌의 대도지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 시기에 엽현은 어른 주먹만 한 대도원정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들었다.
산림은 대도원정을 빼앗는 시도는 곧 죽음이란 걸 모를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정말로 포기할 셈이오?”
엽현이 웃으며 다시 한번 묻자, 산림이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엽 공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건 인정하오. 하지만 내 본심은 변하지 않았소. 선물로 주겠다면 몰라도 그대의 물건은 감히 훔치지 않을 것이오!”
이에 엽현이 산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선물로 주겠소!”
이 말에 산림이 당황해하며 엽현을 쳐다보았다.
“이, 이렇게 귀한 물건을 어찌… 에휴… 나도 염치가 있는 놈이라 받지 않으려 했건만 엽 공자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그 성의를 봐서라도 거절할 수가 없구려.”
산림은 매우 신속하게 손을 뻗어 대도원정을 낚아챘다.
이를 본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낯짝이 여간 두꺼운 게 아니구려.”
“하하, 어쨌거나 고맙게 받겠소!”
이때, 막 무어라 대꾸하려던 엽현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뜨거운 눈으로 산림을 노려보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이는 분명 여차하면 강탈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산림 역시 이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대도원정을 꼭 끌어안으며 경계를 드러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어찌, 그대들도 원정이 갖고 싶소?”
무인들의 시선이 엽현에게 향하자, 엽현이 웃으며 소리쳤다.
“빼앗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얼마든지 오시오!”
순간, 엽현의 눈앞에 십여 개의 대도원정이 둥실 떠올랐다.
“자, 그대들이 원하는 물건이 여기 있소. 자신 있는 자는 와서 가져가시오!”
순간,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귀한 대도원정이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나 많이 있다니!
한편, 엽현의 미소는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오시오! 겁내지 말고 와서 빼앗아 보시오!”
엽현이 소리치자, 정신이 번쩍 든 무인들이 탐욕을 보이기는커녕,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엽현 뒤에 열여섯 명의 의경 강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함부로 덤빌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의경 열여섯이라면 이곳에 있는 수백의 무인들을 쓸어버리기엔 매우 충분한 숫자였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엽현은 산림을 향해 돌아섰다.
“여기서 바로 승급을 진행해도 좋소.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산림이 황급히 예를 차렸다.
“고맙소, 엽 공자!”
산림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대도원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대도본원이 몸 안으로 주입된 순간, 산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다.
뒤이어 산림은 체내에 들어온 대도본원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산림의 기운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증가했다.
이를 본 나머지 무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엽현은 대나무 집 안으로 들어가 여유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명 등이 의경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후에 밖에 있는 가짜 의경 강자들을 의경으로 바꾸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유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의경 강자의 수를 충분히 확보해야만 했다.
이 시각, 호숫가의 무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무리 중에 있던 홍녀가 말을 꺼냈다.
“저 녀석의 부친은 의경 강자 열여섯을 부릴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과연 보통 존재일까?”
“…….”
“대도원정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대도본원지기 역시 한 줌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시기에 저렇게나 많은 대도원정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뭘 의미할까?”
무인들은 말없이 홍녀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는 분명 그의 부친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일 거다. 게다가 아들에게 저렇게나 많은 대도원정을 주었다는 건, 그에게 있어 대도원정은 크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란 거겠지. 의경 강자를 마음대로 부리고 대도원정 또한 길바닥의 돌처럼 취급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각자 생각해 보도록.”
순간, 무인들의 표정이 검게 변해갔다.
굳이 생각을 깊게 하지 않더라도 상대는 엄청난 거물인 것이 틀림없다!
이때, 홍녀가 집 안에 있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대도원정을 꺼낸 건 분명 계산된 행동이었다. 산림처럼 말을 잘 들으면 너희에게도 대도원정을 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지.”
홍녀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존심 상하면 떠나도 된다.”
이 말에 움직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존심?
여기까지 와서 그깟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때려죽인다 해도 이대로는 갈 수 없다!
“기왕 결정했다면 스스로의 위치와 태도를 확실히 해야겠지.”
무덤덤하게 말을 뱉은 홍녀는 그대로 대나무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에 모두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녀가 뭘 하려는지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대나무 집에 도달한 홍녀는 엽현을 향해 몸을 굽히더니 그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잠시 후, 엽현은 홍녀를 향해 대도원정 하나를 내밀었다.
이 장면을 보자, 호숫가 전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냥 이렇게 준다고?
무인들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틀림없다!
엽현을 바라보는 무인들의 표정은 점점 기이하게 변해갔다.
혹시 여색을 밝히는 게 아닐까?
이때, 한 여인이 엽현을 향해 다가갔다.
여인은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옷이 터져나갈 것 같은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엽현 앞에 다가선 여인이 요염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엽 공자,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단둘이서?”
순간, 엽현의 눈빛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뭘 하려고 그러시오?”
“후후, 엽 공자. 방금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저도 할 수 있답니다. 아니, 그것보다 백배는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건 제 전문 분야니까요.”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인을 쳐다보았다.
“소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만?”
이에 여인이 붉은 치마를 슬쩍 들추며 대답했다.
“오해는 전혀 없답니다. 자리를 옮기면 소녀가 알아서 편안하게 해 드릴게요.”
“지금 나를… 유혹하는 것이오?”
“호호, 그렇다면 넘어오실 건가요?”
엽현은 양껏 교태를 부리는 여인을 흘끔 쳐다보았다.
과연 어디서도 쉽게 보지 못할 몸매가 틀림없었다.
이런 여자를 두고 경국지색이라 하던가!
이때, 엽현의 시선을 느낀 여인이 눈을 반짝이더니, 상의를 잡아당겨 은근슬쩍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동작 그만!”
엽현이 갑자기 호통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엽현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내가 이런 유혹에 넘어갈 것 같소?”
엽현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여인은 어리둥절했다.
이때, 무언가를 느낀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에는 어느 틈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운명법칙!
아명!
이때의 아명은 이미 의경에 이른 상태였다.
가짜가 아닌 진짜 의경이었다.
“아명! 왔구나!”
“…내가 방해한 거 같은데?”
아명의 차가운 말투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아명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엽현을 잠시 바라보고는 여인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저쪽으로 꺼져!”
여인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뒤쪽으로 물러났다.
감히 불경한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눈앞의 여인이 평범한 의경 강자가 아니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아명 등, 우주법칙은 엽신이 직접 길러낸 천재들이었다. 그들의 실력과 지식, 특히나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일반 의경 강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여인이 물러가자 아명은 다시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떠났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아명이 호숫가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저들을 의경으로 만들 생각인 건가?”
“그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의경 강자들이니까.”
“통제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
“후후, 내게 다 생각이 있지!”
아명이 무어라 더 말하려는 이때, 여인 하나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간법칙이었다.
시간법칙 역시 마찬가지로 의경이 된 상태였다.
다만, 이때의 시간법칙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봉인이 곧 풀릴 거야!”
봉인이 풀린다!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렇게나 빨리?”
시간법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서 상황을 살펴보자.”
아명의 제안에 세 사람은 곧바로 대나무 집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엽현 일행이 사라지자 장내에 있던 무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때,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다들 들어 보시오. 나는 홍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오. 엽현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머리를 조아려야만 하오. 게다가, 엽현 주변에는 이미 강한 무인들이 많이 있소. 다시 말해, 우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들일 수 있다는 뜻이오. 그러니 엽현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오. 의경이 된다는데 그 정도도 못 하면 말이 되지 않소!”
“…….”
“어쨌든 노부는 이미 엽현을 따르기로 결정했소이다!”
노인의 이 말로 호숫가 주변의 공기는 매우 차분하게 변했다.
더불어 갈팡질팡하던 무인들은 하나둘, 마음속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다.
* * *
엽현 등 세 사람은 봉인이 있는 성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엽현은 지난 번 ‘형님’이 남기고 간 검기가 매우 약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엽신이 설치 한 진법 역시 상당히 옅어진 상태였다.
이때, 아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길면 한 달, 그 안에 봉인이 완전히 사라질 거야. 그때가 되면 이유인이 이쪽 우주로 유입되는 걸 막을 수 없어.”
한 달!
엽현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이제 어쩔 거야?”
엽현이 대답하려는 이때, 검은 회오리가 마구 요동치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회오리 앞에 등장했다.
이유인!
세 사람과 마주한 이유인이 탁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엽현, 듣자 하니 배후가 무척이나 많다고 하더군. 사실인가?”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잘못 알고 있군. 나 엽현은 오직 한 자루 검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
순간, 아명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이를 보지 못한 이유인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아느냐? 우리 역시 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마친 상태다. 너의 배후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네 부친과 동생이 아니더냐!”
이 말을 듣자, 엽현이 당황한 듯 갑자기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너,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이건 너와 나 둘 사이의 문제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멋대로 끌어들이지 마!”
“후훗, 이미 늦었다. 그 둘만 제거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란 걸 간파했지.”
“안 돼!”
엽현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이유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가만두지 않는다… 아버지와 동생의 털끝만 건드려도 다 죽여 버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