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06
1707화 주인공 효과
어느 산 정상.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동굴을 향해 접근한다. 이때, 웬 노인 하나가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인을 본 남자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척로(尺老), 아가씨께 급히 전할 소식이 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가씨는 아직 폐관 중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거라.”
“엽신이 돌아왔습니다!”
순간, 노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뭐, 뭐라고?”
바로 이때,
쾅-!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여인 하나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회색 장포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른 여인의 용모는 절세가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녀의 눈빛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여인은 어느새 남자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디 있느냐?”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가씨께 아룁니다. 그는 이미 영생계 밖에서 윤회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여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간, 날카로운 살기가 돌연 상공에 휘몰아쳤다.
쾅-!
찰나의 순간, 청명하던 하늘의 구름이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인은 천천히 동굴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척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언(言)아, 이번에도 엽족의 일에 개입할 생각인 게냐!”
걸음을 멈춘 여인이 뒤로 돌아서며 대답했다.
“이숙(二叔), 저는 그 사람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이에 척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아, 당시 우리가 나섰던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기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 우리 부족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엽족의 족장은 이미 엽신을 지지하던 자들을 모두 제거했고, 우리가 감히 넘보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설령 그때 당시의 엽신이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전혀 승산이 없단 말이다!”
여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에 척로가 말을 이어갔다.
“혁랍족은 더 이상 엽족과 적이 될 수 없다. 엽신은 이제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여인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겠지만, 체념하거라. 그의 시대는 이미 끝났으니까.”
이 말에 여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숙,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반드시 그를 도울 것입니다!”
척로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를 구했다 치자. 그다음엔? 일생 동안 그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너도 엽족의 그 여인이 얼마나 지독한지 경험해 봐서 알지 않느냐? 그 마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를 살려두지 않을 거다. 게다가 당시엔 엽족이 다소 분열된 상태였기에 전쟁을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 다르다. 우리가 엽신의 일에 개입할 의사를 비친다면 그 여자는 바로 우리 혁랍족을 향해 선전포고를 할 게 분명하다!”
“…….”
“이 녀석아, 이제는 부족을 좀 생각하거라. 너는 그를 위해 이미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
여인은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숙, 내가 혁랍족을 떠나면 그 여자가 즉시 알아차릴 거예요. 그러니… 저 대신 한 번 다녀와 주실 순 없나요?”
“후…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숙… 제발 부탁드려요.”
여인의 간청에 척로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 녀석이 그렇게 좋은 게냐?”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쨌거나 정혼한 사이니까요. 그가 파혼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한 저는 영원히 그의 약혼자의 신분이에요.”
파혼!
척로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만 특별히 네 부탁을 들어주마!”
이 말에 여인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숙! 감사합니다!”
“쯧쯧… 엽족 족장의 실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절대 혁랍족을 떠나선 안 된다. 알겠느냐?”
여인은 말없이 다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여인의 차가워진 표정에 척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를 떠났다.
산 정상.
여인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 * *
호숫가, 대나무집 안.
의자에 앉아 조용히 독서를 즐기고 있는 엽현.
아비도검자와 목성도자는 그런 엽현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때, 성미가 급한 목성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주군, 도대체 무슨 대책이 있는 겁니까?”
이에 엽현이 책을 내려놓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대책은 무슨, 엽족이 그렇게 강한데 무슨 수로 이기겠소?”
“그런데 이렇게 천하태평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에 엽현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하면 또 뭐 하겠소? 내가 무릎 꿇고 빈다고 해서 그 여자가 날 살려 줄 것 같소?”
목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에 엽현이 체념한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여자는 날 죽이려 할 텐데, 대책을 세우나 안 세우나 뭐 다를 게 있겠소?”
“그래도 무슨 대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 이유족이 쳐들어오면 내가 나서서 싸울 것이고, 엽족이라면 지원군을 부를 것이오. 간단하지 않소?”
이에 목성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께서는 정말이지 엽족의 실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계십니다!”
이때, 도일이 끼어들었다.
“목성, 그럼 그대는 주인의 부친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소?”
이 질문에 목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에 대해선 아는 바 없소!”
“후후, 나도 엽족이 강한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주인의 부친은 진짜 괴물이오.”
청삼남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엽족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청삼남이 엽족보다 강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엽족은 의경 정도는 벌레로 바라보는 강자니까!
“주군께서는 주군의 부친이 엽족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소!”
“그럼…….”
“자, 자! 그만! 아버지가 이기고 지고는 내가 고려할 게 아니오!”
“주군이 아니면 누가 그걸…….”
“당연히 아버지가 고려할 사안이지!”
엽현의 뻔뻔한 대답에 목성의 눈이 순간 커다래졌다.
“주군, 만에 하나 주군의 부친이 패한다면 그땐 어쩌실 겁니까?”
“음… 시체가 남아 있다면 우선 장례를 치러줘야겠지?”
“…….”
“주군께선… 효성이 참 지극하시군요.”
이 말에 엽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별수 없지 않소? 최후의 보루인 아버지가 쓰러지면 별수 있겠소? 그땐 다 죽는 거지. 하하하!”
“…….”
“주군께서는 벌써부터 진다는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오.”
“그럼…….”
“목성, 그대가 말 해 보시오. 내가 사람을 데려온다고 하니 그대는 절대 승산이 없다고 하지 않소? 그럼 내가 살려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겠소?”
“…….”
목성도자가 말이 없자, 엽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나도 미칠 것 같소! 지난번에도 어머니란 사람에게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그것도 엄청 강한 어머니가 죽이려고 달려드니, 나더러 어쩌란 건지 원…….”
말을 하며, 엽현은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에도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자신의 모친과의 문제는 오해를 풀고 난 뒤에 쉽게 해결됐다.
이는 친자식인 걸 알면서도 죽이려 덤비는 엽신의 모친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친모의 표적이 되는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보면 지나치게 우수한 것도 불운한 것이다.
세속의 황실에서도 친족 간 암투는 비일비재한 일.
하물며 그것보다 큰 권력을 가진 엽족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이 대목에서 엽현은 또다시 청삼남을 떠올렸다.
그는 최소한 자신이 더 강해지길 원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는 엽신의 모친보다는 훨씬 나은 부모였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때, 호수 근처에서 강대한 기운이 솟구쳤다.
엽현이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노인 하나가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의 노인은 이미 의경에 도달한 상태였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노인은 눈을 뜨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의경!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의경이 되고야 만 것이다!
“하하… 하하하…….”
노인은 참지 못하고 통곡과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노인이 엽현을 발견하더니, 곧바로 그에게로 달려가 고개를 숙였다.
“엽 공자! 고맙소! 정말 고맙소!”
“하하하! 고생 많았소! 축하하오!”
“별말씀을! 이게 다 모두 엽 공자 덕분이오!”
노인은 이제야 깨달았다.
때때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굽실거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엽현이 웃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할 계획이오?”
노인이 황급히 대답했다.
“물론 엽 공자 곁에 남아 끝까지 견마지로를 다 할 것이외다!”
엽현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이때, 또 다른 누군가가 돌파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호숫가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었다.
엽현이 주변을 둘러보니, 이들 외에도 이미 많은 자들이 돌파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앞으로 더 많은 의경 강자가 탄생할 것은 기정사실!
그렇게 되면 이 우주의 실력은 한층 더 강화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이유족에서 엽족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의경 강자라 할지라도 엽족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하니 엽현으로서는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죄다 의경이 된다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엽현 자신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가 지금 경지에 올라선 것은 고작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부친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약자의 신세로 되돌아 가버린 것이다!
이때, 불현듯 뭔가 떠오른 엽현이 작은탑을 소환했다.
엽현이 손안의 작은탑을 보며 물었다.
“꼰대도 젊은 시절에 이렇게 적이 많았어?”
“음… 주인은 너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비정상적으로 강한 적을 만난 적은 별로 없었어. 강해 봐야 주인보다 조금 더 높은 경지였지. 설령 아주 강하더라도 주인이 한 번 미쳐버리면 다 쓸어버리곤 했어. 그런데 너의 경우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지.”
“…….”
“히히, 너무 비관하지는 마. 주인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혼자서 다 해결하곤 했어. 그런데 너는 누워서 받아먹는 수준…….”
이때, 엽현의 안색이 변한 걸 본 작은탑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무, 물론 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을 만나니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긴 해! 하하….”
이때 엽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소탑, 아버지와 청아는 적으로 만났던 거야?”
이 질문에 작은탑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맞아… 그때 그 여자는 정말이지… 대단했어.”
“얼마나 대단했기에?”
“결과만 말하자면 주인을 피떡이 되도록 패 버렸지.”
“그런데 듣자 하니 청아는 그때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아버지가 그걸 막은 거라며?”
작은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엽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잘 이해가 안 가. 아버지는 청아의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녀를 막을 수 있었던 거지?”
“…….”
“왜, 이거까진 너도 몰라?”
잠시 고민 끝에 작은탑이 대답했다.
“저 멀리 은하계에는 ‘주인공 효과’라는 게 있어. 주인의 경우가 그런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