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09
1710화 집안일
대전 안.
달랑 영혼만 남은 승겁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바짝 조아린 그는 몸을 벌벌 떨며 처분을 기다렸다.
이때, 상석에서 내려온 엽릉천이 승겁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조, 족장!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승겁이 떨리는 음성으로 빌자, 엽릉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못?”
엽릉천이 천천히 대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긴, 그 상황에서 용단을 내리지 못한 것도 이해는 간다. 실은… 나도 가끔씩 그 아이가 그리울 때가 있었거든.”
이 말을 들은 승겁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언제는 죽이려고 했다가 이제는 그리워한다니, 세상에 이런 갈대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승겁의 속마음도 모른 채, 엽릉천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어갔다.
“지나치게 뛰어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모자의 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련만… 안타깝구나.”
이때, 엽릉천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승겁을 향해 손짓했다.
“그만, 나가 보거라.”
이 말에 벌떡 일어난 승겁이 황급히 예를 차리고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의 그는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승겁이 사라진 이때, 엽릉천의 뒤편에서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가씨,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이에 엽릉천이 웃으며 물었다.
“추노(醜奴), 네 생각에 내 사랑스러운 아드님께서 이제 어찌 나올 것 같으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모르겠습니다.”
“후후, 나 역시 몹시 궁금하구나.”
“분부만 내리신다면 제가 그의 생각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바로 이때, 그림자 하나가 엽릉천 앞에 나타났다.
“보고 드립니다! 여, 엽신이… 영생계 입구에 나타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엽릉천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 발로 찾아오다니! 재밌구나! 너무나 재밌는 아이야! 하하하…….”
엽신이 영생계를 찾아왔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영생계 전체에 퍼졌다.
그 옛날, 영생계의 전무후무한 천재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은 영생계를 발칵 뒤집기에 충분했다!
영생문 입구.
엽현의 발밑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시신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도무 영생계로 가고자 했던 강자들이었다.
가장 경지가 낮은 자는 의경이고 주경 또한 적지 않았다.
이 시체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건 바로 이 우주와 영생계의 실력 차가 확연하다는 것이었다.
이때, 갑자기 사방에서 은밀한 기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자, 엽현 곁에 있던 목성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사인위(死人衛)! 그 여자의 친위대입니다.”
“일단 진정하시오.”
목성은 여유 있는 엽현의 표정을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인위 무인들 역시 엽현 일행을 포위하기만 한 채 더 이상의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영생문이 활짝 열렸다.
이를 본 엽현이 곧장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엽현과 일행은 영생문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바로 이때,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불어 닥치면서,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엽현을 보자마자 느닷없이 돌진해 왔다.
엽현이 영생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이때, 엽현이 흑의 노인을 가리키며 일갈을 터트렸다.
“건방지구나!”
쾅-!
천둥 같은 그의 목소리가 순간 성역 전체를 뒤흔들었다.
순간, 위압감을 느낀 노인은 두려움의 기색을 보이며 자리에 멈춰 섰다.
엽신!
당시 엽신은 이미 무인으로서 엽릉천을 뛰어넘은 바 있었다.
비록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엽족의 무인이었던 노인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뒤이어 엽현이 근엄한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우리 모자 사이의 일에 감히 끼어들려 하다니! 썩 비키지 못할까!”
모자 사이의 일!
순간,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는 혈육 간에 벌어진 사건이 분명했다.
이런 일에 과연 외부인이 끼어들 소지가 있을까?
노인은 매우 난처했다.
왜냐하면 엽족 족장은 이에 대해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죽여야 하나? 아님 들여보내야 하나?’
노인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경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엽현은 점점 영생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짧은 순간, 흑의 노인은 몇 차례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걸 어쩌지? 막아야 하나?’
바로 이 순간, 엽현이 갑자기 속도를 끌어 올리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영생문 안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도일 등이 영생문을 통과했다.
노인은 결국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 아무도 없는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영생계에 진입한 엽현은 주변을 둘러 보며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곳의 영기는 외부에 비해 최소 백 배 이상 풍부했던 것이다.
백 배!
단순히 계산하자면, 이곳에서 하루 수련한 것이 바깥에서 백 일 수련한 것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다!
도일 역시 짙은 영기를 느끼고서 안색이 크게 변한 상태였다.
이런 영기를 소유한 엽족은 얼마나 강할까?
이곳의 다른 세력들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이 정도 영기라면 아무리 재능이 없는 무인이라도 충분히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은가!
도일은 근심 어린 눈빛을 담아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풍족한 영기를 보유한 엽족을 상대로 도대체 어떻게 싸우겠다는 걸까?
한편, 목성과 아비도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표정이었다.
수만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영생계.
풍경은 여전하지만, 그 안의 사람은 그렇지 않으리라!
이때, 목성이 뭔가 떠오른 듯 황급히 말했다.
“주군, 소족(蕭族)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소족?”
목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족은 영생계 최강의 세력으로, 유일하게 엽족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소족으로 가셔서 비호를 요청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목성, 주변을 돌아보시오.”
이 말에 목성이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의도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오. 하지만, 우리가 소족에 투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지체 없이 달려들 게 분명하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엽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작전대로 엽족으로 갈 거요.”
“엽족! 진심이십니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엽족으로 간다면 저들도 출수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일단 엽족에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하하, 지금도 빠져나가긴 틀린 것 같소만?”
“…….”
“별 수 있겠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는 수밖에. 자, 안내하시오. 엽신이 나고 자란 곳이 어떤 곳인지 구경해보고 싶구려.”
“…알겠습니다.”
목성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 걸어갔다.
엽현과 도일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편, 엽현 일행을 지켜보고 있던 강자들은 다소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방향은 엽족이 아닌가!’
당황한 것은 다른 세력의 무인은 물론 엽족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엽신이 도대체 왜 엽족으로 향하는 걸까?
이때, 무인들 중 한 젊은 남자 하나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흥미진진해지는군!”
남자 뒤에는 백의를 입은 여인이 말없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왼편 가슴에는 작게 ‘蕭(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소족의 무인들이었다.
이때, 말없이 엽현을 응시하던 백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저자가 정말로 영생계 최강이라던 엽신이 맞는 건가? 그렇게까지 강해 보이진 않는데?”
이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건(乾)아,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당시 엽신의 실력은 젊은 세대 내에서는 물론 영생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강으로 불릴 정도였다. 더욱이 그가 임연산(臨淵山)에서 세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지.”
임연산!
이 말에 백의 여인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당시 엽신에 대해서는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우리 소족 어르신들조차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엽족이 영생계 최강의 세력이 된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나치게 우수한 나머지 화를 입었지…….”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엽족의 일은 소수의 경우라고 봐야겠지. 자식이 더 강해지길 원치 않는 부모의 경우는…….”
남자는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줄였다.
비록 소족이 영생계 최강인 건 맞지만, 엽족 족장에 대해 함부로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엽족 족장인 엽릉천은 영생계에서 가장 잔혹하기로 소문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고자 했던 여자를 누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이러는 와중에 엽현 일행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둘째 오빠, 저자가 왜 엽족에 가는 거 같아?”
“그건 나도 몰라.”
“족장이 이 일에 개입하려 할까?”
“후후,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긴 좀 그렇지. 일단은 지켜보지 않을까 싶구나.”
이때, 남자가 오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의 가슴 왼편엔 ‘古(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족(古族).
영생계 사대가문 중 하나인 고족이었다.
남자는 상대를 향해 가볍게 예를 차렸다.
“고열(古烈) 형께서도 오셨구려.”
이에 고열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결(蕭訣) 형, 소족의 입장은 어떻소?”
“하하, 엽족 내부의 일이니만큼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요. 그렇지 않소?”
“음… 반드시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소. 만약 저들이 엽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면 영생계의 세력판도가 바뀔 수도 있소.”
“하하, 고 형도 참. 농담이 지나치시구려. 그럴 리가 있겠소?”
소결의 말에 고열이 진중한 태도로 답했다.
“농담이 아니오. 만에 하나란 게 있지 않소?”
“고 형, 당시 엽족은 내전으로 인해 수만 명이 죽어 나갔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순간, 소결의 표정이 딱딱해지면서, 그의 입가에 있던 웃음기 또한 사라졌다.
이에 고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엽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대들 소족 또한 잘 알고 있을 거요. 만약 저들이 엽신을 받아들인다면 영생계 제일이라는 소족의 지위도 어쩌면 위태로워질지 모르겠구려! 하하…….”
고열은 웃음소리를 남긴 채 퇴장했다.
한편, 자리에 남은 소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엽족.
목성의 인도 하에 엽현 일행은 어느덧 엽계(葉界)에 도착했다.
엽계는 영생계 내에서 독립적으로 떨어진 공간으로 이곳의 영기는 오직 엽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엽계 안에 발을 디딘 순간, 일행의 앞에 거대한 고성이 나타났다. 길이가 거의 천 리는 될 법한 고성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허공에 고요히 떠 있었다.
엽성(葉城)!
일행은 엽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반기는 것은 성문 위에 대롱대롱 달린 열아홉 구의 시체였다.
시체들은 훼손 상태가 심각했고, 몸 여기저기에는 붉은 못이 박혀 있었다. 심지어 발밑에는 뜨거운 불까지 놓인 상태였다.
이 모습을 보자 엽현 곁에 있던 목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주군, 저들은 당시 주군을 따르던 열아홉 명의 신장입니다.”
[지독하군!]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수신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저들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하지만 영혼은 시체 안에 갇혀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저 정도 고통이라면 아무리 나라도 견디기 어려울 듯싶구나.]바로 이때, 시체로 보이던 자들 중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엽현을 발견한 남자는 잠시 몽롱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주군…….”
이때, 나머지 열여덟 명의 사람들 또한 하나둘 눈을 뜨더니, 엽현을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이곳에서 시체가 되어 고통을 받은 지, 수 만 년.
영혼이 찢겨 나갈 것 같은 고통에도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었다.
그런 이들이 엽현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