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15
1716화 일석이조!
대전 안.
모자의 소리 없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잠시 후, 엽릉천이 표정을 풀며 말을 꺼냈다.
“정말이지 효자를 아들로 두었구나.”
“하하… 어머니께서도 대단하십니다.”
잠시 엽현을 응시하던 엽릉천이 피식 웃고 말았다.
“자, 우리 얘기는 그만하고 친구들이나 좀 만나 보거라.”
엽릉천이 말한 순간, 대전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명, 안란수를 포함한 엽현의 여인들이었다!
엽현은 아직까지는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엽릉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표정이구나. 그럼 이건 어떨까?”
엽릉천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또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이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엽현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척발언!
“후후, 정말이지 이렇게 어여쁜 색시를 그런 촌구석에 숨겨 놓다니… 실망스럽구나.”
“…….”
엽릉천은 척발언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들고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독수공방하게 둘 순 없지. 오늘부터 이 아이는 우리 엽족에서 지내게 될 게다. 네가 바깥일을 하는 동안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참, 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하하… 인질로 삼겠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음? 누가 인질이란 말이냐? 이 어미가 다 널 생각해서 하는 일인데.”
엽현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됐습니다. 원래 강한 사람의 말은 다 맞는 법이죠.”
“훗, 비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과연 내 아들다워.”
“일단 그 이야기는 됐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시죠. 이미 혁랍족 소유의 광맥을 빼앗았으니, 약속대로 사람을 풀어 주십시오.”
순간, 엽릉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혁랍족이 무슨 생각으로 네게 광맥을 거저 넘겼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이 어미가 매우 궁금하구나.”
엽릉천의 물음에 엽현이 진중한 태도로 되물었다.
“혁랍언 소저를 아십니까?”
“물론! 당초 내 며느리가 될 뻔한 아이가 아니더냐?”
“그 여자는 여전히 절 잊지 못하고 있더군요.”
잠시 멍하니 엽현을 바라보던 엽릉천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대단해! 아주 대단해!”
“어머니에 비하면 아주 멀었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십시오.”
순간, 엽릉천이 웃음을 뚝 그치고 가볍게 손뼉을 두드렸다. 그러자 대전 안에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름 아닌 축언이었다.
이때 엽현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열아홉 명 전부!”
“음? 내가 언제 전부 풀어주겠다는 말을 했었느냐?”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려는 겁니까?”
엽릉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속을 하긴 했지만, 언제 풀어주겠다는 말은 없지 않았느냐? 그 반역자들은 때가 되면 모두 풀려 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엽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흘러나왔다.
“대단하시군요!”
“후후, 피차일반이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습을 본 엽릉천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왜 갑자기 한숨이냐?”
엽현이 엽릉천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머니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강하고 지략이 뛰어난 효웅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엽현은 말을 끝맺지 않고 재차 한숨을 쉬었다.
“후후, 실제로는 뭐 어떻단 말이냐?”
엽현이 다시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이런 세상에서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당시의 저는 어머니께 패배를 인정하고 약속대로 영생계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말장난이나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 그런 식으로 자극해 봐야 소용없다.”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냥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린 겁니다. 신용이 없는 상대는 존중할 가치가 없습니다. 고로, 제 마음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엽현은 척발언 등을 흘끔 쳐다보았다.
“친구들을 인질로 잡아 왔을 때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속이 깨진 지금, 더 이상 어머니와 마주 보고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군요.”
말을 마친 엽현은 손을 펴 가슴을 활짝 내밀었다.
“죽이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비극의 결말을 맺읍시다!”
“…….”
엽릉천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엽현을 응시했다.
“재밌구나…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났어. 어디, 네가 앞으로 얼마나 더 날 놀라게 할 수 있는지 기대하겠다.”
엽릉천이 곁에 있던 추노를 향해 손짓했다.
“풀어줘라!”
추노는 엽현을 흘끔 쳐다보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퇴장했다.
잠시 후, 열여덟 명의 신장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축언을 포함한 이들은 곧바로 엽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 됐으니 모두 일어나시오.”
이 말에 무인들이 바로 일어나 엽현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엽릉천이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있다. 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하하, 모자 사이에 무슨 부탁입니까? 일단 말씀해 보십시오.”
엽릉천이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생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영생지기다. 하지만 이것 또한 영원하진 않지. 당시 우리를 포함한 네 부족과 두 개의 종문은 마가신족을 몰아낸 후 영생원천(永生源泉)을 장악하게 됐다. 영생원천… 바로 영생계의 핵심이지.”
“영생지기의 근원이 영생원천이란 말입니까?”
엽릉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우리는 영생원천을 두고 한 가지 합의를 도출했다. 매 십 년마다 각 세력의 젊은 무인들끼리 비무를 하게 한 후, 그 결과대로 영생지기를 분배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서로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영생지기를 분배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엽족의 젊은 것들이 변변치 않은 탓에 우리에게 떨어지는 영기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그건 그때 당시 어머니께서 재능 있는 무인들의 씨를 말려 놓아서…….”
“…….”
“하하, 제가 실언을 했군요. 용서하십시오!”
엽릉천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화나지 않았다. 네가 한 말은 엄연히 사실이니까. 당시 널 제거하기 위해 널 따르던 젊은 무인들을 불가피하게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인재가 등장하지 않을 줄은 몰랐구나.”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을 텐데 굳이 절 제거하셔야 했습니까?”
엽현의 물음에 엽릉천이 피식하며 대답했다.
“내가 족장이 아닌데, 엽족이 우주 제일이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대단하십니다.”
엽현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엽릉천에게 있어 엽족의 안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지독한 여자!’
“후후, 어쨌거나 영생지기를 건 비무가 곧 시작되려 한다. 어미의 소원은 네가 비무에서 우승하여 엽족에게 가장 많은 양의 영생지기를 안기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음… 조건을 걸어도 되겠습니까?”
“일단 이야기 해 보거라. 받아들일지는 들어보고 결정할 테니.”
이에 엽현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도 알다시피 지금 제 경지는 겨우 입신경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로는 다른 상대를 제치고 우승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제가 의경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지원 해주십시오. 엽족 같은 거대 세력에게 이 정도는 부담될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하하, 원래는 주경까지 지원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만, 어머니가 겁을 집어먹을까 싶어 의경으로 낮춰 드린 겁니다.”
이 말에 엽릉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겁을 먹어? 내가? 하하하! 재미난 말을 하는구나! 네 말대로 의경까지 지원해 주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속임수를 쓰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구나. 솔직히 말해 내가 널 어찌 믿겠느냐?”
“하지만 어떤 잔머리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뜬구름일 뿐이죠. 그렇지 않나요?”
엽현이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엽릉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니 더욱 의심스럽구나. 이건 대놓고 음흉한 수를 쓰겠다는 뜻이 아니더냐?”
엽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럼 죽이십시오. 그렇게 불안하면 이 자리에서 죽여서 후환을 없애면 될 일 아닙니까?”
엽릉천이 엽현을 흘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한 번 죽였으면 됐지, 두 번은 못 하겠구나. 이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느냐?”
엽현은 비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이 여자가 슬프다는 감정을 알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친자식은 물론 남편까지도 서슴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냉혈한이 아닌가!
남편!
엽현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엽신의 친부는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이 여자가 자신이 족장이 되기 위해 살해한 건 아닐까?
바로 이때,
“데려가서 원하는 대로 해 주거라!”
엽릉천이 말을 하자마자 노인 하나가 엽현 앞에 나타났다.
“…따라오시오.”
이때 엽현이 엽릉천을 향해 말했다.
“하나 더 드릴 청이 있습니다.”
“…뭐지?”
“제 친구들도 같이 승급하도록 해 주십시오.”
엽릉천이 안란수 등을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이유는?”
“저 여자들은 다 며느릿감 후보들입니다.”
“…….”
엽릉천은 잠시 말없이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결국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대단하구나.”
“하하, 들어가는 자원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비무에 나서야 하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도 되지 않습니까?”
이 말에 엽릉천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내가 경험한 자들 중에 너처럼 말을 잘하는 놈은 처음이로구나. 그때도 이랬더라면 죽음까진 이르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구나!”
엽릉천이 노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모두 데려가서 경지를 돌파할 수 있게 준비해 주거라.”
“예, 족장!”
이때, 엽현이 다시 소리쳤다.
“한 가지 더! 마지막 부탁입니다. 어머니의 부하들이 제게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족장의 아들인 제게 왜 다들 하대를 하는 것입니까? 엽족을 대표하여 영생지기를 쟁취하러 가는 제게 좀 더 예를 갖춰 대우하도록 해 주십시오!”
엽릉천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일러두겠다.”
엽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수련을 하러 떠나겠습니다.”
말을 마친 엽현은 안란수 등과 함께 대전을 벗어났다.
엽릉천의 시선은 멀어져가는 엽현에게 고정돼 있었다. 엽현이 사라지자 그녀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때, 대전 어딘가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의도인지 전혀 감이 가지 않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훗, 이래야 지루하지가 않지.”
엽릉천은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죽는 건 변함이 없다. 그 곁에 있는 계집들도 마찬가지고.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추노가 그 여자를 발견했을 텐데…….”
* * *
신허.
이 시각, 신허에 도착한 추노는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으나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한쪽을 응시하던 그는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뇌전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주변의 성공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져 나갔다.
대략 한 시진을 내달렸을 때, 추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음?”
순간적으로 자리에 멈춘 추노.
그는 오른편에 있는 어느 미지의 성역에서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흰 소복을 입은 여인!
‘찾았다!’
순식간에 신형을 옮긴 추노는 곧바로 여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추노는 여인 곁에 청삼을 입은 남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왼쪽 어깨에는 작고 하얀 존재가 있었고, 곁에는 또 다른 여인 하나와 머리에 뿔이 나 있는 소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청삼남이 추노의 등장을 의식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불청객이 왔군. 검맹 가입 건에 대해선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합시다.”
말을 마친 청삼남이 추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혹시 내 사랑하는 아들놈이 또 사고를 친 걸까? 미리 말해 두건대, 나는 녀석이 무슨 짓을 했건 관련이 없소. 그러니 따지려거든 녀석에게 직접 따지시오.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테니까.”
“…….”
추노는 청삼남과 소복의 여인을 번갈아 응시하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놈의 부친까지 한자리에 있다니… 이걸 보고 일석이조라 하던가!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