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17
1718화 천하의 효자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의 수련으로 엽현은 마침내 초신경(超神境)에 도달했다.
안란수와 아명 등 역시 경지를 돌파하기 위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방을 벗어난 엽현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딘가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것은 어느 장원이었다.
엽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축언과 목성 등, 수련 중이던 무인들이 일제히 예를 차렸다.
“축언, 이제 좀 어떻소?”
엽현의 질문에 축언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몸은 거의 회복 되었습니다만… 경지가 지나치게 뒤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저희의 실력은 엽족 평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축언은 상당히 낙심한 상태였다.
엽릉천이 축언 등을 이렇게 쉽게 풀어 준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했다.
이들의 전력은 그녀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둘째 치고, 예전과 같은 병권(兵權)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이때, 엽현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소. 어차피 그대들이 목숨을 걸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오.”
“주군, 무슨 계획이라도?”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획이 뭐가 있겠소? 어머니에 비해 실력도 없고 인원수도 적은데 딴마음을 품는 게 가능하겠소?”
“설마… 족장에게 굴복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하하, 그런 걱정은 내게 맡기고, 그대들은 열심히 수련이나 하시오. 아시겠소?”
엽현이 아비도와 목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들 두 사람도 마찬가지요!”
말을 마친 엽현은 그대로 장원을 빠져나갔다.
축언 등은 멍하니 엽현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들을 그다지 신뢰하진 않는 모양이로구나.]장원을 나선 엽현의 머릿속에 수신의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왜 그리 말씀하십니까?] [느낌이 그렇다. 시종일관 너는 저 열아홉 무인들을 그리 믿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는구나.]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조심하는 것뿐입니다. 시간이 지났으니 사람이 변할 수도 있지요. 만약 예전의 마음이 변치 않았다면 좋은 결말을 얻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여기까지 말한 엽현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기왕 다시 살게 된 거, 저들이 좋은 결말을 얻길 바랍니다.] [후후, 난 여전히 네게 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 놈이 얼마나 음험한지 지켜봐 왔기에… 다음에 벌어질 상황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이 말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최선을 다할 거라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하하하! 젊은 놈이 늙은 놈을 이기려면 원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 [하하…….]깊게 숨을 들이켠 엽현은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보았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이 말과 함께 엽현은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모처의 대전 안.
엽릉천이 잠잠히 자리에 앉아 있다. 그녀의 앞에는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흑의노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바둑판을 보며 대국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돌을 내려놓은 엽릉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수련 외에 수상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후후, 그렇게나 여유롭다고?”
흑의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여유로워서 비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후후, 이 귀여운 아드님께서 또 무슨 못된 짓을 꾸미는 걸까?”
이때, 노인이 돌을 탁 놓으며 말했다.
“죽여야 합니다.”
“흠…….”
엽릉천은 말없이 잠시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자는 당시의 엽신이 아닙니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 엽릉천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확실히, 엽현은 당시의 엽신과는 매우 달랐다.
만약,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인다면 언제든 엽족을 전복시키려 들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이는 곧 어떤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당장 죽여서 후환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엽릉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비무 후에 죽일 생각이었다.”
“정말이십니까?”
엽릉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영생계 내에서 엽족의 지분을 높여야 한다. 지금의 형국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혁랍족과 소족이 연합할 게 분명하니까. 즉, 당장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일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그 아이는… 비무 때까지만 이용하고 제거하는 것으로 하겠다!”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엽릉천은 대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추노는 그 여자를 찾았을지 모르겠군…….”
한 달 후, 엽현은 엽족의 지원 아래 멸신경에 도달했다.
엽현의 입장에서는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경지를 돌파하는 속도가 엄청났던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 출생 신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영생계의 엽족에서 태어난 것과 청성에서 태어난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은가!
즉, 누군가의 종착점은 누군가에게는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
생각을 거둔 엽현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때, 그림자 하나가 엽현 앞에 불쑥 나타났다.
“족장이 찾으십니다.”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시오.”
엽현은 그림자를 따라 엽릉천이 있는 전각에 도착했다.
엽현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엽릉천은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역시, 예상대로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구나!”
엽현은 대답 없이 곧바로 엽릉천 앞에 착석했다.
“소족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 누굽니까?”
엽릉천이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
“소건.”
소건!
엽현은 기억 속에서 당시 소족 족장 옆에 있던 소녀의 모습을 끄집어냈다.
그때는 몰랐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서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경지는? 의경입니까?”
엽릉천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의경은 무슨… 주경 절정이다. 아니, 시간이 흘렀으니 반보 임계경(臨界境) 정도는 충분히 되었을 게다.”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임계?”
“후후, 주경은 시간을 실질화해 시간장화(時間長河)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지다. 임계경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시차원의 극한, 다시 말해 시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는 상태지.”
엽현은 점점 더 호기심을 보였다.
“시간임계라는 게 무엇입니까?”
이에 엽릉천이 말 대신 손을 펼쳤다가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으로 한 줄기 작은 은하수가 펼쳐졌다.
“이게 시간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엽릉천이 이번에는 가볍게 손을 쥐었다.
순간,
쾅-!
시간장하가 순식간에 수축되면서 마치 하나의 모래 알갱이처럼 변했다.
이 모습에 엽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때, 엽릉천이 손가락을 내밀자, 알갱이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 달라붙었다.
“후후, 이 상태에서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이 우주는 사라진다.”
순간, 엽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나 대단한 힘이란 말입니까?”
엽릉천은 소매를 펄럭여 알갱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뒤이어 그녀는 엽현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힘도 존재한다. 보겠느냐?”
엽현은 문득 이 여인이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하,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를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 말에 엽릉천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소건 외에 조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고족의 고사(古史)라는 놈이다. 정보에 의하면 고사는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비무는 고족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웅크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혁랍족과 양종(兩宗) 또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비무 대회에는 언제나 의외의 변수가 나타나곤 했으니까. 물론, 네가 있었던 시절엔 변수 따위가 있을 수 없었지만.”
엽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제가 우승한다면 무엇을 보상으로 얻습니까?”
“영생.”
“영생지기?”
“후후, 그렇다.”
“음, 그렇다면 무조건 우승해야겠군요.”
“앞으로 한 달 후면 비무대회가 시작한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도록 하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대전 문을 나섰다.
엽릉천은 엽현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시선을 놓지 않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추노의 소식은?”
엽릉천이 조용히 말하자, 그녀 뒤쪽에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게 틀림없겠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후후, 내가 조금 방심했던 모양이야.”
“허락하신다면 제가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이에 엽릉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 녀석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흑의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노인은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갔고, 대전은 침묵에 휩싸였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엽현은 곧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무언가를 골몰하던 엽현은 한 시진 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리로 나온 엽현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의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엽족의 강자들은 엽현을 제지하지 않았다.
엽현이 엽족을 대표하여 비무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엽족 무인들은 엽현에 대한 엽릉천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로는 화기애애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좀처럼 뭐가 진실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엽현은 자기 자신을 소족장이라 칭하고 다니니, 엽족 무인들의 머릿속은 더욱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엽족 내의 사람들은 대부분 엽현을 한 번씩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비무 날이 밝아왔다.
이날, 영생계의 사대 세력과 두 개의 종문이 영생곡(永生谷)이라는 곳에 모여들었다. 영생곡은 바로 영생원천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영생계의 모든 세력은 각각 강자를 보내 이 영생곡을 공동으로 지켜오고 있었다.
영생곡 상공, 엽릉천은 표정 없는 얼굴로 영생곡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엽현과 허리춤에 도를 찬 흑의 노인이 있었으며, 한 무리의 엽족 강자들이 뒤편에 포진 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엽천과 엽간도 있었다.
이때, 엽릉천이 웃으며 운을 뗐다.
“영생원천은 언제 봐도… 매우 탐스럽구나.”
이에 곁에 있던 엽현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오늘, 이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우승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어머니!
장내에 있던 무인들은 엽현의 이 한마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정면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노인 하나가 엽릉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소족 족장 소천(蕭天)이었다.
엽릉천을 발견한 소천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엽 족장,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러는데 오랜만에 그대와 놀아보고 싶구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소천이 소매를 펄럭였다.
찰나의 순간, 소천과 엽릉천을 둘러싼 공간이 순식간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시공이동!
엽릉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격하려는 순간, 또 다른 무인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혁랍족의 족장, 혁랍염(赫拉廉)이었다!
혁랍염이 가볍게 손을 저은 순간, 세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엽족 무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엽현 곁에 있던 흑의노인이 엽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놈! 네가 외인과 결탁해 엽족을 치려는 것이로구나!”
이에 엽족 무인들이 일제히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오히려 흑의노인을 향해 일갈을 터트렸다.
“그녀는 내 친모시다! 내가 무슨 이유로 어머니에게 위해를 가한단 말이냐! 배신자는 바로 네 놈이 아니냐!”
엽현은 곧바로 돌아서서 엽족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 엽신은 목숨을 잃을지언정 어머니를 거역하지 않았소! 내가 무슨 이유로 외부 세력과 결탁한단 말이오? 나 같은 효자를 두고 배신자라고 하는 놈이야말로 배신자가 아니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