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31
1732화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멸망전!
이 말을 들은 순간, 이성과 검치는 몸에 전율이 흘렀다.
선전포고와 멸망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전자는 화해나 항복의 여지가 있는 반면, 후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 한쪽이 죽어야만 끝이 나는 것이다!
이성은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검치를 바라보았다.
이에 검치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검맹의 모든 무인들은 소주의 명령을 따른다. 소주가 무슨 명령을 내리든 나를 통할 필요 없이 즉시 이행하도록 한다. 알겠나?”
순간 멍하니 있던 이성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말을 마친 이성이 손을 펼치자, 한 줄기 검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잠시 후.
제천성 한쪽에서 무수히 많은 검광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신궁이 있는 쪽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우리도 신궁으로 갑시다!”
엽현의 말에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십시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검치가 어검을 타고서 어딘가로 신형을 날렸다.
엽현 등 나머지 일행 역시 재빨리 검치의 뒤를 쫓았다.
목표는 다름 아닌 신궁이었다.
* * *
멸망전!
검맹의 악이 바짝 오른 선언에 제천성 내의 나머지 세력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검맹과 신궁이 아옹다옹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툼이 있을 때마다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 물러나면서 극단은 피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검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즉시 멸망전을 선포했고, 이는 제천성의 다른 세력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검맹과 신궁은 이 근방의 우주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여겨졌다. 이들이 죽기까지 싸운다는 건 그야말로 제천성에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천행전.
대전 중앙에 서 있는 백의, 그녀 정면에는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검은 치마에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긴 흑발을 지녔고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에는 별빛 같은 총기가 가득한 여인이었다.
교어(喬語)!
여인은 다름 아닌 천행전의 현 전주였다.
이때, 교의가 백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네가 보기에 소주가 어떤 것 같으냐?”
백의가 어렵게 물었다.
“어떤 부분에 대한 질문입니까?”
“전부!”
이에 백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많은 것을 알아낼 순 없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교의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수고했다. 나가 보거라.”
가볍게 예를 차린 백의는 그대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백의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의가 떠난 후, 미부 하나가 대전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교의를 향해 말했다.
“원래라면 지금이라도 소주를 영접하러 가는 게 맞다.”
이때, 교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문 바로 앞에 기대어 선 그녀는 미소로 하늘을 응시했다.
“임마마(林嬤嬤), 그대는 내가 그를 천행전으로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길 바라시오?”
임마마라 불린 여인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검주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라는 전대 전주의 교지가 있지 않았느냐?”
교의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져갔다.
“하지만 지금 온 자는 검주가 아니지 않소?”
“검주령을 지닌 자는 검주와 동일하게 대접하는 것이 관례다. 게다가 그는 검주의 혈맥이 아니더냐!”
교의가 임마마를 향해 휙 돌아섰다.
“임마마, 천행전이 이만큼 발전하기까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소. 전주인 내가 남에게 고개 숙이는 짓은 나는 물론 다른 장로들 또한 달가워하지 않을 일이오!”
임마마가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약속을 어기자는 것이냐?”
“그렇소!”
완강한 교의의 태도에 임마마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궁주가 검주에게 신복했던 사정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천행문은 그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그런 은혜라면 그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으로 모두 갚았소!”
“…….”
“임마마, 천행전이 오늘날의 규모로 성장한 것은 모두 앞서간 선조들의 노력이 때문이었지, 다른 이의 도움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오. 게다가 겨우 스무 살짜리 애송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소?”
“교의,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검주는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를 주인으로 삼은 것 또한 우리의 선택이었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검주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시 맹세를 했던 선조들의 결정에 반하는 행위다.”
교의가 임마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선조는 선조고 우리는 우리요!”
임마가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만 묻자. 지금의 천행전이 강한 것 같으냐? 그 당시의 천행전이 강한 것 같으냐?”
교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의 천행전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천행전에는 적어도 열 명이 넘는 등천경 강자가 있었고, 심지어 전주는 등천경을 초월한 존재였다.
반면, 현재 천행전이 보유한 등천경 강자는 고작 넷밖에 되지 않는다.
임마마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나 강성했던 천행전도 결국 검주에게 고개를 숙였거늘, 너는 무슨 배짱으로… 휴, 아니다. 지금은 네가 천행전의 주인이니 네 결정대로 따라야겠지.”
말을 마친 임마마가 돌아섰다.
이때, 교의가 뒤에서 소리쳤다.
“상고천계의 상고천족이 이미 검맹에 선전포고를 했소! 그들의 목표는 소주를 죽이는 것이오!”
이 말에 임마마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교의가 말을 이어갔다.
“신궁 역시 그들의 편에 섰소!”
순간, 임마마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서? 설마 그들과 손을 잡겠다는 게냐?”
이에 교의가 씩 웃으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편지 한 장이 임마마 앞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우리에게 내민 조건이오!”
편지를 낚아챈 임마마가 빠르게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요약하자면, 상고천족을 돕는 대가로 영생원천 하나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영계 급 영생원천을!
제천성에는 오직 한 줄기의 영생원천이 존재했다. 그마저 모든 세력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계 급 영생원천을 제공하겠다니!
이런 제안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임마마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영계 급 영생원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영생원천을 보유하는 순간, 천행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고수들을 배출해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강자들을 끌어오는데도 더욱 유리하다.
즉, 한 줄기의 영생원천을 보유하는 것은 천행전의 수준이 한 단계 이상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들렸느냐?”
교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미 마음을 먹은 것이냐?”
교의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자, 임마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느냐?”
교의가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오. 나의 행위가 선조들의 맹세로 이룬 선인(善因)을 악인(惡因)으로 바꿀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소. 잘못되면 엄청난 보복을 당할 수 있는 모험이란 것도. 필경, 검주의 실력을 제대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 말이오.”
“…그런데도 그 위험을 감수하려 한단 말이냐?”
교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오. 상고천족은 이미 신궁을 포섭했고, 제천부와도 접촉하고 있소. 만약, 여기서 뒤처진다면 향후 백 년 이내, 천행전은 다른 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오. 게다가, 상고천족이 노리는 것은 엽현 만이 아니오.”
임마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이 뭘 계획하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다만, 네가 하는 어떤 결정이 천행전의 운명을 영영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만큼은 명심하길 바란다. 덧붙여 한 가지 조언해줄 게 있다. 듣기 싫겠지만 그래도 듣거라.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좋고, 도와주지 않아도 좋지만, 다른 자들과 손을 잡고 공격하는 일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스스로 고민해 보도록 해라!”
말을 마친 임마마는 곧장 대전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교의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꼰대라니까.”
교의는 고개를 들어 대전 밖을 응시했다.
“그 한 번의 맹세로 도대체 얼마나 우려먹을 셈인지… 당시의 전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 * *
성주부.
이날, 젊은 남자 하나가 화원을 가로질러 성주부 뒤편에 있는 장원에 도착했다.
장원 안에는 삼베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대청마루에 누워 하릴없이 뒹굴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손에는 작은 주전자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이때, 장원으로 들어온 청년이 노인 앞에 서서 공손히 예를 차렸다.
“할아버님!”
노인은 눈조차 뜨지 않은 채, 주전자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겨우 대답했다.
“소주를 보았느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음, 그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할아버님, 상고천족에서 솔깃한 제안을 보내왔습니다. 검맹을 견제해 준다면, 영계 급 영생원천 두 줄기를 내어 준다는군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
대답이 없자, 노인이 눈을 뜨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미 넘어갔느냐?”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흔들렸다면 어쩔 수 없지. 네 뜻대로 하거라!”
노인이 예상외의 반응을 보이자, 남자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노인은 그저 주전자를 들이킬 뿐이었다.
“할아버님,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검주는 여전히 제천성의 부성주 신분이지 않습니까?”
노인이 한숨을 토해내더니, 주전자를 놓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놈아, 아직 이익에 완전히 눈이 먼 것은 아니라 다행이구나! 혹시라도 상고천족 쪽에 붙겠다고 했으면 당장 호적에서 이름을 파내고 임가에서 쫓아내려 했다!”
화들짝 놀란 남자는 황급히 노인의 뒤로 돌아가 열심히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할아버님, 그래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에 노인이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내가 네 나이쯤 됐을 때, 운이 좋게도 검주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 네 조부께서 검주를 어떻게 대했는지 아느냐?”
“어찌 대하셨습니까?”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게다. 그분께서 다른 이 앞에서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너는 검주가 어떻게 부성주가 되었는지 아느냐?”
“…모릅니다.”
순간, 노인의 표정에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네 조부께서 무릎을 꿇고 빌어서 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남자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노인은 말을 이어갔다.
“검주는 아무 짐도 지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네 조부의 끈질긴 간청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지. 대신 검주는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바로, 검주령을 지닌 자가 방문하면 조금 편의를 봐 달라는 것이었지. 여기에 네 조부가 뭐라 대답했는지 아느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조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만약, 검주령을 지닌 자가 원한다면, 우리 제천부는 목숨까지도 내어 줄 것이라고!”
목숨까지 내어준다!
“덧붙이자면, 당시 네 조부는 이미 등천경을 초월한 경지였다.”
이 말에 남자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노인은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검주령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한데, 내가 살아 있을 때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검주령을 가져온 자가 검주의 아들일 줄이야…….”
노인은 주전자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너는 당장 가서 외부에 나가 있는 제천부의 무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거라! 하루 내에 돌아오지 못하는 자는 영영 제천부에서 제명할 것이다! 또한, 폐관 중인 장로들에게도 출관을 명령하거라! 참, 그리고 너는 상고천족에게 우리 제천부가 그들과 손을 잡을 것처럼 말을 전하거라.”
이 말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할아버지, 그 말씀은…….”
노인이 남자를 한 번 흘겨보고는 설명했다.
“바보 녀석! 같은 편에 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등에 칼을 꽂으면 놈들이 얼마나 당황하겠느냐? 상상만 해도 짜릿하구나!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