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35
1736화 그깟 파리 몇 마리 잡는데
대전 안, 모두의 시선이 엽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엽현 역시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검도의지가 왜 갑자기 자신의 몸으로 들어간 걸까?
혹시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하려는 걸까?
검맹의 검수들이 검도의지를 신물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냐!’
엽현은 점점 머릿속이 새하얘져 갔다.
이때, 검치가 입을 열었다.
“검도의지는 검주께서 남기신 것, 우리는 그저 보관만 하고 있었을 뿐…….”
말과 달리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 차 있었다.
엽현은 고개를 들어 다른 무인들을 살펴보았다. 무인들의 표정에도 마찬가지로 억울함이 가득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눈앞에 도둑을 두고도 어찌할 수 없다는 점이엇다.
왜냐하면 검도의지는 원래부터 그의 부친인 검주의 것이었으니까!
이때, 엽현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모두 들으시오. 사실 이번에 검맹에 방문한 건, 검도의지를 회수하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소.”
이 말을 들은 순간, 무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게… 검주의 명령입니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주의 명령!
무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검주의 명이 있었다는 말에 검치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졌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엽현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검치 소저, 아버지는 좋은 의도로 검도의지를 남기셨소. 하지만 그대들이 검도의지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리고 말았소.”
과도한 집착!
이 말에 검수들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검도의지의 의미는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있지, 신앙으로 삼고 따르라는 게 아니오. 모든 검에는 각각의 길이 있소. 그대들이 해야 할 것은 자신의 검도를 개척하는 것이오. 그런데 아버지의 검도의지는 오히려 그대들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로 변질된 지 오래요. 지금부터는 검주의 검도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개척하고 확장하길 바라오.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이오.”
순간,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자신의 길!
검치는 입을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엽현은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의 검도는 하나의 교두보일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지양해야 하오! 그대들이 믿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그대 자신이오! 오직 스스로를 강하게 믿었을 때, 비로소 한계를 뚫고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소!”
자기 자신을 믿어라!
이때, 검수 중 하나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야 막혀 있던 무언가가 뻥 뚫린 것 같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검주의 검도의지를 따르면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린 게 사실입니다! 매번 그것을 볼 때마다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라는 생각에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에 다른 검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주의 검도의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터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엽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아버지께서도 이 사실을 아시면 흡족해하실 것이오. 참, 말이 나온 김에 기회가 닿는 대로 아버지를 모셔오도록 하겠소. 그때, 질답의 시간도 따로 마련해 보겠소!”
엽현이 말을 마치자, 검수들의 표정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검주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이들 검수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연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검수들이 빠져나가고 소란스러웠던 대전에는 엽현과 검치 단둘만 남게 되었다.
엽현이 먼저 침묵을 깼다.
“검치, 며칠 폐관에 들어가야 할 것 같소. 그대는 임소와 앞으로 상고천족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 해주시오.”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참, 막념 누님과 도는 어디에 있소?”
“두 사람은 등천경 승급을 위해 폐관 중입니다.”
이 말에 엽현이 헛숨을 들이켰다.
“등천경이라고? 벌써?”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삼 개월이나 됐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앞으로 한 달 후면 출관할 것입니다.”
“등천경이 되어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엽현은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막념과 도를 빼놓고 어찌 천재를 논할 수 있을까?
이 두 사람이야말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무인이었다.
이렇게 빨리 등천경에 도전하게 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헤어질 당시에도 두 여인은 등천경과는 매우 거리가 먼 상태였다.
그런데, 자신이 검맹에 와 있는 동안 벌써 등천을 노리고 있다니…….
엽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었다.
막념과 도가 등천경이 된다면 전력에 아주 큰 보탬이 될 테니까!
잠시 후, 검치는 대전을 떠났다.
텅빈 대전 안에 홀로 남은 엽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체내에서는 여전히 청삼남의 검도의지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탑 내부였다.
“소탑… 혹시 네가 꾸민 짓이었어?”
작은탑이 황당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런 말이 어딨어?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이 검도의지는 네 혈맥에 반응해서 스스로 움직인 거라고!”
“…사실이야?”
엽현은 여전히 미덥지 못한 표정이었다.
“소주, 나에 대한 신용이 겨우 그 정도인 거야?”
“어, 몰랐어?”
“…….”
엽현은 잡담을 멈추고 다시 한번 검도의지를 느껴보았다.
검도의지는 작은탑 안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어 보였다.
엽현은 검도의지를 흡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흡수하는 것보다 남겨 놓는 편이 쓸모가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만약 기습적으로 사용한다면, 최소한 등천경 강자 하나 해치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엽현이 이 검도의지를 막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엽현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앞으로 부친이나 청아를 만나면 검도의지 몇 개를 만들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필살기로 쓸 무기로 두 사람의 검도의지 만한 건 없을 테니까.
이때, 엽현에게는 두 개의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경지의 안정화, 다른 하나는 발검술의 안정화였다.
그는 이미 예전에도 백삼십 회가량의 발검술을 중첩할 수 있었다. 엽신의 힘을 흡수한 지금이라면 적어도 이백 회는 어렵지 않게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엽현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같은 등천경 강자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 시간 이후, 엽현은 등천경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등천경 뿐 아니라, 주경, 임계경 그리고 허무경에 대한 정보까지도 닥치는 대로 습득했다.
왜냐하면 한 번에 몇 단계씩이나 승급을 하는 바람에, 이 경지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경지를 안정화하기 위해선, 우선 앞선 경지들에 익숙해지는 작업이 선행 되어야만 했다.
엽현은 경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주경, 임계경, 무변경 그리고 허무경 모두가 시차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허무경부터는 시간을 허무하게 만들어 상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었다.
보편적으로 의경이 되면 육신과 영혼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시차원 속에 의식을 남겨,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경 이상의 강자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허무경이 되면 시차원을 공략해 상대의 의식마저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허무경 강자는 시차원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시차원을 동시에 통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허무경 절정이 되면 한 번에 통제할 수 있는 시차원이 십여 개로 늘어난다고 한다.
등천경이 되면 더욱 가관이다.
등천경이 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만의 시차원이 생긴다는 의미다.
허무경이나 그 아래 단계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시공간 속의 시차원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등천경은 무인 고유의 시차원을 갖게 된다.
사실 시간놀음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차원을 소유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등천경의 시차원은 허무경의 시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다.
이 차이를 이용하면 등천경이 허무경을 압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어 검치는 허무경 절정이지만, 등천경 강자를 상대로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전투력이 등천경 강자의 시차원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엽현이 주안점으로 두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폐관 수련을 통해 먼저 경지를 안정화한 다음, 발검술의 위력을 등천경 강자의 시차원을 위협할 정도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시차원을 제거한다는 것은 곧, 상대의 의식까지도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이니,
그때가 되면 능히 등천경 강자와 자웅을 겨뤄볼 수 있으리라!
생각을 마친 엽현은 곧바로 수련에 돌입했다.
* * *
대전 밖.
제천성 성주 임소와 언진경은 한창 대국을 치루는 중이었다.
“임 성주는 상고천족에 대해 좀 아는 게 있소?”
임소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많다고는 할 수 없소.”
이에 임소가 웃으며 설명했다.
“내가 알기로 상고천계는 일족(一族), 일종(一宗), 일교(一教) 그리고 일전(一殿)으로 이뤄져 있소. 이 네 세력이 두 줄기의 성계 급 영생원천을 소유하고 있다 하오.”
임소가 바둑알을 내려놓으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언 형,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후후, 아무것도 아니오. 단지… 상고천족이 두 개의 영계 급 영생원천을 제안했고, 임 성주가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소. 심지어 상고천족을 상대로 전쟁까지 선포해 버리다니, 패기가 참 대단하시오.”
“하하! 그대 언가 역시 이 머나먼 제천성까지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소? 언가의 충정 역시 우리 못지않구려!”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친 순간, 호탕한 웃음소리가 주변에 크게 울려 퍼졌다.
* * *
상고천계.
천행전과 신궁의 무인들은 상고천족 강자들의 도움으로 이곳 상고천계로 후퇴한 상황이었다.
교어와 이도연은 목숨은 건졌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두 세력 모두 엄청난 병력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한 제천부가 기습했을 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천부가 엽현과 검맹 쪽에 붙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고천족 내부의 어느 대전.
한 남자가 의자에 몸을 깊게 묻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 남자가 바로 상고천족의 현 족장인 천엽(天燁)이었다.
그는 엽신의 부친이기도 했다.
이때, 화엽 앞에 서 있던 등천경 강자가 보고를 마쳤다.
잠시 후, 화엽이 상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언가가 무인들을 보냈다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 남자의 정체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조사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조사?”
천엽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조사가 필요하단 말이냐. 놈은 내 아들을 죽였다. 비록 사생아였지만 천족의 핏줄을 타고난 놈이란 말이다. 더 나아가 검맹이란 놈들은 우리를 상대로 겁도 없이 선전포고까지 했으니…….”
천엽이 무엇이 우스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밌군… 재밌어! 검맹 따위가 천족에게 대들다니… 누가 기르던 개인지 모르겠지만 겁을 상실한 게 분명하다.”
“…….”
천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머릿수를 믿고 날뛰는 게 아니더냐? 그럼 우리도 수를 맞춰 줘야지!”
“천책군(天策軍)을 동원하시렵니까?”
“천책군?”
천엽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깟 파리 몇 마리 잡는데 굳이 검을 쓸 것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