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37
1738화 그게 다가 아니야
임소와 언진경이 과감하게 엽현을 돕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
검주 때문이었다.
검주가 나타나면 모든 적을 일거에 처치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주가 오지 않는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즉, 자신의 무인을 희생해 가면서 상고천족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손실이 막대할 것은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상고천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검치 또한 더는 말 하지 않고 두 사람이 침묵 속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녀는 이미 결심이 선 상태였다. 제천성과 언가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검맹은 죽기까지 엽현을 돕기로 정해져 있었다.
검주는 검맹의 전부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때, 임소가 웃으며 말했다.
“제천부는 이미 소주를 택했소. 이제는 사나 죽으나 소주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소. 설령 멸족의 위험이 있을지라도!”
그가 이처럼 결정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검주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엽현이 이곳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검주는 반드시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남이 아닌 친아들이니까!
결정적인 건 두 번째 요인이었다.
이미 제천성은 엽현을 선택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제 와서 엽현을 포기하고 상고천족 편에 붙는다?
헛된 망상일 뿐이다.
제천성은 이미 무수히 많은 신궁과 천행전 강자를 죽이는 데 관여했다.
이 두 세력이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게다가 어차피 저쪽에 붙는다 해도 피를 흘려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자신들을 선봉에 세워 검맹을 치게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제천부는 엽현과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소의 말을 듣자, 곁에 있던 언진경 역시 의사를 표명했다.
“우리 언가 역시 소주와 함께 싸우겠소. 설령 멸족을 당할지라도!”
언가 역시 제천부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엽현과 한배를 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검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소. 한시라도 빨리 남아 있는 무인들을 모두 검맹에 집결시키시오.”
“결판을 지을 셈이오?”
임소가 진지하게 묻자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부를 볼 시간이오!”
임소는 언진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쓴 웃음을 지었다.
검맹은 결코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결정이 과감했고 매우 신속해,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특히나, 거대 세력끼리의 전쟁에서 이런 속도감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검치는 불같은 성격처럼 불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모두 가서 무인들을 집합시키시오.”
“검치 소저, 혹시 상고천계로 먼저 쳐들어갈 생각이오?”
임소가 어두운 표정으로 묻자,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싸우게 될 텐데 질질 끌 거 있겠소? 저들이 꾸물댄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는 게 인지상정이오.”
임소는 이제는 헛웃음이 나왔다.
인식 자체가 자신들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이때, 언진경이 말했다.
“그래도 소주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소?”
“소주?”
검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서 불러오겠소.”
말을 마친 검치는 바람처럼 대전을 빠져나갔다.
검치가 떠나자, 언진경은 참아왔던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따로 없군. 검맹은 두려움이란 걸 모르는 건가?”
임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맹은 정말이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싸움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에 오직 싸움 생각만 있는 자들…….
간단히 말해 싸움에 미친 자들이었던 것이다!
“후… 우리도 준비합시다. 이번에야말로 전 병력을 투입할 생각이오. 나도 한다면 한다는 놈이니까!”
언진경의 말에 임소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제천부 역시 뱉은 말을 주워 담은 역사가 없소!”
이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이 시각, 한창 수련 중이던 엽현이 검을 거두고 돌아섰다.
이때, 검치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성과가 있었습니까?”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그럼 가시지요.”
검치가 먼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이에, 엽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라붙었다.
“어디로 가는지 말은 해 줘야 하지 않겠소?”
“…상고천계로 갑니다.”
“이대로 상고천계를 공격한단 말이오?”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오질 않더군요. 검목 등은 참지 못하고 먼저 떠났고, 우리 쪽 병력도 출격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무슨 문제라도?”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문제없소!”
검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지요.”
엽현과 검치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동했다.
“검치 소저, 그대는 상고천족에 대해 잘 아시오?”
검치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릅니다.”
“…그럼 기본적인 조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오?”
검치가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박살내고 나서 알아보는 게 빠르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이상한 논리였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곧,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맹 상공.
검맹의 하늘에는 이미 사백아홉 명의 검수가 출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눈빛은 잘 벼려진 검과 같았고, 전신에서는 강렬한 검도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백아홉 명 중 허무경은 서른여섯, 나머지는 모두 무변경의 강자였다.
지상에서 이 진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이때, 제천부 임소가 한 무리의 무리를 이끌고 멀지 않은 곳에 도열했다.
제천부의 병력 역시 대략 사백가량.
등천경이 다섯, 허무경이 마흔아홉, 나머지는 무변경이었다.
한편, 언진경은 언가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강자들을 모두 불러 모은 상태였다.
언가의 병력 규모는 다소 작은 삼백이십 정도로, 등천경은 네 명이었다.
임소가 웃으며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소주,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해치웁시다. 출발!”
말을 마친 엽현이 먼저 어검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자, 나머지 무인들이 대열을 맞춰 그의 뒤를 쫓았다.
천 명이 넘는 강자들이 동시에 이동하자, 제천성의 하늘에 큰 파문이 일었다.
엽현 일행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여인 하나가 검맹의 한 대전 안에서 걸어 나왔다.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막념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막념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음미했다.
이때, 그녀 주변의 공간이 가볍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막념이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순간, 그녀 앞에 시간으로 된 차원 하나가 나타났다.
막념의 개인 시차원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등천경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때, 막념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이 순간, 그녀 앞의 시차원이 빠르게 응집하면서, 이내 한 자루의 검의 형태를 띠게 됐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시차원의 실질화(實質化)!
이와 같은 능력은 이미 등천경의 범주를 벗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념은 또다시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녀 앞에 열 줄기의 시간장하가 나타났다. 시간장하는 곧 열 자루 검으로 탈바꿈했다.
마찬가지로 시차원으로 만든 검이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등천경을 뛰어넘었군.”
막념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백의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
상대를 알아본 막념이 옅은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청아가 왜 그리 강한지 아나?”
“…….”
“후후, 난 조금은 알 거 같은데.”
“뭐지? 일단 말해 봐.”
막념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가 그녀에겐 경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틀린 말이다.”
도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무슨 말이지?”
“후후…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녀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의 한계에 도달했고 이미 그것을 돌파했으며, 스스로 규칙을 만든 후에 다시 그것을 돌파한 것 같다.”
막념이 이 말을 한 순간.
어느 머나먼 성역을 지나치던 흰 소복의 여인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귀를 기울였다.
한편, 검맹 안에서는 막념이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원래의 규칙, 즉, 기존의 경지 체계를 무너뜨린 후, 새로운 경지 체계를 창조한 것 같다.”
“어째서 그녀가 새로운 경지 체계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막념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 전에 무적검체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무적검체!
이 말에 도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엽현의 육신이 검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리가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도가 말이 없자 막념에게로 차례가 넘어왔다.
“나도 연구를 해 보긴 했지만, 알아낸 건 전혀 없었지. 그리고 이제야 어떤 원리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어. 그녀가 엽현에게 전수해 준 무적검체는 새로운 경지 체계에 속하는 거야. 즉, 원래 있던 체계를 파괴하고 만든 것이 바로 이 무적검체인 것이지. 아니, 더 정확히는 무적체(無敵體)라 해야겠군.”
“무적체?”
막념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흡수하는데 다른 건 흡수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어. 그건 바로, 그녀는 자신이 만든 체계마저 파괴하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거야. 내 예상대로라면…….”
막념은 문득 성공 깊은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분명 어떤 경지 안에 존재하긴 할 거야. 다만, 하나가 아니라 두 종류의 경지일 테지.”
“두 종류?”
도가 미심쩍게 쳐다보자 막념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걸 유(有)와 무(無)로 정의하기로 했어. 유는 그녀가 새로 창도한 대도, 그리고 무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 대도를 파괴하는…….”
순간, 막념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이제 알았어! 그래!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와 싸우고 있던 거야!”
자기 자신과의 싸움!
이때, 소복의 여인이 어둠 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순식간에 수백 개의 우주를 뚫고서 막념에게 도달했다.
잠시 후, 여인이 눈빛을 거두며 돌아섰다.
“보기보다 똑똑하군.”
여인은 두어 걸음을 떼고서 다시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말을 마친 여인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막념의 추측은 훌륭했지만 여전히 ‘진실’에는 확실히 도달하지 못했다.
막념은 더는 말이 없었다.
도 역시 질문을 거둔 채, 발밑의 대리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때, 갑자기 막념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거대한 음모가 존재함을 감지한 것이었다.
현재 우주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청아, 청삼남 그리고 백운색 장포의 검수일 것이다.
막념은 직감적으로 청아가 다른 두 검수를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엽현 때문이었다.
청아가 청삼남과 혹은 또 다른 검수와 싸우다 죽게 되면 가장 위험한 것은 엽현이었다.
사실, 정황상 세 검수 모두 언젠가는 건곤일척의 대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셋 모두 무적에 가까운 존재인 만큼 언젠가는 결판을 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운명!
하지만 문제는 엽현이었다.
만약 세 사람이 겨루다 모두 죽어버린다면 엽현은 어떻게 될까?
특히나 지금처럼 끊임없이 강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엽현이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셋 모두 잠자코 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세 사람보다 더 강한 존재가 탄생한다면 이 결투는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언젠가 한 번쯤은 붙게 되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막념의 표정이 매우 딱딱하게 변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