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44
1745화 그럼 너도 불러!
선조 소환!
교어의 표정은 심각했다.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자신의 선조가 엽현의 부친과 아는 사이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믿고 있었다. 선조는 분명 자신의 편을 들 것이라는 것을.
모험이란 걸 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만약 엽현과 상고천족이 화해를 한다면 천행전과 신궁은 비참한 꼴을 면할 수 없다.
아무런 이득도 챙기지 못하는 건 물론, 제천성의 기반까지도 빼앗기게 된다.
살기 위해서는 상고천족에 자발적으로 종속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천행전으로서는 결코 원치 않는 일이었다.
특히나 엽현의 보복이 두려웠다.
상고천족에게는 시간이 주어질 수 있겠으나, 자신들은 오늘 당장 전멸할지도 모른다. 엽현은 그 정도 능력이 있었다.
결국 천행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엽현을 죽여야만 했다.
상고천족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겠지만, 그렇다고 동귀어진을 하면서까지 무리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기세였다.
만약 이쪽에 절정 고수 하나가 나타나 분위기를 바꾼다면, 상고천족 또한 결정을 번복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교어가 선조를 소환하자마자 면구의 여인이 망설임 끝에 엽현에게 말했다.
“엽 공자, 아무래도 생각이 변한 것 같소.”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순간, 상고천족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엽현 측 무인들 주변을 에워쌌다.
면구의 여인은 생각했다.
교어의 말대로 역시 엽현을 살려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늘 그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들이 죽을 것을 알기에!
한편, 엽현은 하늘을 응시하며 손바닥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왜 다들 이렇게나 선조를 불러대는 걸까?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검절이 말했다.
검목 역시 점점 실체를 드러내는 허영을 바라보며 거들었다.
“천행전의 선조는 다소 강력해 보이는군. 검절, 잠시 후에 네가 앞장을 서라.”
검절이 검목을 노려보았다.
“왜 또 내가?”
“왜냐하면… 네가 우리 대장이니까!”
검절은 잠시 검목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검목, 어째 네 낯짝이 점점 검주를 닮아가는 것 같구나. 사실, 얼마간 검주를 따라 다닌 후로 많이 뻔뻔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이때, 교어가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엽현, 너는 선조를 소환하지 않는 건가?”
선조!
이 말에 무인들의 시선이 엽현에게 쏠렸다.
엽현도 선조를 소환하는 걸까?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오직 약해빠진 놈들만 선조에게 도움을 구하는 거지! 나 엽현은 언제나 내 힘으로 일을 처리해 왔다!”
작은탑이 갑자기 말했다.
[너, 그… 양심이란 게 없나?]“…….”
이때, 면구의 여인이 소리쳤다.
“먼저 엽현부터 죽여라!”
엽현부터 죽여라!
이 말에 상고천족 강자들의 눈빛이 엽현에게 쏠렸다.
면구의 여인은 고개를 들어 거의 실체를 드러낸 허영을 바라보았다.
천행전의 선조!
저 정도 강력한 기운의 소유자라면 전세를 바꾸기에 충분하리라!
엽현 역시 허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가 느끼기에도 대단히 강력한 기운이었다.
적어도 등천경을 초월한 존재였다.
이 정도 존재라면 설령 한 줌의 혼백만 남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리라!
그렇게 모두의 시선 속에 허영은 하나의 여인의 형상으로 변했다.
단정한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은 긴 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채, 미간 사이로는 무형의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때, 교어가 빠르게 허영을 향해 예를 올렸다.
“선조를 뵙습니다!”
여인이 천천히 교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행전에 위기가 닥친 것이냐?”
교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순간, 여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감히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이 말에 교어가 손가락으로 엽현을 가리켰다.
“바로 저 자입니다!”
여인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엽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엽현은 말없이 여인을 응시했다. 동시에, 왼손에 쥔 검집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여인은 한참 동안 엽현을 바라보더니 마침내 운을 뗐다.
“익숙한 혈맥 그렇다면…….”
엽현은 즉시 혈맥지력을 개방했다.
쾅-!
순간, 강대한 혈맥지력이 그의 몸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이를 보자, 여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 이건…….”
엽현은 말없이 손을 펼쳤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검주령이 떠올랐다.
“이 물건을 알고 있소?”
“검주령!”
여인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소리쳤다.
검주령을 본 순간, 그녀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부릅뜨며 불신의 기색을 드러냈다.
“어떻게 검주령을…….”
한편, 교어는 여인의 이런 반응에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동시에, 두려움이 그녀의 마음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소리쳤다.
“아버지께서 받은 것이오!”
여인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되물었다.
“그대가… 검주의 아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여인이 교어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교어는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떨기 시작했다.
“선조… 그것이…….”
여인은 천행전 강자 중 한 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후 상황을 소상히 말하거라!”
지목을 받은 무인은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상세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인의 낯빛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무인이 말을 마친 순간, 여인이 갑자기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교어가 목을 붙잡은 채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이 멍청한 계집아! 우리 천행전은 영원히 검주를 존중해야 한다는 조사의 명령을 잊었단 말이냐!”
“컥… 왜, 왜 우리가 남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천행전이 도대체 왜!”
교어가 발악을 하며 소리쳤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검주가 강하니까!
사실 여인 또한 검주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검주를 만났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부가 청삼남 앞에서 얼마나 자신을 낮췄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부가 약했는가?
그는 이미 절진경(絕塵境)에 이른 강자 중의 강자였다.
속세의 모든 인과를 끊어낼 수 있다는 그 절진경이었다.
하지만 사부는 청삼남 앞에서 감히 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여인은 청삼남에게서 깊은 바다와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부처럼 절진경에 이르렀을 때도 여전히 청삼남의 실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사부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른다!’
사부는 그와 선한 인연을 맺기 위해 몇 달씩이나 애원하고 매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얻은 인연이 후대에 와서 악인(惡因)이 되어 있을 줄이야!
천행전은 검주령에 복종하기는커녕, 검주령의 주인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더욱 용서받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검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검주의 아들을 죽이려 한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순간, 여인은 하마터면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하지만 교어를 노려보는 눈빛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냐고 물었느냐? 사부께서는 서른도 되기 전에 절진경에 이른 천재 중의 천재셨다. 그런 사부조차 검주께 자발적으로 머리를 조아렸거늘 네깟 년이 뭐라고 복종하지 않는 것이냐? 게다가 검주는 우리 천행전이 멸망의 위기에 빠져있을 때 구해주신 은인이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까지 존재해 온 것이고. 이 은혜는 마땅히 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인데, 너는… 겨우 영생원천 두 줄기에 눈이 멀어 검주의 아들을 죽이려 한 것이냐? 네 머리는장식품이더냐!”
순간, 여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콰득-!
쾅-!
교어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면서, 그녀의 영혼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이 영혼은 아직 여인의 손아귀에 있었다.
교어가 여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가 은혜를 베푼 대상은 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왜 그에게 신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교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미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하하! 네게 은혜를 베푼 게 아니라고?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느냐? 천행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존재했겠느냐? 천행전이 길러주지 않았더라면 네가 뭐라도 됐을 것 같으냐?”
교어는 두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때, 지상에 있던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교어 전주의 말도 일리가 있소. 그녀는 아버지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건만, 이런 상황을 강요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겠소? 아버지께서는…….”
엽현이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면서 해 주신 말이 있소. 그건 바로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가 매우 쉽다는 것이오. 비록, 천행전의 선조가 아버지에게 복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이리 오래 흘렀으니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고 하셨소. 물론… 아버지께서도 그때의 선인이 악인으로 변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겠지만…. 아무튼, 교어 전주는 잘못이 없소. 그녀가 왜 다른 이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단 말이오? 그녀는 전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소. 나중에 아버지께 이 일에 대해 보고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하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
무인들은 침묵했다.
모두가 엽현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 상태였다.
‘저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이때, 검목이 엽현을 응시한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살다 살다 저런 악질은 처음이군. 조심해야겠어!”
검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처럼 말이지?”
“…….”
엽현의 말을 들은 천행전 선조의 표정은 극단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소주, 정말이지 그 말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군요. 이 일은 천행전의 실수입니다. 우리가 배은망덕했고, 검주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습니다. 소주, 정말이지 후대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말을 하던 여인이 교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교어가 막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여인이 손을 휘둘렀다.
쾅-!
교어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소멸하고 말았다.
여인은 상고천족 강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무인들이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특히, 면구의 여인과 천엽은 정도가 심했다.
천행전의 선조가 나타나면 자신들에게 유리할 줄 알았건만,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위험한 것은 상고천족 쪽이었다.
이때, 천엽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머저리 같은 년!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선조를 소환한 거냐고! 왜!”
여인은 이에 눈길도 주지 않고 엽현에게 물었다.
“소주, 누굽니까? 제가 누구를 죽여야 합니까? 말씀만 하시면 당장 처단하겠습니다!”
누구를 죽여야 합니까?
여인의 말을 듣자, 천엽을 포함한 상고천족 무인들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엽현은 말없이 멀리 신궁 궁주 이도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궁주, 거기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소? 신궁에 위기가 닥쳤는데 선조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오? 어서 진행하시오. 그동안 절대 방해하지 않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