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48
1749화 무적이라고 했냐?
검주!
순간, 장내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특히, 임소 등, 검주의 얼굴을 알고 있는 무인들은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검주, 검주가 돌아왔다!’
엽현 역시 짐짓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꼰대가 여긴 왜 온 거지? 게다가 형님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이때, 청삼남과 검수가 엽현 앞으로 이동했다. 검수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방금 무적 어쩌고 하지 않았느냐?”
“…….”
검수는 웃으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에 엽현은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설마 무적이라는 소리만 듣고 반사적으로 반응했단 말인가!’
“이놈아! 이젠 애비를 보고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게냐?”
이에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아버지가 여긴 왜 오셨습니까?”
청삼남이 무어라 대꾸하려는 이때, 검절 등이 검을 미간에 붙인 채, 일제히 예를 차렸다.
“검주를 뵙습니다!”
“검주를 뵙습니다!”
이를 보자, 나머지 검수들 역시 같은 자세로 머리를 숙였다.
검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보인 것이었다.
임소와 다른 무인들 역시 황급히 각자의 방식으로 예를 차렸다.
이때,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청삼남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마찬가지였다.
청삼남이 검절 등을 향해 웃으며 아는 척을 했다.
“그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는 없소.”
검수들은 고개를 들어 청삼남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눈빛은 청삼남을 얼마나 숭배하고 존경하는지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종교!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검수들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검절 등, 다섯 검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청삼남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때, 청삼남이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그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쉭-!
순간, 성공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시간장하가 갈라지면서, 중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의 미간에는 한 줄기 검광이 박혀 있었다.
중년인은 바로 상고천족의 선조였다.
이때, 상고천족 선조를 상대하고 있던 천행전 선조가 청삼남을 발견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검주를 뵙습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 싸우고 있던 유령족과 언가, 그리고 임가 선조들도 청삼남을 발견하더니, 재빨리 그의 앞으로 날아와 공손히 예를 차렸다.
“검주를 뵈옵니다!”
청삼남은 무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시선이 임가의 선조, 임수에게서 멈췄다.
“임 형, 그동안 별고 없었소?”
임수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자리에서 검주를 다시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 나 역시 매우 기쁘오! 비록 그대들은 본체가 아니긴 하지만!”
이때, 유령족 선조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청삼남이 살짝 손을 들자, 검기 하나가 나타나 유령족 선조의 몸을 들어 올렸다.
“아유(阿幽), 이럴 필요 없소.”
유령족 선조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부족을 구해주신 은혜를 갚지 못했습니다.”
“하하, 이번에 내 아들을 구해 준 것으로 이미 충분하오.”
유령족 선조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령족은 영원히 검주가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허, 그럴 필요 없대도! 내 못난 아들을 구하러 달려온 것만으로도 그때의 일은 충분히 갚고도 남소!”
곁에 있던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못난 아들이라니…….
“아버지, 못났다니요? 그 말은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등천경일 뿐만 아니라, 동일 경지 내에서라면 무적이나 마찬가지…….”
“무적?”
청삼남이 웃으며 말을 끊었다.
“그럼 내 검도 한번 받아 보겠느냐?”
“…….”
순간, 엽현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쯧쯧, 등천경이 뭐가 어쨌단 말이냐? 내 눈에는 바닥을 기는 개미와 별반 차이가 없거늘.”
“…….”
이 말에 장내에 있던 무인들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졌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등천경이기 때문이었다.
청삼남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웃음을 터트렸다.
“신경 쓰지들 마시오! 방금은 세상 물정 모르는 내 아들에게 하는 말이었소. 그러니 그대들은 마음에 담아 둘 필요 없소.”
엽현의 안색이 다시 한번 붉게 변했다.
이때, 작은탑의 음성이 뇌리에 울려 퍼졌다.
[소주, 이걸 참아? 때려! 한 대 쳐버리라고!]“…….”
청삼남이 해명했지만, 무인들은 여전히 쓴웃음을 지었다.
이때, 청삼남이 상고천족의 선조를 쳐다보았다.
상대 역시 청삼남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상고천족 선조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대의 깊이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구려!”
청삼남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상고천족의 선조가 검광에 의해 그대로 지워졌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도려내진 것이다.
청삼남의 시선은 천행전 선조에게로 향했다.
이에 천행전 선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검주, 부디 용서를.”
청삼남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는 내 아들을 도와 주었는데 어찌 죄를 물을 수 있겠소?”
청삼남의 말에 천행전 선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한 일은 아니지만, 천행전이 엽현을 죽이려 한 일은 엄연한 사실이지 않은가!
청삼남은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해후는 조금 있다가 나누도록 하고, 잠시 자리를 비켜 주면 고맙겠소.”
청삼남의 말에 무인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변이 정리되자, 청삼남이 웃으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느냐? 애비를 봤는데 기쁘지 않은가 보구나?”
엽현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리고 형님은요?”
엽현이 운백색 장포의 검수에게 묻자, 검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와 관련된 일 때문이다.”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와 관련된 일?”
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자세한 얘기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지.”
엽현은 몹시 궁금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이때, 청삼남이 엽현의 몸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가 모든 무공을 네게 주었느냐?”
청삼남이 말한 ‘그’는 물론 엽신이었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이를 본 청삼남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 감정이 있는 게냐?”
엽현은 낮게 탄식했다.
“그를 동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청아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죽는 것은 나였을 테니까요.”
청삼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나.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동정한다 해도 너는 그럴 수 없겠지.”
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청삼남이 다가와 엽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넌 역시 나와 닮은 곳이 많구나. 하지만 아직 더 독해질 필요가 있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곳이다.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지.”
“…명심하겠습니다.”
청삼남이 엽현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됐다. 그건 그렇고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이때, 청삼남이 갑자기 면구의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참, 아까 무슨 동귀어진을 하겠다 하지 않았나?”
청삼남과 눈이 마주친 순간, 면구 여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 남자의 손짓 한 번에 상고천족 선조가 세상에서 지워졌다.
게다가 절진경 강자들이 이도록 존경심을 표하는 자라니…….
‘저 남자는 보통 존재가 아니야!’
면구의 여인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엽현은 처음부터 건드려선 안 될 상대였던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여인은 눈을 뜨고 청삼남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어르신, 상고천족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줄 순 없겠습니까?”
청삼남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지.”
이 말을 듣자, 면구 여인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그럼 정말로 동귀어진을 택할 수밖에!”
말을 마친 순간, 여인이 손을 펼쳤다.
순간, 그녀의 손바닥 위로 핏빛 부적이 떠올랐다.
이 부적을 본 순간, 상고천족 무인들의 안색이 일순 검게 물들었다.
이때, 천엽이 별안간 고함을 질렀다.
“누님! 뭐 하는 짓이오!”
핏빛 부적!
이 부적은 상고천족 창시자가 남긴 것으로 상고천족이 가진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적을 사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금기로 이어졌다.
상고천족 창시자가 말하길, 부적을 사용할 시 상고천족 역시 멸족의 화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멸족!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상고천족은 지금까지 부적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면구의 여인이 천엽을 거칠게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느냐!”
“…….”
천엽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상고천족은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상태였다.
검주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제외한 나머지 무인만으로도 이미 상고천족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
천엽은 갑자기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엽현을 향해 화를 토해냈다.
“왜! 왜 진작 이런 배후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미리 말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천엽의 말을 듣자, 무인들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거대 세력의 족장이라는 자가 할 말이란 말인가!
엽현 또한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문득 천엽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때, 면구의 여인이 싸늘한 눈초리로 천엽을 바라보았다.
“넌 정말이지 부끄러움이란 전혀 없구나?”
여인은 비통한 심정이었다.
천엽 같은 인물이 어떻게 족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건 그가 전대 족장의 외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면구 여인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져야 했지만, 천족은 다른 세력과 달리 오직 남자만 족장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여자가 족장이 되어 혼인을 하게 되면, 다른 세력에 빼앗길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부족 내에서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상고천족 주변에 이렇다 할 적도 없었고, 사업도 아주 잘 되고 있었느니, 야망이 적은 자가 족장이 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었다.
다만, 부족의 그 누구도 천엽이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때, 청삼남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고천족의 족장… 재밌는 녀석이군.”
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머리가 좀 딸리는 거 같지?”
“음…….”
바로 이때, 피처럼 타오르던 부적이 갑자기 한 줄기 혈광으로 변해, 천엽이 소환해 낸 절진지신의 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쾅-!
순간, 절진지신이 하나의 혈인으로 변했고, 이와 동시에 상고천족 무인들의 혈맥이 미친 듯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조혈(祖血)!”
무인 중 누군가 소리쳤다.
“이건 조혈이다! 선조의 피다!”
선조의 피!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있는 절진지신은 다름 아닌 상고천족의 창시자였다.
이 인물이 어느 날 역천하여 자신의 혈맥을 바꾸고 상고천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창시자의 등장에, 사기를 상실했던 상고천족 측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됐다.
하지만 바로 이때, 상고천족 강자들의 몸이 연달아 폭발하면서, 그 피가 혈인을 향해 모여들었다.
면구의 여인과 천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상고천족 강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그들의 육신이 폭발하고 남은 피는 전부 혈인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면구 여인과 천엽에게 아무 일도 없는 것은 그들이 영혼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혈인은 수많은 무인들의 피를 순식간에 흡수했다.
그 기운은 상고천계 전체를 요동치게 할 만큼 강해졌다.
이건 이미 절진경의 기운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때, 혈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온통 괴기스러운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내가… 돌아왔다.”
혈인이 한 마디를 뱉은 순간, 상고천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요동쳤다.
하늘과 땅조차 혈인에게 겁을 먹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