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67
1768화 다 불러와!
천죄지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신비의 세력은 절진경을 초월한 무인만 해도 최소 열 명 이상을 보유한 거대 세력이었다.
절진경 강자의 수는 더욱 많아, 족히 수백을 넘길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날, 같은 시각 한 줌의 재로 변해 사라졌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죽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때, 폐허가 된 땅이 꿈틀거리더니, 한 자루 검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이내 검은 곡선을 그리며 천죄지도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여러 개의 신비한 기운이 천죄지도를 향해 몰려들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이 존재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자루 검이 날아와 천죄지도를 멸망시켰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이 시각 천산장성.
청아가 손을 뻗자, 한 자루 검이 얌전히 그녀의 손안으로 내려섰다.
행도검.
검을 본 여목이 떨리는 눈빛으로 청아를 쳐다보았다.
“도, 도대체…….”
“안심해라. 고통은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이 말을 들은 순간, 여목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청아는 이 눈빛을 무시한 채, 임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희 쪽 사람은 오지 않는 건가?”
임해가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계집! 네가 정녕 무적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군.”
청아가 무심하게 대꾸하자, 임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흥! 허풍도 정도껏 쳐라!”
“무적이라고?”
바로 이때, 성공 깊은 곳에서 생소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성공 깊은 곳에서 웬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정체는 서전의 또 다른 전주, 이목서(李木書)였다.
그의 실력은 네 명의 전주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고, 어떤 이는 원수에 필적하다고 평하기까지 했다.
이목서가 가볍게 한 발을 내딛었다.
이 순간, 그의 신형이 청아 정면에 나타났다.
“흠… 지금 무적이라 했는가?”
이목서가 청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문제라도 있나?”
“문제? 하하하! 이제 보니 그냥 미친년이었구나!”
바로 이때, 행도검이 청아의 손을 빠져나갔다.
푹-!
이목서가 반응하기도 전, 검날이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이와 함께, 웃고 있던 이목서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아직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청아가 묻자, 이목서가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청아를 노려보았다.
“너, 너는 누구…….”
청아는 대답 대신, 임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계속 불러라.”
계속 불러라!
순간, 임해의 표정이 어지럽게 일그러졌다.
“부르지 않으면 찾아가는 수밖에.”
청아가 손을 펼치자, 행도검이 손바닥 위로 붕 떠올랐다.
이를 본 순간, 임해가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 소리쳤다.
“부, 부르겠소! 지금 바로 부르겠소!”
이 말에 청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급적이면 한 번에 다 오라 해라. 선조를 불러도 좋고.”
선조!
임해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청아의 말에 따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테니까.
바로 이때, 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이 청아 정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수!
노인은 다름 아닌 서전의 최강자인 원수였다.
노인은 청아를 보자마자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고인을 뵙습니다.”
“…넌 어떻게 죽고 싶으냐?”
청아의 날 선 한 마디에 노인의 표정이 일순 굳었지만, 그는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일은 우리 서전의 잘못이 분명합니다. 서전을 대표해 고인께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청아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필요 없다.”
청아가 손을 뻗자, 행도검이 그녀의 손안으로 이동했다.
이때, 노인이 황급히 말했다.
“저와 한가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내기?”
청아가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노인이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만약, 제가 고인의 검 한 번을 받아낸다면, 우리 서전을 용서해 주십시오!”
일검!
이 말을 할 때, 노인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자신이 언제 이렇게까지 남에게 조아려 본 적이 있었던가?
너무나 비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앞의 여인은 충분히 서전을 멸망시켜버릴 정도의 능력이 있었으니까.
이때, 노인의 눈을 깊게 들여다본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이에 백발노인이 곧바로 손을 펼쳤다. 그러자 두꺼운 고서 한 권이 손바닥 위로 떠올랐다.
“성언서(聖言書)!”
누군가 소리쳤다.
성언서!
서전이 자랑하는 최고의 신물이었다.
“제가 먼저 출수해도 되겠습니까?”
노인의 말에 청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지.”
“그럼, 한 수 배우겠습니다!”
외침과 동시에 노인이 성언서의 한쪽을 넘겼다.
순간, 무수히 많은 고대 문자들이 황금빛을 발하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문자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순간, 신비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성언(聖言)!
이건, 오래전에 존재했던 어느 성인(聖人)의 음성이었다.
엽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온통 황금으로 빛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건 도대체 다 뭐란 말인가!
반면, 청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전혀 서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성언서든 소설책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어차피 일검에 사라질 것은 같으니까.
이때, 노인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성언정생사(聖言定生死)!”
쾅-!
이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황금 문자들이 한데 뭉치더니, 이내 ‘死(사)’자로 변했다.
다음 순간, 거대한 ‘死(사)’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청아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이 기이한 글자는 무수히 많은 고대의 음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음성들이 천지를 뒤덮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기이한 성언이 무인들의 마음속을 마치 칼날처럼 파고들었던 것이다.
성인지언정생사(聖人之言定生死)!
백의 노인은 처음부터 최강의 수를 꺼내 들었다.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무인들 가운데 의지력이 약한 자들이 갑자기 폭사하기 시작했다. 절진경 강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엽현 또한, 확고하던 검심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자기부정.
성인지언의 핵심은 무인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데 있었다.
엽현은 황급히 현기를 돌려 검심을 보호하고자 애를 썼다.
이때, 청아가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나름 기대했건만.”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검이 번뜩였다.
쉭-!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지옥불처럼 들끓던 천지가 일순 고요해졌다.
이와 동시에 청아의 머리 위에 있던 황금 문자 또한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이제 무인들의 시선은 노인에게로 향했다. 이때, 노인의 미간에는 한 줄기 검광이 박혀 있었다.
또다시 초살(秒殺)이었다.
이 순간, 장내에는 침 넘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검에 미간이 꿰뚫린 노인은 허망한 표정으로 청아를 응시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얼마나 강할까?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청아에게 향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나 강해야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백의노인은 물론, 나머지 또한 이 점이 몹시 궁금했다.
이때, 청아가 가볍게 손을 뻗자, 노인이 들고 있던 성언서가 홀연히 청아에게 날아왔다.
청아는 책을 이리저리 훑어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쓰레기가 성언이라고?”
청아는 손에 힘을 주어 성언서를 파괴하려 했다.
이때, 엽현이 다급히 소리쳤다.
“청아! 잠깐만!”
청아가 동작을 멈추고 엽현을 돌아보았다.
“왜? 필요해?”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
“이런 쓰레기 말고. 나중에 더 좋은 걸로 찾아 줄게.”
“…….”
이때, 백의노인이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성언서는 고대의 여러 성인들의 말을 담아 놓은 것인데, 어찌 쓰레기라 하십니까?”
이 말에 청아가 가소롭다는 듯 노인을 쳐다보았다.
“성인?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칭하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청아가 소매를 뿌리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전승을 물려 준 선조를 불러 보거라. 본녀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원하신다면!”
백의노인이 청아를 노려보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영패 하나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쾅-!
순간, 하얀 빛덩이가 성공 깊숙한 곳으로부터 떨어지면서, 천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인현(聖人現), 천지경(天地驚)!
서전의 선조이자, 고대의 성인 중 일인의 등장이었다.
그것도 대성인(大聖人)이었다!
청아의 무뚝뚝한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이때, 하얀빛 속에서 노인 하나가 현신했다.
눈처럼 하얀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은 평범하지 않은 기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때, 청아의 손 위로 검이 떠올랐다.
이를 본 백발노인이 흠칫 놀라며 지상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정건곤(定乾坤)!”
노인의 손가락 끝이 검광을 향한 순간,
쾅-!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인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검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노인의 육신 깊숙이 파고들었다.
쾅-!
폭음과 함께 노인이 순식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눈 깜빡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이 모습을 보자, 서전의 원수는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당혹감과 함께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대성인이 이렇게 쉽게 당한다고?
이때, 청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미없군!”
그녀가 가볍게 손을 젓자, 원수와 임해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지워졌다.
두 사람을 살해한 청아는 이번에는 미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러!”
미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였던 것이다!
이때, 경건한 음성이 먼 곳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아미타불!”
엄숙한 불호와 함께, 노승 하나가 청아 정면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신묘의 방장이었다.
방장의 모습을 보자, 미고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방장!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방장은 미고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청아를 향해 깍듯이 예를 차리며 말했다.
“이대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늦었다.”
방장은 잠시 침묵 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신묘는 절대 시주의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시주를 막을 자가 반드시 존재할 것입니다.”
“…불러와.”
방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검령(劍令) 하나가 나타났다.
검 모양의 인장을 본 순간, 엽현과 미고의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
특히 엽현은 검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친이 자신에게 주었던 검주령과 모양이 흡사했던 것이다.
검주령?
한편, 미고는 엽현을 흘끔 쳐다보았다.
왜 방장이 엽현이 보여준 것과 같은 인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때, 방장이 손을 놓자, 검령이 한 줄기 검광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윙-!
청아한 검명 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잠시 후, 아무것도 없던 하늘이 쩍 갈라지면서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남자가 본체로 현신한 것을 본 방장은 너무나 감격에 겨워 연신 머리를 숙였다.
“신묘가 검주를 뵈옵니다!”
한편,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는 청삼을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