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68
1769화 기분이 풀리지가 않아
청삼남을 본 순간 엽현은 기가 막혔다.
기껏 불러온다는 게 자신의 부친이라니!
게다가 분신도 아닌 본체를!
신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한편, 청삼남 또한 청아와 엽현이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 둘은 또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바로 이때, 한쪽에 있던 야원이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양 형!”
청삼남이 야원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대도 여기 있었구려!”
청삼남은 청아에게도 웃으며 인사했다.
“이런 곳에 있었군.”
청아는 청삼남을 바라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청삼남은 이번에는 엽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들놈아, 또 무슨 사고를 친 게냐?”
엽현이 어이가 없어서 손가락으로 방장을 가리켰다.
“저 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이에 청삼남은 방장을 쳐다보았다.
이때, 방장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검주, 저 젊은 시주는…….”
“내 아들이오.”
아들!
이 말에 방장이 자리에서 돌처럼 굳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미고 또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의 얼굴에 핏기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들!
장내에 있던 무인들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들을 죽이기 위해 아버지를 불렀단 건가?
신묘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고허(苦虛),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설명 좀 해 주시겠소?”
고허라 불린 승려는 제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거, 검주… 그게…….”
이때, 엽현이 대뜸 소리쳤다.
“아버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엽현은 청삼남을 위해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시 후, 미고가 검주령을 파괴했다는 대목에서 청삼남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청삼남은 미고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허를 향해 물었다.
“저자가 검주령에 대해 모르는 것이오?”
고허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검주, 이건 크나큰 오해입니다. 제가 검주께 검주령을 받은 사실은 신묘의 무인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번 일은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제 불찰이며 오해입니다!”
오해!
청삼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엽현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버지! 저자가 절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을 뻔했단 말입니다!”
“…….”
“게다가 저들은 신묘가 무적이라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미고와 고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엽현이 씩씩거리며 계속 고자질을 하려 할 때, 청아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길게 말할 거 없어. 다 죽이면 그만이니까.”
말을 마친 순간, 청아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이와 함께, 미고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삭제’ 된 것이다!
뒤이어 청아는 야원을 향해 물었다.
“신묘는 어디 있지?”
이 말을 들은 순간, 야목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설마 저 여자가 신묘마저 멸망시키려는 걸까?
야원은 조심스레 청삼남의 표정을 살폈다.
이를 본 청아가 말했다.
“그의 눈치는 볼 것 없다. 내가 마음먹으면 누구도 막지 못하니까.”
검주라 해도 막지 못한다!
엽현은 문득 몸 안의 혈기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
청아는 부친의 체면마저 봐 주지 않는다는 건가?
엽현은 슬쩍 청삼남을 바라보았다.
이때, 청삼남이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그 말은 사실이지. 하지만 그대 또한 날 막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이에 청아가 청삼남을 응시했다.
“한 판 붙어 볼까?”
“…그러든가.”
청삼남의 말에 엽현은 더욱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부친과 청아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무인으로서 이런 행운이 또 어디 있을까!
바로 이때, 작은 탑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 멍청아! 뭘 웃고 있는 거야! 저 둘이 싸우면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죽어! 사람은 물론 이 우주도 사라진다고!]작은탑의 말에 엽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두 무적의 존재가 이곳에서 전투를 펼친다면, 과연 이 우주가 남아날 수 있을까?
엽현이 황급히 중재에 나섰다.
“처, 청아!”
청아가 동작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청아, 여기서는 안 싸우면 안 될까?”
“…알았다. 하지만 신묘는 오늘 사라질 거야.”
말을 마친 순간, 청아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이와 동시에, 한 자루 검이 고허의 미간을 관통했다.
초살!
청아가 다시 손을 뻗자, 그녀의 피 묻은 행도검이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이때, 청아가 잠시 눈을 감고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행도검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멸(滅), 신묘(神廟)!
청아는 이미 고허의 기억으로부터 신묘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
이마에 구멍이 난 고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청삼남을 돌아보았다.
“검주, 지난날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신묘를 구해 주십시오…….”
이때, 엽현이 끼어들었다.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니오?”
“…….”
고허가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은 방금까지 날 죽이려 했소. 게다가 여의치 않자 사람까지 불러냈소. 그 사람이 내 아버지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요. 그런데 어쩜 그리 뻔뻔한 부탁을 한단 말이오!”
“…….”
엽현의 말을 들은 청삼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허, 이번 생의 인과는 다음 생에서 바로 잡도록 하시오.”
청삼남이 고허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순간,
쾅-!
고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청삼남은 원래 고허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청아가 살심을 품은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영혼이 사라지기 전에 목숨을 거둬, 다음 생을 기약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청삼남은 차가운 눈으로 청아를 쳐다보았다.
“고약한 성격은 여전하군.”
청삼남 역시 당하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싸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엽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만약, 둘이서 싸우다가 양패구상이라도 하게 되면 엽현을 지켜 줄 사람이 없게 돼 버린다.
항상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엽현이기에 마음 놓고 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적어도 엽현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참아야 했다.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엽현이 형님으로 모시는 검수인, 소요였다.
그는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지만, 청삼남과 청아 둘 다 엽현을 이유로 싸워주지 않으려 했다.
삶의 목적이 싸움에 있는 그로서는 고달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때, 한 자루 검이 어둠을 뚫고 모습을 나타냈다.
행도검!
청아가 손을 뻗자, 행도검이 천천히 그녀의 손바닥 안으로 내려섰다.
검이 돌아왔다는 건 신묘의 멸망을 뜻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신묘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청아는 여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부를 사람이 남아 있나?”
“…없소.”
청아가 지체 없이 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 여목 앞에서 번뜩였다.
바로 이때, 노기 띤 음성이 갑자기 울려 퍼졌다.
“멈추시오!”
상대의 음성은 천지를 뒤흔들 만큼의 위엄을 담고 있었다.
이때, 검광이 여목의 미간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청아가 고개를 돌리자, 허공이 쩍 갈라지면서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노인이 등장한 순간, 사방의 공간이 격렬히 흔들리면서 빠르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노인의 기운을 공간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흑의노인을 본 순간, 여목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모숙(暮叔)! 안 돼요!”
흑의노인은 여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청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노부는 천요국(天妖國)의 내관(內官), 임모(林暮)라 하오. 여목은 천요국주의 여식이니, 부디 낭자께서는 천요국의 체면을 보아…….”
“천요국?”
청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잡동사니야?”
잡동사니!
흑의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대와 같은 실력자가 천요국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오?”
“천요국? 그게 어딘지 위치를 말해라.”
위치!
이 순간, 여목이 안색이 변해 황급히 소리쳤다.
“임 숙부! 말하면 안 돼요! 절대 말하면 안 돼요! 저 여자라면 천요국을 충분히 제거하고도 남아요!”
이 말에 흑의노인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소저, 오늘 만나서 반가웠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노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다음은 없다.”
청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바로 이때, 여목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만 두십시오! 이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는 대가를 치룬 것 아닙니까!”
이 말에 청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긴 하지.”
“그, 그런데 왜…….”
청아가 여목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거든.”
기분이 나빠서!
이 말을 들은 순간, 무인들이 아연실색했다.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니?
도대체 얼마나 더 죽여야 기분이 풀린단 말인가!
엽현조차 청아의 사고가 다소 위험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목은 말이 통하지 않자,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 공자, 내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일단락 지으면 안 되겠소?”
여목은 청아와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상태였다.
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엽현뿐이었다.
청아의 오빠인 엽현 만이 그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엽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모습에 여목은 더욱 다급해졌다.
“제발 부탁이오! 천요국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소!”
“…여목 소저, 이만 가 보시오.”
엽현이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여목이 표정이 멍해졌다.
가라고?
살려 준다는 건가?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고 서 있소? 살기 싫은 거요?”
“…어째서?”
“하하, 우리가 무슨 불구지천의 원수 사이는 아니지 않소.”
여목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지만… 보복이 걱정되진 않으시오?”
이 말에 엽현이 실소를 머금었다.
“보복… 하려면 해 보시오. 여기 내 동생 청아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
이때, 청아가 여목을 향해 말했다.
“꺼져.”
청아가 손을 뻗자, 여목의 미간 사이에 박혀 있던 검광이 청아의 손안으로 돌아왔다.
여목은 황망히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고, 고맙소! 이 은혜는…….”
여목은 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허겁지겁 자리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여목은 얼마 가지 않아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 공자, 기회가 닿으면 천요국에 한 번 들러 주시오!”
“하하, 알겠소!”
여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여목은 마지막으로 청아를 흘끔 쳐다본 뒤, 임모와 함께 도망치듯 사라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느 이름 모를 성역에 이르렀다.
여목은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때, 임모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구냐?”
여목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임모가 먼 쪽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실력인 건 알겠지만…….”
문득, 임모의 입가에 한 줄기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감히 우리 천요국을 무시하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계집…….”
슈앙-
푹-!
이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검광이 임모의 미관을 꿰뚫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 임모는 육신과 영혼이 한 번에 소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