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그와 친구가 되길 바라십니까?
대운제국.
청주 면적의 거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대운제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청주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절정의 시기에는 창목학원과 암계와 같은 거대 세력들도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로 강성한 제국이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융성했던 대운제국은 절정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시에 몇 대에 걸친 무능한 황제들의 실정으로 인해 이 강력한 패권제국은 분열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바로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고산왕 연만리(連萬里)였다.
고산왕의 등장으로 인해 갈가리 찢길 뻔했던 대운제국은 극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예전의 융성함은 사라졌지만, 청주 지역에서만큼은 여전히 강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운제국 황실, 태화전(太和殿).
용의에는 이제 겨우 열두어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용포와 왕관을 쓰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발밑으로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 위에는 봉황 한 마리가 화려한 색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머리를 한껏 높이 쳐든 봉황은 세상을 좌시하는 듯한 고고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때 소년이 입을 열었다.
“누나… 아니, 연경(連卿), 강국은 우리 대운제국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고 딱히 서로의 영역을 다투고 있지도 않은데 어찌하여 전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오? 이는 우리 대운제국의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소.”
이때 여인이 소년의 앞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책상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이 지도에서 대운제국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세력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소년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강국?”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란 말이오?”
여인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창목학원, 암계 그리고 국내의 거대 세가들입니다.”
아이가 눈을 치켜뜨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강국을 쳐야 한단 말이오?”
여인은 그에게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치켜들었다.
“혹시… 강국, 아니, 엽현으로 하여금 저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생각이오?”
그 말에 여인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우리 대운제국은 이미 백 기 이상의 흑염군을 잃었지 않소?”
여인이 용의까지 걸어와 아이의 곁에 걸터앉았다. 이에 남자아이가 자리를 비켜 주려다가 여인의 손에 의해 제지당했다.
“오늘날 흑염군들은 이미 창목학원, 암계 그리고 여러 세가들의 인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대운 황실에 충성하는 것이 아닌, 저들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흑염군이 전멸당한 것은 우리로서는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들의 패를 하나 제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년은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듯해 보였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가다간 우리 대운제국도 피해가 크지 않겠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 세가들, 종문들, 그리고 창목학원은 표면적으론 대운제국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우리 제국을 갉아먹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미 조정, 군대 심지어 우리 황실 깊숙이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 오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대로 십 년만 더 지난다면 대운제국은 저들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인이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들은 우리 손에 자라나고 있는 종양과 같습니다. 이미 우리의 피와 뼈를 잠식한 상황이지요.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잘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운제국은 언젠가 고통이 아니라 죽음을 맞보게 될 테니까요.”
소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주첩(周帖)을 손에 들었다. 주첩 위에는 두 글자가 큼지막이 쓰여 있었다.
‘엽현.’
그가 주첩을 뒤집자 그곳엔 엽현에 대한 것들이 글로 적혀 있었다. 청성에부터 지금까지 그가 한 모든 행적들이 빽빽하고도 세세하게 들어가 있었다.
잠시 후, 마침내 소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 엽현이란 자는 강국을 끔찍이도 위하는군. 우리 대운제국에도 이런 인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이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연경, 그대는 이 자를 어떻게 보시오?”
연경이라 불린 여인이 주첩을 한 번 흘끗 바라보고는 웃으며 반문했다.
“황제께서는 어찌 보시는지요?”
소년이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는 누님의 의견을 듣고 싶소.”
여인이 대답 대신 소년의 손을 잡고는 대전 밖으로 나갔다. 여인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만약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국 적이 된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소년이 자신보다 키가 큰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그자와 친구가 되길 원하시오, 아니면 적이 되길 원하시오?”
이때 여인이 소년의 작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그건 대운제국의 황제가 결정할 일이겠지요.”
소년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친구 합시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소년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대운제국과 그는 애당초 원한 질 만한 이유도 없었고, 서로의 이익을 침해할 필요도 없었소. 그러니 그와 적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소. 그리고 만약 친구가 된다면, 우리 제국은 신뢰할 만한 맹우가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제국의 이익과 부합하는 것이오!”
여인이 조금 감격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다가 어딘가를 향해 소리쳤다.
“황명을 내린다! 제국 내의 모든 세가들에 소집령을 내려 엽현을 치게 하도록 하라! 목표는 청주 남단이다!”
“예!”
어둠 속에서 누군가 짧게 대답하고는 사라졌다.
“연경!?”
소년이 여인의 명령을 듣고 당황한 듯이 바라보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녀가 천천히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판을 더 크게 벌이는 일이니까요.”
* * *
어스름이 깔린 시각, 수많은 무리가 대운제국 황성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청주 남단으로 향했다. 목표는 엽현이었다.
현재 대운제국은 창목학원 그리고 암계와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그들의 출병 요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남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뭐래도 현재 청주 최강의 세력은 저들이 아닌가!
한편, 청주 남단의 황무지 상공엔 여전히 한 줄기의 검광이 걸려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근처의 어느 으슥한 지점, 막청현과 암계의 암주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검광이 이는 곳의 아래쪽이었다.
암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자신 있소?”
막청현이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일단 바닥에 설치된 금령진(禁靈陣)이 발동하기만 하면 상대의 현기를 봉인할 수 있소. 아무리 그놈의 육신이 강하다 하더라도 검을 사용하지 못하면 실력의 반도 펼치지 못할 것이오. 그때 그를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소?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소. 저 검이 그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까.”
막청현이 고개를 돌려 암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소?”
암주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살수들이 이미 그의 흔적을 다시 찾아냈소.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조만간 도착할 것이오.”
막청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간 그의 눈가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땅속에 있는 자들을 잘 준비 시켜야겠소. 그가 진법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 덮칠 수 있도록 말이오.”
이때 암주가 의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면… 저 연만리가 왜 이번에 우리를 지지했을까 하는 것이오. 대운제국은 처음부터 엽현과는 아무 원한도 없지 않았소? 혹시 정말로 청주 일통을 원하는 것인가?”
“흥! 그 능구렁이 같은 자는 워낙 욕심이 많은 자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오.”
이에 암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창목학원의 조력이 필요한 것이 맞소.”
그의 말대로 만약 대운제국이 청주 전체에 세력을 두고 있는 창목학원의 지지를 얻으면 청주지역을 통일하는 것이 훨씬 용이해 질 것이다. 창목학원이 각 나라에 펼치는 영향력은 어마 무시한 것이니 말이다.
두 사람의 발밑에서 멀지 않은 땅속에는 백 명도 넘는 무인들이 운집해 있었따. 그들 중 가장 실력이 낮은 자가 통유경이었다.
그야말로 창목학원의 정예부대였다.그 중 스물은 중토신주에서 온 신합경 절정의 강자들이었다.
물론 이번 일의 진짜 주인공은 지하에 묻혀 있는 진법이 될 것이다.
엽현이 진법 위를 지나는 순간 대진이 발동되면 엽현은 현기 뿐 아니라, 여타 신비한 술법까지도 운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순간 이 백여 명의 무인들이 나타난다면, 엽현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진법을 구축하기 위해 창목학원과 암계는 큰 지출을 감행했다. 그 금액만 무려 황금 오억 냥에 최상급 영석 천만 개 이상이었다.
이는 천계의 검은 중토신주에서 어렵사리 빌려 온 것이었다.
이번에 엽현을 잡기 위해 그들은 정말로 고혈을 짜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를 잡아야 했다.
이때 엽현의 성장 속도는 하늘을 나는 듯했다. 그의 창란학원의 세도 불어난 강물처럼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점점 두려운 마음이 커져만 갔다.
이렇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엽현과 창란학원이 청주 내에서의 열세를 뒤집고 창목학원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 사이의 원한은 어느 한쪽이 멸망하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암계와 창목학원은 더 이상 퇴로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그로부터 약 한 시진 후, 검은 검갑을 등에 진 흑의인이 황야에 발을 디뎠다. 고개를 숙이고 있고, 면구까지 착용한 터라 얼굴은 구분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그가 천계 검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등장에 막청현의 두 눈에 불이 켜졌다.
“왔다!”
암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지하에 있는 백여 명의 무인들 역시 한순간에 치고 나가기 위해 힘을 응축하고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그들의 상대가 청주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검주 자리에 오른 엽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엽현에겐 열두 금인까지 있었다.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준비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엽현이 이 위로 지나가기만 하면 그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지상에선 흑의인이 검 쪽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몇 발만 더 가면 진법이 발동하는 위치!
바로 이때, 흑의인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막청현이 약간 당황해하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는 좌선을 시작했다.
막청현의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흑의인은 계속해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약 반 시진이 지나자 막청현의 곁에 나타난 암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이상하오.”
막청현이 흑의인을 쳐다봤다.
“한 번 시험해 봅시다!”
암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순간, 가만히 앉아 있던 흑의인이 돌연 면구를 벗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두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정체는 엽현이 아니라 바로 묵운기였던 것이다.
묵운기가 고개를 치켜들고서 웃는 얼굴로 소리쳤다.
“놀랬지? 그렇지?”
막청현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바로 이때, 막청현의 눈앞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막청현이 안색이 크게 변하여 소리쳤다.
“즉시 철수하라! 모든 무인들은 당장 창목학원으로 돌아간다!”
말과 동시에 막청현과 암주가 눈 깜빡할 사이에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대운경, 창목학원으로 가는 산속.
검갑을 등에 메고 있는 흑포인이 창목학원 학생들과 대치중이다.
흑포인은 출수하지 않고 있었고, 학생들 또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바로 엽현이기 때문이었다.
빠른 속도로 신형을 옮긴 막청현과 암주는 단 이 각이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창목학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때 창목학원에 아직 사단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막청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학생들과 대치 중인 흑의인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엽현, 네 이놈! 여기가…….”
바로 이때, 흑포인이 장포를 벗어버리고는 진면목을 드러냈다.
흑포인의 진짜 모습을 확인한 막청현의 얼굴이 마치 번개에 맞은 사람처럼 급격히 창백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