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70
1771화 무한의 존재
소년은 소녀를 업고서 무작정 내달렸다.
이때, 소녀가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 왜 다들 현기를 수련할 수 있는데 나는 안 되는 거야? 평생토록 무공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야?”
소년이 다그치듯 소리쳤다.
“다 헛소리야!”
“…그러면 왜 난 안 되는 거야?”
“그건…….”
소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건 네 체질이… 특수하니까! 그래, 넌 범인(凡人)의 체질을 타고 났어!”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범인 체질?”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범인이야.”
“범인 체질이 뭔데?”
“음… 그러니까, 말 그대로 평범한 체질이라는 거야.”
소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말은 그러니까 내가 평범하다는 거야? 평범한데 왜 남과는 다른 거야?”
소년은 자신이 다소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평범한 거야말로 가장 비범한 거야.”
“어째서?”
“왜냐하면… 그래! 체질이 평범하다는 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오빠, 이 말 누구한테서 들은 거야?”
“내가 생각…….”
소년은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꿈에 선조가 나타나서 말씀해주신 거야.”
이제야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구나.”
“어쨌든 청아는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어. 오빠가 항상 지켜 줄 테니까!”
“헤헤…….”
소녀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소년의 목을 꽉 끌어안고는 소년의 등에 머리를 파묻었다.
“오빠, 영원히 지켜 줄 거야?”
소년이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만 않는다면.”
소년이 말을 흐리자 소녀가 긴장하며 물었다.
“뭐라고? 못 들었어.”
“…내가 영원히 지켜줄게. 죽지만 않는다면…….”
기억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괴로운 일은 없었다.
오직 달콤한 추억뿐이었다.
엽현은 청아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청아는 단지 천진난만한, 검수를 꿈꾸는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천도불인(天道不仁)!
천도가 두 사람이 살고 있던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하면서 운명의 톱니바퀴는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저택 안.
엽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이때의 엽현은 전생의 어린 시절에 대해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굴에서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엽현은 고개를 돌려 청아를 찾았다.
“청아…….”
청아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엽현의 손을 잡았다.
“오빠…….”
엽현은 청아의 손을 마주 잡고는, 잠시 강하게 끌어안았다.
엽현의 품속에서 청아는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엽현은 드디어 완전히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두 사람은 마음을 추스르고서 같은 방향을 보고 나란히 앉았다.
“가야 해?”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말라면 안 갈게.”
엽현이 청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거지?”
엽현의 질문에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관심을 끌 정도라면 보통 세상은 아니겠네?”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야.”
단순한 호기심!
엽현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삼검이 관심을 갖는 세상이 어디 평범한 세상일 리가 있을까?
이때, 청아가 엽현을 보며 손을 붙잡았다.
“오빠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정말이야!”
엽현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청아, 너희 세 사람이 싸우지 않는 건 나 때문이야?”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싸우면 이길 자신 있어?”
청아가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했다.
“나는 무적이야.”
무적!
엽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에게도 질문을 한다면 똑같은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결국 누가 가장 강한지는 정말로 싸워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었다.
“진짜로 싸움이 벌어지면 누군가는 반드시 죽겠지?”
청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고 싶지만 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이 말은 즉, 내가 홀로 살아남기에는 여전히 약하다는 의미인가?”
“…오빠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엽현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청아의 눈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약자일 게 분명했다.
엽현은 생각을 던져버리고서, 돌계단에 몸을 뉘었다.
“가도 돼.”
“…….”
청아는 말이 없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따라가. 나는 영원히 세 사람만큼 강해지지 못할 거야.”
“…….”
엽현은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세 사람보다 더 강해져야겠어.”
“응? 갑자기?”
“하하, 내가 세 사람보다 더 강해지면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울 일이 없을 거 아냐!”
“…….”
엽현이 웃으며 청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날 믿을 수 있겠어?”
“…믿어!”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엽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엽현은 처음으로 세 사람을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지 않고는 세 사람은 결국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세 검수 모두 스스로를 무적이라 여기고 있었다. 목숨을 건 승부만이 진정한 무적을 가리고, 자신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는 있었다.
그건 바로, 이 세 사람보다 더 강한 존재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실력으로 이들을 압도하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그리고 엽현은 그 누구의 죽음도 원하지 않았다.
이때, 청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어. 오빠가 강해지지 않더라도 내가 지켜주면 되니까.”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청아 네가 나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돼.”
엽현은 살며시 청아의 손을 잡았다.
“나, 노력할 거야! 그래서 꼭 너 정도로 강해지고 말겠어!”
“…쉽지 않을 텐데.”
“하하! 괜찮아! 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래. 소탑 녀석이 내게 무슨 후광이 비친다고 했거든!”
[…….]“후, 후광?”
청아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뭐라더라? 맞아, 주인공의 후광이라 그랬어!”
이 말에 청아가 손을 펼치자, 작은탑이 그녀 손 위로 튀어 나왔다.
“헤헤, 천명 누님, 그냥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한 거니까 신경 쓰지…….”
청아가 작은탑을 자세히 살펴본 뒤 엽현에게 말했다.
“이 돌멩이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 같네. 가능한 말을 섞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
“…….”
청아는 작은탑을 다시 엽현에게 넘겨주었다.
“기다릴게. 너무 늦지는 마, 오빠.”
청아의 말에 엽현이 미소로 대답했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
“…응.”
이때, 엽현이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물론이지!”
“그, 그럼 이거 하나만 알려줘. 일검정생사의 요체가 살세인 건 맞지?”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럼 살세가 강해지면 검기의 위력도 강해지는 걸로 이해하면 될까?”
청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절반만 이해한 거야.”
“음? 그게 무슨 뜻이야?”
청아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살세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어. 첫째는 살념, 살념이 먼저 일어나야만 마음속에 살심이 생기는 거야. 둘째는 살의. 살념과 살심이 응집된 게 바로 살의야. 이 살의 역시 응집할 수 있어.”
“그럼 살세가 핵심이 아니란 거야?”
청아가 재차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살념이야. 살념이 강해야 살심이 강해지고, 살심이 강화돼야 살의에 영향을 끼치지. 그렇게 만들어진 살의는 마침내 살세로 발현되는 거야. 결국 핵심은 살념이야.”
이때, 청아의 손바닥 위로 행도검이 떠올랐다.
“어떻게 살념을 강화하는지 알아?”
“살인?”
엽현의 대답에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은 하나의 죄악이지. 살인을 만 번 하면 효웅이 되고, 구백만을 죽이면 효웅 중의 효웅이 되지. 살인을 많이 해야 살념도 강해지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살념의 위력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무한!”
“무…한?”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에도 생각만으로 이 우주의 거의 모든 생령을 죽일 수 있어.”
“…….”
이때, 엽현 곁에 붙어 있던 작은탑이 황급히 계옥탑 안으로 돌아갔다.
청아에게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오빠, 지금 등천경이지?”
“맞아.”
청아가 가볍게 옥지를 튕기자, 사방에 수십만 개의 시간장하가 나타났다.
이 모습을 본 순간, 엽현은 거의 넋을 잃을 뻔했다.
눈 앞에 펼쳐진 시간장하는 천지의 것이 아닌 청아 자신의 소유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엽현이 본 것 중 개수가 가장 많은 것은 고작 여든아홉 줄기에 불과했다!
청아가 보유한 수십만 개의 시간장하는 엽현에게는 그야말로 꿈이나 다름없었다!
“이보다 더 많이 가질 수도 있어.”
“어, 얼마나 많이?”
엽현은 이제 질문하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청아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무한대로.”
무한!
엽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떤 경지도 무한에 이를 수 있어.”
“달리 말하면 하나의 경지를 평생 동안 수련할 수도 있다는 거야?”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하지만 한 경지에서 무한에 이른 후에는 수련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 그러니 다음 경지로 넘어가야만 하지.”
“경지의 무한에 이르다…?”
엽현은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이에 청아가 다시 차분히 설명했다.
“등천경은 시유계를 응집할 수 있어. 내가 응집할 수 있는 시유계의 수는 무한에 가까우니, 나는 등천경의 극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등천경은 내게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지.”
“그럼 청아 너처럼 한 경지 내에서 ‘무한’에 이른 사람이 또 있어?”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진 만나 본 적이 없네.”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경지를 창시한 사람조차도 불가능하단 말이야?”
이 말에 청아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등천경을 처음으로 창안한 사람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 그런 자와 날 비교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엽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청아는 이미 경지를 처음 만든 사람을 초월하다 못해, 쳐다보지도 못할 높은 곳에 이른 상태였다.
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 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경지에는 여러 개의 결함이 있어.”
“겨, 결함?”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결함은 시차원을 다루면서도 그게 정확히 뭔지 전혀 모른다는 거야. 달리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거지.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차원을 운용하니 속 빈 강정이 될 수밖에.”
“그럼 시간과 공간의 본질은 뭐야?”
“시공은 공간의 연속이고, 공간은 영원히 존재해. 적어도 현존하는 우주 내에서는 공간은 경계가 없고, 영원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걸로 돼 있지.”
“하지만 공간을 삭제하는 건 가능하잖아?”
청아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그녀 오른편에 있던 공간이 사라졌다.
“지금 이 자리에 뭐가 있는 것 같아?”
청아가 소멸된 공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에 엽현이 주저하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여전히 공간이야. 아무리 제거한다 해도 이 자리의 본질이 공간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 그러니 이쪽의 우주의 규칙 안에서는 공간이 영원불멸하다는 전제가 성립되는 거야.”
엽현은 문득 청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쪽 우주’라는 건… 이 우주 밖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거야?”
“…….”
청아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청아?”
“…오빠, 지금은 현행 우주의 법칙만 다루는 걸로 해.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 봤자 이해하지도 못할 거야. 그리고… 내가 설명해 주면 또 질문이 쏟아질 테니, 그러면 이 대화는 이번 생에는 끝나지 않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