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72
1773화 나만 볼 수 있는 미소
삼요왕이 말을 꺼냈다.
“두 분이 동일 경지에서는 최강자라는 걸 알지만, 그 여자의 실력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오. 섣불리 얕잡아 보는 건 문제가 있소.”
이현청이 웃으며 대꾸했다.
“봉성(封聖)만 아니면 상관없는 거 아니오?”
봉성!
삼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성인의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은 걸로 봐선 봉성은 아닌 것 같소. 하지만 조심해서 문제 될 건 없소.”
이현청이 웃으며 대답했다.
“소성인(小聖人) 이하라면 내가 죽이지 못할 자가 누구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이현청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막도녀 역시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갔다.
삼요왕은 평온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일부러 자극한 겁니까?”
삼요왕이 여목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보통 눈치가 아니구나.”
“…….”
“그 여자는 분명 강하겠지?”
여목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네가 보기에 그 여자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강한 것 같으냐?”
여목은 대답을 망설였다.
이에 삼요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아 하니, 그 여자가 더 강한 것 같군.”
“…그녀의 실력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습니다.”
여목이 문득 고개를 들어 삼요왕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일검에 임모 장로를 죽였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목이 말끝을 흐리자, 삼요왕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똑똑한 계집아이야.”
이 말에 여목의 표정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네 말이 맞다. 하늘 위에 언제나 또 다른 하늘이 있는 법. 신계 영생원천이 주는 유혹은 대단하지만, 상대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겠지. 우선 그녀의 실력을 살피는 게 먼저다.”
“두 사람을 이용해 그녀의 실력을 살펴본다는…….”
삼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마저 간단히 제거하는 실력자라면 그때는…….”
삼요왕이 말을 아끼며 여목을 쳐다보았다.
“네 말을 믿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경지의 한계로 인해, 네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부분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만약, 상대가 네 말대로 엄청난 고수일 경우, 저 둘은 죽겠지만 우리 천요국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여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저 그런 시공경 강자라면…”
삼요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도 죽이고 영생원천도 빼앗아야지!”
* * *
원계에 신계 영생원천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계와 천요국, 소동천 외에도 수많은 신비 세력들이 원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생명원천이 엽현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미 원계를 떠난 엽현을 찾아 나섰다.
야족.
대전에는 야족의 모든 강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지극히 어두웠다.
한동안 무수히 많은 강자들이 원계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모두 신계 영생원천을 노리고 온 자들이었다.
이때, 장로 하나가 말했다.
“신계 영생원천을 소주에게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큰 변고를 당할 뻔했습니다!”
야족 무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생원천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이미 원계는 저들의 공격을 받아 쑥대밭이 돼 있었을 것이다.
상석의 야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소주께서 잘 감당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원계를 찾아온 강자들의 면모가 대단히 흉흉했기 때문이다.
이때, 대전 안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족장! 일단의 신비 세력이 미친 듯이 소주를 찾고 있다 합니다!”
이 말에 야원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이때, 장로 하나가 나섰다.
“우리가 도우러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야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이 곁에 있는 이상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다. 그분이 막을 수 없다면 우리가 가 봐야 쓸데없는 죽음을 초래할 뿐이지.”
야원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대전 밖을 응시했다.
이때, 야화가 말했다.
“제 생각엔 소주를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냐?”
무인들이 일제히 야화를 쳐다보았다.
이에 야화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제 말은… 그분이 한 번 화를 내시면 이쪽 우주가 날아갈지도 모르니, 응당 우리를 걱정함이 옳다는 뜻입니다.”
“…….”
* * *
어느 성역.
청아의 조작 아래, 분해된 우주 공간이 청아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엽현은 이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귀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공간이 소멸이 아닌 재편되는 모습은 엽현의 인식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바로 이때, 청아 앞에 돌연 검병(劍柄) 하나가 나타났다.
이를 보자 엽현이 황급히 물었다.
“손잡이뿐이야? 검은?”
청아가 눈앞의 검집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이곳의 시공으로는 손잡이밖에 만들 수 없어.”
“시공으로 만든 검병?”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이제 검신을 만들어 줄게.”
청아가 엽현의 손을 잡은 순간, 두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느 시차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시차원은 엽현이 이제까지 보았던 것과는 달랐다.
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청아, 이곳의 시차원은 어째…….”
“시간장하. 이 우주의 주맥(主脈)이야.”
“주…맥?”
엽현이 의아하게 여기자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우주에나 시간의 주맥이 존재해. 이 주맥은 한 우주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고 있어. 그리고 매우 극소수의 사람만이 접촉할 수 있지.”
청아가 눈으로 사방을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현재야. 여기서 앞으로 나가면 미래가 되고, 뒤로 물러나면 과거로 가는 거지.”
미래?
엽현은 흥분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십만 개의 작은 길이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엽현이 놀란 표정으로 청아를 바라보았다.
“미래는 한 가지 가능성만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항상 불확실하지. 아주 작은 행위 하나로도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거야.”
엽현이 진중하게 물었다.
“청아, 혹시 미래를 볼 수 있어?”
청아가 엽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면 충분히 가능해.”
“보고 싶어?”
청아가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엽현의 계속된 물음에 청아가 정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원하기만 하면 미래는 바꿀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거든.”
“아…….”
청아의 말을 이해한 순간, 엽현은 너무나 황당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적!
청아는 이 세상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전지전능한 존재였던 것이다!
엽현이 문득 한숨을 토해냈다.
“소탑 녀석의 말이 맞았어. 너는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존재라고…….”
이때, 작은탑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갑자기 또 무슨 헛소리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타, 탑의 명예를 걸고 절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왜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청아처럼 성격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성격 좋은 사람!
작은탑은 할 말을 잃었다.
일검에 신묘를 멸망시켜 버린 여인이 성격이 좋다고?
엽현이 드디어 미쳐버린 걸까?
이때, 엽현을 응시하던 청아의 입꼬리가 살포시 말려 올라갔다.
“청아, 웃으니까 예쁘다.”
“…오빠 앞에서만.”
엽현이 웃으며 청아의 손을 잡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계옥탑 안, 작은탑이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가 보기에 청아는 엽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엽현이 한마디만 하면, 주저 없이 우주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만큼 엽현이란 존재는 청아에게 있어 전부와 같았다.
“오빠, 이제 검신을 만들어 줄게.”
청아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쾅-!
순간, 눈앞에 있던 시간장하의 주맥 전체가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광경에 엽현은 넋을 잃고 말았다.
“청아, 만약 주맥이 사라지면 이 우주는 어떻게 되는 거야?”
청아가 무던하게 대답했다.
“우주가 멸망하고 그 안에 생령들도 다 죽겠지.”
이 말에 엽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검신을 만들려고 우주를 멸망시킬 건 아니지?”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오빠는 원치 않을 거야. 그렇지?”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그건 너무 지나쳐!”
엽현은 자신을 특별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고작 검신 하나를 만들고자 우주 전체의 생령을 죽게 만드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다른 생령들은 둘째치더라도, 친구들을 죽게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청아도 엽현의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를 멸망시킬 생각은 없어. 다만, 주맥에 존재하는 시간지력을 취하려는 것뿐이야.”
청아는 엽현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시공은 검병이, 시간은 검신이 되고 법칙은 검날이 될 거야. 이 검은 오직 오빠만이 다룰 수 있어.”
이 말을 듣자 엽현은 온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검!
청아가 만든다면 절대 보통 검은 아니리라!
이때, 계옥탑 안의 작은탑이 오들오들 떨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 뻔뻔한 주인이 저런 강력한 무기까지 갖게 된다면… 틀렸어. 이 세상은 이제 가망이 없어!”
엽현은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청아가 직접 창조하는 검!
어찌 기대가 안 될 수 있겠는가!
한편, 이때에도 엄청난 양의 시간지력이 사방에서 끊임없이 청아를 향해 몰려들었다.
이 시간지력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사실 엽현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절정급 고수가 이 장면을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게 분명했다.
현재의 시간지력을 축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을 다루는 일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하물며 그보다 어려운 미래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래의 시간을 축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시간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청아는 어찌 된 일인지 이 불가능한 일을 손쉽게 이뤄내고 있었다.
엽현이 질문을 했다면 청아는 당연히 이에 대해 설명해 주었겠지만, 엽현의 실력과 사고는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검신이 점점 윤곽을 드러냈다.
검신은 아름다운 순백색으로, 밝을 때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길이 삼 척, 손가락 두 마디의 두께를 가진 검신은 화려하기보다는 투박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시간으로 빚은 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