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785
1786화 겁도 없구나
전혀 생각지 못했다.
외문의 처지가 이토록 초라할 줄은.
같은 대령신궁이면서 어찌 이렇게 야박하게 군단 말인가?
이때, 고청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준비를 마치면 곧바로 임랑각으로 가거라.”
이수연이 의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수연은 엽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엽 형, 그리고 도일 소저, 잠시 후에 산문 앞에서 봅시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이수연은 곧장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고 장로님.”
엽현이 고청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대령신궁에서 외문의 지위가 왜 이다지도 낮은 것입니까? 정말로 실력 문제인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외문의 제자들은 대부분 종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입입니다. 그런 자들의 실력이 약한 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아닙니까?”
이 말에 고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핵심은 지난 수십 년간 외문 제자 중에서 내문 시험에 통과한 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지. 시간이 흐르면서 양측의 실력 차는 점점 벌어지게 됐고, 이로 인해 내문이 외문을 깔보는 경향이 고착화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세대의 천재들이 현 세대의 천재들을 자신들과 비교하며 무시하는 것이지.”
말을 곰곰이 듣고 있던 엽현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오십 년 동안이나 합격자가 없을 수 있습니까? 시험 기준이 높아진 것입니까?”
고청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이 지경까지 온 겁니까?”
고청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나 역시 오랫동안 내가 가진 역량을 저 녀석들에게 전부 쏟아왔다. 어째서 통과자가 없는지는 나도 알고 싶은 부분이다. 게다가 외문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만약 이번에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상황은 지금보다도 더 악화되겠지.”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
질문을 하는 고청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이를 본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고청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 시진 후.
엽현과 도일은 산문 앞으로 나왔다. 산문 앞에는 이미 이수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갑시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임랑각을 향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임랑각은 고신성이 아닌, 성 밖의 어느 우주 공간에 위치했다.
“엽 형은 임랑각에 대해서 잘 모르지 않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첫 번째 방문이오.”
“임랑각은 소임랑(蕭琳瑯)이라는 여인이 지은 것이오. 소임랑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하하, 엽 형은 정말로 아는 게 없구려!”
“그러게 말이오. 그런데 그 소임랑이라는 자는 대단한 사람이오?”
이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대단한 데다 신비하기까지 한 여인이오. 그녀는 처음 외문제자가 된 직후, 곧장 내문 시험을 치르러 갔소. 결과는 역사상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내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되었소. 그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직전제자를 뽑는 시험에 곧바로 지원했고… 이번에도 통과했소. 직전제자가 된 후, 그녀는 임랑각을 세우고, 최고의 천재들만을 골라 초대하는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소.”
“임랑각에선 그저 단순히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오?”
엽현의 물음에 이수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하나의 사교모임이오. 임랑각에 초대받았다는 건 천재 중의 천재라는 소리요. 이런 사람은 보통 집안 또한 만만치 않소. 서로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큰 이점이 있소. 게다가 임랑각 안에는 귀중한 무학과 심법이 보관돼 있소. 물론, 이것들을 보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오. 이외에도, 서로 친목을 다지면서도 무에 대한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소. 어쨌거나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러모로 수확이 적지 않다할 수 있소.”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소.”
이때, 이수연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사실… 우리 세 사람은 초대받을 자격이 없소. 고 장로가 준 이 초대장도 어쩌면… 거짓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오.”
이수연이 손안의 초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이 형. 너무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건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오.”
이 말에 이수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 엽 형. 새겨듣도록 하겠소. 다만, 이곳에서 받는 압박은 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당하다오. 특히, 임랑각에 모이는 자들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무인들이오. 그에 반해 나는…….”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하오. 물론 남보다야 못할 수도 있소. 하지만 스스로를 낮게 보는 것은 안 될 일이오.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데, 어찌 남들의 존중을 기대할 수 있겠소?”
이수연은 잠시 말이 없었다.
“좋은 말이오. 엽 형에게 하나 배우는구려.”
엽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회합에 가는 거라 생각하시오. 가서 실컷 먹고 마시다 돌아옵시다!”
“하하! 엽 형은 참 재밌는 사람 같소!”
대화가 오가는 사이, 세 사람은 이미 성 밖을 걷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이수연 역시 인상을 쓰며 빠르게 창을 꺼내 들었다.
이때, 엽현이 돌연 돌아서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쉭-!
파공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수백 장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살수!
이수연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담하구나! 감히 대령신궁의 사람을 노리다니!”
이때, 엽현에게 밀려난 그림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방에선 그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발각되자마자 곧바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엽현은 눈썹을 높이 치켜세웠다.
‘누구지?’
신계 영생원천을 훔치러 온 도둑일까?
아니면 소동천 혹은 천요국?
천요국일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이미 청아로부터 쓴맛을 보지 않았던가.
반면, 소동천이라면 복수를 위해 자신을 찾아왔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엽 형, 아는 자였소?”
이수연이 묻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신경 쓰지 말고 갑시다.”
방금 전, 엽현은 일검을 휘두른 직후에, 더 이상 상대를 추격하지 않았다.
아니, 마음 같아선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속도가 워낙 빨라 따라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었다.
“대령신궁으로 돌아가서 장로들에게 보고하는 게 낫지 않겠소?”
“하하, 괜찮소. 이 정도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소.”
잠시 망설이던 이수연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하겠소.”
“그럼, 임랑각으로 바로 갑시다.”
세 사람이 사라진 후, 그들이 있던 자리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한 실력이군. 이 정도라면…….”
그림자가 중얼거리는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든 검이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푹-!
그림자는 마치 못에 박힌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때, 엽현이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어때? 깜짝 놀랐지?”
이때, 그림자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자폭!
이 모습을 본 순간,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각되자마자 자폭을 시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소동천의 무인인가?”
엽현의 물음에 그림자가 한 손을 가볍게 떨었다.
엽현은 이 미세한 동작을 간파해 냈다.
“정말로 소동천이었단 말인가…….”
이때,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상대는 절진경의 살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들. 날 너무 과소평가했군.”
이때의 엽현은 절진경은 물론, 시공경 급 강자도 초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도 청현검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엽현은 상대로부터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입을 삐쭉였다.
잠시 후, 엽현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 * *
임랑각은 어느 호숫가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명성대로 크고 화려했으며, 전체 건물을 수정으로 지어 올려, 달빛을 받을 때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환상적인 모습을 자아냈다.
엽현 등 세 사람이 임랑각 입구에 나타났을 때, 여인 하나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은 아름다운 미모에 걸맞은 담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초대장을 보여주십시오.”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각각 초대장을 꺼내 여인 앞에 내밀었다. 초대장을 본 순간, 여인의 눈가에 기이한 기색이 스치듯 드러났다. 하지만 더는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이 말에 이수연이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세 사람은 임랑각 안으로 진입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엽현 등 세 사람은 당황했다.
화려한 궁전 같은 외면과 달리, 내부는 지극히 단출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착각할 법한 장식들은 덤이었다.
“오늘 임랑 소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아마도 이요야는 참석할 테지만.”
“음? 그녀는 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 거요?”
엽현의 질문에 이수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하지 않소. 어쩔 땐 오기도 하고, 어쩔 땐 또 참여하지 않기도 하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대전은 굉장히 넓었다. 이 넓은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단상 위에는 자리마다 부들방석이 깔려 있었다.
“저곳은 무인들이 논도(論道)를 펼치는 공간이오.”
이수연이 설명하고는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쪽으로 가 봅시다. 듣자 하니, 전각 안에 구경거리가 많다고 하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세 사람은 내각(內閣)으로 향했다. 내각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에 백여 개의 수정 전시관이 설치돼 있었다. 전시관 안에는 신물과 무공 서적으로 보이는 두루마리 등이 놓여 있었다.
이때, 이수연이 어느 수정관 앞에 멈춰 서더니,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황고권(荒古拳)!”
이 목소리에, 엽현이 이수연 곁으로 다가왔다.
이수연이 보고 있던 수정관 밑에는 큼지막하게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황고권.
“황고권, 성계 등급의 무공이오.”
“성계?”
이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은 크게 다섯 개의 등급이 있소. 가장 약한 등급인 허계(虛階), 그다음이 진계(真階), 성계(聖階), 신계(神階),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신계(古神階) 등급으로 구분 되오. 성계 등급의 무공과 심법은 대령신궁 안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것으로, 몇몇 핵심 제자에게만 접근 자격을 부여하고 있소.”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중앙에 위치한 한 수정관 앞에 멈췄다. 다만, 그가 가까이 다가서려 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막아 세웠다.
진법!
엽현은 수정관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패기 넘치는 글씨로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검절(劍絕).
검법!
게다가 신계 등급의 검법이었다.
이를 보자, 엽현은 흥분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 형, 이 검법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이수연이 엽현이 보고 있는 수정관을 쳐다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엽 형, 그건 다소 어려운 일인 것 같소. 그 물건을 얻으려면 동급의 검기로 교환해야만 하오.”
엽현이 막 대꾸하려는 이때, 어디선가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등천경?”
엽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연신 눈썹을 치켜세웠다.
“등천경이 임랑각에 들어오다니, 개가 웃을 일이로군!”
“…….”
“외문에서 온 건가?”
외문제자!
엽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너희는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을 텐데.”
순간, 남자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겁도 없군. 감히 초대장을 위조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