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00
1801화 새로운 계략
백발여인이 출수하는 모습을 본 순간, 엽현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여인의 실력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여인의 검도는 그의 상상보다도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다!
엽현은 머리 위의 성공을 쳐다보았다. 물론 청아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실력으로 머나먼 성역 너머에 있는 청아를 볼 수는 없었다.
한편, 미지의 성역에선 청아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희미한 검을 향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군.”
말을 마친 순간, 청아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선 뒤로 돌아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던 길을 향했다.
촤아-!
투명한 검이 반으로 갈라지는 이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백발여인의 미간을 뚫고 지나갔다.
쾅-!
이것으로 끝이었다.
백발여인의 육신은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했다.
초살(秒殺)!
엽현의 정면, 백발여인의 눈빛은 초점을 잃어갔다.
엽현은 말없이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명백한 청아의 승리.
역시 청아는 무적이었다.
한편, 검심심과 소임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엽현의 배후가 여인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둘 사이에 수만 개의 성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때, 백발여인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여자의 이름이… 무엇이냐?”
“천명…….”
엽현이 백발여인을 향해 대답했다.
“천명이라… 후후… 매우 강하구나.”
엽현의 시선은 백발여인의 미간에 꽂혀 있는 검광으로 향했다.
“그 검광을 회수하면 살 가망이 있습니까?”
엽현의 물음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죽어 있다.”
“아…….”
엽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가 아는 청아는 부친이나 형님과는 매우 달랐다.
그녀가 손속에 사정을 둘지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달린 것이었다.
“후후,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 말에 엽현이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의 입꼬리는 웃고 있었다.
“한 사람의 검수로서, 더 강한 검수에게 죽는 것은 최고의 결말이니까.”
여인의 시선은 엽현이 들고 있는 목패로 향했다.
“아이를… 부탁한다.”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은 눈을 감았다.
이와 거의 동시에 그녀의 육신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속도로 빠르게 흩어졌다.
“미안… 미안하오!”
남자가 흐느끼듯 소리쳤다.
하지만 여인은 눈을 뜨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철저한 무시였다.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던 여인은 마침내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여인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 옥으로 된 비녀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비녀를 본 순간, 남자의 눈이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휘둥그레졌다.
이내, 그의 머릿속엔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장면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의, 이 비녀가 그리 마음에 드시오?”
“좋아요!”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오. 반면에 나는…….”
“임랑(林郎), 그대가 아니면 누구한테도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대의 부친께서 반대하실 게 뻔하지 않소?”
“그럼 같이 도망쳐요!”
“아의, 그렇게 되면 후계자 자리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전 임랑만 있으면 어디서든 행복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아의, 이 한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그대를 행복하게 해 주겠소.”
“…….”
남자는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남자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서는 미친 듯이 울기도 했다.
엽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사랑은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결국 여인을 버렸고, 그때부터 비극은 시작 되었던 것이다.
이때, 남자가 갑자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그의 손안에서 투명하고 작은 탑 하나가 엽현을 향해 날아왔다.
“이, 이게 뭡니까?”
“그 안에 검허종의 모든 보물이 들어 있다. 이제부터 네 것이다.”
엽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그녀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너는 모른다. 그녀가 날 죽이지 않은 건 날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이지.”
엽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연거푸 한숨을 쉴 뿐이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엽현의 손안에 있는 목패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아이야, 그럼 부탁하마!”
이 말과 동시에, 남자의 영혼에 불길이 치솟았다.
“저, 저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엽현이 다급히 외쳤다.
임종의 순간, 남자의 시선은 엽현이 쥐고 있는 옥비녀에 고정됐다.
“미안하오. 곧 따라가겠소…….”
이 순간, 시뻘건 불꽃이 남자의 영혼을 완전히 휘감았다.
잠시 후, 불길이 사라졌을 땐 남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죽었구나!’
엽현과 그의 일행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결말이 그들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오.”
소임랑의 말에 검심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계속 살아봤자 서로에게 고통만 안겼을 거야.”
이번에는 엽현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소.”
이때, 검심심이 문득 엽현을 향해 말했다.
“검주, 검주도 조심 하십시오.”
이 말에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검심심을 쳐다보았다.
“내, 내가 뭘 어쨌다고?”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놀려고 하면 검주의 최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엽현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려는 이때, 머릿속에 뭔가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엽현이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선 채로 펑펑 울고 있는 영석의 모습이 보였다.
영석!
이 아이가 백발여인의 검도의지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엽현은 조심스레 영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울지마. 엄밀히 말하면 네 주인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거니까.”
영석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흐느꼈다.
“그럼 나는… 나는 어떡해?”
“하하, 뭐가 걱정이야? 이제부터는 나랑 함께 다니면 되지!”
영석이 고개를 들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같이 갈래?”
“그게, 그러니까…….”
“사탕은 충분히 있어!”
망설이던 영석이 이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갈게! 따라 갈게!”
“…….”
엽현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깟 사탕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하지만 정말로 어이가 없는 건 이 장면을 지켜보는 소임랑이었다.
영석은 비록 검도의지에 불과하진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대성인도 능히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존재를 엽현은 고작 사탕 몇 알을 써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엽현은 백발여인의 검도 전승도 얻은 상태였다.
더욱 중요한 건, 엽현이 검허종의 유산 전부를 챙겼다는 사실이었다!
한 세력의 재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다니!
횡재!
엽현은 그야말로 앉아서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임랑 역시 검허종의 재물에 관심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권리를 주장할 순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지목한 것은 오직 엽현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돌아섰다.
“자, 그럼 이만 갑시다!”
검심심과 소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납계 하나를 꺼내 소임랑에게 건넸다.
“임랑 소저, 그대 것이오.”
소임랑이 엽현을 흘끔 쳐다보고는 납계 안을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무려 백만 개에 달하는 영생신정이 들어 있었다.
영생신정!
대성인조차도 수련에 이용할 정도로 귀중한 물건이 아닌가!
백만 개의 영생신정은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대령신궁같은 초거대 세력조차 단 기간에 모을 수 없는 양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소임랑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걸… 내게?”
“그렇소. 우린 친구니까!”
“…….”
말없이 엽현의 얼굴을 쳐다보던 소임랑은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친구.”
그녀는 그렇게 납계를 받아 들었다.
친구를 얻은 엽현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 검심심이 맨손을 내밀었다.
“소주, 제 것은 없습니까?”
엽현이 검심심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다니…….’
속마음과 달리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심심,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소.”
“무슨 부탁이십니까?”
“검맹에 한 번 다녀와 주시겠소?”
“검맹?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물건을 좀 전달해 주시오.”
엽현이 조금 전 얻은 검허종의 보물들 중에는 공법과 검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검맹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검맹의 주인은 청삼남이긴 하지만, 그는 검맹의 운영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은 상태였다.
검맹의 무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명백히 한계가 있었다.
검허종의 심법과 검법들은 아주 대단한 것들이어서, 검맹의 무인들이 익힌다면 언젠가 소성인, 심지어 대성인의 출현까지도 기대해 봄직했다.
엽현은 검허종의 실력이 확실히 대령신궁 이상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런 세력이 질투에 눈이 먼 여인 때문에 멸망당한 것은 확실히 아쉬운 일이었다.
엽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발여인의 실력은 삼검을 제외하고 단연 최강이었다.
그녀가 청아를 공격한 순간, 엽현은 그녀의 검이 고신성역으로 향했더라면 고신성역은 의심의 여지없이 멸망했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전한 상대는 다름 아닌 청아였고,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을 거둔 엽현은 검심심에게 납계 하나를 건넸다.
“내가 쓸 만한 건 이미 따로 빼놨고, 나머지는 모두 검맹의 것이오. 검치나 검절에게 이걸 주면서 하루 빨리 경지를 끌어 올리라고 말 해 주시오. 이 빌어먹을 고신성역에 날 죽이려는 자들이 너무 많으니 빨리 와서 날 좀 도와 달라고 말이오!”
“…이걸 정말로 다 검맹에게 주는 겁니까?”
검심심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자 엽현이 눈을 뒤집어 까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나와 검맹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걸 아직도 모르시오!”
이 말에 검심심이 납계를 받아들었다.
“그럼,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막 떠나려던 검심심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쓰셨던 그 검… 혹시 절 주시면 안 됩니까?”
엽현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청현검을 꺼내 들었다.
“이 검 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엽현의 안색이 검게 그을렸다.
감히 청현검에 눈독을 들이다니, 이렇게나 뻔뻔할 수가!
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씩 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청현검이 검심심 앞으로 날아갔다.
검을 낚아챈 검심심은 가볍게 한 번 휘둘러보았다.
하지만 검에서는 그 어떤 위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심심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런 겁니까?”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느낌은 마치 보통의 검을 휘두르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청아가 검을 제조하면서 오직 나만이 사용할 수 있게 안배를 해 놓았소. 나 이외의 다른 이가 사용하면 평범한 쇳덩이에 불과하오.”
검심심은 입을 삐쭉이며 검을 엽현에게 돌려주었다.
“제 검을 빌려 간 빚을 잊지 마십시오!”
이 말과 함께, 검심심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납계 안에 검이 많으니 그중에 하나 골라 쓰시오! 하하하!”
“…….”
바로 이때, 소임랑이 갑자기 어두워진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이곳으로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소!”
엽현 역시 소임랑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강대한 기운이 자신들 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검도의지의 통제가 사라진 까닭에 진입이 가능해진 것 같소!”
이때, 엽현이 뭔가 각오한 표정으로 말했다.
“임랑 소저, 협조 좀 부탁하오!”
소임랑이 의아한 얼굴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협조라니, 무엇을…….”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후려쳤다.
“푸웁-!”
엽현의 입에서 시뻘건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소임랑은 너무나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엽현을 쳐다보았다.
“여, 엽 공자… 이게 무슨…….”
이때, 엽현이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소동천! 감히 내 보물을 빼앗다니! 네 놈들이 이러고도…….”
말을 하는 도중에 엽현이 다시 한번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쿨럭-!”
그의 입에서 또 한 움큼의 선혈이 터져 나왔다.
이 장면을 보자 소임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