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01
1802화 좋은 사람이잖아
바로 이때, 한 무리의 무인이 장내에 도착했다.
이들 중 가장 경지가 낮은 자도 시공경에 달했다.
특히나, 가장 앞쪽에 서 있는 검은 장포의 남자는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때, 흑의인의 정체를 알아본 소임랑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왕전?”
왕전!
전신각 최고의 재능이자, 이요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천재!
왕전 역시 소임랑을 보고서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임랑 소저, 그대도 여기 있었소?”
소임랑이 웃으며 대꾸했다.
“왕 형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왕전의 시선은 엽현에게로 향했다.
“임랑 소저, 저 남자는 누구요?”
“대령신궁의 엽현 공자요.”
엽현!
이 말에 왕전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엽현의 이름은 그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대령신궁의 내전과 외전, 그리고 직전제자까지 죽였다는 극악무도한 무인이 아닌가!
심지어 얼마 전 대령신궁에서 축출당했다는 그가 왜 여기에?
왕전이 날카로운 눈으로 엽현을 훑었다.
“엽 형… 다쳤구려?”
이 말에 엽현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엽현이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흉흉한 기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소동천!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감히 검허종의 모든 보물을 독식할 생각을 하다니! 더러운 자식들!”
이 말에 왕전과 나머지 무인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뿔싸! 늦었구나!’
이들은 검도의지가 사라진 것을 감지하자마자 달려온 것이었다.
헌데, 벌써 선수를 친 자가 있었단 말인가!
“소동천이 벌써 왔다 갔단 말이오?”
왕전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소! 단체로 와서 검허종의 모든 보물을 빼내고는 심지어 나를 죽여 살인멸구까지 하려 했소! 여기 임랑 소저가 적시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왕전은 고개를 돌려 소임랑을 바라보았다.
이에 소임랑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임랑은 엽현에게서 영생신정 백만 개를 받은 만큼 그에게 불리한 발언을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공범이 된 셈이었다!
소임랑이 인정하자 왕전 등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정말로 늦었단 말인가!’
바로 이때, 장내에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쳤다.
대성인!
최소 대성인의 기운이었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치켜든 이때, 하늘이 쩍 갈라지면서 노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노인의 시선은 등장과 동시에 엽현에게 향했다.
“엽현!”
“소동천! 보물을 가져갔으면 됐지, 나까지 죽이려는 것인가!”
엽현이 노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 말에 노인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엽현은 계속해서 죽일 듯이 노인을 노려보았다.
“이젠 오리발까지 내밀다니! 너희는 사람도 아니구나!”
이때,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노인에게로 쏠렸다.
노인의 경지가 대성인이긴 했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이쪽의 인원수가 더 많기 때문이었다.
“엽현! 도대체 무슨 말이냐! 우리 소동천이 보물을 훔치다니!”
“빌어먹을 영감탱이! 이래도 잡아뗄 셈이냐!”
엽현이 갑자기 자신의 의복을 죽 잡아 찢었다.
그러자 피로 붉게 물든 가슴이 드러났다.
엽현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검허종의 일억 개가 넘는 영생신정과 오십 줄기의 신계 영생원천을 가져가 놓고선 이제 나까지 죽이려 하다니! 그러고도 네 놈들이 사람이냐!”
순간, 장내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생원정 일억 개!
신계 영생원천 오십 줄기!?
무인들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엽현은 악에 받쳐 계속 소리쳤다.
“나 엽현은 고신계를 초월한 신병 따위는 필요 없다! 다, 다 너희들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다오!”
이 말에 노인이 마침내 폭발했다.
“이 정신 나간 놈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우리 소동천이 언제 그런 물건을 얻었단 말이냐! 당장 그 입 다물지 않으면 주둥이를…….”
“아, 아냐! 내가 잘못했다! 맞아! 소동천은 고신계를 단숨에 소멸시켜 버릴 초절정 무기 따위는 얻지 못했어! 내가 잘못 말한 거야!”
“…….”
순간, 무인들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집중됐다.
이때, 왕전이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소동천에 그 검도의지를 제거할 방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정말로 탄복했소이다!”
노인의 표정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너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지금 나를 모함하려는 저놈의 말을 믿는 것이냐?”
왕전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내게 멍청하다 했소?”
“그게 아니면 저런 쓰레기 같은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이냐!”
왕전이 노인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보다시피, 저 사내는 검수요. 검수는 마음을 수련하는 자들, 즉 양심에 반하는 말을 절대 할 수가 없소. 물론 이건 중요한 게 아니오. 더욱 중요한 건… 그대의 말투가 대단히 건방지다는 것이오!”
말을 마친 왕전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르는 동시에 일권을 내질렀다.
순간, 주먹에서 흘러나온 강대한 권세가 천지를 뒤덮었다.
이를 보자, 노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노인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일보 전진하며 주먹을 뻗었다.
성인지력(聖人之力)!
노인의 일권이 방출된 순간, 천지가 온통 희미해졌다.
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사방을 뒤흔든 순간, 노인이 미친 듯 뒤로 밀려났다.
반면, 왕전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밀려나지 않았다.
이 일합은 왕전의 완벽한 승리였다.
멀찌감치 튕겨 나간 노인은 경악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왕전을 노려보았다.
“넌 누구냐!”
왕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내 이름을 알 자격이나 있을까?”
말하기가 무섭게 왕전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쾅-!
왕전이 돌진한 순간, 강대한 권세가 노인의 몸을 휘감았다.
다음 순간, 노인의 주변 공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깜짝 놀란 노인은 재빨리 전진하며 맹렬히 주먹을 휘둘렀다.
쾅-!
순간, 노인의 주먹 위로 황금색 권인이 번뜩였다.
이때, 왕전이 일권을 내질렀다.
콰쾅-!
이 순간, 천지가 무너질 듯 요동쳤다.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노인이 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 과정 중에서 노인의 육신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더니, 마침내 영혼만 남고 말았다.
반면, 왕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도 밀려나지 않은 상태였다.
엽현의 시선은 왕전을 향해 있었다. 과연, 고신성역의 천재들은 진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전의 경지는 소성인, 하지만 성인경인 노인을 압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영혼만 남은 노인은 얼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격에 육신이 파괴된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노인이 왕전을 향해 포효하듯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나는 소동천 사람이다!”
왕전이 막 대꾸하려는 이때, 엽현이 갑자기 나서서 말했다.
“영감, 그럼 여기 이 공자가 누군지는 아시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신성역 제일의 천재, 왕전 공자올시다!”
엽현은 왕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아첨쟁이처럼 번들거렸다.
“일찍이 왕 형을 두고 고신성역의 유일한 천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되어 대단히 영광스럽구려!”
순간, 소임랑이 엽현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녀가 아는 엽현이라면 실력 면에 있어서 결코 왕전의 아래가 아니었다.
엽현이 자신을 낮추고 왕전을 높이는 데에는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렇게 음흉한 자가 정말로 검수라고?’
소임랑의 눈빛은 점점 의혹으로 물들었다.
이때, 잠시 멍하니 있던 왕전이 웃으며 대답했다.
“엽 형, 너무 겸손하시구려! 엽 형 역시 굉장한 천재라고 들었소!”
이에 엽현이 곧장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까지는 나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했소. 하지만…….”
엽현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왕 형을 보니 천외천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구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는 것을 깨달았소! 언제 기회가 되면 왕 형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구려!”
“하하! 내가 어찌 엽 형을 가르칠 수 있겠소? 교류라면 모를까!”
엽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건 감당하기 어렵소! 왕 형이 조금만 지적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오!”
소임랑의 표정은 점점 더 기이해졌다.
도대체 뭘 노리고 저런 연기를 펼치는 걸까?
이때, 왕전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엽 형, 대령신궁 무인들이 하는 말로는 그대는 매우 오만한 사람이라 하던데, 역시 그건 소문에 불과했구려! 실제로 만나 보니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소! 하하하!”
엽현이 따라서 웃음을 터트렸다.
“이 세상에서 왕 형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사람이 어디 존재하겠소?”
소임랑은 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귀도 틀어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엽현의 연기를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왕전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을 칭찬했다면 아부로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엽현 같은 천재가 추켜세워 주는 것은 정말이지 느낌이 달랐다.
왕전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같은 나이 또래의 천재들을 굴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만큼 짜릿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왕 형, 아무래도 저 영감을 보내 주는 게 좋을 것 같소.”
이 말에 왕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보내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엽현이 노인을 곁눈질하며 대답했다.
“저 노인은 소동천의 사람이오. 저자를 죽이면 소동천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엽현의 말을 듣자, 소임랑은 영혼만 남은 노인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살기는 틀렸군!’
이때, 왕전이 오만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 왕전이 그깟 소동천 따위를 두려워할 것 같소?”
말을 마치기 무섭게 왕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노인이 화들짝 놀라 주춤하는 이때, 거대한 권인 하나가 노인의 몸을 강타했다.
쾅-!
노인의 영혼이 터져 나갔고, 동시에 의식마저 제거됐다.
소동천의 무인을 죽였다!
이 장면을 보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전은 소동천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소동천의 무인이 죽었는데, 소동천이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이건 전쟁이다!
왕전은 전각의 미래라고 불리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런 자를 전각이 포기할 리 없으니, 소동천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절대 피할 리가 없다!
이때, 왕전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노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납계가 왕전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납계 안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물건만이 있을 뿐이었다.
왕전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 형, 이 자는 빈털터리지 않소?”
“그건 당연하오! 물건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오!”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 말에 왕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왕 형, 그보다 소동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괜찮겠소?”
왕전이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보복이 두렵다면 그건 왕전이 아니오!”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왕 형과 달리 그들의 복수가 두렵소. 아무래도 당분간 어디 숨어 있어야 할 것 같소. 그럼, 기회가 있다면 또 만나도록 합시다!”
왕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하게 잘 숨어 있으시오!”
“고맙소! 보중하시오!”
엽현은 소임랑을 향해서도 포권을 취했다.
“임랑 소저, 나중에 봅시다!”
“엽 공자도 보중하시길.”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이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왕전은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좋은 사람인데 왜 다들 욕을 한 거지? 대령신궁 사람들은 죄다 성격이 이상한가 보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