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08
1809화 짧은 휴가
엽현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죽을 거라 확신한단 말인가?
엽현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도일과 소안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엽 공자, 제 경고를…….”
여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 이때, 엽현이 여인을 향해 말했다.
“닥쳐!”
이 한 마디와 함께 엽현 일행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여인은 평온한 표정으로 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신지묘지는 확실히 평범한 세력은 아닌 거 같아.”
“신경 쓸 것 없어.”
도일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에 도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쩔 거야?”
엽현이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소동천은 분명 사람을 보내올 거야.”
“흠, 그렇다면 평범한 전력으로 덤비진 않을 텐데.”
“그렇겠지.”
“혼자서 괜찮겠어?”
도일이 걱정스레 쳐다보자, 엽현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걱정이야? 검 한 자루만 쥐고 있으면 무적인데!”
이 말에 도일이 손으로 엽현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옛날에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벌써 까먹은 거야?”
“…….”
“예전보다 강한 건 알고 있어. 상대를 얕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해. 알았어?”
엽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님!”
엽현은 절대 상대를 얕잡아보지 않았다.
적어도 청아나 청삼남 정도의 강자가 되기 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때, 엽현이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이제 대령신궁으로 돌아갈 거야?”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곳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
도일의 시선이 소안에게로 향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는 내가 데려갈게.”
도일이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 나보다는 너와 함께 있는 게 낫겠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계 하나를 내밀었다.
“네 거야!”
도일은 엽현을 한눈에 슥 쳐다보고는 거부하지 않고 납계를 받아들었다.
엽현이 다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어련히 알아서 챙겨 넣었겠지.”
이 말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심해! 만약 대령신궁에서 누가 괴롭히거든 바로 알려주고!”
“…그리고는?”
“그리고 널 괴롭히는 놈들을 몽땅 처리해야지!”
“피… 허풍은 여전하네.”
도일은 미소를 머금은 채 돌아섰다.
“절대 참으면 안 돼!”
“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도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휘 저으며 멀어졌다.
엽현은 도일이 사라질 때까지 웃으며 자리를 지켰다.
이때, 소안이 엽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오빠, 이제 우리 뭐 하는 거야?”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일 좀 보러 가야겠지!”
말을 마친 엽현은 곧바로 청현검을 꺼내 들었다. 청현검의 이동 기능을 이용하려는 이때, 갑자기 머리 위로 강대한 위압이 휘몰아쳤다.
왔구나!
엽현이 소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탑 안에서 잠시 놀고 있어!”
엽현은 곧장 소안을 계옥탑 안에 들여보냈다.
이때, 엽현의 정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웬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을 뒤로 한 채 엽현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은 허리가 꼿꼿했고 눈빛은 매우 날카로웠다.
대성인!
노인은 바로 소동천의 이노이였다.
이노이 양쪽으로는 두 명의 무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성인이었다.
엽현을 응시하던 이노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대성인도 죽일 수 있는 놈이라던데… 어디 나도 한 번…….”
아직 말을 이어가고 있는 이때, 노인이 갑자기 깜짝 놀라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쾅-!
검광이 산란하면서 이노이가 수백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가 막 자리에 멈췄을 때,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황금 갑옷의 일부가 바스러졌다.
이노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이때, 또 다른 검광 하나가 날아들었다.
눈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 없는 빠르기였다.
이노이의 눈동자가 잔뜩 쪼그라들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왼손을 치켜들었다.
쾅-!
검광이 터져 나가면서, 이노이가 재차 뒤로 밀려났다.
이때, 엽현이 이노이를 응시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엽현은 양손을 내려놓고 있었지만, 이노이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조금 전 두 번의 공격이 이노이의 가슴속에 두려움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엽현의 비검은 무척이나 빨랐다.
너무나 빨라 반격은커녕 피할 수조차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날아오리라고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방어를 하는 것뿐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몸으로 때우는 것이었다!
엽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 발 전진할 때면 이노이는 수백 장씩 뒤로 물러났다.
다른 두 대성인들은 이 장면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곧, 정신을 차린 이들이 막 출수하려는 순간, 두 자루 비검이 날아들었다.
퓨퓻!
반격할 겨를도 없이 두 무인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쾌(快)!
엽현의 비검은 위력에 있어서는 크게 강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질식할 것만 같은 빠른 속도였다.
엽현이 열 보쯤 내딛었을 때, 이노이가 두르고 있던 갑옷이 터져 나갔다.
이와 거의 동시에 한 자루 검이 그의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이것으로 전투는 시시하게 종료됐다.
소동천의 세 무인은 엽현을 상대로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이노이는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엽현을 노려보았다.
“너…….”
이노이 정면에 걸음을 멈춘 엽현은 청현검을 꺼내 들고서 곧장 직선으로 내질렀다.
이노이의 미간 깊숙이 박힌 청현검은 그대로 이노이의 영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노이의 영혼을 모두 흡수하자, 청현검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때, 소혼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주인! 이 검은 정말 대박입니다!”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소혼, 돌파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음… 이 정도 급의 무인이라면 대략 백 명 정도 더 흡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성인 백 명!
엽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대령신궁 정도의 세력조차 이렇게 많은 수의 대성인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신성역의 대성인을 모두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때, 엽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소혼, 혹시 기령(器靈)도 흡수할 수 있나?”
“음,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소탑 녀석을 흡수해 버려! 저 도움도 안 되고 말만 많은 녀석을 흡수하면 틀림없이 돌파할 수 있을 거야!”
이 말에 소혼이 발작이라도 하듯 고함을 질렀다.
“야이 미친놈아! 그게 사람이 할 소리냐!”
“하하하!”
물론 농담이었다.
다만, 소혼이 정말로 작은탑을 흡수한다면 단숨에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탑이 없어진 걸 알면 부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뻔하니까!
실력 면으로 보았을 때, 청삼남과 엽현의 간극은 여전히 거대했다.
“소주, 다음번에도 절 사용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소혼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왜? 영혼을 흡수하고 싶어서?”
“정확하십니다!”
소혼이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 그건 때를 봐서 결정해야 할 거 같구나!”
청현검과 혈맥지력은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강력한 패였다.
꼭 필요할 때 외에는 노출을 자제하는 게 옳았다.
아, 물론 부친의 검도의지도 이에 포함됐다.
엽현은 소동천의 나머지 두 대성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두 사람은 영혼만 남은 채로, 검광에 속박된 상태였다.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청현검으로 하여금 두 영혼을 흡수하게 했다.
청현검을 회수한 그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쉭-!
찰나의 순간, 시공이 갈라지면서 엽현이 어느새 어느 거대한 궁전의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 안에는 용포를 입은 여인이 한 손에 상소를 든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때, 여인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엽현을 발견한 순간, 여인의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이 미소는 세상의 모든 들국화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다름 아닌 척발언이었다.
대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엽현은 척발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나 안 보고 싶었어?”
“…한 달에 한 번은 오기로 했잖아? 벌써 몇 달이 지난 줄 알아?”
엽현이 슬며시 척발언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이때, 척발언이 엽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아이 갖고 싶어.”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척발언은 두 뺨에 홍조를 띄웠다.
“안 돼?”
“…되는지 안 되는지 해 보면 알겠지?”
이 말에 척발언이 엽현의 허리를 꼬집더니 부끄러운 듯 엽현의 품 안에 얼굴을 숨겼다.
“하여간, 매를 번다니까!”
“하하….”
척발언을 번쩍 들어 올린 엽현은 자연스럽게 내전을 향해 이동했다.
그렇게 내전이 한동안 들썩이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닷새 후.
이른 아침, 엽현은 대전 문을 나서 돌계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 끝이 희뿌예지고, 이내 붉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의 얼굴에 천천히 내려앉은 햇살은, 점점 그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때, 척발언이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이때의 그녀는 위엄 넘치는 용포 대신 하늘하늘한 잠옷으로 여성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척발언이 엽현 곁에 앉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여기 남겨두고 싶어.”
이 말에 엽현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그러고 싶어. 매일 같이 밖에서 싸우고 돌아다니는 일은 이제 지쳤어. 하지만 당장은 평범한 삶을 누릴 자격이 없어.”
평범한 삶?
태평성대라면 결코 어려운 바람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서 평범함을 바라는 것은 크나큰 사치였다.
당시, 청아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가?
어린아이였던 자신들은 아무 죄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 했다.
이런 세상에서는 약한 것이 죄인 셈이다.
“네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 그대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걸.”
이 말에 엽현이 미소를 지었다.
“언, 도대체 나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척발언이 엽현을 빤히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너의 그 뻔뻔함.”
“뭐? 하하하!”
엽현의 웃음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근데, 이걸로 아이가 생겼을까?”
엽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걱정이 된다면 며칠 더 머물면서 힘 좀 써주지!”
엽현은 곧장 척발언을 데리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다시, 닷새 후.
엽현은 납계 하나를 남겨둔 채, 창란학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엽현은 검허종의 검수 여인, 아의에게서 받은 혼목(魂木)을 묵운기에게 넘겼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평범하게 살길 원했다.
그러기엔 이 창란학원만한 곳이 없었다.
이 시대의 ‘평범’이란 적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 정도는 갖추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엽현은 아의가 넘겨준 모둔 검기와 공법, 그리고 검도심득을 납계 하나에 담아 묵운기에게 건넸다.
미래에 이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전적으로 자기 아이 자신이 선택할 문제였다.
그렇게 잠시 짧게나마 해후를 나눈 엽현은 미련 없이 청주를 떠났다.
* * *
저국 황실의 대전.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척발언의 눈빛엔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때, 전 밖에서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전하… 모두 등청(登廳) 하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간, 척발언의 표정에서 아쉬움의 감정이 눈 녹은 듯 사라졌다.
다시 지고지상한 여황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의 온화함은 오직 엽현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 * *
청주에서의 짧은 휴가를 마친 엽현은 곧장 소동천으로 향했다.
그는 언제나 수동적인 것보다 능동적인 것을 선호했다.
소동천, 감히 날 건드렸겠다?
굳이 날 찾을 필요는 없어!
내가 찾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