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19
1820화 허풍 좀 친 게 잘못인가?
어검을 타고 이동 중, 엽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근래 수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낀 엽현이었다.
확실히 눈앞의 펼쳐진 세상은 멋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온 길 또한 잊을 순 없었다.
그 길에서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역시 간직해야만 했다.
특히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기억해야만 했다.
본심.
이 순간, 엽현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초심을 유지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때, 엽현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소탑,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데 왜 검도에는 변화가 없는 걸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라도 있는 걸까?”
“그냥 네 정신 상태에 이상이 생긴 것뿐이야.”
작은탑의 대답에 엽현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이때, 작은탑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는 그저 인생의 작은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야. 그것도 검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종류의. 그런데 그것만으로 검도의 상승을 얻길 바라는 거야? 도둑놈이야 뭐야?”
“…….”
이때, 작은탑이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스스로의 문제점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것만은 아냐.”
“내가… 문제를 느끼고 있다고?”
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작은탑이 반문했다.
“요즘에 좀 스스로가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건방지다고?”
“뭐야, 지금 장난쳐? 그럼 아니란 거야?”
엽현이 정색하며 되물었다.
“잘 모르겠는데?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행동했지?”
이에 작은탑이 벌컥 화를 냈다.
“삼검 이하에서는 무적, 삼검과 붙어도 패배를 장담할 수 없다! 이거 네가 한 말 아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그런데?”
“삼검과 싸워서 네가 이기기라도 할 것처럼 행세했는데, 이게 건방진 거 아니면 도대체 뭔데?”
“……허풍 좀 친 게 잘못인가?”
“…….”
“사람이 말을 하다 보면 허풍도 좀 치고 할 수 있지,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작은탑이 잠시 침묵 후 대꾸했다.
“넌 주인보다도 더 뻔뻔해.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로 후안무치할 수 있는 거지? 뻔뻔한 거로만 따지자면 청출어람인 셈이로군!”
“하하, 세상 사는데 가장 쓸모없는 게 바로 이 낯짝이야. 표정만큼 상대를 속이기 쉬운 것도 없어. 웃고 있지만 울고 있을 수 있고, 울고 있지만 속으로 미소 짓고 있는 게 사람이니까. 세상에 이 얼굴만큼 믿지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래?”
“…….”
작은탑이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너는 주인을 넘어선 지 오래구나. 주인은 뻔뻔한 척할 뿐이라면, 너는 아예 체면 자체가 없는 것 같군. 그래서 걱정이야. 나중에 네 아이가 너보다 더 두꺼운 낯짝을 지니고 태어나면 어쩌지?”
“…….”
작은탑이 말을 이어가려는 이때, 엽현 앞의 공간에 잔물결이 일더니,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소루의 루주였다.
루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엽 공자, 신지묘지가 그대를 유인해서 죽일 생각인 것 같소.”
“유인?”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지묘지의 고신경 강자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소. 그러니 그대를 묘지 안으로 끌어들여 참살하려는 속셈이오.”
“고신경 강자가 나오지 못한다고?”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고법칙의 금제 때문이오.”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고신경 강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니, 엽현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은 그대를 신지묘지로 유인하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내 주변 사람을 건드릴 게 분명하오!”
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이수연과 고청 장로뿐인데…….”
뭔가를 고민하던 엽현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대령신궁 상공이었다.
이때, 웬 노인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 앞을 가로막았다.
“오래 기다렸다!”
노인을 보자 엽현이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지묘지로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널 신지묘지로 초대하고 싶구나. 안심하거라. 네 두 친구는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 네가 간다면 그들은 풀어 줄 것이다.”
엽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지묘지에서 그대의 지위는 어디쯤이오?”
이 질문을 듣자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이냐?”
바로 이때, 엽현이 마음을 움직였다.
쉭-!
순간, 한 자루 비검이 노인의 미간을 관통했다.
노인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혼백이 검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이때, 엽현이 손을 치켜들었다.
파파파팟-!
순간, 엽현 주변의 공간이 터져 나가면서 네 명의 흑의인이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네 개의 비검이 흑의인들의 미간을 관통했다.
다섯 명의 신지묘지 무인이 순식간에 엽현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됐다.
엽현이 먼저 대화하던 노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신지묘지에 바로 연락을 취하시오. 반 시진이 지나기 전에 내 친구들을 돌려보내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죽을 것이라고!”
노인은 엽현을 죽일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노인의 경지는 무려 대성인 절정.
그런 노인을 엽현은 단 일검에 제압해 버린 것이다!
‘이놈은 진짜로구나!’
노인은 그제야 자신들이 엽현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멀뚱멀뚱 보고만 있소? 무슨 문제라도 있소?”
이 말에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네가 직접 신지묘지로 갈 배짱은 없는 게냐?”
순간, 엽현이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쾅-!
노인의 육신이 터지고 영혼이 튀어 나왔다. 다만, 그의 미간에 꽂혀 있던 비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지금 당장 신지묘지에 내 말을 전달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대들 다섯 사람은 모두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오. 믿기 어려우면 원하는 대로 해도 상관은 없소.”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마침내 전음부를 꺼내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잠시 후, 엽현 머리 위쪽 공간이 갑자기 떨리더니, 반쯤 투명한 중년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신경 강자!
중년인은 본체가 아닌 분신의 몸으로 현신한 것이었다.
중년인이 등장하자, 노인 등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예를 차렸다.
“우존(禹尊)을 뵈옵니다!”
우존은 엽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이때, 엽현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어느새 우존 정면으로 이동한 엽현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사람을 놓아 주시오.”
“……신지묘지를 이렇게도 무시한 자는 네가 처음이로구나.”
“놓아 주시오.”
“왜 직접 와서 데려가지 않는 게냐?”
이때, 엽현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쉭-!
순간, 발밑에 있던 다섯 무인 중 한 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풀어 줘!”
엽현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이에 우존이 엽현을 잠시 노려보더니, 어디론가를 향해 손짓했다. 잠시 후, 우존 오른쪽 공간이 갈라지면서 고청과 이수연이 걸어 나왔다.
엽현이 소매를 펄럭이자, 신지묘지 무인들을 억압하고 있던 비검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자유의 몸이 된 무인들은 황급히 우존 뒤로 가 섰다. 엽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 우존이 엽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신지묘지 무인의 목숨값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네가 한 명을 죽이면 네 지인 둘이 죽을 것이다!”
“하하! 어디 한 번 그렇게 해 보시오!”
우존은 더는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고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자 다른 신지묘지의 무인들 또한 황급히 자리를 떠나갔다.
장내가 정리되자, 고청과 이수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엽현이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 일의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질 것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사라졌다.
* * *
신지묘지 입구.
조용하던 이곳에 한 줄기 검광이 떨어졌다.
빛이 흩어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이때, 하얗게 빛나는 입구를 바라보고 있던 엽현이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막 대령신궁에서 복귀한 네 무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현검을 사용한 엽현이 이들보다 도착이 빨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엽현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네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엽현! 무슨 수작이냐!”
노인이 황급히 묻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죽여야 할 것 같아서.”
이 말에 노인이 분노를 터트렸다.
“신지묘지는 이미 약속을 지켰거늘, 왜 이제 와서 이런단 말이냐!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
순간,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언제 약속을 어겼다 그러시오? 난 분명 그대들을 풀어주지 않았소?”
“그, 그런데 왜 또 우리 앞을 막고 있는 것이냐!”
“하하… 우리는 적이 아닌가?”
“당연한 소리를…….”
무어라 대답하려던 노인이 순간 말을 멈췄다.
“너, 설마…….”
“하하, 적을 죽이는 걸 잘못이라고 하진 않겠지?”
엽현이 말을 마치자, 그의 손바닥 위에 한 자루 비검이 떠올랐다. 뒤이어 엽현은 신지묘지 입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까지 한 백 장쯤 되는데 할 수 있으면 어디 도망쳐 보시던가.”
이 말에 노인의 눈이 붉게 변했다.
“엽현! 네 놈은 절대 곱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이 순간, 엽현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예전에도 똑같은 말을 하던 자가 있었지. 천엽이라고… 그 자의 무덤가엔 잡초가 아마 사람 머리까지 자라 있을 텐데… 후후…….”
“…….”
말을 마친 엽현은 바로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청현검이 날아가 무인들의 영혼을 거둬들였다.
무인들을 제거한 엽현은 신지묘지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지묘지, 고작 이 정도인가?”
이때, 엽현 정면의 공간에 일렁이더니, 우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분신의 모습이었다.
우존은 말없이 엽현을 노려보았다.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날 죽이고 싶소?”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이에 엽현이 양손을 활짝 펴며 대답했다.
“그럼 죽여 보시던가!”
죽여 봐!
우존의 눈빛이 점점 날카롭게 변해갔다.
“신지묘지를 이렇게까지 도발한 것은 네가 처음이로구나!”
“하하, 말은 바로 하시오. 먼저 날 죽이려 한 건 그대들이 아니었소? 그대들은 날 죽일 수 있고, 난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소?”
“지금 우리 신지묘지와 옮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냐?”
“훗, 말이 통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이에 우존이 엽현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우리 역시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안다. 다만 상대를 구분할 뿐이다. 네가 지존이었더라면 우리도 도리를 따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정도 자격은 되지 않지.”
“하하, 변명도 참 잘하시는구려!”
“설령 네 뒤에 지존이 버티고 있다 한들, 우리 신지묘지는 이미 널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 말에 엽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뭐 하고 있소? 내가 여기 있으니 어서 와서 죽여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