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29
1830화 내가 왜 지금까지 살아남은 줄 아느냐?
백발노인은 말없이 우존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때, 한쪽에 가만히 있던 악연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노인장이 바로 그 신제라는 말이오?”
노인이 웃으며 악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 같으냐?”
“음… 내가 알기로 현재 이 우주에는 신제가 존재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소만?”
“후후, 지금도 분명 존재한다. 너희가 만날 수 없을 뿐이지.”
악연이 뭔가 더 추궁하려는 이때, 우존이 돌연 대화에 끼어들었다.
“황당무계한 소리로군! 신제는 이미 수십만 년 전에 모두 자취를 감췄는데, 자기가 신제라고 주장하다니! 정말 웃음을 참기가 어렵구나!”
백발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굴에 흉(兇)이 가득한 거로 보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다니, 노부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구나.”
“내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하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우존의 웃음소리가 더욱 거칠게 울려 퍼졌다.
“작금의 상황에서 몇 몇 지존을 제외하고 날 죽일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시오?”
백발노인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들 이리 어리석은 건지…….”
“요즘 늙은 것들은 왜 이리 명이 질긴 거지?”
우존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노인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존의 기운은 노인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자, 장내 무인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우존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존 역시 바보가 아닌지라, 자신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우존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노인장… 방금 전엔 내가 실례한 것 같소. 흠, 흠!”
우존의 바뀐 태도에 노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구제불능은 아니로구나.”
“노인장, 우리 신지묘지의 목표는 그대 앞에 있는 여인이오. 그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순간, 백발노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방금 했던 말은 취소다!”
“…….”
노인이 마주 앉아 있던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르신, 이 대국은 제가 진 것으로 하시지요.”
어르신?
백발노인의 말을 들은 순간, 우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노인네가 왜 엽현의 동생에게 존칭을 사용한단 말인가?
이때, 여인이 노인을 향해 말했다.
“졌으면 죽어야지.”
이 말에 노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날 찾은 건 너였지 않느냐?”
“어르신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여인은 손을 휘둘러 바둑판을 치워버린 후,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이 분신으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오빠가 날 찾아올 줄은 몰랐네?”
분신!
청아의 말을 들은 순간, 우존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부, 분신이었단 말인가!”
우존은 너무나도 놀라 말을 더듬었다. 실력을 고하를 떠나, 상대가 본체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것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엽현이 청아의 정체를 알아본 것은 그녀의 기운이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청아는 확실히 본체와는 느낌이 달랐다.
물론, 분신이라고 해서 청아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청아는 우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엽현을 향해 다가갔다.
이때, 우존이 흉악하게 소리쳤다.
“죽고 싶구나!”
우존이 재빨리 구결을 완성하자, 두 개의 붉은 종이가 시뻘겋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두 줄기 붉은 광선이 청아의 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청아가 신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순간, 신지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보자, 우존의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해졌다. 그의 눈동자엔 불신의 기색이 가득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이때, 백발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미련한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건지…….”
청아는 고개를 돌려 악연을 쳐다보았다. 청아의 시선을 받은 순간, 악연이 화들짝 놀라며 공손히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우리와 신지묘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저희는 단지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악연은 단번에 청아가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아보고,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우존은 고신경의 강자, 그런 자가 신물까지 이용했음에도 저 여인은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여인의 실력이 고신경보다 위라는 것이 아닌가!
“오빠, 아는 사람이야?”
엽현이 악연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그런데… 신지묘지를 도와 나를 없애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아?”
청아의 시선이 다시 악연에게로 향했다.
이에 악연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어, 어르신! 우리 악족과 신지묘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저, 저희는 이쯤에서 빠질 테니 계속 일들 보십시오!”
악연이 재빨리 돌아섰다.
바로 이때,
쉭-!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이때, 한 자루 검이 악연의 미간을 뚫고 지나갔다.
무인들은 마치 얼음처럼 굳고 말았다.
청아가 악연을 향해 말했다.
“언제 가도 좋다고 했지?”
“어, 어르신… 부디 인정을…….”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에 대해 악심을 품은 자들은 모두 죽인다.”
말을 마친 청아가 가볍게 손끝을 움직였다.
쾅-!
찰나의 순간, 악연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 자리엔 영혼조차 남지 않았다.
한순간에 족장을 잃은 악족 무인들은 단체로 얼이 빠지고 말았다. 이때, 노인 하나가 분통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사람을 죽이다니! 너무 악랄한 것 아니오!”
청아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불만인가?”
“우리 악족의 배후에도 지존이 있다는 걸 아시오!”
“지존?”
청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무슨 쓰레기 같은 거야?”
“…….”
“가, 감히 지존을 무시하다니!”
청아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모른다. 그러니 당장 내 눈앞에 데려오너라.”
순간, 노인의 눈가에 살기가 비쳤다.
“허튼소리! 누가 감히 지존을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단…….”
노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 그의 목이 뎅겅 잘려 나갔다.
출수한 이는 청아가 아닌 바로 엽현이었다.
이때, 엽현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청아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검기야. 청아가 보기에 어때?”
청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네…….”
훌륭하다!
이 말은 본심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엽현을 행복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한 마디였다.
“청아,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자. 우리 남매의 시간을 저런 멍청한 자들에게 빼앗길 순 없지!”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야.”
바로 이때, 살아있던 악족 강자 중 하나가 돌연 소리쳤다.
“감히 어딜 도망친단 말이냐!”
엽현이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하려고?”
“흥! 여기서 딱 기다려라! 부족 사람들을 데려올 테니!”
“…….”
이때, 듣고 있던 백발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저런 저능아가 다 있지… 참…….”
바로 이때, 청아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아와 시선을 마주치자, 이번에는 노인이 화들짝 놀랐다.
“어, 어르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저는 감히 무도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을 만나고 난 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널 죽일지 살릴지는 전적으로 오빠의 선택에 달렸다.”
청아의 이 한 마디에, 백발노인이 서둘려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공자, 부디 어르신께 잘 좀 말 해 주시구려!”
“이보시오. 나한테까지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소.”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반면, 노인은 여전히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오! 그대의 한 마디에 이 늙은이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말이오!”
엽현은 고민 끝에 청아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랑은 딱히 원한이 없는 것 같으니 살려주자.”
사실 엽현은 처음부터 청아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청아는 노인이 자신에게 빚을 지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면, 청아의 성격상 이미 노인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으리라.
엽현의 말을 들은 청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살려줄게.”
이 말에 백발노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엽현에게도 예를 차렸다.
“오늘의 은혜는 반드시 갚을 날이 있을 것이오!”
노인이 돌아서려는 이때,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우존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분명 자기 입으로 신제라 하지 않았소?”
백발노인이 우존을 향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정말로 신제라면 어떻게 그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수가 있겠소?”
“하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대는… 결코 신제일 수 없소!”
이에 백발노인이 말없이 손을 펼쳐,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가 몇 마디를 외운 순간, 종이가 덜컥거리더니 그 중심에 어마어마한 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신제지력(神帝之力)!
이 광경을 본 순간, 우존은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백발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살아남은 줄 아느냐? 나보다 실력이 더 좋은 자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오래전에 죽고 없어졌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주제를 알고 언제든지 머리를 숙일 자세가 돼 있었기 때문이지. 겸손, 이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이다!”
말을 마친 노인은 홀홀 웃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백발노인은 떠나면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사실 청아를 만나기 전 그는 매우 자만한 상태였다.
이 우주에서는 더 이상 적수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아를 만난 후,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비울 수 있었다.
이 ‘비움’을 통해 그의 심경은 또 다른 경지로 올라 설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즉, 끝이라고 생각했던 경지를 돌파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열반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한편, 우존은 심각한 표정으로 청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그제야 눈앞의 여인이 비범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분신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서 받는 느낌은 마치 거대한 우주를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신제보다도 더 강하다고?
이 생각을 머릿속에 품었을 때, 우존은 다시 한번 당황하고 말았다.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일까?
아니라면 신제가 어찌 저 여인에게 이토록 깍듯할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우존의 안색은 어두컴컴해졌다.
그의 본능은 계속해서 눈앞의 여인이 백발노인보다 더 강하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장내를 압도하며 내려앉았다.
고신경 강자!?
엽현이 고개를 들자,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공중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악족의 고신경 강자였다.
하지만 본체가 아닌 분신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