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계속 죽이면서 황성까지 갈 셈인가
강국, 창란학원.
창란전 앞, 묵원과 봉남이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다.
묵원은 손에 쥐고 있던 서신 한 장을 물끄러미 바로 보고 있었다. 서신을 바라보는 묵원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봉남이 묻자 묵원이 조용히 대답했다.
“창목학원과 암계가 그가 황성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전 병력을 동원했다는군. 상황이 그리 좋지 않네.”
“우리가 나설 때인가?”
묵원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나서게 되면 당장은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더 큰 곤경에 부딪치게 될 걸세. 육구가에게 언제든 구원을 갈 수 있도록 도병을 준비시키라 해야겠네.”
“흠… 물론 그 도병들이 병가의 심법을 익혀오긴 했지만, 그래도 수련 기간이 너무 짧네. 과연 전력에 도움이 될까?”
묵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다간 영원히 전장에 나서지 못할 걸세.”
봉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이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묵원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창목학원… 심하게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 * *
울창한 숲속, 엽현을 태운 흑염마가 숲길을 질주하고 있다.
흑염마는 굉장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만약 엽현이 일반인이었더라면 결코 이 속도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흑염마의 등에선 엽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삐를 잡고 있었다. 그는 등 뒤에 검은 검갑(劍匣)을 매고 있었는데, 이 검갑에는 일곱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반 시진 후, 엽현은 어느 고성(古城)에 도착했다.
그곳은 바로 평양성(平阳城)이었다.
대운경은 강국과 같이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만약 중간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을 우회한다면 이 주가 아니라 두 달이 걸려도 황성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성에 진입한 엽현은 직선으로 말을 달려 반대편에 있는 성문을 통과하려 했다.
그가 성문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이때, 성벽 위에 오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손에 장궁을 들고 있었다. 이미 화살이 장전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장창을 든 수천의 병사들이 나타나 엽현의 배후를 막아섰다.
보아하니 분명 미리부터 이곳에서 매복해 있던 것이었다.
이때 성벽 위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엽현, 여기는 네 놈의 강국이 아니다. 맘대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바로 이때, 엽현 등 뒤의 검갑이 열리더니 순식간에 일곱 자루의 검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를 목격한 노인이 안색이 급변하여 소리쳤다.
“쏴라!”
그와 동시에 성벽 위 오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바로 이때, 화살과 함께 오십여 개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수십 발의 화살은 엽현에게 가까이 닿기도 전에 영수검에 의해 모두 튕겨져 나갔다. 그의 검은 화살보다 훨씬 빨랐다.
그렇게 일곱 자루의 검은 다시 검갑 안으로 돌아왔다. 이때 엽현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에는 넋이라도 나간 듯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엽현이 영수검으로 성문 앞에 서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막아 보시게?”
그의 말과 동시에 그가 타고 있던 흑염마가 돌연 성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 자루의 검이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쾅-!
성문이 파괴된 틈으로 엽현과 흑염마가 재빨리 빠져나갔다.
그러나 성 밖을 나선 엽현은 말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 수백 장 앞에 천 기에 달하는 기병들이 엽현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운기병이었다.
이때 기병장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손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돌격!”
천 기의 기병이 동시에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만의 병력과도 싸워본 엽현에게 천 명이란 숫자는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 세(势)를 이루게 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표정 없이 기병들을 바라보던 엽현이 박차를 가해 흑염마와 함께 솟구쳐 올랐다. 이 순간 엽현이 말 등을 밟고 공중으로 높이 도약했다. 이와 동시에 그의 등에 있던 검갑이 열리며 일곱 자루의 검이 쏟아져 나왔다.
쉬쉬쉬쉬쉬쉬쉭-!
수십 장 밖에 있던 삼십여 명의 기병들이 순식간에 말 등에서 고꾸라졌다.
하지만 나머지 기병들은 여전히 눈에 불을 켜고 엽현을 덮쳐들고 있었다.
이때, 기병들 사이에서 검명 소리가 울리며 일곱 개의 검광이 기병들을 향해 쏟아졌다.
검광이 스쳐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기병들이 허리가 잘려 나갔다.
성문 앞, 방금 전 엽현을 막아섰던 노인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엽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엽현!’
이전까지는 단지 그의 이름 두 글자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그의 진면목을 목도하고 있었다.
‘진정 검주란 말인가? 약관의 나이에도 이르지 않은 자의 실력이 어찌 이리 괴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장내에는 삼백여 구의 시체가 쌓였고, 그 수는 끊임없이 늘어났다.
그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엽현의 일 검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 각이 지나자 천 명에 달하던 기병의 수는 절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처음에 보였던 기세는 이미 한풀 꺾인 상태였다.
엽현은 그야말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던 것이다.
반 시진 후, 장내에는 고작 백여 기의 기병만이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마저도 엽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지금 엽현의 주위에는 시체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산 가운데서 엽현이 영수검을 들고 서 있었다. 한 줄기의 선혈이 검 날을 타고 천천히 떨어졌다.
엽현이 검을 쥐고 나머지 기병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기병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두려워하고 있었다.
천 기의 기병이 한데 모여 있었을 때는 두려움의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천대 일의 싸움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할 쪽은 후자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그 천 명 중에 단 백 명만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때, 천천히 걷던 엽현이 돌연 속력을 올렸다. 그러자 백 명의 기병들이 혼비백산하여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엽현은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일곱 자루의 검이 빛이 되어 날아가니, 순식간에 십여 개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사이에 다른 기병들은 이미 멀찌감치 도망칠 수 있었다.
엽현이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 기병 앞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그 기병은 마치 사신이라도 본 표정을 지으며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그의 두 다리는 이미 깨끗하게 잘려나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엽현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엽현은 자신의 손에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많은 살인을 한 탓에 손이 저려오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엽현에게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청현!
막청현이 엽현을 보고는 입가를 실룩거렸다.
“마치 백정처럼 아주 잘 죽이는구먼 그래!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인 것을! 우리 창목학원은 청주 내에만 수십만의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암계와 무수한 세가들의 무인들, 엽현, 네가 정녕 이들을 다 죽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아니겠지?”
그 순간, 미소 짓던 막청현의 얼굴이 흉측하게 변했다.
“맘껏 죽여 보거라. 네놈이 지쳐 쓰러져 죽도록 만들어 주마!”
‘지쳐 죽도록 만들겠다고?’
엽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 역시 최고의 해결책은 창목학원 그리고 암계와 화해를 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때려죽여도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 원장이 그들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기 원장은 자신과 묵운기 등을 살리기 위해 홀로 창목학원 그리고 암계와 맞서 싸우다가 처절하게 죽었다. 죽을 때까지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던 그를 엽현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원한은 당연히 복수로 갚아야 한다.
그런 원한을 어찌 그냥 넘긴단 말인가!
게다가 진정으로 화해가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그는 창목학원과 암계를 믿지 못했다. 그것은 상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거짓으로 화친을 맺고서 언젠가 다시 비수를 들이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땐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 역시 위험해질 것이다.
‘날 지쳐 죽게 만들겠다고?’
“하하하하! 내가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들은 모두 죽이고 간다!”
엽현이 영수검으로 막청현을 가리켰다.
“창목학원에 사람이 많다고? 그거 좋지. 얼마를 데려오든 전부 죽여주마!”
말을 마친 엽현이 흑염마에 올라타고서 빠르게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막청현은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는 창목학원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엽현이 그들의 원군보다 먼저 황성에 도착한다면 창목학원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황성 안에는 엽현을 막을 만한 자가 없다. 만약 그가 황성에 들어서게 되면 그야말로 창목학원엔 대재앙이 닥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막청현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내에 갑옷차림에 허리에 장검을 찬 한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단칼에 끝냈군…….”
잠시 후, 성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곧장 성주부로 향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황급히 나와 그녀를 맞았다.
“대인을 뵙습니다!”
여인의 차가운 눈빛이 노인의 얼굴에 드리웠다.
“일 천의 기병과 수천의 병사들, 누가 네게 그들을 성 밖에 보내 싸우라고 했더냐?”
그 말에 노인은 그저 식은땀만 흘렸다.
“너는 대운제국의 봉록을 받으면서 창목학원의 개가 되었구나…….”
말을 마친 여인이 곧장 몸을 돌려 성주부를 떠났다.
그녀의 등 뒤로 어느 순간 노인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성을 나선 여인이 종이 책자 하나를 꺼내어 무언가 가볍게 적어 내려갔다.
“한 명 더 제거!”
그리고 그녀가 성을 떠난 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성에 들어와 성의 행정조직을 다시 개편하기 시작했다.
* * *
시원하게 흐르는 강변에 엽현이 걸터앉아 있었다. 그 곁에서 흑염마가 마른 목을 축이고 있다.
엽현이 웃옷을 벗어 재끼니 그 밑으로 수많은 혈흔들이 드러났다.
모두 방금 전의 교전으로 생겨난 상처들이었다.
도칙도 없이 본신의 힘만으로 천 기의 기병들과 상대했으니, 상처 없이 전투를 끝내기란 불가능했다.
엽현은 금창단 한 알을 집어 삼킨 뒤, 강물에 몸을 담갔다. 그 근방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잠시 후, 엽현이 강을 나서려는데, 물속에서 누군가 돌연 튀어나와 그의 목을 향해 날카로운 것을 찔러 들어왔다.
이때 엽현의 안색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 역시 엽현에게 닿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보다 먼저 엽현의 검이 상대의 목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그대로 물에 잠겼다.
잠시 후, 강바닥으로부터 붉은 피가 스멀스멀 아지랑이 피며 주변을 물들였다.
엽현이 손을 펼치자 한 자루의 검이 그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암살?’
대운경에 들어온 이후 엽현은 잠에 드는 순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는 물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그는 언제 어디서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를 암살하려거든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바로 엽현보다 더 빠른 검을 가진 살수를 보내는 것이다.
곧, 엽현은 강둑을 따라 사라졌다.
잠시 후, 엽현이 머무르던 자리에 갑옷녀가 다시 나타났다. 여인은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시체에 시선을 두었다.
‘깔끔하군!’
갑옷녀가 고개를 돌려 엽현이 사라진 방향에 시선을 두었다.
“이렇게 계속 죽이면서 황성까지 갈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