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60
1861화 도대체 그 봉인이 뭘까?
어느 미지의 성역,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성공, 여인은 하염없이 걷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여인이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정면에는 어느새 작은 초가집이 나타나 있었다. 초가집 앞에는 노인이 팔자 좋게 늘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어항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때, 노인이 실눈을 뜨고 여인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여인은 천천히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이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스스로의 힘만으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벗어나다니…….”
여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그렇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몸을 일으켜 세운 노인은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렸다. 바로 이때, 여인이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노인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퍽-!
노인의 목이 찢어지면서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순간,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불신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한낱 가축 따위가 어떻게 날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여인은 말없이 노인 곁에 있는 어항 앞으로 다가갔다. 어항에 든 내용물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무궁무진한 성역이었다.
감시!
노인은 우주의 감시꾼이었던 것이다!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우주의 생령들을 가둬 놓고 기르고 있던 것인가?”
눈을 동그랗게 뜬 노인은 마치 실의를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미천한 존재가 감히 어떻게 나를…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이야…….”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항 안을 유심히 살펴보던 여인은 그 안에서 익숙한 존재를 발견해냈다.
엽현!
엽현을 발견한 여인은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미소란 것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웃음은 하늘의 빛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때, 노인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하지만 이 순간, 검이 날아와 그의 입안에 박혔다.
“컥, 커헉-!”
여인은 어항 안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차갑게 말했다.
“오빠 보는 거 방해하지 마…….”
“…….”
청아는 그렇게 한동안 어항 안을 쳐다보았다. 엽현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온화했다. 잠시 후, 시선을 거둔 청아는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 청아가 손바닥을 아래쪽으로 가볍게 내리눌렀다.
쾅-!
순간, 노인의 공간이 뒤틀어지면서, 노인의 육체가 점점 거대한 체형으로 변해갔다. 겉보기에는 사람과 별 차이는 없었지만, 몸집은 보통 사람의 세 배 이상이었으며, 전신에서는 하얀빛이 흘러나와 마치 광인(光人)을 보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노인의 본체였다.
청아는 노인의 본 모습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겹게도 생겼군.”
노인이 발끈했다.
“이 미천한 인간 같으니! 너희를 창조한 신인족(神人族)에게 감히 반항할 생각을…….”
청아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노인의 미간 깊숙이 박혔다.
쾅-!
노인의 광채가 흐르던 육신이 터져 나가고, 그 자리에 투명한 영혼이 나타났다.
노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고, 눈빛엔 두려움이 감돌았다.
“어, 어떻게 인간 따위가 신의 본체를…….”
“인간을… 네가 창조했다고?”
노인은 눈앞의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눈앞의 여인이 평범한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때, 갑작스레 거대한 기운이 먼 곳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이를 느낀 노인이 갑자기 흉악하게 표정을 바꾸며 호통을 쳤다.
“무유대인(武維大人)께서 오셨다! 네년은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때, 청아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서걱-!
한 줄기 검광이 빠르게 날아가더니, 잠시 후, 피범벅이 된 노인의 머리가 장내에 굴러떨어졌다.
무유대인!
무유대인의 시체임을 확인한 순간, 노인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무유대인을 단 일검에 죽인단 말인가!
이때, 청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소위 인간을 창조했다는 자들이 이렇게 약해서야…….”
청아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정말 너희가 인간을 만든 게 맞나? 왜 이리 약한 거지?”
노인의 표정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너… 이 저급한 생명체. 죽이려면 모욕하지 말고 바로 죽여라! 우리 신인족은 너 같은 벌레가 모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청아는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죽이지 않는다.”
청아는 노인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는 어째서인지 다시 자리에 멈추고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너 같이 약한 놈은 내 검에 죽을 자격도 되지 않는다.”
“푸흡-!”
순간, 노인이 한 움큼의 선혈을 뿜어냈다.
분을 이기지 못해, 내상을 입었던 것이다.
이때, 청아는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홀로 남은 노인은 안색이 지극히 어두웠다.
인간이 어찌하여 이렇게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바로 이때, 노인 앞에 웬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머리에 은으로 된 관을 착용하고 있었다.
중년인을 보자, 노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평양군(平陽君) 대인!”
평양군이라 불린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누군가 우리가 설치해 놓은 금제를 뚫고 들어온 것인가?”
노인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네가 막을 수 없는 상대였나?”
순간, 노인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 여자의 적수가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평양군의 미간 사이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눈빛은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믿을 수 없다! 하계인 따위가 아무리 수련해 봐야 우리 신인족에게 위협을 가할 수 없거늘!”
“저 역시 그 점이 궁금합니다, 대인!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제 목숨을 거둬 갈 실력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평양군의 눈치를 살폈다.
“대인, 이제 어쩌시렵니까?”
평양군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완전히 우리의 통제 아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걸 깨부술 인간이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의 실력은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갔지?”
노인이 손으로 방향을 제시했다.
“저리로 사라졌습니다!”
평양군은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노려보았다.
“살려둬선 안 된다! 더욱이 그 인간 여자가 우리 신인족의 신도문명(神道文明)과 접촉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평양군이 어느 한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명령이다! 신인계를 침범한 인간 여자를 당장 찾아오너라! 반드시 산 채로 포획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연구할 가치가 있을 테니까!”
“존명!”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평양군은 다시 어둠 속을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강해 봐야 미천한 인간일 따름이지!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결계를 뚫고 나온 것은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부디, 산 채로 만나보고 싶군!”
이 말을 끝으로 평양군은 자리를 떠났다.
* * *
북극성역.
정지는 이미 새로운 경지를 돌파한 상태였다.
새로운 경지가 무엇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돌파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새로운 경지에 이른 정지와 소안은 현존 우주의 시공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가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오랫동안 현존 우주를 떠나 있는 것은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공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비한 힘이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녀들의 실력으로 이 힘에 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이때, 소안이 말했다.
“그 돌문의 존재가 느껴져.”
“나도 그래.”
정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새 경지에 도달한 두 여인은 모두 돌문의 위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걱정 마. 기다릴 테니까!”
엽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돌문은 이 우주의 끝인 거야.”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겠지.”
엽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순간,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고마족과 태일족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엽현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고명과 태일생수가 아버지를 불러내면서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들은 하필이면 부친을 소환했던 걸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어쨌든, 청삼남의 등장으로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모습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정지가 묻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이 우주 밖으로 나가 봐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몇 가지 처리할 일이 있소.”
정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널 기다리고 있으마.”
“날 기다려?”
엽현이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이에 정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 테니까.”
“…….”
“그리고…”
정지가 소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싸우고 싶으면 말해. 난 언제든 준비돼 있으니까!”
할 말을 마친 정지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갔다.
소안은 말없이 정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갈까?”
엽현의 제안에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어느 구름 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번타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앞에 엽현과 소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무슨 말을 꺼내려던 번타가 소안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너…….”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소안은 이미 한계를 뛰어넘어 신혼경 이후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번타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정말이더냐?”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이 소안을 보며 말했다.
“소안, 여기 이분을 한동안 지도해 줄 수 있겠어?”
소안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내가 돌파할 수 있었던 건, 네 부친이 강제로 내 안의 어떤 봉인을 파괴했기 때문이야. 그 봉인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사람 안의 봉인의 존재는 느껴져. 다만, 그걸 어떻게 깨뜨려야 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봉인?”
소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아, 아니…….”
소안이 갑자기 엽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 몸에는 없는 것 같아.”
엽현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나한테는 봉인이 없다고?”
“응, 느껴지지 않아.”
“흠… 도대체 그 봉인이 뭘까?”
소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느낄 순 있지만 파괴할 순 없어.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던 소안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왜, 말하기 어려운 거라도 있는 거야?”
소안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겪은 경험을 저 사람에게 공유해 줄 순 있어. 하지만 그 봉인을 해제해 줄 사람이 없다면, 설령 경지의 극한에 이른다 할지라도 더 위로는 올라갈 수 없을 거야. 기껏해야 태일생수 정도가 한계겠지.”
태일생수!
엽현은 태일생수를 떠올렸다. 그는 신혼경을 돌파한 것도 아니면서 우주의 시공을 탈출할 수 있었던 진정한 고수였다.
잠시 생각을 마친 엽현은 번타를 돌아보았다.
“잠시 소안과 함께 있으면서 배울만한 것들을 배우십시오. 훗날 청아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봉인을 풀어 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번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이때 소안이 말했다.
“아니면 청현검으로 한 번 시도해 보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