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61
1862화 너희는 여전히 본질을 모르고 있구나
청현검?
엽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청현검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가능할까?”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 그 검 역시 보통이 아니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봉인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데?”
“내가 도와줄게!”
소안이 번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순간, 번타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그녀의 머리 위에 검은 인장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지금이야!”
소안이 신호하자마자, 엽현이 검을 휘둘렀다.
쾅-!
검광이 인장을 때리자, 인장이 크게 요동치더니 마침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가능하다!
세 사람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네 검은… 역시 대단해!”
“…….”
이때, 곁에 있던 번타가 말했다.
“음, 아무래도 아무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도와주겠소. 내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요.”
소안의 말에 번타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소안이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난 저 사람과 탑 안에 들어갈게.”
“알았어!”
바로 이때, 장내에 또 다른 여인이 갑자기 등장했다.
“나도 간다!”
낭랑한 음성과 함께 등장한 이는 바로 타일이었다.
엽현 앞에 똑바로 선 타일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나도 해 줘!”
“…….”
결국, 타일과 번타는 소안과 함께 작은탑 안으로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다.
장내에 홀로 남은 엽현은 청현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봉인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검만 있으면 파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안과 같은 강자들을 계속 배양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에 생각이 미치자, 엽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엽현은 자신을 도와줄 강한 무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청현검만 있으면 무인들의 경지를 우주의 한계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결론에 도달한 엽현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청주였다.
한동안 바빴으니 이제는 생산적인 일을 할 차례였다.
매일 같이 싸우고 죽이는 일에는 이미 진저리가 났다.
엽현에게 생산적인 일이란 바로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엽현이 황궁 대전에 도착했을 때, 척발언은 마침 바쁘게 사무를 보는 중이었다. 이때, 엽현과 눈이 마주친 척발언이 웃으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순식간에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엽현이 그 새를 못 참고 옷을 홀딱 벗은 것이다.
“…….”
고마족과 태일족의 위협이 해소된 후, 엽현에게는 오랜만에 태평성대가 찾아왔다.
한동안 그는 황궁 가장 깊은 곳에서 척발언과 운우지락을 보내는데 시간을 쏟았다.
물론, 해가 떠 있을 땐 잊지 않고 수련에도 공을 들였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으로 우주의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지, 청현검에 모든 것을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엽현 스스로도 다소 요행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태일생수와 고명이 쓸데없이 부친을 찾지만 않았더라도, 상황은 매우 암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경, 소안과 정지의 도움만으로 태일생수와 고명을 당해낼 순 없었을 테니.
한편, 엽현의 실력은 청현검을 사용했을 때에도 고작 신혼경 절정의 강자에 필적할 정도일 따름이었다.
얼마 전에 승급한 정지나 소안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결코 적지 않았다.
엽현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신격경에 이르는 것이었다.
작은탑 안으로 들어온 엽현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서 신격경이 되기 위한 수련에 착수했다.
소안의 지도 덕분에 수련은 매우 수월하게 이뤄졌다.
엽현 뿐만 아니라, 이미 신체경에 도달한 안란수와 장문수 역시 마찬가지로 수련을 시작했다.
두 여인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모두 작은탑 덕분이었다.
하루를 십 년으로 바꾸는 작은탑의 기능은 정말이지 사기에 가까웠다.
정확히 말하면, 청아의 존재 자체가 반칙이었다.
소안조차도 청아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당사자인 작은탑 또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은탑은 자신이 예전에 비해 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소안의 말마따나,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청아란 존재에 대한 경외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 * *
어느 미지의 성역, 한 여인이 천천히 신형을 옮기고 있다.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청아였다.
청아가 걷고 있는 주변의 공간은 어떤 곳은 오목하고, 어떤 곳은 튀어나와 있는 등 매우 기이했다.
얼마 가지 않아 청아가 걸음을 멈췄다. 정면에는 중년 남자 하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신인족!
한 손에 유광이 흐르는 접선을 쥔 남자는 외모로부터 지적이고 유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중년인은 마치 청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걸었다.
“흥미롭군! 인간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청아는 말없이 중년인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에 중년인이 다시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백애(伯崖), 신인족의 대신사(大神師)를 맡고 있지.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널 해치려는 게 아니라 네게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를 창조하면서 너희 안에 성장을 제한하는 금제를 걸어 놓았다. 네게선 그 봉인이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청아는 대답 대신 검을 치켜들었다.
푸욱-!
찰나의 순간, 한 자루 검이 백애의 미간을 뚫고 나왔다.
백애는 눈을 부릅뜬 채 몸이 굳고 말았다.
이때, 백애에게 다가가 선 청아가 백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인족? 인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녀의 눈동자엔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너희는 여전히 본질을 모르고 있구나.”
이 말을 듣자, 백애의 눈동자가 순간 움츠러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청아가 백애의 눈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너희의 논리대로라면 너희 신인족은 하급 문명에 속한 쓰레기일 뿐이다.”
백애는 청아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너희는 우리가 창조한 존재인데 무슨 자격으로 우리 신인족을 하등하다 하는 것인가!”
청아는 백애를 지나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떤 생명체든지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너희 신인족이 인간을 저급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단순히 종족에 따른 구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신인족, 인족, 요족, 수족… 모두 똑같은 생령일 뿐이지. 그리고 이 생령은 오직 강자와 약자로 구분된다. 이에 따르면 너희는 내게 있어 저급한 생령일 따름이지.”
청아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져 있던 백애가 순간 다시 정신을 차렸다.
“서, 설마 이미 생명의 본질을 초탈한 것인가?”
청아가 걸음을 멈추고 백애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멍청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지만 여전히 틀렸다.”
“어, 어느 부분이 잘못됐단 말이냐?”
청아는 대답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이때, 백애의 육신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백애가 황급히 청아를 향해 소리쳤다.
“하나만 대답해다오!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두려운 생령은 무엇인가!”
이에 청아가 걸음을 멈추고서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내게 있어 두려운 생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무적이니까.”
“흥! 헛소리하지 마라! 이 세상에 진정한 무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인간을 창조한 신인족 조사라 할지라도 감히 무적이란 말은 입 밖에 꺼내신 적이 없거늘! 네까짓 게 뭐라고 무적을 논한단 말이냐!”
이때, 청아가 가볍게 손을 들더니,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간 공간이 격렬히 떨리더니, 무수히 많은 물질이 그 안으로 집중됐다. 잠시 후, 백애의 시선 속에 사람의 형상을 갖춘 생명체 하나가 출현했다.
인간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백애와 똑같이 생긴 신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신인은 어떤 비술이나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짜 생명체라는 사실이었다!
백애는 마치 귀신을 보는 듯 청아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생명체를 만드는 게 어려운가? 그렇지 않다. 그저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기만 하면 하나의 종족을 창조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청아는 백애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원한다면 너희 신인족보다 백 배, 천 배 더 강한 새로운 생령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때, 백애의 모습은 흡사 넋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한편, 청아는 가볍게 손을 휘저어 자신이 창조한 생령을 그 자리에서 지워 버렸다.
“새로운 생령을 창조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따르기에 권장하지 않는다.”
이때, 청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말이 많구나. 내가 왜 네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 대는지 아느냐? 그건 바로…”
청아가 눈을 뜨자, 차가운 시선이 백애에게 날아가 꽂혔다.
“너희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약한 것이냐! 너무 약해서 죽일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지 않았을 것을!”
“…….”
이때, 청아가 갑자기 작은 나무 인형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엽현과 똑같이 생긴 인형이었다.
나무 인형을 잠시 응시하던 청아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는 오빠에게 감사해야 한다. 오빠가 아니었더라면, 내 눈앞에 알짱거리는 모든 것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무, 무슨 이유로 말이오?”
이 질문에 청아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약한 것들은… 짜증나니까.”
이 말을 끝으로 청아는 자리를 떠났다.
생명의 본질을 초월한 그녀에게 생명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명에 대해 다시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데, 이는 모두 엽현 덕분이었다.
엽현이 존재하기에 생명에게서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청아가 떠난 자리, 백애의 육신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희미해졌다.
눈동자에는 망연자실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애는 사라졌다.
육신과 영혼을 포함한 완전한 소멸이었다.
얼마 후, 이 자리에 신인족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백애가 사라진 공간에 머물렀다.
“한발 늦었군…….”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백애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백애가 하계에서 온 인간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믿기가 어려웠다.
그 인간 여인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바로 이때, 신인족의 여인 하나가 노인 앞에 나타났다.
하얀 장포를 착용한 여인은 한 손에 책 한 권을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