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75
1876화 극한을 어찌 알아낸다는 것이오?
일검구사(一劍求死)!
그동안 이 검기를 쓴 적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검기는 정말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만 진정한 위력을 낼 수 있기에.
그리고 엽현에게는 이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검이 반원을 그린 순간, 엽현 주변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던 시공이 갑자기 사라졌다.
일검구사!
이는 엽현의 목숨을 담은 일검이었다!
쾅-!
찰나의 순간, 시공이 길게 찢어지면서 반대쪽에 있던 마염이 수백 장 뒤로 뒷걸음질 쳤다.
암암리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신인족 강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이 족장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
이때, 엽현이 천천히 쓰러졌다.
이 순간, 그의 영혼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었다.
비록 마염을 물러나게 하긴 했지만, 결국 마염이 쏟아낸 시공의 힘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한편, 마염은 다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사실 엽현의 실력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고 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두려운 것은 엽현이 펼쳐 보인 강력한 검기들이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펼친 검기는 자신의 시공압제(時空壓制)를 철저히 파괴하기까지 했다.
이게 과연 인간이 창조한 검기일까?
마연은 놀란 가슴을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엽현이 거의 소멸해 가는 이때, 웬 여인 하나가 엽현 앞에 나타났다.
여인은 다름 아닌 언지였다!
언지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한 줄기 신비한 힘이 엽현의 영혼을 휘감았다.
뒤이어 언지는 마염을 향해 돌아섰다.
“족장, 이 자를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두기는 아깝습니다. 그 자체로도 연구가치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그 두 사람을 찾는데 정보를 캐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모습을 숨기고 있는데, 이 녀석마저 죽어버린다면 더더욱 꼭꼭 숨어 버릴 것입니다!”
잠시 고민 끝에 마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허한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걱정 마십시오. 녀석의 몸 안에 각종 금제를 걸어 둘 테니까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 마염은 인간의 우주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멸하거라!”
바로 이때, 언지가 나섰다.
“족장, 기다려 주십시오!”
마염이 언지를 쳐다보자, 언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마염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째서지?”
언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엽현은 인류를 수호하는 자입니다. 제 생각에는 인간들을 인질로 삼아 그를 협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청삼남과 소복의 여인을 잡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동시에 이곳에 진법을 설치한 뒤, 엽현과 그 두 사람이 이용 가치가 없어졌을 때, 그때 가서 인류를 멸망시켜도 늦지 않습니다. 어쨌든 지금의 인류는 우리에게 하등 영향을 끼칠 수 없으니까요.”
마염이 고민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마염 역시 엽현의 검기에 대해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
그건 보통 검기가 아니었다.
이 검기를 창조해 낸 자는 절대 보통 존재가 아닐 것이다.
언지의 말대로, 엽현과 그의 배후에 있는 자들은 연구가치가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신인들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언지는 영혼만 남은 엽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것으로 신세가 완전히 역전됐구나… 하하…….”
잠시 후, 언지는 엽현을 데리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신인족, 신학원.
신학원은 신인족의 유일한 학원으로 신인이라면 누구나 입학을 꿈꾸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라면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종족이나 위계질서는 존재하고, 신인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인으로서는 신학원에 입학하여 신도문명을 배우는 것만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학궁(知學宮).
이는 언지의 학궁(學宮)이었다. 대사부인 그녀는 학궁 한 채를 홀로 쓸 자격이 충분했다.
학궁 안, 이미 육신이 회복된 엽현이 지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언지가 자리했다.
이리저리 엽현을 살펴본 언지가 웃으며 운을 뗐다.
“됐다! 네 몸 안에 삼백육십 종의 신법 금제가 걸어 놓았다.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절대 풀 수 없을 거야! 하하하!”
엽현은 언지를 무시한 채,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서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후후, 그렇게 큰 충격이었나?”
엽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아직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오.”
“그러니 내게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들어 언지를 빼꼼 올려다보았다.
“내게서 뭘 알고 싶은 거요?”
이 말에 언지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역시 똑똑한 녀석이야.”
언지가 손바닥을 펼치자, 작은탑과 청현검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를 보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상부에 올리지 않은 건가?”
“당연히 아니지.”
“하하… 독식하려고?”
“틀렸다.”
“틀려?”
언지가 탑과 청현검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내가 이 두 물건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이것들이 매우 수준 높은 지식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지식에만 흥미를 느낀다.”
언지가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보거라. 여기 있는 책들은 모두 다 내가 연구한 것들이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에 책들이 꽉꽉 들어찬 책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도 십만 권은 넘는 방대한 양이었다.
“우리 신인족은 일생 동안 시공에 대해 연구한다. 시공에 대한 조예가 깊어질수록 실력 또한 강해지지. 얼마 전 족장과의 일전을 기억하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럼 네가 왜 그렇게 비참하게 패배했는지 이해할 수 있느냐?”
“실력 차이?”
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시공의 차이였다. 족장은 그 차이를 이용해 너를 압도한 것이었지. 시공이 몇 겹으로 이뤄져 있는지 아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놀라지 말거라. 시공은 총 여섯 겹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신인족은 최대 네 겹까지만 수련할 수 있다.”
“신인족은 어째서 네 겹까지만 가능한 거요?”
언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섯 겹째의 시공은 다유시공(多維時空)이라 한다. 말 그대로 여러 개의 시공이 중첩된 것으로, 평범한 육신으로는 이 시공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사하고 만다. 게다가 다유시공엔 침입자를 공격하는 결계가 형성돼 있어서 진입조차 쉽지 않다. 시공우주의 공격은 구단의 강자라 할지라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지. 물론 이 시공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그건 다유시공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쉽게도 신인족 중에서는 이 시공에 진입해 본 자가 없었다. 구단 절정 급의 초고수들조차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지.”
“다섯 번째 시공에 진입할 수 없다면, 여섯 번째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소?”
“추측!”
언지가 웃으며 말했다.
“추측? 증거도 없이?”
“신인의 탐구는 모두 추측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증명해 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육중(六重) 시공을 넘어서, 칠중, 팔중… 심지어 백중시공까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니오?”
언지가 진지한 투로 대답했다.
“왜 불가능하겠느냐? 인류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신인족의 역사 또한 고작 팔백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우주의 역사는? 가볍게 조 단위가 넘어갈 것이다. 인간이건 신인이건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지.”
언지의 말을 듣자 엽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은 과연 무엇일까?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그저 수련에만 집중했을 뿐, 우주의 기원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모른 채로 있으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일단 진실을 알고 나니 깜짝 놀랄 정도로 심오한 내용이었다.
인간과 신인은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인가?
이 순간, 엽현은 자신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왜 내가 네 검과 탑에 그토록 흥미를 느낀 줄 아느냐?”
언지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엽현이 고개를 들었다.
“시공지도 때문에?”
언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현검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족장은 너를 시공의 심연으로 몰아넣었다. 삼중시공(三重時空)에 속하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위험한 곳이었지. 심지어 아무런 역점(力點)이 없는 곳이라 일반 무인이 빠지게 되면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는 기어이 살아서 그곳을 빠져나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 바로 이 검 때문이었다. 이 검이 널 밖으로 끌고 나왔다는 것은 검을 만든 사람이 최소 삼중시공에 통달했다는 걸 의미하지.”
엽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확실히, 마지막 순간에 그는 청현검을 통해 시공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추락했던 공간이 시공의 심연이었던 것이오?”
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공의 심연! 각 시공에는 가장 위험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공의 심연은 이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곳이지.”
언지가 엽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탈출한 것은 아직까지도 믿겨지지가 않는 일이다. 너는 시공의 심연 속에서 힘이 완전히 억압된 상태였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탈출할 수가 없었지. 하지만 너는 기어이 살아 나왔다.”
말을 하던 언지는 시선을 청현검으로 옮겼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무거웠다.
“아무래도 이 검을 만든 사람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구나.”
“…….”
시공의 심연!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자, 엽현은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 언지가 웃으며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검은 네 동생이 만든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는 얼마나 강하지?”
“그건 나도 모르오.”
“상관없다.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테니.”
“음? 그게 무슨 소리요?”
언지가 청현검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협조 좀 해 줘야겠다. 나는 이 검의 극한이 어디인지 알고 싶다. 이 검의 극한이 곧 그녀의 실력일 테니까.”
엽현은 이 말에 호기심을 느꼈다.
“극한을 어찌 알아낸다는 것이오?”
“간단하다. 내가 시공의 통로를 열면 너는 이 검을 이용해 사중우주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다.”
엽현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봅시다!”
언지가 가볍게 손을 긋자, 두 사람 정면의 공간이 기이한 회오리로 변했다. 뒤이어 이 회오리 내부에 시공의 통로가 생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