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884
1885화 넌 불쌍한 녀석이야
눈앞의 정족 노인 역시 구단의 강자였다.
이 순간, 염주의 마음속에는 점점 불안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정족은 진심으로 엽현을 돕고 있었다.
도대체 왜일까?
그건 분명 엽현의 배후라는 소복의 여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그 여자가 도대체 무엇을 약속했기에, 정족 전체가 엽현을 지키고자 열을 올리는 걸까?
정석대로라면 싸움을 멈추고 그 이유부터 알아내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상, 멈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엽현은 염주가 정족 노인에게 막힌 것을 보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살폈다. 그는 곧 신인족에 더 이상 구단 강자가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파악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쉭-!
장내에서 결투 중이던 신장 하나의 머리가 영문도 모른 채 잘려나갔다.
초살!
구단의 강자가 아니라면 엽현의 일검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검에 신장을 벤 엽현은 멈추지 않고 연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곧, 신인족 강자들의 머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이 작업은 손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 듯 매우 간결하게 이뤄졌다.
이 광경을 본 염주는 안색이 대변하여 소리쳤다.
“엽현을 막아라!”
하지만 불행히도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평범한 신인족 무인이 엽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이때, 먼 성공에서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노인 하나가 폭퇴를 거듭했다.
바로 마무선과 교전 중이던 황성의 성주였다.
성주를 떨쳐낸 마무선은 곧바로 엽현을 찾아내서는 손가락을 들어 엽현을 가리켰다.
순간,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엽현이 고개를 들더니, 주저하지 않고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발검정생사!
콰쾅-!
검광이 터져 나가면서 엽현이 그대로 사중시공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위기의 순간, 마무선이 재차 출수하려는 이때, 황성의 성주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에 마무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켜라!”
외침과 동시에 마무선의 일권이 허공을 갈랐다.
성주 역시 동시에 주먹을 뻗었다.
아무런 기운도 깃들어 있지 않은 평범한 일권!
하지만 두 개의 주먹이 마주한 순간, 이들 주변의 시공이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황성 성주는 다시 한번 수백 장 밖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정족이 정녕 멸망하고 싶은 건가!”
마무선이 노기 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에 성주가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정족은 이미 마음을 정했소이다!”
“…모르나보군.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마무선의 이 한 마디에 성주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렇다면 마무선의 본체가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단 말인가?
마무선이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만약, 여기서 정족 무인들을 이끌고 떠난다면 너희 선조의 체면을 봐서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 하지만 끝까지 인간들 편에 서겠다면 너희 정족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성주가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방금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정족은 엽 공자를 끝까지 지켜 낼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마무선이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는 건가?”
“하하, 이해할 필요 없소. 어디 할 수 있다면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다만, 우리 정족은 끝까지 엽 공자 곁을 지킬 것이오!”
마무선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이때, 말을 마친 마무선의 몸이 천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자 성주가 눈썹을 잔뜩 치켜세웠다. 혹시 물러나려는 걸까?
그러나 성주의 표정은 이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무선이 떠나는 게 아니라 그의 본체가 이곳에 현신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마찬가지로 마무선의 본체가 강림하려 한다는 것을 확인한 염주 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엽현을 처단하려면 반드시 마무선의 본체가 등장해야만 했다.
마염 등은 더는 무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엽현 측이 제아무리 필사적으로 덤벼든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구단의 강자들이 포진해 있는 신인족을 전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들이 할 일은 그저 마무선의 본체가 등장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뿐이었다.
반면, 황성 성주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엽현 하나를 죽이기 위해 신인족 선조가 나타나고, 심지어 마무선의 본체까지 현신하는 상황은 그가 예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도대체 엽현이 뭐기에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온단 말인가!
이때, 군제가 황성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완전히 현신하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성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낸들 알겠나? 하지만 절대 긴 시간은 아닐 거다!”
“그럼 어쩌지? 좋은 수 없을까?”
“후… 나라고 별 수 있겠냐?”
성주는 재차 고개를 저었다.
신인족의 선조는 그 분신만으로도 성주를 압도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본체가 등장한다면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분신의 힘이 이 정도라면 본체의 경지는 십단 이상일 것이 분명하니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성주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져 갔다.
이때, 엽현이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어르신들!”
성주와 군제가 고개를 돌리자, 엽현이 포권을 취하며 공손히 말했다.
“두 분께서 오늘 도와주신 일은 이 엽현이 죽는 날까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 작은 일에 불과하니 그럴 것까지는 없소!”
군제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제겐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두 분께서는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와 신인족 간의 원한은 저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엽현은 아무 대가 없이 상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때, 성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엽 공자, 마무선의 본체가 당도하면 우리의 실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소. 혹시 그분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겠소?”
성주가 말한 그분이란 청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청아와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이 대답을 듣자, 성주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때, 군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라면 절대 형님이 이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성주는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여기서 더 크게 걸어야 하나?’
성주는 엽현에게 작은 인정을 베푼 상태이긴 했지만, 이대로 정족을 데리고 떠난다면 그 공로가 확연히 깎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청아를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적었다.
반면, 이대로 엽현을 도와 끝까지 마무선과 싸운다면, 훗날 크게 치하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큰 보상에는 큰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만약, 엽현의 동생이 정말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엽현은 물론 자신들까지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등장해도 마무선의 본체를 이기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걸어? 말어?’
정족을 생각하자니, 성주로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 군제가 웃으며 말했다.
“난 끝까지 간다!”
성주가 군제를 쳐다보자, 군제가 진지한 투로 말했다.
“너 방금 마무선을 상대할 때 어땠어?”
“……그야 대단히 강하다는 느낌?”
“그럼 그 여자를 마주했을 땐?”
순간, 성주의 안색이 공포로 인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두려움!
청아를 앞에 두었던 당시, 성주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바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기억을 떠올린 성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정염(精炎), 이미 백팔십만 년을 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백만 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결심을 굳힌 성주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더니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엽 공자, 우리 정족은 그대와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정했소! 만약 오늘 살아남는다면 훗날 그분을 만나게 됐을 때 좋은 말 한두 마디 전해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만약 죽게 된다면… 운명을 받아들이겠소! 하하하!”
성주는 결국 도박을 선택했다.
자신의 생명 뿐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부족 전체의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을!
정염의 말을 들은 군제는 다소 놀란 상태였다.
이 늙은이가 정족 전체를 걸고 이렇게나 큰 도박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야말로 정족의 명운을 가를 결정이었다.
물론, 군제 또한 승리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후회는 전혀 하지 않았다.
청아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공포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군제와 정염 모두 무인으로서의 직감을 믿고서 도박을 건 것이었다.
한편, 엽현의 표정은 다소 복잡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큰 도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청아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청아!
엽현은 고개를 들어 먼 성공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산과 같은 동생을 두고 있는데 자신이 굳이 더 강해지려 발버둥 칠 필요가 있을까?
정말 그럴 이유가 있을까?
엽현은 처음으로 금수저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현에게 있어 청아의 존재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바로 이때, 조용하던 성공이 일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를 느끼자, 신인들이 흥분하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오셨다!
선조가 오셨다!
무인들의 시선은 깊은 성공으로 집중됐다. 아득히 먼 어둠 속, 성공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고, 시공이 뒤틀려 왜곡된 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강력한 기세는 인간계의 공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마무선의 본체가 등장한다면 이 우주가 견딜 수 있을까?
엽현은 저 멀리 들끓고 있는 성공을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강하다!
상대의 기운은 단연코 구단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때, 작은탑의 한숨 소리가 엽현의 귀에 들려왔다.
“이 상황에 웬 한숨이야?”
“정말이지 널 동정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말이지.”
“동정? 무슨 말이야?”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이에 탑이 나직이 대답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결국 등장하는 적들은 너보다 서너 배는 강한 녀석들이잖아. 게다가 지금 오는 녀석은 네 능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어!”
“…….”
“나는 주인이 널 단련시키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특히나, 네가 상대해야 할 적들이 너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어. 주인 역시 너처럼 실전을 거듭하며 지금 경지에 도달한 것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주인이 결국 적보다는 강했다는 거야. 하지만 너의 경우는 네가 혈맥을 발동하고 영혼을 태워도 이기지 못하는 상대가 많았지.”
작은탑이 말을 멈추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넌 불쌍한 녀석이야. 어쩔 땐 정말로 친아들이 아닌 것 같아.”
“…….”